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유럽 민중소설의 효시이자 19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첫 문단은 아리따운 파리 여인의 처참한 파멸을 예고한다

1. "제르베즈는 새벽 두시까지 랑티에를 기다렸다. 창가에서 얇은 캐미솔 바람으로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몸을 떨다가 깜빡 선잠이 들었던 듯 했다 그러다가 양쪽 빰이 눈물에 젖은 채 열에 들뜬 몸으로 침대 옆으로 엎어졌다. 랑티에는 보 아 되 테트 식당에서 함께 외식을 한 후 일주일 내내 그녀와 아이들만 내버려둔 채 밤 늦게야 돌아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일자리를 찾는다는 핑계를 둘러댔다. 그날 저녁,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제르베즈는 그랑발콩 무도장으로 들어가는 그를 언뜻 본 것 같았다. 번쩍거리는 열개의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휘황찬란한 불빛이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바깥의 대로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랑티에의 바로 뒤로는 같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던 아담한 체구의 아델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금속 연마공으로 일하는 아델은 두손을 늘어 뜨린 채 랑티에의 뒤로 대여섯 걸음 물러나 있었다. 입구를 비추는 둥그런 조명등의 강렬한 불빛 아래 그와 함께 있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팔짱을 꼈던 팔을 막뺀 듯 했다.---."(에밀 졸라 저,박명숙 역, 문학동네, 2011)

1.문장 하나하나가 짧고 선명하게 시작하고 있다. 상징이나 은유보다는 있는 그대로, 날 것을 적극 묘사해 쏠려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첫 문단이다. 소설 독자(중산 서민층)를 미리 염두에 둔 문체라 할 수 있다. 도입부에 굳이 동거남과 여친의 움직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여주인공의 비참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다. 눈물과 핑계, 불빛과 어둠은 소설 전체 흐름을 읽는 키워드다. 본문에 나오는 *.캐미솔은 여성들이 코르셋이나 슈미즈 위에 입던 짧은 속옷 *. 보 아 되 테트는 쌍두(쌍두, 머리가 둘) 송아지 *.그랑발콩(Grand Balcon)은 커다란 발코니, 발콩은 주택에서 불쑥 티어나온 곳이어서 속어로는 여성 가슴을 뜻한다.

2.에밀 졸라의 '목로주점(라소무아르,L'Assommoir, 1876 연재,1877 출간)'은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명작이다. 19세기 최초의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당대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린 걸작이다. 서민과 빈민층의 삶에 사실주의를 그대로 들이댄 최초의 소설이자 헐벗고 굶주리는 민중을 전면에 내세은 사회적 리얼리즘 소설의 효시다.
소설은 당초 총 20권 시리즈인 '루공 마카르-제2제정 시대아래 한 가족의 자연적·사회적 역사(Les Rougon-Macquart, Histoire naturelle et sociale d'une famille sous le Second Empire) 총서(叢書)'의 7번째 소설로 1876년 급진 공화주의 신문 르 비앵 퓌블릭(Le Bien Public, 1868년 창간, 프랑스 북부 디종지역 일간신문)에 연재됐다. 하지만 빈곤과 퇴폐의 상업화에 대한 문단과 독자 항의가 이어지면서 연재가 중단됐다.
소설은 '보바리 부인'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에게 헌정하는 단행본으로 1877년 파리 출판사 조르주 샤르팡티에(Georges Charpentier,1846~1905, 출판인으로 인상파 화가 개인전 여는 화랑 경영)에서 간행됐다. 책은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38쇄를 연속 찍을 정도였다. 당시 최고의 스테디셀러 작가이자 문단의 좌장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의 개인적 명성은 물론 그의 명작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1862)'의 인기를 뛰어넘었고, 프랑스 사회는 싫든좋든 ‘졸라 앓이’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특히 파리 노동자의 서사시로 평가받으면서 출간 3년 만에 역사상 처음 100쇄를 돌파, 대량 인쇄시대의 문을 연 최초의 소설이 됐다. 물론 '파리의 지가(紙價,종이 값)'를 한층 끌어올렸다는 소리도 나왔다. 저자는 이 소설 한편으로 명성과 위상을 프랑스와 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보수 비평가들은 '싸구려 술집의 발자크'라며 분노했다. 19세기 프랑스 대중 소설의 문을 연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1799~1850)는 통속 이야기인 '고리오 영감' 등이 인기를 끌면서 상업소설, 통속소설의 원류로 통했다.
영역은 1884년 영국 출판인이자 작가 헨리 리차드 비제텔리(Henry Richard Vizetelly, 1820~1894)가 원본을 일부 수정 번역, 출간했다. 그럼에도 영국 의회의 비난을 받았고, '부도덕하고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기소돼(음란죄) 100파운드의 벌금을 물었다.
제목 '라소무아르(L'Assommoir)'는 '기절시킨다(assommer)', '함정', '도살용 도끼'라는 뜻인데 앞에 관사를 붙인 것이다. '노동계급이 값싼 술로 슬픔을 달래고 정신없이 술을 마실 수 있는 가게'라는 뜻이다. 즉 '자체 증류 값싼 술을 파는 가게'다. 영어로 'The Dram Shop' , 'The Gin Palace' , 'Drunker' ,'The Drinking Den' 또는 'The Assommoir'로 번역한다.

