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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국부론- 18세기 지식인의 통찰을 보여주는 ‘보이지 않는 손’을 제시한 저서의 첫 문단은 시장경제의 순리를 설파한다. 본문

들어가는 글과 저작개요
"모든 국가에서 한해동안 이루어지는 노동은, 그 국가가 해마다 소비하는 모든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을 일차적으로 공급하는 자원(자금, fund) 이다. 그 생필품과 편의품은 노동의 직접적인 생산물로 구성되거나 아니면 그 노동에 따른 생산물을 교환 물품으로 내놓고 그 교환 과정을 통해 획득한 다른 나라의 생산물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 생산물 혹은 그 생산물로 사들인 물품과 그 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어느정도 비율을 이루는 가에 따라 그 나라는 생필품과 편의품을 공급받는 상태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생산물과 물품 공급비율은 다름 두가지 요소로 결정된다. 첫째, 그 나라의 전체노동이 투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기술과 재주, 판단을 발휘하는가. 둘째, 유익한 노동에 고용된 사람 숫자와 그런 노동에 고용되지 않은 사람 숫자가 어떤 비율을 이루는가.
어떤 나라의 토지, 기후, 영토의 크기에 상관없이 연간 공급의 풍부함이나 빈약함은 위의 두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공급의 풍부함 혹은 비약함은 겉으로 보기에는 위의 두 요소중에서 둘째보다는 첫째에 더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애덤 스미스 저, 이종인 역, 현대지성, 2024)

1. 노동과 소비, 자원(자본)을 명확하게 설명, 시장경제의 원리를 제시한 파격적인 첫 문단이다. 자본의 태동, 노동에 의한 이윤, 소비에 따른 생산 등 경제의 순환 등을 명확하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경제 서적의 딱딱함을 최대한 줄이는 단어와 문장 전개로 예상보다 쉽게 읽힌다. 당대 지식인 독자들에게 난해한 경제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 묻어난다. 또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서론을 쓰면서 저작 개요 까지 밝히는 친절함도 보이고 있는 도입부다.

2.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 The Wealth of Nations, 1776)'은 경제학의 성서이자 사회과학 분야 최고의 고전(古典)이다. 자유경제학의 원류일 뿐 아니라 정치와 철학 등의 통찰이 담겨하는 인문학의 정점에 있는 걸작이다. 현대 모든 경제학 사상의 출발점으로 경제학을 사회과학의 여왕으로 등극시킨 명저(名著)로 꼽는다.
저자는 이 책을 10년(1766~1776)에 걸쳐 완성,1776년 3월 9일 런던에서 스코틀랜드출신 인쇄출판업자이자 출판사 윌리암 스트라한(W. Strahan,1715~1785) T. Cadell에서 출간했다. 저자 생전에 끊임없는 수정을 거쳐 1776년, 1778년, 1784년, 1786년, 1789년 등 5판이 나왔다.
전체 제목은 '국가의 부(富)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고찰(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이다. 출판 직후인 18세기 후반에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로 번역됐다. 학계에서 독일 출신 사회경제학자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의 '자본론'에 이어 두번째로 가장 많이 인용하는 책이다. 2005년 역대 최고의 스코틀랜드 도서 100선에 포함됐다.

