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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명작의 첫 문단 (22)
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제1장 늙음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1.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겁먹지 않는다.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겁을 먹고 대부분 그 단어가 마치 악마라도 되는 듯 성호를 긋는다. 유언을 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언급해야 하므로 의사가 최후 선고를 해야만 유언장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얼마나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지는 신만이 안다. 로마인들은 죽음이라는 말이 잔인하고 거슬린다는 이유로 이를 부드럽게 돌려 말하기 시작했다. '죽었습니다.'라는 말 대신 '삶을 마쳤습니다.' 혹은 '생을 살았으니 이제 갔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서로를 위로했다. 1533년 2월 마지막날 태어난 나는 현재 39살이 된 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여전히 그만큼의 시간..
제1장 감각에 대하여 “인간의 사고(thoughts)에 대해 우선 하나씩 살펴보고, 그런 다음 연속된 사고, 즉 그 사고들의 상호관계를 살펴보겠다. 하나씩 볼 때 사고는 보통 ‘대상(object)’이라 불리는 우리 바깥에 있는 물체의 어떤 성질 혹은 우유성(偶有性, accidents)의 표상(表象,representation) 또는 현상(現像,appearance)이다. 그 대상이 우리의 눈이나 귀와 같은 인체 기관에 작용하는데, 이 작용의 다양성이 현상의 다양성을 낳는다. 모든 사고의 근원은 우리가 감각(sense)이라고 부르는 것에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모든 개념은 최초에는 전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감각기관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감각기관이 얻은 것을 근원으로 하여 나머지 개념..
제1부 1927년3월21일 밤 0시30분 “모기장을 쳐들어 볼까? 아니면 그대로 모기장째 찌를까? 첸은 긴장한 나머지 뱃속이 뒤틀리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과감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그런 생각조차 그저 맥 빠진 듯 몽롱하게 떠오를 뿐 천장으로부터 늘어져 있는 흰 모슬린 모기장에 홀려 정신이 흐리멍덩할 뿐이었다. 모기장 속에는 그림자보다도 희미한 사람 몸뚱이 하나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 몸뚱이에서 한쪽 발 만이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었다. 잠들어 반쯤 기울어진 자세였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발-사람의 육체 일부임이 틀림없는 발이. 방안에 스며드는 광선이라고는 이웃 빌딩에서 비치는 불빛뿐이었다. 직사각형의 희미한 전등 불빛이 새까만 창살 그림자로 인해 줄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그중 한 그림..
동문선 서(東文選序) “하늘과 땅이 처음 나뉘자 문(文)이 이에 생겼습니다. 위로는 밝은 일월(日月)과 벌여 있는 별이 하늘의 문(文)이 되었으며, 아래로는 솟아 있는 산과 흐르는 물이 땅의 문이 되었습니다. 성인이 괘(卦)를 긋고 글자를 만들매 인문(人文)이 점차 베풀어졌으니 정(精)ㆍ일(一)ㆍ중(中)ㆍ극(極)은 문(文)의 체(體)요, 시(詩)ㆍ서(書)ㆍ예(禮)ㆍ악(樂)은 문(文)의 용(用)입니다. 따라서 시대마다 각각 문이 있고, 문은 각각 체재가 있으니, 전(典)ㆍ모(謨)를 읽으면 당(唐)ㆍ우(虞)의 문을 알 수 있고, 훈(訓)ㆍ고(誥)ㆍ서(誓)ㆍ명(命)을 읽으면 삼대(三代)의 문을 알 수 있습니다. 진(秦)에서 한(漢)으로, 한에서 위(魏)ㆍ진(晉)으로, 위ㆍ진에서 수(隋)ㆍ당(唐)으로, 수ㆍ당에..
“잔느는 짐을 다 꾸리고 창가로 다가가 보았으나 비는 그치지 않고 있었다. 밤새 폭우가 유리창과 지붕을 두드렸다. 물을 잔뜩 머금고 낮게 내려앉은 하늘은 구멍이라도 난 듯 땅 위로 물을 게워내고 흙을 설탕처럼 녹여 걸쭉하게 만들었다. 무거운 열기를 가득 품은 돌풍이 불고 있었다. 불어난 시냇물의 요란한 소리가 인적없는 거리를 채웠고, 스펀지처럼 습기를 빨아들인 집집마다 지하실부터 다락까지 온 벽이 땀을 흘렸다. 어제 수녀원에서 나와 마침내 영영 자유로워져 오래전부터 꿈꿔온 인생의 온갖 행복을 거머쥘 준비가 된 잔느는 날이 개지 않으면 아버지가 떠나기를 망설일까 걱정되어 아침부터 백번쯤 지평선을 살폈다. 그러다 깜빡 잊고 여행 가방에 달력을 챙겨 넣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벽에서 작은 달력을 떼어..
서설.“1975년에서 1976년까지 격렬한 내전을 겪던 베이루트를 방문한 어느 프랑스 언론인은 파괴된 도심지를 보고 개탄하며 이렇게 썼다. ‘한때는 이곳도 샤토브라앙과 네르빌이 묘사한 동양에 속한 것처럼 보였는데....’ 특히 유럽인의 입장에서 보는 한 그 곳에 대한 그의 말은 물론 옳았다. 동양이란 사실 유럽인이 조작한 것으로 고대부터 로맨스, 색다른 존재, 잊을 수 없는 기억과 풍경, 특별한 체험담의 장소가 되어 왔다. 그러데 지금 그것이 그 언론인 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동양이란 한때 생겨났다가 이젠 그 시대가 끝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동양인 스스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점도, 샤토브리앙과 네르발의 시대에서 동양에 동양인이 살았다는 점도, 나아가 그곳에서 지금 고통..
“아무도 잠을 자지 못했다. 날이 밝으면 강습상륙정이 내려지고 선발 병력이 파도를 타고 아노포페이 해안으로 진격해 들어갈 것이었다. 탑승한 병사 전체가, 호송선에 있는 사람 모두가, 몇 시간 안에 자기들 가운데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병사 하나가 의식은 또렷한 채로 눈을 감고 침상 위에 누워 있다. 좀처럼 깊이 잠들지 못하고 발작적으로 선잠에 빠지는 병사들의 잠꼬대 소리가, 단조롭게 이어지는 파도 소리처럼 사방에서 들려온다. ‘안 해, 안 할 거야’ 누군가는 큰소리로 잠꼬대를 한다. 병사는 눈을 뜨고 선실 안 이곳저곳을 천천히 응시한다. 해먹과 벌거벗은 몸뚱이와 주렁주렁 매달린 장비들이 뒤엉켜 시야가 불분명하다. 뱃머리 쪽으로 가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몇 마디 욕설을 내뱉으..
“찬드라푸르는 20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는 마라바르 동굴을 제외하면 특별한 것이라곤 없는 도시다. 가장자리에 갠지스강이 흐르고 있지만 강물에 씻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이 도시는, 멋대로 내다 버린 쓰레기로 뒤범벅이 된 채 강둑을 따라 2마일쯤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갠지스가 이곳에서는 성스러움을 잃기라도 한 듯 강변에는 강으로 목욕하러 내려가는 계단도 없고, 도도한 물줄기의 전경(全景)마저 시장 건물들이 가리고 있다. 이 도시의 거리들은 초라하고 사원들도 미미하며, 좋은 집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정원에 가려져 있거나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면 기겁해서 도망갈 만큼 지저분한 골목들을 지나야 닿을 수 있다. 찬드라푸르는 번영했거나 아름다웠던 적이 없지만 2백년 전만해도 제국이었던 북인도에서 바다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