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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아이반호-역사소설의 기원이자 포맷을 제시한 중세기사 이야기의 첫 문단은 유서 깊은 지역 설명으로 서두를 연다 본문

제1장. 배불리 먹은 돼지가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 시끄럽게 꿀꿀거리고, 불쾌하게 소리지르며 억지로 쫓겨 마지못해 더러운 돼지우리로 들어가는 동안 이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네.-포프(Pope)의 '오디세이아'.
"돈(Don)강이 젖줄인 유쾌한 잉글랜드의 그 쾌적한 지방에, 예전에는 셰필드(Sheffield)와 아름다운 동커스터(Doncaster) 읍내 사이에 있는 멋진 언덕과 계곡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커다란 숲이 뻗어 있었다. 이 광대한 숲의 흔적은 지금도 여전히 원클리프(Warncliffe Park)와, 웬트워스(Wentworth)의 귀족 영지와 로더럼(Rotherham) 주위에서 찾아볼수 있다. 이 곳은 바로 옛날에 전설상의 원틀리의 용(Dragon of Wantley)이 출몰했고, 장미 전쟁 동안 가장 필사적인 전투들이 많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은 오래전에 그 행적이 잉글랜드의 시가에 그토록 인기리에 표현되었던 의협심 넘치는 무법자 무리가 활약했던 곳이기도 하다. 주무대가 이러하니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리처드(Richard) 1세의 재위 말 무렵의 어느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갖은 예속적 억압에 시달리고 있던 절망적인 백성들에게 리처드 1세가 오랜 억류생활에서 풀려나오는 일이 단순한 기대에서---."(월터 스콧 저, 서미석 역, 현대지성, 2018+www.gutenberg.org 참고)

1.긴 머리말과 제목에 이은 잠언, 제1장 잠언 등에 이어 본문이 나오는 독특한 구성의 소설이다. 근대소설이 현대로 가는 '다리' 단계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구성이다. 유서깊은 지역에 대한 서정적인 설명으로 지방색을 느끼게 하는 묘사가 명징하게 다가오는 첫 문단이다. 글의 전개와 구성도 매우 자연스럽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소설의 주제가 사실로 다가오도록 실제 역사를 첨가해 써내려갔다. 커다랗고 광활한 숲의 흔적, 의협, 무법자, 실존인물 리처드 1세 등이 실감나는 낭만 역사소설을 예고하고 있다. 르포르타지나 어떤 것에 대한 객관적인 소개 등에 알맞은 문장 구성을 가진 도입부라 하겠다.

서언에 나오는 *.포프의 오디세이아는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1688~ 1744)가 라틴어 오디세이아를 영어로 번역한 책이다. 본문에 나오는 *.돈(Don)강은 영국 중부 사우스요크셔(South Yorkshire)에 있는 강으로 셰필드(Sheffield), 페니스톤(Penistone), 로더럼(Rotherham), 멕스버러(Mexborough), 코니스버러(Conisborough), 돈캐스터(Doncaster) 등을 경유해 흐른다. 돈은 켈트족 여신 돈 혹은 여신, 강을 뜻하는 다누(Danu)에서 나온 말이다. *.셰필드(Sheffield)와 동커스터(돈캐스터,Doncaster), 로더럼(Rotherham)은 영국 중부지방 사우스 요크셔의 도시 이름이다. *.원클리프(Warncliffe Park)와 원트워스(Wentworth)는 사우스 요크셔 마을과 지역 이름 *.원틀리의 용(Dragon of Wantley)은 사우스 요크셔의 원클리프 지역에서 기사가 용을 죽인 전설에 나온다. 아일랜드 주교 토머스 퍼시(Thomas Percy, 1729~1811)의 시 '고대 영국 시풍(Reliques of Ancient English Poetry , 1765)'에 나오는 시구이다, 원클리프의 사투리. *.장미(薔薇)전쟁(Civil Wars of the Roses, 1445~1487)은 프랑스 앙주(Anjou)백작에서 유래한 '플랜태저넷(Plantagenet) 왕가(1154~1485)'의 두 적대 가문 요크(York,1385~1485)의 백장미와 랭커스터(Lancaster, 1267~1472)의 붉은 장미의 다툼을 말한다. *.리처드1세(Richard I, 1157~1199)는 플랜태저넷 왕가 출신으로는 잉글랜드 왕국의 두 번째 국왕이다. 사자왕, 사자심왕(the Lionheart) 으로 불린다. 3차십자군 전쟁의 잇단 승리로 중세 영웅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시가는 시가(詩歌)이다.

