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장미의 이름-독특한 구성의 역사 스릴러로 세계 독자를 낚은 소설의 첫 문단은 실제와 허구를 뒤섞여 전개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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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독특한 구성의 역사 스릴러로 세계 독자를 낚은 소설의 첫 문단은 실제와 허구를 뒤섞여 전개된다

지성인간 2024. 7. 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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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장미의 이름'에 영감을 준 이탈리아 토리노의 산탐브로조(Sant'Ambrogio)에 위치한 수도원 사크라 디 산 미켈레(Sacra di San Michele)의 겨울 풍경. photo by wikipedia

당연히 이것은 수기(手記)이다. 서문 "1968년 8월 16일, 나는 발레라는 수도원장이 펴낸 한권의 책을 손에 넣었다. 1842년 파리의 라 수르스 수도원 출판부가 펴낸, '마비용 수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佛譯)한 멜크 수도원 출신의 (베네딕트회 수도사) 아드송의 수기'였다. 이 책에는, 책이 편찬된 저간의 사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았으나, 베네딕트 수도회의 전파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알려진 18세기 석학 마비용이 멜크 수도원에서 발견한 14세기의 수기를 충실하게 복원한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 대단한 학문적 발견(연대순으로 따지자면 세번째의 학문적 발견에 해당하는)은, 친구를 기다리며 프라하에 머물고 있던 나를 몹시 들뜨게 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불과 엿새 뒤에 소련군이 이 불행한 도시를 침공해 왔다. 나는 신고만난(辛苦萬難) 끝에 오스트리아 쪽 국경을 넘어 린츠로 갔고, 거기에서 다시 빈으로 올라가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 연인을 만난 다음, 함께 다뉴브강을 오르는 배를 탔다. 일종의 지적인 흥분상태에서, 멜크의 수도사 아드소의 이 엄청난 이야기를 독파한 나는 실로 '단숨에', 조제프 지베르 문방구의 대학노트 몇권에다 이 책을 번역해 버렸다."(움베르토 에코 저,이윤기 역, 열린책들, 2009)

소설 '장미의 이름' 초판본.이탈리아 밀라노 봄피아니 출판사에서 1980년12월 3만부가 발행됐다. photo by google

1.독특한 구조(명제-서문-노트-프롤로그---)를 지닌 소설 답게 자못 진지하게 시작하는 도입부다. 문장 시작에서 수기(手記, 체험한 것을 직접 쓴 글)라고 못박고, 구체적인 시제, 실존 인물을 제시한다. 독자가 처음 읽을 때는 진실로 보일 정도다. 사실과 거짓 사이를 넘나들기 위한 첫 문단의 복잡한 세부 묘사가 압권이다. 서문을 복잡하고도 길게 쓰면서 시대 상황, 여행 행로, 번역까지 언급한 것도 허구를 진실로 위장하기 위한 복선이라고 할 수있다. 그럴듯한 수기본의 번역과 실제 역사, 당대 주변나라 풍경이 소설의 풍미를 한 껏 돋구는 첫문단이다. 본문에 나오는 *발레는 프랑스 사제이자 정치가 뱅자민 발레(1754~1824)로 1790년 프랑스혁명 때의 삼부회 태동에서 붕괴에 이르는 과정을 '성직자 신분'이라는 책으로 기록했다. *장 마비용(Jean Mabillon,1632~1707)은 베네딕트 수도회(Ordo Sancti Benedicti, OSB,분도회,芬道會) 신학자다. *.라 수르스 수도원은 파리에 있는 수도원으로 장미 정원이 유명하다. *멜크 수도원(Stift Melk)은 오스트리아 니더외스터라이히주 멜크에 있는 베네딕트회 수도원이다.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 *린츠는 오스트리아 중북부 오버외스터라이히 주의 주도로 다뉴브(Danube,도나우) 강 양쪽에 걸쳐 있다. *다뉴브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해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흘러가는 길이 2860 km의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영화 '장미의 이름'이 촬영된 독일 헤세의 엘트빌 암 라인에 있는 에버바흐 수도원 전경.photo by wikipedia

