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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어느 날 땅거미가 질 무렵 인구 40만 가량의 미국 도시의 상업 중심가에 높이 치솟은 빌딩의 벽들은 시간이 흐르면 어쩌면 한 토막 우화처럼 남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맴돌지도 모른다. 이제는 비교적 조용해진 널찍한 큰 길 위쪽으로 여섯명이 조그만한 무리를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쉰 살 가량의 몸집이 작고 땅딸막한 사내는 검은 색 둥근 펠트 모자 밑으로 덥수룩한 머리칼이 삐죽 삐져나와 있어 볼품이라고는 도저히 없었다. 이 사내는 길거리에서 설교하는 사람들이나 가수들이 흔히 들고 다니는 조그마한 휴대용 손풍금을 들고 있었다. 사내보다 다섯 살쯤 젊어 보이는 여자는 그다지 살이 찌지 않았지만, 사내보다 키가 더 크고 체격이 다부지게 생긴 데다 생기가 넘치고 얼굴이나 옷차림은 퍽 수수했지만 못생겼다는 느낌은 들..

“모르는 것에 대한 접촉보다 인간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를 붙잡으려 하면 그것을 확인하고자 하고 식별하고자 하며, 아니면 적어도 사태의 가닥이라도 대충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낯선 것과의 접촉을 피한다. 밤에 또는 어둠 속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접촉에 대한 두려움은 심리적인 공황상태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옷을 입은 정도로는 결코 충분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옷은 너무 쉽게 찢어질 수 있어서 , 무언가가 옷을 뚫고 들어와 매끄럽고 무방비 상태인 맨살에 와 닿는 것이 너무 쉽기 때문이다.”(강두식 박병덕 옮김, 바다출판사, 2002) 1.첫 문단이 길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학술적이지 않고, 쉽게 읽히도록 썼다. 첫 줄에 누구나 알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

“노란불이 들어왔다. 차 두 대가 빨간불에 걸리지 않으려고 가속으로 내달았다. 횡단 보도 신호등의 걸어가는 사람 형상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스팔트 검은 표면 위 칠해진 하얀 줄무늬를 밝으며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 줄무늬를 얼룩말이라고 부르지만 세상에 그것처럼 얼룩말을 닮지 않은 것도 없을 것이다. 안달이 난 운전자들은….”(정영목 역,해냄. 2022) 1.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구전 이야기꾼이 말하듯이 쓴 도입부다. 문장과 문장 사이는 물론 문단 구분이 없이 이어져 숨막히게 읽힌다. 횡단 보도 묘사에서 보듯이 있는 그대로의 묘사가 치밀하다. 대화체 문장이 나오긴 하지만 따옴표가 없이 이어져 대화와 지문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 어떤 것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글쓰기 연습에 적극 활용해 ..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씁쓸한 아몬드 향내는 언제나 그에게 짝사랑의 운명을 떠오르게 했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아직도 어둠에 잠겨 있는 집으로 들어갈 때부터 그런 사실을 감지했다. 응급사태 때문에 달려 왔지만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이런 경우를 응급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부상당한 참전용사이자 아동 사진사였으며 가장 다정한 체스 상대였던 서인도 제도의 망명객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는 시안화 금의 향 때문에 기억의 폭풍 속에서 무사히 도망쳐 있었다.”(송병선 옮김, 민음사, 2004) 1.감각적인 묘사와 매끄러운 문체, 이미지가 떠오르는 듯한 글의 전개가 돋보인다. 어떤 것에 대한 포기, 짝사랑이 도입부에 나오면서 소설의 전개와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무엇인가 신비스런 느낌이..

“걷고 걸으며 ‘영원한 기억’을 부르고들 있었고, 잠시 노랫소리가 멎자 회장자(會葬者)들의 발소리, 말발굽 소리, 간간히 부는 바람 소리가 그것을 이어받아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행인들은 장례 행렬에 길을 비껴주며 화환 수를 세며 성호를 그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행렬에 끼어들어“어느 분 장례입니까?”하고 묻기도 했다.“지바고 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그분이 아닙니다. 마님이십니다.”-“어쨌거나 명복을 빕니다. 성대한 장례군요.”(박형규 옮김, 문학동네, 2018) 1.장송곡(葬送曲)을 부르며 따라가는 사람들에 대한 표현이 실제 보고 있는 듯이 쓰여졌다. 이어 나오는 대화체 문장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화자(話者)의 시선이 멎춰 있다. 시(詩)소설답게 정서적 깊이..

“오클라호마 시골의 적토지대와 흑토지대에 마지막 비가 부드럽게 내렸다. 그러나 상처 투성이 대지를 더 파헤치지 않았다. 빗물이 흘러간 자리를 쟁기가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이 마지막 비로 옥수수는 부쩍 자라고 잡초더미와 풀은 길 양쪽 여기저기에 우거져 잿빛 땅과 검붉은 땅이 푸른 덮개 밑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맹후빈 역, 홍신문화사,2012) 1.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신문 기사 같은 문체로 시작돼 읽기가 깔끔하다.즉 현장을 취재해 실감나게 쓰는 르포르타쥬 형식의 도입부다.미사여구(美辭麗句)나 은유, 어려운 낱말도 없는 간결한 문장이다. 글을 꾸미기 보다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의 글솜씨가 돋보인다. 붉은 흘과 검은흙, 쟁기, 비 등은 앞으로 전개될 거대 서사를 위한 상징이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오랜 세월 동안 내 뇌리의 한 구석에, 이스탄불 골목들 중 한곳에, 우리 집과 비슷한 다른 어떤 집에, 모든 면에서 나와 비슷한, 아니 나와 꼭 닮은 또다른 오르한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생각을 처음 언제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아마도 오해, 우연, 장난 그리고 두려움으로 짜인 긴 세월끝에 내마음속에 스며든 것 든 것 같다. 이 상상이 머릿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이난아 옮김, 민음사,2008) 1.첫 문장에 사실적이고 꾸밈없는 자전 수필임을 보여주고 있다. 문장 하나에 4개의 쉼표가 있는 만연체 서술로 수필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첫 문단이다. 이어지는 사유와 은유가 담긴 문장들도 호흡이 길다. 3인칭 시각에서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객관적으로 써..

그리스의 역대급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오랜 연인을 우연히 만난 것처럼 의외로 무덤덤하게 시작한다. “항구 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에게해의 큰 섬)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기 직전인데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이윤기 옮김,열린책들, 2000) 번역의 고심이 엿보이지만 전형적인 소설 문체다. 작가가 현장에 있는 듯한 1인칭 화법으로 주변 상황을 가볍게 설명하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첫 문단에서 주인공과 장소, 날씨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소설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한다. 나중에 문체가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만 도입부는 예상 외로 깔끔하다. 피레에프우스는 현재 아테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