3.소설은 프랑스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황제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1808~1873)가 지배하던 프랑스 제2제정 시대(1852~1871)가 시간 배경이다. 나폴레옹 3세는 정복자 나폴레옹 1세
(Napoléon Bonaparte,1769~1821)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Louis Napoléon Bonaparte,1778~1846)가 나폴레옹의 의붓딸(조세핀의 딸) 오르탕스 외제니 세실드 보아네르(Hortense Eugénie Cécile de Beauharnais,1783~1837)와 결혼(아들 셋 낳고 1810년 이혼)해 낳은 아들이다.
목로주점의 시대 배경은 정확하게는 1856~1869년이다. 당시는 1870년 벌어질 프랑스-프러시아 싸움인 보불전쟁(普佛戰爭, Franco-Prussian War, 1870~1871)의 불온한 기운을 잉태하고 있던 시기다. 물론 실제 구상과 쓰기 시작한 것은 1875년 전후였던 만큼 보불 전쟁 패배로 온갖 어려움을 참고 지내는 파리 시민들의 감정과 시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쓰여 있다. 무능한 지도자가 통치하는 시기 민중들의 '파리의 우울'이 투영된 것이다.
한편 프랑스는 보불전쟁 참패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이 선포되고(1871년 1월),알짜 땅인 알자스-로렌 지방을 독일에 빼앗긴 수모를 당했다. 또 국내총생산(GNP)의 25%에 해당하는 전쟁 배상금을 물게 됐다. 그런데 독일의 '배상금 완납이 5년이상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2년 4개월만인 1873년 9월(1871.1.28일 휴전,5월 배상 내용 포함한 프랑크푸르트 조약 체결)까지 완납해 보불전쟁 설계자 독일 제국 첫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를 놀라게 했다. 한편 이 때 막대한 돈을 번 이가 '세계 금융황제'로 불린 J. P. 모건(John Pierpont Morgan,1837~1913)이다. 모건은 영국 금융가가 프랑스의 모라토리움을 예상, 프랑스 국채를 15~20%로 헐값 처분할 때 모두 사들여 결국 떼돈을 벌었다.
'목로주점'은 소설 무대인 파리 플라사르 거리와 구트도르 거리 등 노동자 계층이 사는 빈민가의 열악한 주택, 비참한 노동현실, 돈이 없어 창녀로 전락하는 여인 등을 가감없이 묘사한 작품이다. 저자는 보다 사실적인 소설을 쓰기 위해 파리 거리, 특히 빈민가의 은어(隱語)를 장기간 연구했고, 귀족들이 잘 모르는 노동자들의 속어와 욕설을 그대로 묘사했다. 노동자와 빈민 계층에 대한 최초의 '임상 보고서'이자 당대 풍속을 다양하게 묘사, 풍속 사전 역할을 한 셈이다. 실제 여인들의 빨래터 싸움, 쿠포와 제르베즈의 결혼식, 부부의 루브르 미술관 견학, 세탁소 축일 잔치 등은 리얼리즘의 극치를 달리는 묘사라 할 수 있다.
소설은 연재될 때 글을 쓰는 이와 인물의 목소리를 결합시킨 '자유 간접화법(自由間接話法, free indirect discourse)으로도 주목을 끌었다. 소설 대중화의 선구자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1799~1850)가 유행시킨 자유간접화법이 그대로 투영됐기 때문이다. 자유간접화법은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말이 서술자의 말과 겹쳐 이중 목소리로 나오는 기법으로 등장인물의 말에 형용사 등을 뒤섞어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서술이다.