2.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 일 노메 델라 로사,1980)'은 흥미와 추리를 한 껏 보여주는 메타팩션(Metafaction, 메타픽션에서 나온 합성어로 사실(fact)과 픽션(fiction)이 합해진 것) 소설 중 최고의 걸작이다.  중세 역사와 장대한 서사, 철학(기호학)이 어우러진 하이브리드 소설의 으뜸이다. 저자의 소설 데뷔작이자 대표작으로 초유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집필 당시의 제목은 '수도원의 범죄 사건'이었는데, 독자들이 사건에만 집중할 것 같아 '멜크의 아드소'로 가제를 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 출판업계가 고유명사를 싫어해 상징적인 의미가  풍부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장미의 이름'으로 바꿨다. 
소설은 이탈리아 밀라노 봄피아니(Bompiani,1929년 창립) 출판사에서 1980년 12월 초판 3만부가 발행됐다. 저자는 스스로 '짜깁기 패러디물'이라고 했지만 나오자마자 날개 돋힌 듯 팔렸고, 2010년대 초까지 세계적으로 5000만 부 이상 팔렸다. 출판된 지 8개월 후인 1981년 7월 이탈리아 최고의 문학상인 프레미오 스트레가(Premio Strega) 상을 받았다. 영역은 1983년 이탈리아 유명 번역가이자 비평가 윌리엄 위버(William Fense Weaver, 1923~2013)가 'The Name of the Rose'로 번역했다.  세계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프랑스에서 메디치 외국문학상(1958년 제정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을 받았고, 영역 직후인 뉴욕타임스의 '에디터스 초이스 '에 선정됐다. 1999년 프랑스 신문 르 몽드 가 선정한 '세기의 100선', 2009년 선정한 '세기의 100권' 목록에 올랐다. 영국 신문 가디언(The Guardian)이 선정한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소설 1000선'에도 포함됐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산탐브로조(Sant'Ambrogio) 수도원 사크라 디 산 미켈레(Sacra di San Michele)에 있는 도서관 이미지. 수도원 홈페이지 캡처.photo by google

3.소설에 영감을 제공한 수도원은 도입부의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과 이탈리아 토리노 근교 사크라 디 산 미켈레(Sacra di San Michele)라는 수도원이다. 미켈레 수도원은 서기 983년에서 987년 사이에 건축됐으며, 가톨릭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의 중심지로 수많은 추기경과 주교를 배출했다. 소설의 테마는 죽음의 책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322)의 희극에 관한 책이다. 세상에 없는 책, 현존하지않는 '시학 2권(희극)'이다. 소설속에서 음흉한 경건주의자 호르헤는 시학 2권에 독약을 발랐다.수도사들이 연달아 죽은 이유다.
현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De Poetica, BC 335년 쯤)'은 미학(美學)에 대한 저작(시학, 정치학, 수사학) 중 하나다. 최초이자 현존 가장 오래된 극 이론 철학 논문이다. 고대 그리스어 원전은 사라졌고,  중세  안달루시아 코르도바 출신의 학자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 Ibn Rušd,1126~1198 )가 쓴 아랍어 버전이 라틴어로 번역돼 서양에 복원됐다. 시학은 '시(예술)'는 '미메시스(Mimesis, 삶의 창조적 모방,수용)'라는 점을 강조한 예술 개론서다.

소설 '장미의 이름' 제목에 참고가 된 시를 쓴 멕시코 작가 미겔 카브레라의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photo by MiguelCabrera

제목  '장미의 이름'의 유래는 다양한 설이 있다. 일단 시인으로 12세기 프랑스 베네딕트회 수도사 베르나르 드 클뤼니(Bernard of Cluny, 베르나르 드 모를레어,생몰연대 미상)가 쓴 시 'Stat rosa pristina nomina, nomina nuova tenemus'에서 유래했다는 게 문단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면 '원시적인 장미는 이름으로만 존재합니다. 우리는 맨 이름만 소유합니다'라는 뜻이다. 
또 13세기 프랑스 음유시인 기욤 드 로리(Guillaume de Lorris, 약  1200 ~1240경)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장미를 아름다움과 위험의 상징 등으로 썼다고 한다. 이밖에 멕시코 시인이자 신비주의자 수녀인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Sor Juana Inés de la Cruz ,1651~1695)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숲에 있는 장미는 햇볕에 말려들었고, 붉은 포도와 붉은 포도의 수확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무튼 제목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소설 '장미의 이름' 도서관 환경 묘사에 영감을 준 세인트 갈 수도원.