2.월터 스콧의 '아이반호(Ivanhoe-A Romance, 1819)'는 현대 거의 모든 역사소설의 원형으로 추앙받는 걸작이다.실제 역사에 사실(팩트)와 거짓말(픽션)을 뒤섞은 역사소설을 창시하고, 전범(典範, 본보기)을 보여준 소설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근현대 서양 의적 캐릭터인 '로빈후드(Robin Hood, 로빈훗)'를 만들어 내 제도에서 소외된 이들(산적 등)에게 '고귀한 의적, 영웅' 이미지를 덧 쒸운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은 저자가 심한 복통으로 직접 펜을 잡을 수 없어 지인이 받아 쓰다가 마무리 부분만 직접 쓸 정도로 힘들게 완성했다. 1819년 11월 끝낸 원고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출판사 아치벌드 콘스테이블(Archibald Constable)에서 12월20일 경 '웨이벌리(Waverley)의 작가'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 전 젊은 몽상가이자 군인인 에드워드 웨이벌리를 내세워 역사소설 시리즈 '웨이벌리(Waverley, 첫 작품 1814년)'시리즈를 내고 있었다.
에딘버러에서 '아이반호'를 익명(匿名)출판한 저자는 그해 12월 29일에는 런던 로빈슨 허스트 출판(Hurst, Robinson and Co.)에서도 냈다. 다만 원고의 공식 출판일은 1820년 1월로 표기했다. 한편 소설 시작에 앞서 헌정 서신도 나온다. 로렌스 템플턴(Laurence Templeton,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 드라이아스더스트 목사(Dryasdust, 가상인물로 문학적 권위자)에게 보낸 가상의 편지 형식이다.
소설 제목 '아이반호(Ivanhoe)'는 소설 속 주인공의 영지 이름이다. 저자가 버킹엄셔의 '아이빙호(Ivinghoe)' 마을에서 따왔다. 어쨌든 소설은 20세기들어서도 1950년대 말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미국 고등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저자의 여러 소설 중 인기 있는 작품으로 2019년 11월 BBC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권의 소설'에 포함됐다.

3.소설 '아이반호'에 영감을 준 것은 골동품 수집가이자 조각가, 작가인 조셉 스트럿(Joseph Strutt, 1749~1802)이 쓴 중세 영국의 관습 등을 다룬 3권의 책이었다. 또 스코틀랜드의 목사이자 역사가 로버트 헨리(Robert Henry, 1718~1790)의 '대영제국 역사(The History of Great Britain, 1771~1793)'와 영국 역사가 샤론 터너(Sharon Turner,1768~1847)의 '노르만 정복기와 앵글로색슨 역사(The History of the Anglo-Saxons from the Earliest Period to the Norman Conquest (1799-1805)' 등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영국 유명 골동품 수집가이자 작가 조셉 리트슨(Joseph Ritson, 1752~1803)의 '로빈후드(Robin Hood: a collection of all the ancient poems, songs and ballads now extant relatives that famous English outlaw, 1795)'와 잉글랜드 익명의 작가가 1300년대 말에 리처드 1세(Richard I, 1157~1199)를 쓴 '사자심왕 리처드(Richard Coer de Lyon)'도 집필에 도움을 줬다.

