달콤 쌉싸름한 초콜릿-관능의 요리로 가부장주의를 해체하는 마법 소설은 양파 메타포로 강조한다
“양파는 아주 곱게 다진다. 양파를 다지면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다면 자그마한 양파조각을 머리 위에 얹는다. 양파를 다질 때 눈물이 나오면 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한번 눈물이 나왔다 하면 양파를 다지는 동안 내내 울음을 멈출 수 없다는 게 영 안 좋다. 여러분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만날 그렇다. 수도 없이 울었다. 엄마는 내가 양파에 민감한 건 티타 할머니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했다.”(권미선 역, 민음사, 2004)
1.영화 시나리오로 구상해 쓰기 시작한 소설답게 영상이 흐르는 것처럼 묘사됐다. 실제 양파를 다듬고, 다지는 것처럼 눈을 찔끔거리는 것을 느낄 정도다. 쉬운 어휘의 문장 구성과 평이한 문체도 깔끔하게 읽힌다. 양파와 눈물, 티타 할머니라는 키워드는 여러 가지 뜻을 함유한 은유로 소설의 본격 전개를 예고하고 있다. 주인공이 따로 있는 1인칭 화자(話者) 형식을 취했다.
2.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Como Agua Para Chocolate, 1989)’은 음식과 성(性), 멕시코 혁명기의 가족 중심 농장사람들에 기발한 상상력을 얹어 쓴 요리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역작이다.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지만 새로운 요리 문학의 탄생을 알리며 나오자 마자 날개 돋힌 듯이 팔렸다. 스페인 등 히스패닉계에서 100만 부 가까이 팔렸고, 1993년에만 미국에서 20만2000부 판매됐다. 2010년대 후반까지 전 세계에서 33개 언어로 번역돼 500만 부 넘게 팔렸다.
원제 뜻은 ‘초콜릿를 녹이는 뜨거운 물’, ‘부글부글 끓어 올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스페인어권 국가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Like Water for Chocolate’로 번역됐다. 제목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Like Water for Chocolate-A novel in monthly installments with recipes, romances and home remedies’도 있다.
1994년 미국출판인협회의 ‘에비 상(ABBY, American Booksellers Book of the Year)’을 받았다. 작가는 2016년 원작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기 위한 글 ‘티타의 일기(Tita's Diary)’를 출간했다.
3.라틴 아메리카 작가 특유의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로 ‘요리와 관능’을 결합, 재미를 극대화했다. 허풍스럽고, 해학적이기까지 한 에로티즘이 통용되는 것도 매직 리얼리즘 효과다.
Magic realism은 현실과 환상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사실주의를 말한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노벨문학상(1982)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1927~2014)가 선구자로 분류된다. 이 소설 전체적으로 미각을 에로틱하게 표현한 문장력도 압권이다.
4.이 소설은 ‘형식이 있어야 내용이 있다’는 형식주의(Formalism)에도 충실했다. 일상에서 흔하게 하는 ‘요리’에 모든 시나리오적 장치를 접목한 것이다.
소설을 1~12장(1월~12월)으로 나누고, 22년동안 이어진 사랑을 요리 레시피에 얹힌 것은 형식이다. 사랑을 막는 외적 환경(家規, 집안 규칙), 잊을 수 없는 애절한 사랑, 영원으로 가는 종말의 사랑 등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형식과 내용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소설이다.
봉건 가족주의가 해체되지 않은 시대만 해도 주방은 여성만의 사적인 공간, 한(恨)의 공간 이었다. 이런 공간을 요리와 사랑으로 엮고,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듯이 억압의 가족주의를 태워버린다. 이 작품을 페미니즘 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둘 수 없는 이유다.
5.소설에 펼쳐지는 요리 레시피는 1월 크리스마스 파이, 2월 차벨라 웨딩 케이크, 3월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4월 아몬드와 참깨를 넣은 칠면조 몰레, 5월 북부식 초리소, 6월 성냥 반죽, 7월 소꼬리 수프, 8월 참판동고, 9월 초콜릿과 주현절 빵, 10월 크림 튀김, 11월 칠레고추를 곁들인 테스쿠코식 굵은 강낭콩 요리, 12월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이다.
등장인물은 주인공이자 재능있는 요리사 티타(Josefita de la Garza), 연인 페드로 무스키스(Pedro Muzquiz), 어머니 마마 엘레나(Elena de la Garza), 언니 헤르트루디스(Gertrudis de la Garza), 언니 로사우라(Rosaura de la Garza) 등이다.