4.등장인물은 주인공으로 영국 출신의 프란체스코 수도사 배스커빌의 윌리엄, 소설의 서술자 멜크의 아드소, 수도원장 포사노바의 아보, 베네딕토 수도원에 망명한 수도사 카잘레의 우베르티노,채식 장인 수도사 오트란토의 아델모,번역가 살베메크의 베난티오, 보조 수도사 아룬델의 베렝가리오 등이다.실존 인물도 나온다. 당시 교황인 요한 22세,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 바이에른 공작이자 독일왕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트비히 4세, 극단적인 청빈을 주장하는 이른바 돌치노파 수도사 돌치노, 영국 태생 프란치스코회 수사 로저 베이컨, 프란치스코회 신학자 오컴의 윌리엄,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프란치스코, 전 교황 니콜라오 3세,이단심문관 베르나르 기(프랑스 파리 주교) 등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 시대 배경 속 아비뇽 교황'-프랑스 왕의 보호를 받던 교황 요한 22세(1245~1334,속명 자크 뒤예드,Jacques Duèse)는 아비뇽에서 군주적 삶을 살았고 프란치스코회의 빈곤 교리에 반대했다.19세기 알려지지 않은 화가. 출처=아비뇽 교황청. Wikimedia Commons

5.줄거리는 수도원에서 일어난 일련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이야기 속에서 종교, 지식(철학 등), 권력을 탐구한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사인 바스커빌 출신의 윌리엄과 그를 모시는 수련사, 멜크 수도원의 아드소는 황제측과 교황측 사이의 회동을 준비하기 위해 회담 장소인 수도원에 도착한다. 원장은 윌리엄에게 그 수도원에서 있었던 의문의 죽음의 비밀을 풀어달라고 간청한다. 원장의 뜻을 받은 윌리엄은 사건 조사에 들어가는데  몇몇의 수도사들이 잇따라 사망한다. 윌리엄은 이 사건의 중심에 책들의 안식처 장서관(藏書館)이 있다고 보고 그곳을 조사하는 한편, 수도사들을 탐문한다. 윌리엄은 여러 자료를 통한 추론으로 장서관의 밀실에 들어갈 방법을 찾아낸다. 장서관의 밀실에는 윌리엄의 예상대로 호르헤 수도사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윌리엄과 호르헤는 마지막 논쟁을 펼친다. 그러나 장서관의 비밀을 지키려는 호르헤에 의해 장서관은 불에 휩싸인다.
본관 3층의 장서관에서 본관 전체로, 다른 건물로 계속 불이 옮겨 붙고, 그 불은 사흘 동안 타오른다. 기독교 최대의 장서관을 자랑하던 그 수도원은 결국 폐허가 된다. 이후 아드소는 멜크 수도원으로 돌아가고 윌리엄은 흑사병 유행기에 사망한다.

이탈리아 화가 윌리엄 지로메티의 1982년 작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에 대한 오마주'. photo by wikipedia

6.소설속 인물인 '바스커빌의 윌리엄'은 유명한 추리소설에서 따왔다. 영국의 바스커빌 출신이라는 설정은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1859~1930)의 '셜록 홈즈 시리즈'의 '바스커빌 가의 개'에서 따온 것이다. 소설속에서 미로(迷路, maze)로 이루어진 장서관은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의 '바벨의 도서관', 시각 장애인 사서  '부르고스의 호르헤'는 생애 후반 시각 장애인이었고,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의 관장를 지낸 보르헤스에 대한 오마주다.
수련생의 이름인 멜크의 아드소는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에서 따왔다. 이 곳에는 유명한 중세 도서관이 있었다. 이밖에 보르헤스의 단편 '죽음과 나침반(La muerte y la brújula, 1942)', 190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1865~1936, 대표작 정글북)
의 단편집 '꿔주거나 꿔오거나(대변과 차변, 貸邊借邊, Debits and Credits,1926)'에 나오는 '알라의 눈' 등도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 출신 현대 고전 만화의 거장 밀로 마나라(Milo Manara,1945~현재)가 각색한 움베르토 에코의 걸작 '장미의 이름' 만화(출판사 Oblomov Edizioni)표지.photo by google

