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절망에 빠진 비참한 사람들의 혁명敍事를 첫 문단에 압축하다.
“1815년 10월 초 어느날이었다. 해지기 한시간 전쯤 되었을까. 길을 걸어온 듯한 나그네가 디뉴의 거리에 들어서고 있었다.때마침 거리에 나와 있던 몇몇 사람들이 불안한 눈초리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보다 더 남루하고 초라한 행색을 한 사람은 처음 본다는 표정이었다. 나그네는 중간정도 키에 근육질로 다져진 단단한 몸은 힘깨나 쓸 것처럼 보였다.나이는 어림잡아 마흔여섯에서 마흔 여덟살쯤...”(최은주 옮김, 서교출판사, 2018)

1. 장엄한 서사의 첫 문단은 독자의 눈길을 끌기위한 소설적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각 단어에 따라 중의적인 뜻을 지니고 있지만 어려운 말이 나오지 않아 쉽게 읽힌다. 첫 문단은 장황할 정도 길지만 도입부에 많은 것을 함축시켰다. 석양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지만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의 시작(혁명의 잉태)을 암시한다. 도입부는 그것을 설명해 내고 있다.
2.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1862)’ 은 세계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프랑스 민중의 혁명 서사를 노래한 초대형 명작으로 세계 200여 나라에서 출판됐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프랑스어 원문으로 65만5478개의 단어가 쓰였으며, 그동안 나온 작품 중 가장 많은 불어가 쓰인 작품 중 하나다. 프랑스 문학작품 중 영화와 연극, 뮤지컬 등으로 가장 많이 만들어진 걸작이다.
미국의 소설가 업턴 싱클레어(Upton Sinclai,1878~1968)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 6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영어로는 ‘The Miserables’, ‘The Wretched’, ‘The Miserable Ones’, ‘The Poor Ones’, ‘The Wretched Poor’, ‘The Victims’, ‘The Dispossessed’ 등으로 번역된다.

3.레 미제라블은 전쟁과 폭동, 가난의 굴레에서 비참한 사람들이 겪는 인간 드라마다.
위고가 구상과 집필 등에 17년을 쏟은 이 소설은 나오기 전부터 불어권에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벨기에의 한 출판사는 출시 6개월 전부터 보도 자료를 배포하는 등 이례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했다고 한다.
작품이 시작되는 1815년은 패전의 프랑스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고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갔다.
혁명은 쓰러졌고, 왕정이 다시 등장했다. 민중들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레 미제라블은 이런 절망의 시기에 쓰러진 변혁의 혼을 달래는 진혼곡(鎭魂曲)이다. 진혼에 이은 혁명의 잉태를 암시하는 셈이다.
4. 등장인물은 주인공 ‘장 발장(Jean Valjean)’, 아버지 ‘장 발장’, 어머니 ‘장 마티외(Jeanne Mathieu)’, 누나 ‘잔느 발장(Jeanne Valjean)’, 장 발장과 대립하는 경감 ‘자베르(Javert)’, 고아 출신 여직공 ‘팡틴(Fantine)’, 팡틴의 사생아 딸 ‘코제트(Cosette)’, 코제트 연인 ‘마리우스 퐁메르시(Marius Pontmercy)’, 여관을 운영하는 ‘테나르디에 부부(Les Thénardiers)’, 부부의 장녀 에포닌 테나르디에(Éponine Thénardier) , 거리의 꼬마 혁명가 가브로슈 등이다.
주변 인물로는 장발장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 인물 ‘미리엘 주교(Monseigneur Myriel)’, 사업가 노인 ‘포슈르방(Père Fauchelevent, 포슐방)’ 등이 나온다.
등장 인물 한 명 한 명이 곧 주인공일 정도의 강력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
특히 마리우스는 로마시대 율리우스 카이사르(BC100~BC44, 줄리어스 시져)의 후견인이자 민중파를 대표하는 정치가 마리우스(BC 157년 전후~BC86)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했다.

5.줄거리는 쓰러진 혁명에 대한 진혼곡이자 새 혁명의 토대를 구축하는 희망가다. 굶주리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살이한 장 발장은 하룻밤을 재워주면서 은식기에 은촛대까지 선물한 미리엘 주교에게 감명받아 새 삶을 살기로 한다.
장발장은 각고의 노력끝에 정체를 숨기고 한 도시의 시장이 돼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던 중 팡틴을 만나고, 팡틴은 죽기 직전 딸 코제트를 부탁한다.
그러다 자신과 비슷한 용모의 사람이 재판을 받자 자기가 진짜 장발장임을 밝힌다. 형장에 끌려가지만 탈출, 혹사당하던 코제트를 구하고 입양한다.
탈옥수를 쫓던 경감 자베르의 눈을 피해 수도원에서 코제트를 키우다가 파리로 이사한다. 코제트가 사랑에 빠져 마리우스랑 결혼하자 장 발장은 코제트를 떠난다.
마리우스는 프랑스 6월 봉기 때 장 발장이 자신을 살려준 은인인 것을 알아채지만 장 발장은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장발장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코제트와 재회하고 죽는다.
6.레 미제라블은 위고가 구상과 집필 등에 17년을 쏟아 부은 소설로 세계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미국의 소설가 업턴 싱클레어(Upton Sinclai,1878~1968)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 6개 중 하나"라고 말했다. 너무나 유명한 소설로 세계 200여 나라에서 출판됐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우리나라는 일제(1940~1945) 때인 1915년 최남선(1890~1957, 문인이자 사학자) 선생이 일본어를 다시 번역, ‘너 참 불쌍타(축약본)’로 소개됐다.

