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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자리에서 처녀가 다가와 시마무라(島村)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차가운 눈기운이 흘러들어왔다. 처녀는 창문 가득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듯, “역장님”, “역장님!” 등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으며 온 남자는 목도리로 콧등까지 감싸고, 귀는 모자에 달린 털가죽이 내려덮고 있었다. 벌써 저렇게 추워졌나 하고 시마무라가 밖을 내다보니 철도의 관사인 듯한 가건물이 산기슭에 을씨년스럽게 흩어져 있을 뿐, 하얀 눈빛은 거기까지 채 닿기도 전에 어둠에 삼켜지고 있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저, 유숙자 옮김, 민음사, 2002) 1.주어가 없는 짧은 첫 문장이 압권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결체로 깔끔하..

“오랜 어둠속에서/세상이 처음 생길 때/천황씨는 머리가 열셋이요/지황씨는 머리가 열 하나라/그들은 생김새부터/이렇게 신기하였도다/그뒤를 이어/성스러운 임금 차례로 나왔으니/모든 신비로운 사적들/옛 글에 밝혀져 있어라. 여절은 무지개처럼 흐르는 큰 별을 보고/소호씨를 낳았으며/여추가 전욱을 밸 때도/또한 밝은 빛을 보고 느꼈음이라.”(이규보 저 동명왕편 서장(序章), 김상훈·류희정 역, 보리, 2005) 1.한문으로 쓴 서사시답게 운율(韻律)이 잘 맞춰진 노래이다. 한글로 번역했어도 그 리듬이 살아 움직일 정도다. 첫 구절이어서인지 상징이나 은유보다는 세상의 탄생을 과장되게 이야기하듯이 썼다. 우리 말로 입에서 입으로 내려 오는 구전(口傳) 이야기를 새롭게 쓴 것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창의력이 뛰어난 느..

“간통을 뜻하는 프랑스어 아뒬테르(adultère)는 그리스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리스어에서 간통은 ‘모이케이아’이며, 거기서 나온 라틴어 ‘모에쿠스’역시 프랑스어와는 관련이 없다. 그렇다고 고대 시리아에서 온 것도, 시리아에서 파생된 히브리어에서 온것도 아니다. 히브리어로 간통은 ‘나아프’다. 아뒬테르에 해당하는 라틴어 아둘테라티오(adultèratio)는 변조, 위조, 다른 것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 문서 위조, 모조 열쇠, 위조 계약, 위조 수결(手決) 등을 뜻했다. 그리고 남의 침대에 몰래 올라가는 사람을 다른 사람의 자물쇠에 모조 열쇠를 밀어넣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아둘테르(adulter)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사이에-출판기획 및 번역 네트워크. 옮김, 민음사,2015) 1.계몽서 답게 처음..

“푸리아들이 수사학 선생들을 선동해 이렇게 외치며 죽는시늉을 하게 만듭니다. ‘나는 우리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이 상처들을 입었소이다. 이 눈도 여러분을 지키다 잃었습니다. 나의 자식들을 잘 인도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불구가 된 다리로는 내 몸조차 가눌 수가 없소이다.’ 학생들이 능변에 이르는 왕도를 배울 수만 있다면야, 뭐 이런 영웅담쯤은 참아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강미경 역, 공존, 2008) 1.광장을 지나가는 인파에게 외치는 호객 행위같은 직접화법 서술이다. 첫 문단에 독자의 관심을 부르는 복수의 여인 푸리아, 불구의 몸 등 관심 유도 장치를 넣은 것도 설득을 위한 장치다. 상징이나 은유, 구체적 비유는 없지만 호소하는 사람을 ‘줌업’ 한 것도 그렇다. 독백 형식의 대화형 문장..

“기차는 성이라도 난 듯 불규칙하게 덜컹거리며 내달렸다. 연이어 나오는 작은 역에 멈춰 서서 잠시 초조하게 승객들을 기다렸다가 다시 황량한 대초원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기차가 앞으로 내달리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대초원은 황갈색이 감도는 거대한 분홍색 담요처럼 이따금 일렁거렸다. 기차가 빨리 달릴수록 일렁거림은 더 높게 솟아올랐다.”(홍성영 역,오픈하우스,2015) 1.달리는 열차에 타 있는 듯한 첫 문단이다. 등장 인물없이 고정된 카메라가 찍는 듯한 묘사다. 화자(話者)의 개입이 없는 회화적(繪畵的) 사실주의 서술기법을 적용했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 적는 듯한 도입부로 글쓰기를 배우는 초기 단계에 적용하면 좋은 문체라고 할 수 있다. 2.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

“닐스는 스웨덴 남쪽의 벰멘회그라는 작은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처음 그곳에 정착했을 때 닐스의 부모님은 몹시 가난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작은 텃밭과 낡은 오두막, 돼지 한 마리와 닭 두 마리가 전부였다.”(이은재 편, 지경사,2012) 1.어떤 장소의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한 듯이 묘사한 첫 문단이다. 이렇다 할 상징이나 은유없이 어린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구성했다. 길지 않은 첫 문단에 ‘작은 마을’, ‘가난’, ‘낡은’, ‘전부’ 등은 주인공의 역설적인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글쓰기에 참고할 만 한 첫 문단이다. 2.셀마 라겔뢰프(라게를뢰프)의 ‘닐스의 모험(Nils Holgerssons underbara resa genom Sverige)’은 어른들..

“모르는 것에 대한 접촉보다 인간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를 붙잡으려 하면 그것을 확인하고자 하고 식별하고자 하며, 아니면 적어도 사태의 가닥이라도 대충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낯선 것과의 접촉을 피한다. 밤에 또는 어둠 속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접촉에 대한 두려움은 심리적인 공황상태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옷을 입은 정도로는 결코 충분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옷은 너무 쉽게 찢어질 수 있어서 , 무언가가 옷을 뚫고 들어와 매끄럽고 무방비 상태인 맨살에 와 닿는 것이 너무 쉽기 때문이다.”(강두식 박병덕 옮김, 바다출판사, 2002) 1.첫 문단이 길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학술적이지 않고, 쉽게 읽히도록 썼다. 첫 줄에 누구나 알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

“노란불이 들어왔다. 차 두 대가 빨간불에 걸리지 않으려고 가속으로 내달았다. 횡단 보도 신호등의 걸어가는 사람 형상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스팔트 검은 표면 위 칠해진 하얀 줄무늬를 밝으며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 줄무늬를 얼룩말이라고 부르지만 세상에 그것처럼 얼룩말을 닮지 않은 것도 없을 것이다. 안달이 난 운전자들은….”(정영목 역,해냄. 2022) 1.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구전 이야기꾼이 말하듯이 쓴 도입부다. 문장과 문장 사이는 물론 문단 구분이 없이 이어져 숨막히게 읽힌다. 횡단 보도 묘사에서 보듯이 있는 그대로의 묘사가 치밀하다. 대화체 문장이 나오긴 하지만 따옴표가 없이 이어져 대화와 지문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 어떤 것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글쓰기 연습에 적극 활용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