7.장미의 이름은 세계 문단은 물론 기호학계, 과학계 등에서도 호평했다. 영국 문학 평론가이자 학자인 프랭크 커모드(John Frank Kermode, 1919~2010, 전 케임브리대학 교수)는 1980년 리뷰에서 "기호학 이론 등으로 활기차지만 어려운 논문"이라면서도 "놀랍도록 흥미로운 책"이라고 격찬했다. 그는  중세와 기호학에 대한 열정에서 태어난 매우 이상한 작품이며, 매우 현대적인 즐거움"이라고 역설했다.
글로벌 잡지 보그는 서평에서 "에코는 자신이 작품 속에서 한껏 즐기고 있다. 르네상스 인간처럼. 마키아벨리도 흥미를 느낄 것이고, 보카치오도 매혹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 교수인 과학자 존 마우로(JOHN MAURO)는 "장미의 이름은 (자신의)모든 후속 발견을 촉발한 최초의 촉매"라고 칭찬했다.

이탈리아 방송사 RAI가 제작한 드라마영화 '장미의 이름' DVD 홍보판 표지. photo by wikipedia

8.특이하게 작가 노트가 1984년 이탈리아에서 출판됐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와 과정을 담은 수필 형식으로 담았다. 한국에도 번역됐다.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Postscript to the Name of the Rose,이윤기 역, 열린책들,2009)'이다.
영화는 1986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합작으로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으로 나왔다. 프랑스 감독 장 자크 아노(Jean-Jacques Annaud,1943~현재)가 연출을 맡았고, 영국출신 유명 배우 숀 코너리(Sir Thomas Sean Connery,1930~2020)가 주연이었다.영화는 독일 라인강의 엘트빌(Eltville Am Rhein)의 에버바흐 수도원(Kloster Eberbach) 등에서 촬영했다. 영화는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거의 성공하지 못했지만 유럽에서 성공, 제작비의 5배 가량인 7,700만 달러를 벌었다.1986~1987 시즌 최고 수익을 올린 영화로 기록됐다.
1988년 12월 5일 이탈리아 라이(RAI, Radiotelevisione Italiana)에서 첫 번째 TV 방송을 한 이래 1467만2000명이 시청했다. 2001년까지 13년 동안 이탈리아 TV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로 기록됐다. 기존 1위였던 로베르토 베니니(Roberto Benigni,1952~ 현재)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è bella, 영어 Life is Beautiful)'를 제쳤다. 한국에는 1989년에 개봉했다.

폴란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포스터 작가 야쿠브 지그문트 에롤(Jakub Zygmunt Erol, 1941~2018)이 1987년 폴란드에서 발행한 '장미의 이름' 표지 일러스트. photo by google

9.유럽에서는 다양한 장르로 나왔다. 이탈리아 감독 프란체스코 콘베르사노(Francesco Conversano,1952~현재) 와 네네 그리냐피니(Nene Grignaffini,1955~현재, 이탈리아 다큐 감독)는 다큐멘터리 'La Rosa dei Nomi'를 제작했다.
루마니아 영화 및 연극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레 곤타(Grigore Gonţa, 1938~현재)의 희곡을 각색한 '장미의 이름' 이 1998년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Bucuresti)의 국립극장에서 초연됐다. 2017년에는 이탈리아 극작가 레오 무스카토(Leo Muscato)가 감독한 스테파노 마시니(Stefano Massini,1975~현재)의 연극 버전 '장미의 이름'이 상영됐다.
2024년 4월 27일에는 이탈리아 현대 음악 작곡가 프란체스코 필리데이(Francesco Filidei, 1973~현재)가 기획한 동명 오페라가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공연됐다. 앞서 2018년 이탈리아  라이(Rai)는 TV 미니시리즈 '장미의 이름'으로 제작, 2019년 3월 50분짜리 8개 에피소드로 방송했다. 지아코모 바티아토(Giacomo Battiato,1943~현재) 가 감독했다. 