3.18세기 글로벌 지식인의 '안목'의 최고점에 있는 '국부론'은 시장 경제의 도그마(dogma,원리,명제)인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개인의 영리활동이 사회 전체의 공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을 설파한 위대한 저서다. 특히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서 시장경제를 탁월하게 설명하는 저서로 세계인의 경제 교과서 같은 책이다. 국부론의 미덕은 시장에서 평화롭고 합리적인 교환을 거쳐 거래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이론을 확고하게 정립했다는 것이다. 나라의 부가 어떻게 쌓이고, 흘러가며, 역사를 바꾸는지를 명쾌하게 통찰해 이론으로 보여준 명저이기 때문이다.
4.'국부론'은 제국주의 시대, 고전 경제학의 기초를 정립한 책으로 세계 식민지를 두고 유럽 각국이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벌인 7년 전쟁(Seven Years' War, The French and Indian War,1756~1763), 미국 독립전쟁(American War of Independence,1775~1783) 등 중요 사건들이 저작의 배경으로 작용하거나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유럽은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면서도 중농주의 귀족중심 부자나라 프랑스, 신대륙 발견으로 금과 은이 쏟아져 들어와 중상주의의 선두주자로 부상한 에스파냐(스페인), 세계 첫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 일어난 영국 등이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승자는 돈과 군사력이 아닌 산업혁명을 통해 시장경제를 추구한 영국이었다. 당시 전통적 경제 이론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영국의 제패였다. 국부론은 바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책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생산, 이를 무역으로 연결, 국부를 쌓은 영국은 19세기 들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大英帝國, British Empire)의 길을 갔다.

5.섬나라 영국이 비옥한 토지의 프랑스, 중상주의 선두두자 스페인을 제치고 부상한 이유에 대해 '국부론' 은 자유방임 거래(시장경제)을 통한 '국민의 활발한 경제활동이 가져온 생산력'에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 당시 거의 모든 국가가 채택한 중상주의적 국가 개입(수입규제, 수출장려, 독점 무역회사 허가, 식민지 건설)을 비판했다. 영국의 제패가 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인간의 경제활동은 자유방임해야 국부가 늘어난다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국부론'은 '부는 곧 생산력'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정립, 국내 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또 국가 빚(부채)의 폐해도 상세히 지적하고 있다. 국가 부채가 늘어날수록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피해를 주는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저자는 약탈경제(plunder economy)를 싫어해 탈취와 점유 등 경제적 편법, 독과점이나 투기, 담합 등 시장 교란 행위를 질타한다. 이들 행위는 국민 경제를 파괴하는 부도덕한 것으로 궁극적으로 나라를 병들게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대에 와서 강조되고 있는 ESG, 지속가능한 성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맞닿아 있어 시대를 앞선 통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6.'국부론'은 총 5편으로 구성돼 있다.1-2편은 경제 이론이고, 3편은 로마 이래 산업 발달의 역사를 개관한다. 4편은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경제 이론을 비판하고, 5편은 국가 운영과 사법행정에 소요되는 경비와 수입원(세금과 공채) 등을 기술했다.
1편은 '국부(wealth of the nation)'를 설명한다. 국부는 중상주의(금과 은이 쌓이는 것)가 아니라 나라의 주민들이 소비하는 생활필수품의 순환(노동-생산-소비)이 시작이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생산성 문제, 분업, 자본 축적, 기술향상, 더좋은 제품, 더 많은 소비가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 생산에 이바지한 여러 계급들 사이의 분배 문제가 대두하면서 임금, 가격, 이윤, 지대(地代, 땅 사용 대가)의 개념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2편은 자본를 설명한다. 자본의 축적, 자본의 사용, 자본이 고용하는 노동 등이다. '국부론'은 여기에서 개인에게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라고 내버려두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작용, 전체의 이익도 증진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3편은 국가 정책이다. 자연스런 국부(國富)증진을 교란시키는 것이 국가 주도 경제정책(사회주의,공산주의)이라고 설명한다. 이익이 있는 곳으로 자본은 흐르는데 이를 막아서 국부(國富)를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4편은 국가 정책 시행 과정에서 특정 계급의 사적 이익과 편견이 작용해 국부(國富)를 망친다는 것으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에서 시행된 정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5편은 국가(또는 국왕)의 세출과 세입 및 공채를 설명한다.

