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평범한 첫 문단 이후 거대한 의식의 흐름을 묘사하다
“당당하고, 통통한 벅 멀리건이 거울과 면도칼이 엇갈려 놓여있는 면도 물 종지를 들고 층층대 꼭대기에서 나왔다. 노란 화장복이 띠가 풀린 채 온화한 아침 공기를 타고 그의 뒤에 사뿐히 매달려 있었다. 그는 종지를 높이 들고 읋조렸다. “인뜨로이보 아드 알따레 데이(나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가련다)” 발걸음을 멈춘 채, 그는 컴컴한 나선형의 층층대를 내려다보며,거칠게 불러냈다. ”(김종건 역, 생각의나무,2011)
1.작가 조이스의 무게에 눌린 일반 독자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평범한 첫 문단이다.여느 소설처럼 시작해 이렇다할 서사도 없어 의외로 쉽게 읽힌다. 단순하게 읽으면 난해한 의식의 흐름이라는 심리주의적 서술 기법을 찾아볼 수 없다. 등장 인물이나 각 단어의 발음, 어휘 곳곳의 은유 등을 분석하지 않는다면 평범한 소설 문장이라고 할 정도다.그러나 거울과 화장대, 층층대 등은 거대 메타포를 암시하고 있다.

2.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
1922년)’ 는 의식의 흐름을 압도적으로 표현한 소설이다. 현대소설의 흐름을 바꾼 역작이기도 하다.1918년 3월부터 1920년 12월까지 미국 잡지 ‘The Little Review’ 연재됐다. 초판은 1922년 2월 2일 프랑스 파리에서 나왔는데, 조이스의 40번째 생일이었다.
최근 100년 동안 나온 소설 중 가장 많은 논문과 가장 많은 연구가 진행되는 소설이다. Ulysses는 고대 그리스 구전 노래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우스’의 라틴어식 표현인 ‘Ulixes(울릭세스)’에서 파생된 단어다.
율리시스는 2만9899자의 어휘를 사용, 영국이 낳은 대문호 윌리암 셰익스피어(1564~1616) 이후 가장 풍부한 단어가 사용됐다. 저자의 언어 구사력을 제대로 보여준 소설인 셈이다.예술 사조 모더니즘(Modernism, 과학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근현대 예술 경향)의 기원으로 평가 받고 있다.
3.소설은 더블린(당시 영국, 현 아일랜드)에 사는 세 사람이 보낸 1904년 6월16일 하루를 묘사했다. 주요 등장인물은 젊은 지식인 스테판 데달로스(Stephen Dedalus), 광고쟁이 레오폴드 블룸(Leopold Bloom)과 부인 몰리 블룸(Molly Bloom)이다.
소설은 블룸과 오디세우스(Odysseus), 몰리 블룸과 페넬로페(Penelope,오디세우스 아내), 스테판 데달로스(Stephen Dedalus)와 텔레마코스(Telemachus,오디세우스 아들)로 구조화 해 두 작품속 등장인물들의 경험과 연결시킨다.
4.3부 18개 에피소드에 고유 명사와 인용구, 아일랜드의 역사, 신화, 정치, 가톨릭 교리가 대거 등장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거의 다 등장할 정도다.
줄거리는 레오폴드 블룸이 집을 나와 더블린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그의 정신적 아들 스테판 데달로스(Stephen Dedalus)를 만나 함께 모험한다. 마지막에서는 블룸의 부인 몰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지브롤터에서 레오폴드와 만나 청혼을 받아들이면서 기억과 꿈이 섞인 짧은 시간의 긴 ‘의식의 흐름’은 끝난다.

5.율리시스는 적어도 18개의 판본이 있다고 한다. 초판은 2000개 이상의 오류가 있는데 조이스의 의도적인 오류와 진짜 오류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의식의 흐름을 통해 쓰인 이 소설의 시적 추상, 유머, 상징, 단어속에 숨겨진 수많은 의미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채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생전 제임스 조이스의 말에서도 나타난다. “나는 ‘율리시스’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율리시스 등 조이스 저작물은 근현대 작가 중 가장 많은 논문이 쓰였다. 또 연구자가 가장 많은 소설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에도 한국제임스조이스학회가 활동하고 있을 정도다.