움베르토 에코가 자신이 쓴 책을 앞에 두고 상념에 잠겨 있다. 이탈리아 사진작가 로비 피마노(Robbie Fimmano).출처=www.interviewmagazine.com

10.한국에서 1986년 2곳에서 처음 '장미의 이름'으로 간행됐다. 이윤기가 영문판을 중역(重譯), 열린책들에서 출간했다. 또 하나는 외교관 출신 번역가인 이동진 번역의 우신사 출간본 '장미의 이름으로'가 나왔다. 열린책들 번역본은 세 차례에 걸쳐 개정됐다.1992년 1차, 2000년 2차, 2009년이다. 판본은 1986년 5월 15일 초판, 1992년 6월 25일 개역판, 2000년 7월 10일 3판, 2006년 4월 15일 4판이 발행됐다..
류철균(필명 이인화)이 쓴 소설 '영원한 제국'이 이야기의 구성 똑같아 패라디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프롤로그와  구성, 얼개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출판 직후 평단에서 '에코의 외양에 음모론을 버무린 통속 소설'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책이 나온 이후 한국 독자들이 '장미의 이름' 서문에 낚인 줄 알 정도로  얼개를 그대로 베꼈다는 비판이 나왔다.

움베르토 에코(1984) 모습. photo by wikipedia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2016)=이탈리아의 기호학자, 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소설가, 역사학자이다. 잡지 L'Espresso의 인기 칼럼니스트. 볼로냐 대학 교수 등을 지냈다.   지식계의 T-Rex(티라노사우르스)로 불릴 정도로 많은 독서량과 비평 글로도 유명했다. 기호학자의 면모를 보여준 '푸코의 진자(Il pendolo di Foucault,1988)'로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교황청의 비난도 컸다.  

1.이탈리아 피에몬테 알레산드리아에서 금속회사 직원이자 회계업 종사자인 아버지 줄리오(Giulio) 에코와 사무직으로 일하던 어머니 조반나 비시오(Giovanna Bisio) 사이에서  출생했다.가문 이름 에코(ECO,Ex Caelis Oblatus,하늘의 선물)는 고아로 조판공인 할아버지에게 시청 직원이 지어준 것이었다.
에코는 유년기에 성 프란치스코 데 살레시오회(Societas Sancti Francisci Salesii, 1859년 사제 지오반니 돈 보스코(Giovanni Melchiorre Bosco,1815~1888)가 설립) 교육을 받았다. 이 단체는 17세기 제네바의 주교였던 프란치스코 데 살레시오(Francesco di Sales, 1567~1622)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에코는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Amilcare Andrea Mussolini, 1883~1945)의 독재 시절, 파시스트 유니폼을 입고 젊은 파시스트를 위한 글쓰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중고등 과정은 토리노에 있는 기술 고등학교에서 산업 화학과 전기 기술자가 되는 훈련를 받았다.

밀라노에 있는 집 서재에서 작가 움베르토 에코.50,000권 이상의 책을 수집, 보유했다.사진=이탈라 사진작가 조반나 실바

2.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토리노 대학교(University of Turin, UNITO)에 입학, 이탈리아 철학자 루이지 파레이손Luigi Pareysón , 1918~1991)의 지도를 받으며 중세 스콜라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OP,1225~1274,도미니크회 수사) 의 미학에 관한 논문 '성 토마스의 미학적 문제'을 썼다. 1954년에 철학에서 라우레아(laurea, 월계관이라는 뜻)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재학 중 에코는 신을 믿지 않게 되었고, 가톨릭 교회를 떠났다.
1954년 국영 방송국 Radiotelevisione Italiana(RAI)에 입사,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 때 RAI에서 친구가 된 전위 예술가, 화가, 음악가, 작가 그룹인 네오아방가르디아(Neoavanguardia) 또는 'Gruppo63'이 에코의 작가 생활에 큰 영향을 줬다. 1956년 첫 책을 출간한 후 토리노대학 강사가 됐지만 곧 직장을 그만두고 군에 입대했다.