7.'국부론'을 키워드로 분류하면 분업(Divsion of labour), 개인의 이기심(Self-Interest), 보이지 않는 손이다. 첫째 분업은 시간 절약과 반복 작업으로 생산성을 향상키고, 생산 물품에 대한 교환을 위해 화폐를 사용하게 하고, 규모의 경제와 시장의 형성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두번째 개인의 이기심은 경제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빵집 사장이 빵을 만드는 행위는 '돈을 벌기(gain) 위한 행위'라는 것이다.다만 이런 이기심은 도덕적 한계 내에서 발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번째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이기적 개인의 영리활동이 사회 전체의 공적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논리다. 가격 결정권이 소수가 아닌 시장 참가자 전원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이다. 다만 저자는 기업들의 담합과 독점을 장려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서는 비판도 많다.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면서 '도덕'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특히 시장경제에서 도덕 강조는 비효율성을 가져오고, 기업가 정신의 고양을 막는 다는 폐해로 작용할 수있다는 지적이다.

8.영국의 수필가이자 역사가로 '로마제국 쇠망사(1776~1789,전 6권)'를 쓴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은 “단 한 권의 책에 광범위한 과학이 담겨 있고, 가장 명쾌한 언어로 가장 심오한 아이디어가 표현되어 있다”고 격찬했다.
자유주의 정치가 윌리엄 에워트 글래드스톤(William Ewart Gladstone,1809~1898, 1868~1894년 사이 12년 영국 총리)은 국부론 출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정치경제 클럽(1821년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제학 협회)' 회의를 주재했다.
자유주의 역사가이자 정치인 존 에머리히 에드워드 달버그-액튼(John Emerich Edward Dalberg-Acton, 1834~1902)은 "국부론은 자유주의 감정에 과학적 기반을 제공했다"며 "고전적인 영국 역사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유명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 1961~현재, 타이거 헤지 펀드 회장)는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라는 저서에서 "국부론은 좋은 책이 아니다. 위대한 책이다"고 역설했다. 미국 투자가 워렌 버핏(Warren Buffett, 1930~현재)은 "나의 투자철학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썼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1926~현재)은 "국부론은 인류 지성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라고 격찬했다.

9.'국부론'을 비난하는 이들도 많았다. 스코틀랜드 시인 윌리엄 줄리어스 미클(William Julius Mickle, 1734~1788)은 1578년 포르투갈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Luís Vaz de Camões,1524~1580)의 서사시 '루시아드(The Lusiads, 15~16세기 포르투갈의 인도 탐험 항해에 대한 환상적인 해석을 다룬 시)' 2판 번역 서문에서 "자유경제가 다른나라를 망쳤다"며 애덤 스미스와 자유방임주의 교리를 맹렬히 공격했다.
영국 시인 로버트 사우디(Robert Southey, 1774~1843)는 1812년 쿼터리 리뷰(Quarterly Review,1809년 창간한 토리당 기관지, 계간)에서 "국부론은 지루하고 냉혹한 책"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한국어 번역본은 유인호 역(동서문화사), 최임환 역(을유문화사 → 올재), 김수행 역(동아출판사 → 비봉출판사), 정해동, 최호진 공역(범우사) 등이 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자본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사상가. 경제학을 독립된 사회과학으로 정립한 인물. 도덕주의 경제 철학자. 영국 지폐에 등장한 최초의 스코틀랜드인.