4.'아이반호'는 잉글랜드 전설적인 영웅 사자심왕 리처드 1세(Richard I, 1157~1199)를 통한 국가 통합과 관용을 주제로 쓰였다. 12세기 잉글랜드 지배 계층 노르만족과 피지배계층 색슨족의 갈등이 소설의 얼개다. 12세기 유럽은 '성지 예루살렘' 문제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슬람 군주 살라흐 앗 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살라딘, 1138~1193)가 예루살렘을 정복, 성지순례의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이에 1,2,3차 십자군(엑스페디오 사크라-성전Expeditio Sacra, 1189~1192, 영어 Holy Expedition) 원정에 나섰다.하지만 리처드 1세가 연전연승했음에도 불구, 예루살렘 탄환에는 실패했다.
3차 십자군은 가톨릭의 174대 교황 클레멘스 3세(Clemens III, 1130?~1191,1187년 교황 취임)의 호소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Barbarossa, 1122~1190), 프랑스 카페 왕조 제7대 국왕 필리프2세(Philippe II, 1165~1223), 잉글랜드의 리처드 국왕(Richard I, 1157~1199, 플랜태저넷 왕조 제2대 국왕) 등이 호응해 1189년 시작됐다.
어쨌든 소설 '아이반호'에서 영국은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원정에 나가 있는 동안 동생 존(John, 1166~1216, 플랜태저넷 왕조 제3대 국왕, 1215년 마그나 카르타의 주인공)이 반란을 일으킨다. 리처드 1세(Richard I, 1157~1199)는 오스트리아에서 포로로 잡히는 등 우여곡절끝에 몸값을 지불하고 돌아오고 동생 존을 용서한다. 존은 1199년 리처드 1세 사망으로 왕위에 올라 죽기 1년 전인 1215년 왕권을 대폭 양보하는 '대헌장-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 Libertatum-자유의 대헌장)에 서명했다.

5. 소설 '아이반호'는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많다. 소설 전체 주제인 색슨족과 노르만족의 갈등은 허구다. 12세기 후반 영국에서 두 족속 간 갈등은 없었다. 영국 역사가이자 건축가인 에드워드 오거스트 프리먼(EA Freeman,1823~1892)은 "12세기에 색슨족과 노르만족은 통혼과 문화적 동화로 융합돼 하나를 구별해 내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당시는 앵글로색슨족으로 불렸다"고 주장했다.
소설 '아이반호'에 나오는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Poor Knights of Christ and of the Temple of Solomon) 단장 루카스 드 보마누아르(lucas beaumanoir)도 허구다. 당시 단장은 스페인 아라곤왕국 출신 길버트 호랄(1193~2000)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esco d'Assisi, 1181~1226)도 역사와 맞지않는다. 성 프란시스코는 리처드 1세(Richard I, 1157~1199)가 죽은 지 10년 후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또 '아이반호'에 나오는 그라나다 에미리트(Emirate of Granada, 1232~1492, 중세 후기 이베리아 반도 남부 이슬람 정치 체제, 나스르 왕조)는 1230년 이전에 왕국이 아닌 무슬림 소공국들로 있었다. 또 소설에 나오는 그라나다(Granada)의 지배자 모하메드 보압딜(Boabdil, 아부 압달라 무함마드 12세, 1460~1533, 마지막 나스르 왕조의 통치자)은 1460년 이전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밖에 결혼식이 펼쳐지는 요크 대성당(York Minster, 1470년 전후 완공)과 셰필드 주교 등도 허구다.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

6.등장인물은 색슨사람들과 노르만 사람으로 나뉜다. 색슨계는 주인공인 청년 기사 아이반호의 윌프레드(Wilfred of Ivanhoe), 색슨계 귀족 여인 로위나(Rowena) 공주, 아이반호의 아버지이자 색슨계 무장 로더우드의 세드릭(Cedric of Rotherwood), 세드릭 일가 소유의 돼지치기 노예 거스(Gurth)와 노예 친구 광대 웜바(Wamba), 색슨왕가의 후예 코닝스버러의 애설스탠(Athelstane of Coningsburgh), 숲속의 사제 코프맨허스트, 잉글래드계 자유민 로빈 후드(로버트 록슬리, Locksley), 토퀼스톤 성의 성주인 색슨 귀족의 딸 울리카 울프강어(Ulrica of Torquilstone) 등이 있다.
노르만계로는 사자심왕 리처드1세, 리처드 왕의 동생으로 왕위를 노리는 왕자 존, 존 왕자의 심복 브라이언 드 보아길베트(Brian de Bois-Guilbert), 존 왕의 심복이자 토퀼스톤의 성주 레지나르 프롱드보우프(Reginald Front-de-Bœuf), 존 왕자 휘하 용병대장 모리스 드 브래시(Maurice de Bracy), 존 왕자의 측근이자 브레인 왈드마 피처스(Waldemar Fitzurse), 조르보 수도원(Abbot of Jorvaulx)의 원장 에이머(Aymer), 성전기사단장 루카스 보마누아르(lucas beaumanoir) 등이 나온다. 이밖에 중요 인물로 유대인 두명이 나온다. 유명한 고리대금업자 요크의 아이작(Isaac of York)과 외동딸 레베카(Rebecca)다.