마법사 에코-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 에네아 리볼디(Enea Riboldi, 1954~ 현재)가 로마에서 나오는 유대인공동체 연합잡지 '유대인 페이지(Pagine Ebraiche)에 2016년 3월 그린 삽화. https://moked.it

3. 1961년 미학 분야 libera docenza(박사, Habilitation,국가에서 정교수 자격 인정)를 취득한 에코는 1963년 같은 과목의 강사로 승진했다. 하지만 이듬해 토리노 대학교를 떠나 밀라노 대학교에서 건축학 강사로 자리잡았다.1965년부터 1969년까지 피렌체 대학교에서 시각 커뮤니케이션 교수로 재직하다가, 그해 밀라노공과대학으로 옮겼다. 1971년 볼로냐대학 준교수가 됐고, 1975년 기호학 이론이 출판된 후 기호학과 정교수가 됐다.1977년부터 1978년까지 에코는 예일 대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방문 교수로 재직했다.

1982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왼쪽)가 캐나다 작가 앤 에베르와 프랑스 작가 장프랑수아 조셀린과 함께 찍은 사진. 출처=AFP

4.에코는 1980년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출판, 세계적인 셀럽으로 발돋움했다. 소설 쓰기에서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Francisco Isidoro Luis Borges Acevedo,1899~1960)의 영향을 받았고, 장미의 이름에 부르고스의 호르헤 라는 캐릭터로 오마주했다. 1988년 '푸코의 진자'를 출간했다.
1988년 산마리노 공화국 대학(Università degli Studi della Repubblica di San Marino)에 미디어학과를 설립했다. 산마리노 공화국은 이탈리아 아펜니노 산맥 북동쪽에 있는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작은 나라다. 1990년 '해석의 한계'를 출판했고, 1992년에는 볼로냐 대학에 커뮤니케이션 학문 연구소를 설립했다.
1992~1993년 하버드 대학교 방문 교수를 지냈고, 이듬해  세 번째 소설 '전날의 섬(L'isola del giorno prima, The Island of the Day Before)'를 냈다. 2001~2002년까지는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앤스 칼리지 의 방문 교수를 지냈다. 
1995년 보그(Vogue)와 인터뷰에서 에코는 자신이 읽기 쉬운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서 "그렇게 어려운 당신의 소설이 어떻게 특정한 성공을 거두었나요?"는 물음에 어이없고 무례한 질문이라고 말했다.

5.에코의 여성 관계는 부인 외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탈리아인으로 귀화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레나테 람게(Renate Ramge,1935~현재)와 1962년 9월 결혼했다. 둘은 아들과 딸을 뒀다. 아들 스테파노 에코는 1966년 태어나 뉴욕에서 12년간 출판계에서 일했고, 현재 로마에서 방송 홍보업에 종사하고 있다.  딸 카를로타는 존경받는 건축가로 성장했다.

에코가족-2016년 2월 23일 애도객이 밀집한 가운데 밀라노의 스포르차 성에서 거행된 움베르코 에코의 장례식에서 에코이 아내(오른쪽)와 딸(두번째) 아들(세번째) 손자 둘(앞줄 어린이 2명).www.caffeinamagazine.it

6.에코는 2000년 뉴욕 타임스에 실린 에코의 네 번째 소설 '바우돌리노(2000)'에 대한 리뷰에서 리처드 번스타인은 "교활한 스토리텔러가 어떻게 이렇게 공식적이고 어수선한 소설을 만들어냈는지 의아하다"고 썼다. '바우돌리노'는 12세기의 종교적 분쟁과 전쟁을 배경 소설로 독일에서 역대 베스트셀러-하드커버 소설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2006년 시나리오 작가 로저 앤젤(Roger Angell)과 함께 미국 오하이주 갬비어에서 나오는 문학잡지 케년 리뷰(Kenyon Review)에서 주는 '케년 리뷰 문학상'을 받았다. 2010년에는 로마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과학 기관인 이탈리아 국립 '아카데미아 데이 린체(Accademia dei Lincei)'에 뽑혔다.
2006년에는 이탈리아 대통령 조르지오 나폴리타노로부터 '공로 대십자 기사' 칭호 등을 담은 이탈리아 기사 작위를 받았고, 2008년 여론조사에서 '이탈리아인의 54%가 에코를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작가'로 인식하는 결과를 얻었다. 2010년에 여섯번째 소설 '프라하 묘지( Il cimitero di Praga)'를 냈다. 
2014년 국제 구텐베르크협회와 독일 마인츠시로부터 구텐베르크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정부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으며,, 미국 예술문학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이었다. 에코는 파시즘을 거듭 경고했다. 2015년 낸 소설 '노메로 제로(Numero Zero)'를 통해 이탈리아의 뇌물 수수와 뇌물 문화를 풍자하는 한편 파시즘의 유산을 강력 비판했다.