6.율리시스는 미국 영국 등에서 연재 중단 및 출간 거부 등을 겪다가 1922년 파리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프랑스 최초의 영어 서점, 아직도 파리 명소라고 함)’를 운영하던 미국인 여성 실비아 비치(1887~1962)가 출간했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외설’, ‘신성 모독(가톨릭 희화화)’ 혐의까지 받았다. 이후 미국에서는 1921년 외설 재판법정 논쟁을 거쳐 1934년, 영국에서는 1936년에야 시중에 나왔다.
7.미국 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1930~2019, 예일대 교수 역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세 사람으로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프랑스 소설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소설 ‘변신’의 프란츠 카프카(1883~1924,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쓴 유태인), 제임스 조이스를 꼽았다.
캐나다 출신 미디어 학자인 마셜 맥루한(1911~1980, 인터넷 출현 예측으로 유명)이 조이스의 소설들을 ‘미디어의 이해’ 등에 많이 인용했다.

#.제임스 오거스틴 앨로이시어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1882~1941)=영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현재 기준으로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이지만 당시 국적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영국)’이었다.
1.아일랜드 더블린 래스가(Rathgar) 브라이튼 스퀘어(Brighton Square)에서 존 스타니슬라우스 조이스(John Stanislaus Joyce)와 메리 제인 머레이(Mary Jane Murray)사이에서 태어났다. 중산층(middle-class family) 이상의 부자로 살았다.
더블린 카운티 킬데어(County Kildare)에 있는 예수회 클롱고우스 우드 칼리지(Jesuit Clongowes Wood College)에 다녔고, 그 후 잠시 동안 크리스천 브라더스가 운영하는 오코넬 학교(O'Connell Schoo)도 수학했다. 이어 예수회 벨베데레 대학( Jesuit Belvedere College), 아일랜드 왕립 대학교(Royal University of Ireland,1902)를 1902년 졸업했다. 그해 의학 공부를 위해 가톨릭의학대학(Catholic University Medical Schooml)을 다니기도 했다.
2.1904년 교육을 빋지 못해 하녀로 일하던 노라 바나클(Nora Barnacle)을 만나 죽을 때까지 37년 동안 함께 한다. 이들은 아이를 둘 낳고 1930년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조이스의 ‘고국(영국+더블린)과 불화(不和)’는 유명하다. 단편 15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소설 ‘더블린 사람들’을 잡지 등에 연재하면서 항의와 삭제 요구, 소송 제기 위협, 출판 번복과 지연 등에 시달려서인 지 1912~15년 사이 더블린을 마지막 방문한 이후 죽어서도 가지 못했다.
3.조이스는 많은 기간을 스위스 취리히에 살았고, 1920년 파리에 거주 중인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 초청으로 파리(20년 거주, ‘율리시즈’ 집필) 에 가서 살다가 다시 스위스 취리히로 돌아왔다.
조이스는 1941년 1월 취리히에서 십이지장 궤양 천공 수술을 받았지만 다음날 혼수 상태에 빠졌다. 이후 1941년 1월 59번째 생일을 보름정도 앞두고 영면했다. 장례식에서 스위스 테너 막스 멜리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에 나오는 ‘Addio terra, addio cielo’를 불렀다.
조이스와 가족들은 사망 당시 고향으로 가고 싶어했으나 당시 아일랜드 정부와 더블린 주민들이 받아주지 않아 취리히 플룬테른 묘지에 안장됐다. 부인 노라는 10년을 더 살았고,그의 곁에 묻혔다.

4.조이스의 소설에 가장 먼저 주목한 이는 ‘황무지(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유명한 시인 T.S.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988~1965, 1948년 노벨 문학상,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 귀화)이었다.
엘리엇은 ‘율리시스’를 ‘20세기 문학의 길을 바꿔놓을 작품’이라고 했다.
5.아일랜드 국립도서관,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 아일랜드 문학 박물관(몰리 블룸을 기념해 MoLI로 명명)에는 조이스 관련 문서 등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유일하게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조이스의 주요 작품의 초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손자 스티븐 조이스(1933~2020)의 '저작권 보호'가 악명을 얻을 정도였다고 한다.
6.현대에 와서 6월16일 더블린 전역에서는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을 딴 ‘블룸스데이(Bloomsday)’ 가 열린다. 소설 율리시스의 하루, 6월16일이다. 이날은 조이스가 부인 노라를 만나 첫 데이트에 성공한 날이기도하다.
타임(TIME)지가 1999년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했다. 대표작으로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 등이 있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