7.줄거리는 노르만 왕 리처드 1세(Richard I, 1157~1199)를에게 충성을 다한 탓에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진 색슨인 주인공, 아이반호의 윌프레드(Wilfred of Ivanhoe-아이반호 영지 보유)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제3차 십자군이 사실상 실패한 후인 1194년 전후가 시대 배경이다.
아이반호는 국왕 리처드 1세를 모시고 3차십자군 원정에 참가하고, 그 사이 리처드 1세의 동생 존이 왕위를 찬탈한다. 아이반호는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왔으나 노르만 족의 색슨 족에 대한 차별은 심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존왕과 부하들은 유태계 부호 아이작과 딸 레베카를 숲속에서 납치하려고 한다. 아이작의 엄청난 돈을 노린 것이다. 이때 아이반호의 도움으로 아이작과 레베카는 간신히 도망친다.
존왕의 계략을 벗어나기 위해 아이작과 딸 레베카는 추적을 피해 도망간다. 한편 존왕은 노르만족 기사들과 색슨족 기사들이 대결 무술 경기를 개최하는데 익명의 기사가 최종 승리 직전까지 간다. 이때 존왕 측의 노르만 기사들이 익명의 기사를 집중 공략해 중상을 입는 위기에 처한다. 익명의 기사를 구한 이는 검은 갑옷의 흑기사(黑騎士)였다. 그래서 최종 승자는 익명의 기사로, 투구를 벗으니 아이반호였다.
아이반호는 승리의 면류관을 쓰지만 곧 쓰러지고, 유태계 부호 아이작과 딸 레베카가 자신들의 집을 옮기다가 노르만 기사들에 잡혀 한 모두 성에 감금된다. 이들을 구해 낸 것은 흑기사와 함께 셔우드숲의 의적 로빈 후드 일행이었다. 흑기사는 변장하고 잠입한 사자왕 리처드1세였지만 레베카는 마녀재판에 회부돼 화형선고를 받는다. 결국 아이반호와 흑기사, 로빈후드 등은 의기투합해 존왕을 밀어내고, 다시 리처드 1세를 옹립한다.

8.소설은 후대 작가 스코틀랜드 출신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과 영국의 문장가(평론가) 존 러스킨 (John Ruskin, 1819~1900) 등에게 큰 영향을 줬다. 또 수많은 작가들에게 기사 로맨스와 중세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영국 가톨릭 신학자이자 역사가, 시인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은 "사람들의 마음을 처음으로 중세 시대로 돌렸다"고 평가했다.
속편들도 많이 나왔다. 영국 시인이자 소설가로 '허영의 시장'을 쓴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William Makepeace Thackeray, 1811~1863, 19세기 풍자문학의 거장)는 1850년 '레베카와 로위나'를 썼다. 현대에 들어와서 미국 극작가이자 아동소설가 에드워드 이거(Edward Eager,1911~1963)는 1956년 '기사의 성(Knight's Castle)'에서 4명의 어린이를 아이반호의 이야기에 빠뜨린다.
미국 환타지 소설가 사이먼 호크(Simon Hawke , 1951~현재)는 1984년 시간 여행 모험 시리즈인 타임워즈의 첫 번째 소설 '아이반호 갬빗(The Ivanhoe Gambit)'의 바탕으로 사용했다. 벨기에 출신 프랑스 소설가이자 스토리텔러 피에르 에프라타스(Pierre Efratas, 1951~현재)는 2003년 '아이반호의 운명(Le Destin d'Ivanhoe)'을 썼다. 미국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크리스토퍼 포글러(Christopher Vogler,1949)는 2006년 'Ravenskull'를 썼다.

9.오페라는 1864년에 나왔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샤를-빅터 지크(Charles-Victor Sieg, 1837~1899)가 칸타타 형식으로 작곡, 공연했다. 이 오페라는 1864년 프랑스의 '로마 상(Prix de Rome,1663년 루이14세 설립)'을 받았다.
막이 많고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등장하는 그랜드 오페라는 영국의 작곡가 아서 셜리반(Arthur Sullivan, 1842~1900)과 영국-미국 소설가, 시인, 대본 작가 줄리언 러셀 스터지스(Julian Russell Sturgis, 1848~1904일)가 만들어 1891년 초연(이후 155회 연속 공연)했다.
이탈리아 작곡가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 Gioachino Rossini,1792~1868)가 만든 오페라는 저자도 직접 공연을 보았다. 그런데 공연 평은 가혹했다. 스콧은 일기에 "스토리는 안타깝게도 엉망이었고, 대화는 일부가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고 혹평했다.