1.영국 중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북쪽바다 건너편 파이프(Fife)지역 커콜디(Kirkcaldy)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 시니어(Adam Smith,?~1723)는 변호사, 검사 세관 관리자였고, 어머니는 토지 소유자 로버트 더글러스의 딸인 마가렛 더글러스(Margaret Douglas, ?~1784)이다. 아버지는 애덤 스미스 탄생 두달전 사망, 유복자(遺腹子)가 됐다. 세례를 받은 날짜는 1723년 6월 5일이다. 아버지없이 자란 애덤 스미스는 떠돌이 집시가 될 위기가 있었다.
스코틀랜드 저널리스트이자 전기작가 존 레이(John Rae,1845~1915)는 1895년 출간한 '애덤 스미스의 삶(Life of Adam Smith)에서 스미스가 3세 때 로마니 사람들(집시)에게 납치되었다가 풀려났다고 썼다.
스코틀랜드 최고의 중등학교 중 하나인 커콜디의 버그학교(Burgh School)에 다녔고, 1729~1737년 초까지 라틴어 , 수학, 역사, 글쓰기를 배웠다. 이어 14세 때인 1737년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 1740년까지 라틴어, 희랍어, 자연철학, 도덕철학을 배웠다. 1740년 스코틀랜드 출신 왕당파 관리 존 스넬(John Snell
,1629~1679)이 세운 장학제도 '스넬 전시자(Snell Exhibition,스넬이 내세우는 모범생)'의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 1946년까지 언어학과 고전을 연구했다.

2.애덤 스미스는 1748년 에든버러 철학회 추천으로 스코틀랜드의 작가, 철학자, 판사인 헨리 홈, 로드 케임스(Henry Home, Lord Kames ,1696~1782, 계몽주의 후원자)의 후원을 받아 1751년까지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수사학과 문학 등을 공개 강의했다. 이것이 큰 호평을 받아 1751년 글래스고 대학의 논리학 교수로 임명됐고, 이어 도덕철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 1764년까지 교수로 제작했다. 이 때 유명 저서 '도덕 감정론(1759)를 출간했다. 이 책이 호평을 받으며 다른 지역 학생들이 잉글랜드 캠브리지나 옥스포드보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으로 몰리는 진풍경도 나타났다.
또 이 시기 10년이상 연상인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역사가,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을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지적, 개인적 유대감을 공유했다. 또 화학 분야의 선구자인 조셉블랙(Joseph Black,1728~1799) , 나중에 증기 기관 발명자로 유명해진 제임스 와트(James Watt,1736~1819), 저명한 인쇄업자이자 출판업자이며,최초의 영국 디자인 아카데미를 설립한 로버트 풀리스(Robert Foulis, 1796~1866) 등을 만났다.
글래스고 대학교는 1762년 애덤 스미스에게 법학박사(LL.D.) 학위를 수여했다. 애덤 스미스는 글래스고 대학 시절을 "단연코 가장 유용하고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명예로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3.애덤 스미스가 교수직을 떠난 것은 영국 재무장관 찰스 타운센드(Charles Townshend, 1725~1767,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한 타운센드 법-Townshend Duties 제정)의 의붓아들인 헨리 스콧, 제3대 버클루 공작이자 제5대 퀸즈베리 공작(Henry Scott, 3nd Duke of Buccleuc,1746~1812)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고서다. 이에 1764~1766년까지 헨리 스콧을 가르쳤으며, 그와 평생 벗이자 스승으로 지냈다.
헨리 스콧의 튜터(tutor,전문지식을 특정인에게 집중 전수하는 자)에서 벗어난 애덤 스미스는 1766년 말 귀국후 고향 커콜디에서 본격적으로 '국부론' 쓰기에 몰두했다. 1767년 5월 런던 왕립 학회 회원, 1775년 문학 클럽 회원으로 선출됐다. 국부론은 1776년 런던에서 출간됐는데 큰 반향을 일으키며, 최고의 사상가로 예우받았다.
애덤 스미스는 제국주의에 반대했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식민지가 영국의 번영과 국력의 핵심이라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했다. 중국과 인도와 같은 다른 문화권이 유럽보다 문화적으로나 발전적으로 열등하다는 주장을 거부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애덤 스미스는 1778년 스코틀랜드 세관위원으로 임명돼 에든버러 캐넌게이트의 팬뮤어 하우스에 어머니(1784년 사망)와 거주했다. 1783년에는 에든버러 왕립 협회(스코틀랜드 과학문화 아카데미)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고, 1787~1789년 글래스고 대학교의 명예 총장직을 맡았다.