4. 목로주점은 파리의 비참한 노동자들의 희로애락과 파멸을 묘사한 걸작으로 제르베즈 마카르(Gervaise Macquart)가 중심 인물이다. 등장인물은 여주인공 제르베즈, 제르베즈의 첫 남자인 모자 제작공 오귀스트 랑티에(Lantier), 둘의 자녀 클로드 랑티에 (Claude Lantier)와 에티앙(Étienne Lantier), 두번째 남편인 지붕 함석장이 기술자 꾸포(Coupeau)와 딸 나나(Anna Coupeau, 나나), 제리베즈를 짝사랑하는 대장장이로 500프랑을 빌려준 꾸제(Goujet), 랑티에와 줄행랑 친 아델(Adèle) 등이 중심이다. 또 제르베즈의 라이벌인 비르지니(아델의 여동생)와 남편 뽀아쏭, '목로주점'을 소유한 콜롱브 영감 등도 나온다.

5.줄거리는 시골에서 파리로 올라온 아름다운 여인의 불행한 삶에 대한 보고서다. 여주인공인 제르베즈는 돈을 벌기 위해 애인 랑티에와 함께 파리로 나와 동거한다. 둘은 아이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모자 제조 기술자인 랑티에의 알콜 중독과 게으름이 도지는데 결국 다른여자와 도피 행각을 한다. 젤제르베즈는 이에 굴하지 않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세탁부 일을 한다. 그런데 다락방에 사는 함석장이 쿠포가 집요허게 청혼, 혼인을 하고 대장장이의 도움으로 자신의 가게를 열어 운영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 쿠포가 지붕에서 일을 하다 떨어져서 부상당하면서 모아 둔 돈이 치료비로도 모두 들어가버린다. 남편은 요양을 해서 나아졌지만 빈둥빈둥 놀면서 술에 찌든 생활을 한다. 엎데 덮친 격으로 도망갔던 전 동거남 랑티에가 찾아오자 동정심에 빠진 남편의 설득으로 세 사람이 한집에서 살게 된다. 두 남자는 알콜에 찌들어서 제르베즈가 벌어온 돈만 축내고, 결국 생활을 점점 빈민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희망을 잃은 제르베즈는 가게를 접고 술만 마셔대면서 결국은 길거리로 나선다. 쿠포는 알코올 중독으로 죽고 뒤이어 그녀도 굶어죽는다.

6.소설은 나오자 마자 파리 문단이 들끓었다. 당시까지만해도 문학 작품에서 금기시했던 빈민층의 삶이 너무 리얼하게 묘사되면서 진보 보수파 양 진영의 협공이 이어졌다. 공화주의자 지식인과 노동계층의 진보파에서 노동자의 비참함을 팔아먹는 작가, 가톨릭과 귀족 중심의 보수파에서는 사회의 욕된 면과 저열한 면만을 폭로하는 작가로 비판받았다.
프랑스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폴 부르제(Paul Bourget, 1852~1935)는 "소설 '목로주점'은 에밀 졸라 최고의 소설"이라며 "졸라는 세기말의 발자크"라고 격찬했다. 프랑스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42~1898)와 졸라의 제자이자 후배 작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 본명 Charles-Marie-Georges Huysmans, 1848~1907)는 "대담하고 파격적인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다만 당대 프랑스 문단의 좌장인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는 "빈곤을 구경거리로 제시했다"며 '불량한 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보수 비평가들은 "비관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작품”이라고 힐난했다.

7.소설은 영화로도 많이 나왔다. 1909년 무성 영화 시대의 프랑스 영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알베르 카펠라니 (Albert Capellani, 1874~1931)가 무성영화 '목로주점(L'Assommoir)'으로 제작,상연했다. 1921년에는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모리스 드 마르상(Maurice de Marsan, 1852~1929)과 영화감독 샤를 모드뤼(1859~1935)가 공동 제작, 내놓았다.
1931년에는 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영화감독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David Wark Griffith, 1875~1948헐리우드 영화의 빅스타 시스템과 대작주의 선구자)가 원작을 각색, '투쟁'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내놓았고, 1933년에는 프랑스 배우이자 영화감독 가스통 루데스(Gaston Roudès , 1878~1958)가 '목로주점(L' Assommoir)'으로 만들어 상연했다. 유명한 작품은 프랑스의 영화 감독 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를 만든 르네 클레망(René Clément,1913~1996) 이 감독한 '제르베즈(Gervaise, 1956)' 이다. 여주인공 이름을 내세워 만들었다. 이밖에 소련 영화 '함정(자파드니아, Западня, 1972)'도 소설 '목로주점'을 각색, 제작했다.