10.첫 영화는 1911년 미국에서 영국계 미국인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블랙튼(James Stuart Blackton, 1875~1941, 애니메이션의 아버지)감독이 동명 무성영화로 내놓았다. J. 스튜어트 블랙턴은 정지 모션과 드로잉 애니메이션 기술을 사용한 최초의 영화 제작자다. 이어 1913년 무성영화 '아이반호'가 나왔다. 아일랜드 태생의 미국 배우이자 영화감독 허버트 브레논(Herbert Brenon,1880~1958)이 감독했다. 같은해 영국 웨일즈에서도 동명의 영화가 영국 가수겸 영화감독, 극작가 리덤 반톡(Leedham Bantock, 1870~1928)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유명한 영화는 1952년 리차드 소프 연출,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 1911~1699),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 1931~2011) 주연한 '아이반호'다. 한국에서는 1954년 12월 29일 서울에서 '흑기사'로 개봉했다.
1982년에는 미국, 영국 합작 TV 영화로 나왔다. 더글러스 캠필드 연출, 앤터니 앤드루스 주연공으로 레베카 역으로 당대 톱 스타로 '영원한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Olivia Hussey, 1951~2024, 스페인계 아르헨티나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아르헨티나 출신 미국 배우)가 나왔다. 1997년에는 BBC와 미국 A&E 네트워크가 합작한 6부작 미니시리즈 '아이반호'가 방영됐다.

#.월터 스콧(Sir Walter Scott, 1st Baronet, 1771~1832)=근현대 역사소설의 창시자이자 위대한 역사소설가. 스코틀랜드의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로 국민 작가로 추앙받는다. 특히 19세기 후반까지도 유럽에서 인기와 권위 모두에서 절대적으로 군림한 작가 중 한명이다.
1.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올드 타운(Old Town) 칼리지 윈드(College Wynd)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월터 스콧(1729~1799)과 의사의 딸인 마리아 앤 러더포드( Mary Anne Rutherford, 1739~1819)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으로 토마스 스콧(Thomas Scott,1773~1823)이 있다. 아버지는 왕의 사인(King's Signet)의 사용을 감독할 자격이 있는 변호사였다. 어머니는 영국(스코틀랜드)의 유명 의사 존 러더퍼드(John Rutherford1695~1779)의 딸이자 화학자, 식물학자 대니얼 러더퍼드(Daniel Rutherford,1749~1819)의 이복 누나였다.
1773년 소아마비를 앓았던 스콧은 류마치스, 관절염 등의 치료를 위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국경의 할아버지 로버트 스콧(1699~1775)농장이 있는 샌디노우즈(Sandyknowes) 스마일홀름 타워(Smailholm Tower)에서 고모 제니 스콧과 유아 시절을 보냈다. 1775년 1월 에디버러로 돌아왔으나 그해 여름 제니와 함께 잉글랜드 남부 서머싯의 바스에서 스파를 하며 보냈다.
일곱살이던 1778년 에딘버러로 돌아와 1년동안 사교육 받았고, 이듬해 10월 에든버러의 왕립 고등학교(High School Yards)에 입학했다. 이후 1783년 치료를 위해 켈소를 갔고, 그 곳에서 켈소 그래머스쿨을 다녔다. 이 때 나중에 파트너가 되는 제임스 밸런타인(James Ballantyne, 1772~1833)과 동생 존 밸런타인(John Ballantyne, 1774~1821)을 만났다. 열두살 때인 1783년 11월 에딘버러로 돌아와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고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2.1786년 3월 14세 때 아버지가 갖고 있는 '왕의 사인(King's Signet)작가'가 되기위해 견습활동에 매진하면서 많은 문우(文友, 문학의 벗)들을 만났다. 나중에 스코틀랜드의 휘장 보관 책임자가 되는 아담 퍼거슨(Adam Ferguson, 1770~1854), 유아기에 실명한 시인 토머스 블랙록(Thomas Blacklock, 1721~1791), 시인이자 작사가로 현대에 더 유명햐 '올드랭 사인(Auld Lang Syne)' 저자 로버트 번스(Robert Burns,1759~1796) 등이다.
1789년에는 에디버러에서 지인들과 문학협회를 공동 창립하는 한편 대학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 1792년에 변호사협회에 가입했다. 1797년 2월 프랑스의 침략 위협이 있자 스콧은 왕립 에든버러 자원봉사 경용기병(Royal Edinburgh Volunteer Light Dragoons)에 입대, 1798년까지 복무했다.
스콧은 1790년부터 독일 문학(정체성, 민속 문화, 중세 문학)에 열광했다. 1796년에는 독일 시인 고트프리트 아우구스트 버거(Gottfried August Bürger, 1747~1794)의 전통 발라드
'야생사냥꾼(Der wilde Jäger)' 과 '레노어(Lenore)' 등을 출판하기도 했다. 레노어는 영국은 물론 유럽 전역의 낭만주의 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시다.