또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아들 로베르토 무스키스(Roberto Muzquiz), 딸 에스페란자 무스키스(Esperanza Muzquiz)와 남편 알렉스 브라운(Alex Brown). 가정의인 존 브라운(John Brown)박사, 하녀 첸차(Chencha)와 첫사랑 헤수스 마르티네즈(Jesús Martinez), 혁명가 후안 알레한드레즈(Juan Alejandrez), 농장 요리사 나차(Nacha), 농장 매니저 니콜라스(Nicholas) 등도 나온다.
6.줄거리는 1910년대 멕시코 혁명(1910~1917)이 한창이던 시기의 봉건 가부장 집안에서 일어난 사랑과 종말 이야기다.
주인공 티타는 ‘막내딸은 죽을 때까지 부모(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라는 봉건 가족 규칙으로 사랑하는 페드로와 결혼하지 못한다. 그런데 페드로는 티타와 가까이 있겠다는 이유로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한다.
부엌데기 신세로 요리만 하는 티타는 재료와 특유의 레시피, 시간에 마법을 걸어 새로운 요리를 탄생시킨다. 요리에 감정까지 실어서 은밀하고 신비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여기에 자유와 평등, 자기 목소리를 요리에 접목해 사랑의 요리를 완성한다. 하지만 막바지에 찾아온 페드로와 사랑은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해 끝내 활활 타는 불꽃 속에서 영원의 세계로 간다.
7.영화를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은 작가가 각색하고, 당시 남편 알폰소 아라우(Alfonso Arau)가 감독해 공전의 히트를 쳤다.
멕시코 아카데미(Mexican Academy of Motion Pictures)에서 11개 부문 상을 받았고, 미국에 진출해 전미 비평가 협회 선정 ‘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8.한국에서는 1993년 서울 2곳의 극장에서 개봉했으나 관객이 거의 들지 않았다. 흥행 참패였다. 그러나 그해 하반기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를 본 이들에게서 ‘재미있는 수작(秀作)’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1990년대 PC통신 등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9.2022년 영국 발레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크리스토퍼 휠던(Christopher Peter Wheeldon,1973~현재)과 영국 작곡가 조비 탤벗(Joby Talbot, 1971~현재)에 의해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발레 시네마로 만들어졌다. 2022~2023년 국내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라우라 에스키벨(Laura Esquivel, 1950)=멕시코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정치인.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현대 작가. 2023년 이름은 라우라 베아트리스 에스키벨 발데스 (Laura Beatriz Esquivel Valdés)이다.
1.멕시코 멕시코시티 콰우테모크(Cuauhtémoc)구에서 전신 교환원인 훌리오 세자르 에스키벨(Julio César Esquivel)과 주부인 요세파 발데스(Josefa Valdés)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멕시코시티에서 교사과정을 마치고, 교사를 하다가 어린이 연극 워크샵(children's theater workshop)을 설립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어린이를위한 드라마를 작곡하고 제작했다.
2.1989년 내놓은 첫 장편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Como Agua Para Chocolate)’이 인기를 끌면서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가로 발돋움했다. 콜롬비아 출신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 칠레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 Llona,1942~현재)와 함께 마술적 리얼리즘(Magical realism)의 대가로 꼽히지만 전통 문학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작가다.
3.영화 배우이자 감독인 알폰소 아라우(Alfonso Arau Incháustegui, 1932~현재)와 결혼, 12년을 살다가 이혼했다. 현재는 하비에르 발데스(Javier Valdés)와 재혼, 멕시코시티와 뉴욕을 오가며 살고 있다.
4.2009년에는 정계에 진출했다. 멕시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민주혁명당(PRD, Partido de la Revolución Democrática) 의원으로 활동했다.
2012년에는 모레나(Morena, Movimiento Regeneración Nacional)당에 합류했다. 멕시코 시티 문화위원회 위원장과 모레나 당의 과학 기술 및 환경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5.주요 작품으로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Como Agua Para Chocolate, 1990)’, ‘사랑의 법칙(1995)’, ‘분출된 욕망(Tan Veloz Como El Deseo(2001)’ 등이 있다.
또 어린이 책 ‘불가사리(Estrellita Marinera(1999)’, 에세이 ‘사랑에 대해서(El Libro de Las Emociones(2000)’, 요리에 관한 글 모음집 ‘은밀한 식탁(Intimas Secuencias(1999)’이 있다.
최근 몇년 사이에는 ‘A Lupita le gustaba planchar(2014)’, ‘El diario de Tita(2016)’, ‘Mi negro pasado(2017)’ 등이 발간됐다. 다만 국내는 아직 번역 소개되지 않았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