9.한국에서 초기에 제목을 '목로주점'으로 해서 번역,출판됐다. 일어 번역본의 제목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게 문학계의 분석이다. 한문 '木壚酒店'으로 표기했는데 한국에서는 '목로'라는 말을 잘 안쓰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목로(木壚)는 널판지로 만든 좁고 긴 술상을 뜻한다. 참고로 나무 화로는 木爐로 쓴다. 펭귄, 열린책들, 신원문화사, 동서문화사 등이 목로주점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아소무아르'로 원문 제목 그대로 썼다. 현대 일본에서는 '이자카야'로 번역해 쓴다. 한편 목로주점은 통기타 포크송 가수 이연실(1950~현재)이 1981년에 발표한 노래 '목로주점(작사 작곡 이연실)'이 히트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에밀 졸라(Emile Zola,Emile Edouard Charles Antoine Zola, 1840~1902)=자연주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프랑스 문학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19세기 최초의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지금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다. 전 세계에서 출판과 번역, 해석이 가장 많이 이뤄진 프랑스 소설가. 노벨문학상 첫 번째에 이어 2회째 후보로 올랐으나 수상은 못했다.

1.파리 생-조제프 가 10번지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댐 엔지니어 아버지 프랑수아 졸라(François Zola,1706~1847)와 프랑스인 어머니 에밀리 오베르(Émilie Aubert, 1819~1880)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토목기사로 이탈리아 군 하급 장교로 복무했다. 3살 때인 1842년 토목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남부의 엑상프로방스로 이주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여덟살 때인 1847년 사망하면서 극심한 생활고를 겪다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의 명문 부르봉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1858년에 파리로 다시 이주, 리세 생루이(Lycée Saint-Louis)에서 학업을 마쳤다. 중학 시절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인상파 화가)과 장-바티스탱 바유(건축가) 등을 만나 지속적으로 우정을 나눴다. 세잔과는 소설 ‘작품(L'Œuvre)’ 으로 금이 가기도 했다. 세잔이 작품 속 실패한 화가 클로드 랑티에가 자기를 희화화한 것이라며 1866년 홧김에 절교를 선언하기도 했다.하지만 나중에 화해했다.

2.1859년에 프랑스 국공립 대학 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éat) 이과 시험에 두번이나 떨어진 것이 문학에 몰두하는 계기가 됐다.1862년에 아셰트 출판사(Hachette Livre) 영업부에서 근무하면서 1864년 첫 단편집 ‘니농에게 주는 이야기(Contes à Ninon)’를 냈다.1867년 ‘테레즈 라캥(Thérèse Raquin)’으로 자연주의 작가로 인정받았다. 이때부터 프랑스의 생리학자로 근대 실험 의학의 시조로 불리는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23~1878)의 실험 의학을 문학에 적용했다. 테레즈 라캥은 한국에서 박찬욱(1963~현재) 감독의 영화 ‘박쥐’의 모티브가 됐다. 이후 1871년부터 20권 분량의 ‘루공 마카르 총서(Les Rougon-Macquart)’를 출판했고, 1877년 ‘목로주점(L'Assommoir)’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루공 마카르 총서는 유전학을 토대로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사회사를 다뤘다. 이에 졸라는 당대 최고 원고료를 자랑하던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보다 더 많은 고료를 받아 경제적으로 풍족해졌다.

3.졸라의 첫 사랑은 베르트라는 가난한 거리의 여자였다. 1860년~1861년 그녀에게 푹 빠졌다. 졸라는 그녀를 가난의 늪에서 구하려고 했으나 파리 하류층의 버거운 삶과 맞닥뜨렸을 뿐이었다. 졸라의 첫 소설 ‘클로드의 고백(La Confession de Claude)은 이런 쓰라린 사랑에서 소재를 얻었다. 에밀 졸라는 1860년 대 초 여성 재봉사인 가브리엘 알렉상드린 멜리(Éléonore-Alexandrine Meley, 1839~1825)를 만났다. 이때부터 동거했고, 멜리는 인상파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했다.둘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바로 전날이던 1870년 5월31일 결혼했다.