3.스콧은 1799년 셀커크 왕립 자치구 셀커크 카운티의 보안관 대리로 임명돼 근무했다. 이후 1801년 아들이 태어나자 노스 캐슬 스트리트 39번지에 있는 넓은 3층짜리 집으로 이사했다. 1802년 스코틀랜드 출판인이자 인도학 권위자 존 드카스파 레이든(John Caspar Leyden, 1775~1811)의 도움으로 '스코틀랜드 국경의 음유시인(Minstrelsy of the Scottish Border, 전 2권)'를 제작했다.
1808년에는 영국 문학 평론가, 번역가, 극작가로 최초 계관시인 존 드라이든(John Dryden, 1631~1700)의 작품을 18권으로 편집, 출판했다. 2년후인 1810년에는 최대의 성공작으로 아서 왕 전설과 관련된 중세 문학과 신화를 다룬 '호수의 연인(The Lady of the Lake)을 냈다. 이 책은 첫 해에 2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스콧은 이 작품에서 1745년 추방된 스튜어트 왕조의 제임스 2세와 그 직계들을 지지하며 일어난 '자코바이트(Jacobite,1688년 명예혁명 반대세력,스코틀랜드와 가톨릭 중심)봉기'을 를 '쓸모없고 광신적인 이상주의자'로 혹평했다
스콧은 존 드라이든에 대해 '영광스런 존'으로 부를 정도로 존경했다. 또 1814년에는 영어 산문 풍자 작가 중 최고로 치는 조나단 스위프트( Jonathan Swift, 1667~1745)의 작품집 19권(1814)도 냈다.

4.스콧은 1790년 에든버러의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에서 윌리아미나 벨체스 위스하트(Williamina Belsches Wishart, 1776~1810))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윌리아미나는 1796년 은행가 가문의 상속인인 피츠리고(Pitsligo)의 윌리엄 포브스(William Forbes, 6th Baronet 1739~1806)와 결혼해 스콧에게 굴욕감을 줬다.
이후 1790년대 중반 친구들과 영국 영국 북서부 컴브리아(Cumbria)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 휴양지이자 국립공원) 여행 중에 프랑스 리옹의 장 샤르팡티에(Jean Charpentier, 1712~1772)의 딸 샬롯 제네비브 샤르팡티에(Charlotte Genevieve Charpentier, 1777~1826, 약칭 카펜터)를 만났다. 3주간의 구애 끝에 성공해 1797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국경에 있는 칼라일(Carlisle)의 세인트 메리 교회(현 칼라일 대성당)에서 결혼했다.
에든버러의 조지 스트리트와 인근 사우스 캐슬 스트리트에 거주하던 부부는 1799년 큰 딸 샬롯 소피아 스콧(Charlotte Sophia Scott, 1799~1837)를 얻었다. 이어 1801년 아들 콜로니엘 월터 스콧, 2대 남작(Lt. Colonel Walter Scott, 1801~1847)도 태어났다. 또 딸 앤 스콧(Anne Scott, 1803~1833), 아들 월터 스콧(Walter Scott,1803~1873), 아들 찰스 스콧(Charles Scott,1805~1840) 등 6명의 자녀를 뒀다.