2016년 2월 23일 애도객이 밀집한 가운데 밀라노의 스포르차 성에서 거행된 움베르코 에코의 장례식에서 이탈리아 유명배우 로베르토 베니니(좌)가 에코의 손자 에마누엘레 에코( Emanuele Eco)를 지켜보고 있다.Fabrizio Di Nucci/NurPhoto. Getty Images

7.에코는 자신의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명의 현대 작가로 의식의 흐름 기법의 '율리시스'를 쓴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꼽았다. 
아드리아 해에 있는 리미니 근처 언덕 가톨릭 예수회가 소유했던 17세기 저택과 밀라노 등을 오고가며 산 에코는 지독한 체인스모커였다. 볼로냐의 선술집에서 학생들과 밤늦게까지 값싼 와인을 마시며 연쇄 흡연을 하는 등 거리낌없는 삶을 살았다.
에코는 과도한 흡연 탓이었는지 2016년 2월 19일 오후 10시 30분 밀라노 자택에서 영면했다. 사인은 췌장암이었다. 유언으로 사망 후 10년 동안(따라서 2026년까지) 자신에 관한 세미나나 컨퍼런스를 승인하거나 홍보하지 말 것을 남겼다. 
철학자이자 문학 평론가인 칼린 로마노(Carlin Romano)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탈리아 인본주의 문화의 중심에 있는 비판적 양심이 되어 그 전 어느 누구보다도 작은 세계를 통합했다"고 애도했다. 볼로냐시는 에코 사후 구시가지의 살라 보르사 광장을 헌정했다. 사후 에코의 개인 도서관 컬렉션은 2023년 이탈리아 영화감독 다비데 페라리오(Davide Ferrario,1956~현재)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제였다. 제목 움베르토 에코-세계의 도서관(Umberto Eco-A Library of the World)으로 나왔다.

움베르트 에코가 미국 사회학자 리차드 세넷(Richard Sennett,1943~현재, 전 뉴욕대 교수)과 에코, 미국의 소설가·문예 평론가·사회 운동가 수잔 손탁(Susan Sontag,1933~2004)이 1970년대 말 학회에서 프랑스 철학자이자 비평가 롤랑 바로트(Roland Barthes,1915~1980)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 리차드 세넷이 2016년 2월20일 에코 사망 직후 트위터(X)에 올린 사진이다.

8.에코는 비판자도 많았다. 영국 철학자 로저 스크루튼(Roger Scruton, 1944~2020)은 1980년 에코의 저서 '독자의 역할(The Role of the Reader)' 리뷰에서 "에코는 기술적 수사학, 즉 독자가 작가의 깨달음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지각 부족을 탓하기 시작할 만큼 오랫동안 연기를 만들어내는 수단을 추구한다"고 난해함을 지적했다. 
영국 미술 사학자 니콜라스 페니(Nicholas Beaver Penny, 1949~현재, 전 런던 국립미술관장)는 1986년 에코의 저서 '거짓에 대한 믿음(Faith in Fakes,1986년 영역)' 과 '중세의 예술과 아름다움(Art and Beauty in the Middle Ages)' 리뷰에서 "에코는 아첨꾼"이라며 "지적 유혹을 받았다"고 비난했다.

시드니 작가 워크 시리즈의 하나로 1982년 오스트레일리라를 방문한 움베르코 에코를 기념하기 위해 시드니 서큘러 키의 산책로 보도에 설치된 명판. 이 명판에는 '호주는 반대편에 있는 단독이 아니고, 반대편에 있는 모든 사람이고, 그 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에코의 말이 새겨져 있다. www.acis.org.au

인도 출신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Ahmed Salman Rushdie, 1947~현재)는 런던 옵저버(The London Observer)에 실은 에코 평가에서 "푸코의 진자(1988)는 유머가 없고, 개성이 없고, 믿을 만한 낭송어와 비슷한 것이 전혀 없으며, 온갖 종류의 횡설수설로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가득하다"고 비판했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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