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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보케르 부인은 콩플랑 집안에서 태어난 늙은 여자다. 그녀는 파리의 생마르소 성 밖 지역과 라탱 구역 사이에 있는 뇌브생트 주느비에브 거리에서 40년 전부터 하숙집을 경영해 왔다. 남녀노소 누구든지 ‘보케르의 집’으로 알려진 이 하숙집에서 숙식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존경할 만한 하숙집의 풍속에 대해 결코 험담하지 않는다. 젊은이가 이곳에 하숙하려면 그의 가족은 쥐꼬리만한 한 하숙비를 그에게 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30년 전부터 이곳에서는 젊은 사람을 한 명도 볼 수 없다. 그런데….”(박영근 옮김, 민음사,2000) 1.현미경을 들이대듯이 거리낌없이 쑥 들어온 듯한 첫 문단이다. 싸구려 하숙집을 사실주의에 기초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서술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 소설로 작가(발자크) 특유의 호..
“나는 그 남자의 사진 석 장을 본 적이 있다. 한 장은 그 남자의 어린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열 살 전후로 추정되는 모습의 사진인데, 어린 꼬마가 여러 명의 여자에게 둘러싸여(그들은 그 꼬마의 누나들, 여동생들, 친척들로 보인다) 정원에 있는 연못가에 거칠게 짠 하카마를 입고 서서, 고개를 30도 정도 왼쪽으로 기울이고 보기 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보기 흉하게? 하지만 약한 둔한 사람들(말하자면 아름다움과 추함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재밌다고도, 아니, 딱히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할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저 “귀여운 아니네요.”하고 적당히 말할지 몰라도, 그말이….(오유리 역, 문예출판사,2022) 1.독자들이 혼돈을 일으킬 수 있도록 소설의 시작을 서문으로 쓰고, ‘나’라는 화자가 푸념하듯이..
“그렇다, 나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담당 간호사는 나를 지켜보고 있으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일도 거의 없다. 문에 작은 구멍이 달려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호사의 눈은 갈색이어서, 파란 눈을 가진 나를 꿰뚫어 볼 수는 없다.”(최은희 옮김, 동서문화사,2016) 1.1인칭 시점의 독특한 내레이션 구조의 소설을 회고(回顧)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단순하게 읽으면 첫 문단부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구조다. 정신병원에 갖혀 있지만 정신은 올바르고, 지켜보지만 엿보고, ‘갈색 눈’ 대 ‘파란 눈’의 대비 등에서 보듯이 상징과 은유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다층적 구조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논술이나 입사시험 등에서 활용하기 어려운 문체라 할 수 있다. 2.귄터 그라스의 ‘양철북(D..
“베리에르라는 작은 도시는 프랑슈콩테 지방에서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로 통할 만하다. 붉은 기와를 얹은 뾰족한 지붕의 하얀 집들이 언덕의 비탈에 늘어서 있으며, 무성한 밤나무 수풀은 그 언덕의 작은 굴곡을 드러내 보인다. 두(Doubs)강은 옛날에 스페인 사람들이 건축했으나 이제는 폐허가 된 그 도시의 요새 수백미터 밑을 흐르고 있다. 베르에르의 북쪽 높은 산은… ”(이동렬 옮김,민음사 2013) 1.잘 쓰인 기행문을 읽는 듯한 문장이 이어지는 첫 문단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길지 않고 편안하게 읽히는 부드러운 문체다. 이국의 도시를 첫 방문할 때 한눈에 들어오는 느낌이 그대로 표현된 듯하다. 특히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명료하고 현실주의적 묘사로 논술이나 입사시험 등에서 모방해 볼 만하다. 2.스탕달의 장..
“나는 황야지대를 지나가다가 어느 곳에 이르러 우연히 동굴을 발견했다. 그래서 거기 들어가 땅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어느덧 꿈을 꾸게 되었다.꿈속에서 보니, 누더기를 걸친 어떤 남자가 등에는 커다란 짐을 지고 손에는 책을 든채 자기집을 향하여 한 곳에 서 있었다.”(이동진 옮김, 해누리,2007) 1.순례자의 기행문 형식의 소설답게 간결하고 쉽게 쓴 첫 문단이다. 1인칭 시점에서 꿈 이야기 형식의 서술 방식을 암시하고 있다. 황야와 동굴, 꿈을 모티브로 풀어낸 도입부가 긴 여정의 고난과 환희를 예고하고 있는 듯 하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문체가 특징이다. 2.존 번연의 ‘천로역정(天路歷程,The Pilgrim's Progress,1부 1678년, 2부 1684년 출판)’은 영미권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어제 나는 아리스톤(플라톤의 아버지)의 아들 글라우콘(플라톤의 형)과 함께 페이라이우스(아테네 외항)에 갔었네. 여신(트라케인들이 숭배하는 여신 벤디스)을 참배하고 아울러 거기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축제가 어떻게 거행되는지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그곳 사람들의 축제 행렬도 훌륭했지만 트라케인(에게해 북동쪽 트라케에서 아테네로 온 이주민)들이 선보인 축제 행렬도 그에 못지않게 볼만했네.”(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23) 1.첫 문단이 과감하다. 딱딱한 철학적 논리로 시작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파괴했다. 여행기 같은 설명문 형식의 글이 이채롭기까지 하다. 특히 르포문학이나 기행문처럼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가 스며들어 있다. 화자(話者)도 예상치 못한 인물로 소크라테스다. 플라톤이 스승 ..
"내가 더 젊고 상처 입기 쉬운 시절, 아버지는 내게 그 이후 마음속에 되새긴 몇 가지 조언을 해줬다. '네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질 때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네가 누린 이점을 누렸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렴.'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씀을 않았지만..."(이정서 옮김, 새움출판사, 2022) 1.시작은 전형적인 소설 쓰기 기법이다.1인칭 시점의 등장인물이 경험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도입부인 민큼 미사여구(美辭麗句) 나 상징, 비유없이 가볍게 회상형으로 글을 풀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소설 전체적으로는 상징과 은유가 잘 표현된 시적 문체와 간결한 구조로 평가받고 있다. 전체적으로도 군더더기 없는 희곡처럼 대화체가 많아 실감나게 읽힌다. 소설형 문장쓰기에 좋은 도입부다. 2. ..
“민중에 대한 지배 권력을 행사해온 국가나 통치체제는 과거는 물론 지금까지 모두 공화국이거나 군주국이었습니다. 군주국은 군주의 가문에 의해 몇 대에 걸쳐 통치돼 온 세습군주국이거나 신생군주국입니다. 신생군주국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통치하는 밀라노처럼….”(권혁 옮김, 돋을새김,2005) 1.누구나 읽기 쉬운 설명문 형식을 취했다. 군주에게 올리는 보고서 형태로 썼기 때문으로 보인다. 첫 문단이 사실상 두 개의 문장으로 끝나지만 향후 전개될 글의 전개를 예고하고 있다. 설득형 문장으로 활용하기에 좋은 첫 문단이다. 2.마키아벨리의 ‘군주론(II Principe,1532)’은 1513년에 집필에 들어갔다고 기록돼 있다. 그해에 당시 피렌체 지배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하려고 했다고 한다. 다만 실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