4.어머니가 1784년 사망한 이후 홀로 지내던 애덤스미스는 1790년 7월 17일 에든버러의 캐넌게이트에서 영면했다. 향년 67세였다. 애덤 스미스는 임종을 지켜본 주변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한 것에 실망한다"며 "묘비에 국부론의 저자가 아니라 도덕감정론의 저자로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애덤 스미스의 유산 집행자는 스코틀랜드 학계의 두 친구인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조셉 블랙(Joseph Black, 1728~1799)과 선구적인 지질학자이자 의사 제임스 휴튼(James Hutton, 1726~1797, 현대 지질학의 아버지) 이었다. 일부 메모와 자료는 유언에 따라 파기됐지만 사후인 1795년 일부는 출판되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의 수많은 장서와 메모 등은 케임브리지 대하교 퀸스칼리지(Queens College) 도서관과 에딘버러 대학교에 소장돼 있다. 애덤 스미스의 가장 잘 알려진 초상화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보석 조각가이자 모형 제작자 제임스 태시(James Tassie,1735–1799)가 그린 옆모습 전신 초상화와 만화가이자 조각가 존 케이(John Kay, 1742~1826)가 그린 에칭 뿐이다.

6.애덤 스미스 초상화는 1981년 스코틀랜드의 클라이즈데일 은행 발행 50 파운드 지폐에 나왔고, 2007년 3월 영국 은행이 발행한 20파운드 지폐 시리즈에 등장했다. 영국 지폐에 등장한 최초의 스코틀랜드인이었다.
1867년과 1870년 사이에 애덤 스미스의 동상이 당시 런던 대학교 (현재 왕립 예술 아카데미의 본거지)의 본부였던 버링턴 가든의 외벽에 세워졌다
스코틀랜드 조각가 알렉산더 스토다트(Alexander Stoddart, 1959~현재)가 만든 애덤 스미스의 대규모 기념비가 2008년 7월 4일 에든버러 하이 스트리트 머캣 십자가 근처 의회 광장에 있는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 밖 로얄 마일 위에 세워졌다.

스코틀랜드 중부 도시 스털링(Stirling) 에는 애덤 스미스의 흉상이 있다. 이 흉상은 13세기와 14세기 스코틀랜드 영웅인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eys, 1270~1305)을 기리는 '국립 월리스 기념비(National Wallace Monument)' 영웅의 전당에 서 있다. 월리스는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영국군을 격파한 장군이지만 1305년 영국군에 잡혀 처형됐다.
애덤 스미스는 1778~1790년 에든버러의 캐논게이트(Canongate)의 17세기 타운하우스 팬뮤어하우스(Panmure House)에 어머니와 함께 거주했다. 이 집은 2008년 에딘버러에 있는 헤리엇-와트(Heriot-Watt) 대학교(1821년 개교) 에든버러 경영대학원(Edinburgh Business School)에 매입, 복원됐다. 이 주택은 2018년 애덤스미스 연구센터로 공식 개관했다.

7.세계 각국에는 런던의 애덤 스미스 연구소, 이탈리아 애덤 스미스 협회, 미국 애덤 스미스 협회, 호주 애덤스미스 클럽 등이 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에는 그의 이름을 딴 강의장, 도서관, 연구 센터, 건물이 있다.
영국에서 '애덤 스미스상'이 시상되고 있다. 애덤 스미스상은 1891년 제정된 상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 트리포스(Tripos,경제학 학부생을 위한 졸업 시험) Part IIB에서 가장 우수한 전체 시험 성과와 가장 우수한 논문에 수여한다. 영국 사립기업교육협회(APA)에서 최고의 영예로 친다.
미국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1976)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1912~2006)은 '국부론'이 출판된 지 200년이 지난 1976년 "애덤 스미스의 저작은 1876년 국부론 출판 100주년 때보다 오늘날에 훨씬 더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있다"고 말했다.(콘텐츠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