#.빅토르 마리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소설가, 시인, 극작가), 정치가, 서양 문학사의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 중 1인.
1.프랑스 프랑슈콩테의 중심지 브장송(Besançon)에서 나폴레옹 군대 지휘관인 요제프 레오폴 지기스베르트 위고(Joseph Léopold Sigisbert Hugo,1774~1828)와 어머니 소피 트레부셰(Sophie Trébuchet, 1772~1821)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파리의 사립 기숙학교인 펜션 코르디에르(Pension Cordier)에 입학했다.이후 로스쿨(law school)을 다녔다.위고가 16살 때 부모는 이혼했고, 스무살이 될 쯤에 어머니도 사망했다.
2.스무 살 때 소꿉친구인 아델 푸셰(Adèle Foucher,1803~1868)와 결혼했지만 1832년에 만난 정부(情婦)이자 문학의 뮤즈인 여배우 쥘리엣 드루에(1806~1883)와 함께 한 시간이 더 많았다.
쥘리엣 드루에는 심지어 위고가 영국 한 섬으로 망명할 때도 위고 부인과 함께 동행했다. 또 유부녀 레오니 다우네(Léonie d’Aunet)와 7년 이상 불륜을 저질렀고, 1845년 7월 간통으로 체포됐다. 이밖에 레티티아(Laetitia )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 사라 베른하르트(Sarah Bernhardt)라는 여인과도 사랑을 나눴다.
3.위고는 가정적으로는 매우 불행했다. 실어증에 걸린 막내딸만 빼고 자녀들이 하나같이 비극적으로 위고보다 먼저 사망했다. 특히 아내 아델(1868년 사망)과 아들(1871), 연인 드루에(1883)도 위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돈 걱정없이 살았지만 위고의 삶은 늘 부유(浮游)했고, 사랑을 갈구하는 일(여성 편력)도 심했다.
그러나 부자(富者)의 삶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일반 백성, 민중들의 삶에 지대한 관심과 지원을 보냈다. 서민을 위해 행동하는 실천하는 부자 지성인의 생활을 한 셈이다.

4.위고는 1841년에 프랑스 예술인의 영예인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에 선출됐다.
1851년에는 미국에 보낸 한 편지에서 '미국은 노예제를 포기하지 않으면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며 노예제 폐지를 촉구했다.
1885년 5월 폐렴으로 파리에서 영면했다. 죽기 이틀전에는 ‘사랑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고, 마지막 말은 “검은 빛이 보인다.”였다고 한다.
장례식은 문학가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국장(國葬)’으로 치러졌고, 프랑스 곳곳에서 200만 명의 인파가 그를 추모했다.
하지만 유일한 생존 자녀로 말을 못하는 딸 아델(1915년 사망, 이자벨 아자니 주연 영화 '아델 H 이야기' 주인공)은 장례식 때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유해는 신고전주의 성당이자 영웅들의 묘지 파리 5구 팡떼옹(Panthéon)에 안장됐다.
5.대표적인 작품으로 ‘레 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 ‘웃는 남자’, ‘뤼 블라’, ‘바다의 노동자’, ‘사형수 최후의 날’ 등이 있다.
위고 문학관은 파리 마레지구 보주광장의 로앙-게메네에 있는 저택을 파리시가 사들여 개관했다. 위고가 16년간(1832~48) 살았던 곳이다.
노르망디의 빌레퀴에르에 빅토르 위고 박물관이 있다. 선박업 부자였던 사돈(아들이 위고 맏딸과 결혼했으나 부부가 신혼 초 보트사고로 익사)이 기증한 곳이라고 한다.
6.기네스북에 가장 짧은 편지의 주인공으로 기록돼 있다.
"?(잘 팔립니까?)"를 보냈는데, "!(네, 잘 팔립니다!)" 라는 답장이 왔다고 한다. 위고가 ‘레 미제라블’의 판매 상황을 묻는 편지에 ?를 써서 보내니 출판사에서 !를 보내온 것이다.

7.미국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1930~2019, 전 예일대 교수)은 빅토르 위고에 대해 “나는 20세기에 위고와 견줄 만한 작가가 없다고 생각하며, 21세기에도 그런 작가가 나올지 의심스럽다”고 격찬했다.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1869~1951)는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시인(작가)이 누구냐는 물음에 “당연히 위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8.위고가 묻힌 파리 5구 팡떼옹에 최초로 묻힌 사람은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의회 의장을 지낸 웅변가 오노레 미라보(1749~1791)였지만 후에 철거됐다. 팡떼옹에는 계몽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1778), 최고의 계몽 사상가로 계몽의 신으로 불리는 볼테르(1694~1778), 과학자 마리 퀴리 부부, 소설 ‘삼총사’,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쓴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에밀 졸라(1840~1902) 등이 묻혀 있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