5. 1813년 스콧은 계관시인를 제안받았지만 '독이 든 잔일 것'이라며 거절했다. 계관은 친구인 시인이자 잡다한 산문 작가 로버트 사우디(Robert Southey, 1774~1843)에게 돌아갔다. 로버트 사우디는 시인이자 비평가 사뮤엘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와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와 영국 낭만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1820년 4월 런던에서 섭정공(The Prince Regent, Prince of Wales) 조지(1762~1830, 1820년 조지4세로 등극)로부터 남작(baronet) 칭호를 받았다. 1822년 조지 4세(George IV)의 스코틀랜드 방문을 주도한 스콧은 방문 기간중 거의 모든 행사의 무대를 감독했다.
1810년대 말 스콧은 집필 중인 작품을 담보로 출판업자 아치벌드 컨스터블과 대리인 밸런타인 형제 등과 극도로 복잡한 계약을 맺었다.컨스터블이 빚을 갚지 못하고 파산하자 월터 스콧과 밸런타인 형제도 연쇄적으로 파산했다. 심각한 경기 침체에 직면한 채권자들은 현금 상환을 독촉해 결국 1825년 빚더미에 앉았다. 이후 스콧은 약 12만 파운드에 달하는 빚을 갚는 데 여생을 바쳤다.

6.빚쟁이로 지낸 말년은 우울했다. 건강 악화에도 빚을 갚기 위해 글 쓰기에 전력 투구했다. 사망 전까지 10여편의 대작을 쓰기도 했다. 1827년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소설 '웨이벌리' 시리즈의 작자가 월터 스콧으로 공식 밝혀졌다.
1831년 스콧은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요양에 집중했다. 10월29일에는 해군성 제공 전함 '바람(HMS Barham,1811년 건조 3등급)호'를 타고 몰타와 나폴리를 방문, 요양했다. 이듬해 초 귀국길에는 치료를 위해 독일 퀼른에서 네달란드 로테르담으로 가는 배를 타고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건강 악화로 로테르담-런던 노선 운행하는 증기선 바타비에르(Batavier,1827년 진수)호 타고 런던을 거쳐 스코틀랜드를 향했다. 긴 여행을 가쳐 1832년 9월 스코틀랜드 록스버그셔 애벗스포드(Abbotsford) 집으로 돌아왔다.

7. 스콧은 1832년 9월21일 영면했다. 향년 61세. 애벗스포드(Abbotsford)하우스에서 열린 장례식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목사 3명이 맡았고, 시신이 묻힌 드라이버그(Dryburgh) 수도원 예배는 성공회 성직자가 집전했다.
주요 작품으로는'수도원(The Monastery)', '대수도원장(The Abbot)'은 1820년, '케닐워스(Kenilworth)'는 1821년, '해적(The Pirate)', '나이젤의 행운(The Fortunes of Nigel)'은 1822년, '켄틴 더워드(Quentin Durward)'는 1823년, '붉은 장갑(Redgauntlet)'은 1824년, '부적(The Talisman)'은 1825년 나왔다.
동시대 영국 여류 시인이자 소설가 레티시아 엘리자베스 랜던(Letitia Elizabeth Landon, 1802~1838, 이니셜 LEL로 유명)은 스캇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스콧이 사망한 1932년 '문학 신문(The Literary Gazette, 1817~1863 발행)'에 '월터 스콧(on Walter Scott)'을, 1833년에는 '피셔의 응접실 스크랩북(Fisher's Drawing Room Scrap Book, 1832~1854 발행)'에 '월터 스콧 경에게(Sir Walter Scott)'를 썼다.또 스콧 작품 속 여성 캐릭터 분석을 담은 '여성그림 갤러리(The Female Picture Gallery)'라는 시리즈를 쓰기도 했다.