알렉상드린은 졸라를 만나기 전에 아이를 낳았는데 돌볼 수 없어서 친권을 포기했다. 이에 결혼 후 다시 아이를 찾으러 갔는데 이미 사망하고 없었다. 둘은 아이가 없었지만 알렉상드린은 졸라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둥이었다. 그런데 졸라는 파리 북부 메당에 살때 아내가 고용한 21세의 재봉사 쟌느 로제로(Jeanne Rozerot)와 사랑에 빠졌다.쟌느와 사이에는 1889년 데니스(Denise)와 1891년 자크(Jacques)를 낳았다. 아내 알렉상드린이 이를 안 것은 1891년 말, 자크를 낳은 직후였다.
4.에밀 졸라는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893년 프랑스 정부가 주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1894년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Affaire Dreyfus)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나는 고발한다(1898년 1월 13일 문학 신문 로로르,L'Aurore, 여명)에 게재하면서 보수파와 가톨릭으로부터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제3공화국이 유대인 혈통의 프랑스군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 1859~1935)에게 부당하게 독일 스파이 혐의를 씌우면서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일어난 것을 말한다.

5.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 사회가 극심한 대립으로 치닫던1902년 9월 29일 막힌 굴뚝 영향으로 스며든 가스에 중독, 영면했다. 당시 사망 원인을 규명하지 못해 의문사로 남았는데, 나중에 굴뚝 청소부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굴뚝을 막았다고 시인했다. 졸라의 장례식에는 수만 명의 군중이 몰렸고, 광부 대표단이 세 시간 넘게 졸라의 묘혈 앞을 돌면서 졸라의 소설 ‘제르미날(Germinal, 광부들의 노사분쟁, 애환을 그린 소설)!’을 외쳤다.

군중들의 애도속에 졸라의 유해는 국립묘지 격인 팡테온으로 가지 못하고(드레퓌스 사건 유죄 판결) 몽마르트르 시메티에르에 묘원에 안장됐다.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1844~1924)는 장례식 조사(弔辭)에서 “우리는 그를 부러워합니다. 방대한 저작과 위대한 참여를 통해 조국을 명예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를 부러워합니다. 걸출한 삶과 뜨거운 가슴이 그에게 가장 위대한 운명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심의 순간이었습니다”고 찬사를 보냈다. 아나톨 프랑스는 또 "사람들은 찬양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사람들은 칭찬했다, 사람들은 비난했다.
격찬과 비난은 하나같이 격렬했다. 그런 가운데 작품은 점점 위대해져 갔다"며 "졸라가 이룩한 일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레흐 톨스토이뿐” 이라고 극찬했다.

6.몽마르트르 시메티에르 묘원에 있던 에밀 졸라의 유해는 '드레퓌스 사건' 재심에서 무죄(1906년 7월12일)가 선고되면서 1908년 6월 파리 국립묘지 격인 팡테옹으로 이장됐다. 이에 현재 에밀졸라 유해는 '레 미제라블'을 쓴 소설가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1802~1885), 소설 '삼총사'와 '몽테 크리스트 백작'의 저자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1802~1870)와 같은 공간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주요 작품은 단편으로 ‘클로드의 고백(La Confession de Claude, 1865)’, ‘테레즈 라캥(Thérèse Raquin, 1867)’, ‘마들렌 페라(Madeleine Férat, 1868)’가 있다. 또 평론집 ‘실험소설론(Le Roman Experimental, 1880)’, 장편으로 ‘목로주점(L'Assommoir, 1877)’ 등이 실린 ‘루공-마카르 총서(Les Rougon-Macquart)’ 등이 있다.

7.1937년 미국 영화사 워너 부라더스가 에밀 졸라의 전기를 '에밀 졸라의 생애(The Life of Emile Zola,감독 윌리엄 디털리)'를 제작, 개봉했다. 이 영화는 제10회 아카데미상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색상을 받을 정도로 호평받았다. 프랑스 현대 유명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1961~현재)의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서는 주인공 미카엘 팽송의 수호천사로 나온다. 프랑스에서는 에밀 졸라를 전공한 프랑스 문학 연구자를 뜻하는 말이 따로 있는데, 그들을 '졸리엥(Zolien)'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문학도들이 매달려 졸라 연구를 하고 있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본명 Samuel Langhorne Clemens, 1835~1910)은 “나는 졸라를 향한 존경과 가없는 찬사에 사무쳐 있다. 군인과 성직자 같은 겁쟁이, 위선자, 아첨꾼들은 한 해에도 백만 명씩 태어난다. 그러나 잔 다르크(Jeanne D'arc,1412~1432,잉글랜드 왕국과 백년전쟁(1337~1453)의 오를레앙 공방전에서 승전)나 졸라 같은 인물이 태어나는 데는 5세기가 걸린다”고 말했다. (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