8.스콧의 소설은 당대와 빅토리아 시대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19세기 말 평단의 문예사조가 낭만주의에서 리얼리즘으로 바뀌면서 평판이 떨어졌다. 소설 '인도로 가는길(A Passage to India, 1924)'로 유명한 작가 EM 포스터(Edward Morgan Forster, 1879~1970)는 고전 연구 '소설의 측면(1927,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강의록)'에 쓴 글에서"(스콧은) 엉성한 글쓰기 스타일, 평범한 캐릭터, 빈약한 줄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또 2차세계대전 후~1960년대까지 가장 저명한 영문학 비평가 중 한 명인 FR 리비스(Frank Raymond Leavis, 1895~1978)도 저서 '위대한 전통(The Great Tradition, 1948)' "문학계의 글 쓰기에 철저히 나쁜 영향을 미친 소설가"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글쓰기 혁신가, 현대 역사 소설 장르의 발명가로서 스콧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헝가리 출신 문학평론가이자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György Lukács, 1885~1972)와 스코틀랜드 문학사가 이자 문학 평론가 데이비드 다이체스( David Daiches , 1912~2005)는 마르크스주의적 정치적 독해를 제시하며 스콧의 문학적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9.스콧의 소설은 당대 영국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소설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1813)'의 작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은 소설 '설득, 1817)'에서 월터 스콧의 소설을 언급한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Mary Shelley, 1797~1851) 는 역사 소설 '퍼킨 워벡의 재산(The Fortunes of Perkin Warbeck,1830)'을 쓰면서 관련 역사 정보를 요청하기도 했다.
소설 '제인에어(1847)'를 쓴 샬럿 브론테(1816~1855)는 이 소설에서 스콧의 소설을 언급한다. 또 에밀리 브론테(Emily Jane Brontë, 1818~1848)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도 스콧 소설의 표현기법 등에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 인기 작가로 필명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본명 메리 앤 에반스, Mary Ann Evans, 1819~1880)은 소설 '미들마치(Middlemarch,1871)'에서 월터 스콧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소설 '더버빌가의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A Pure Woman,1891)'토마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는 1888년 에세이 '소설의 유익한 독서'에서 "분명히 많은 소설이 주목할 만하다"며 "스콧이 원칙적으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각 부분의 긴밀한 상호 의존성보다는 에피소드, 대화, 묘사에 더 의존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고 썼다.

또 유럽 역사 장르 소설의 대가들인 프랑스의 오노레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Père, 1802~1870), 러시아의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 1821~1881), 톨스토이(Leo Tolstoy, 1928~1910), 푸쉬킨(Aleksandr Pushkin, 1799~1837) 등 많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소설가로 '레미제라블(1862)'를 쓴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vicomte Hugo, 1802~1885)는 1823년 스물한살 때 쓴 에세이에서 "독자를 바람이 나뭇잎을 처분하듯 처리하는 이 사람의 재능에는 분명 이상하고도 경이로운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스콧의 추종자이기도 했던 미국의 작가 , 시인 , 편집자 , 문학 평론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는 스콧의 '램머무어의 신부(The Bride of Lammermoor)'에 대해 "가장 순수하고 가장 매혹적인 허구"라고 극찬했다.

10.현대 스코틀랜드에서 스콧은 가장 중요한 작가로 추앙받는다. 오늘날 에든버러 관광은 스콧의 첫 소설에서 이름을 따온 웨이벌리역과 그 옆 월터 스콧 기념탑이 시작점이다. 이 기념탑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자존심이 들어 있다. 스콧 사후 스페인 남서해에서 영국 해군과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의 결전인 트라팔가 해전(Battle of Trafalgar, 1805년10월)의 명장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 제독 동상을 잉글랜드인들이 거대하게 세운 것을 보고 넬슨 동상보다 좀더 크고 아름답게 건립했기 때문이다.
실제 에딘버러 스콧 기념탑은 작가에게 헌정된 기념탑 중 세계 두번째로 크다. 첫 번째는 쿠바 하바나 시티에 있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호세 훌리안 마르티 페레스(José Julián Martí Pérez, 1853~1895, 약칭 호세 마르티)탑이다.

스콧 기념탑은 1832년 공모에서 건축가 조지 메이클 켐프(George Meikle Kemp, 1795~1844)가 존 모르보(John Morvo)라는 가명으로 제출한 작품인데 1839년 최종 확정됐다. 완공은 켐프의 갑작스런 실족사로 1844년 가을 켐프의 손자가 했다.
스코틀랜드 최다 인구 도시 글래스고의 중앙 조지 광장에는 1838년 스코틀랜드 유명 건축가 데이비드 린드(David Rhind, 1808~1883)가 디자인한 월터 스콧 기념비가 서 있다.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에도 스콧 동상이 서 있다.
2010년부터 매년 스콧의 집인 애벗스포드 하우스에서 '월터 스콧 역사 소설상(상금 2만5000파운드, 2025년 기준 약 4500만원)'이 시상된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스코틀랜드 은행에서 발행하는 스코틀랜드 파운드 지폐 앞면의 전속모델이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