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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표범-이탈리아 통일운동 시대, 관능과 열정의 삶을 그린 소설 첫 문단은 묵주 기도 풍경으로 시작한다 본문

1장 1860년 5월
"눈크 에트 인 호라 모르티스 노스트라이, 아멘"
매일 올리는 묵주기도가 끝났다. 영주는 삼십분 동안 차분한 목소리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기했다. 이 삼십분 동안 웅얼거리는 다른 사람들 목소리가 뒤섞여 나지막이 일렁였는데, 여기서 사랑, 순결, 죽음처럼 예사롭지 않은 말들이 황금꽃잎처럼 떨어졌다. 웅얼거림이 계속되는 사이 로코코풍 살롱 풍경이 변하는 듯 했다. 비단 벽지 위에서 무지개빛 날개를 편 앵무새들도 놀란 모양새였다. 두 창문 사이에 걸린 막달라 마리아마저도 여느 때처럼 몽상에 빠진 아름다운 금발머리 아가씨가 아니라 참회하는 여인처럼 보였다. 이제 사람들 목소리가 사라지자 모든 게 평상시 같은 질서 혹은 무질서에 빠져들었다. 하인들이 열어놓고 나간 문으로 그레이트 메인 품종의 개 벤디코가 꼬리를 흔들며 들어왔다. 벤디코는 그동안 문밖에서 풀이 죽어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들이 천천히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는 그녀들의 드레스ᆢ(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저, 이현경 번역, 민음사, 2024)

1.장중한 울림이 있는 성주의 기도가 참여자들의 웅성거림 속에 가볍게 묘사된 첫 문단이다. 언제나 일어나는 일상의 풍경을 그렸음에도 무엇인가 스산한 느낌이 전해진다. 전체적으로 스러져가면서 마지막 꽃을 피우는 왕국, 혹은 가문의 노을의 시기를 보는 듯하다. 이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다. 성주의 기도, 떨어지는 황금꽃잎, 막달라 마리아, 질서 혹은 무질서, 풀죽은 반려견, 드레스 자락 등은 소설의 전개를 예고하고 있다. 본문 맨 첫 문장에 나오는 *.'눈크 에트 인 호라 모르티스 노스트라이, 아멘'은 가톨릭 성모송(Ave Maria)에 나오는 'nunc, et in hora mortis nostræ, Amen'이다. 뜻은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즉 '저희 죄인을 위해 빌어주소서, 아멘'의 라틴어다. *.로코코(Rococo)는 18세기(1730~1760) 인공적 화려함을 표현하는 유럽 예술 양식이다. 장식용 인조 돌을 뜻하는프랑스어 'Rocaille(로카이유)'에서 유래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AD 1세기)로 예수의 유명한 제자 가운데 한명으로 부활한 그리스도를 처음 본 여인이다. *. 그레이트 메인은 반려견 품종의 하나로 보인다.


2.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Il Gattopardo,1958, 일 가토파르도)'은 근대 이탈리아 최초 베스트 셀러이자 가장 사랑받는 ‘국민 소설’이다. 특히 2차세계대전(1939~1945) 후 나온 소설 중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문학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소설로 꼽힌다. 또 19세기 이탈리아인의 정체성 변화 탐구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처음 이탈리아 주요 출판사(몬다도리 , 에이나우디 , 롱가네시)에서 원고 검토조차 받지 못했다. 당시 유명 편집자이자 문학평론가 엘리오 비토리니(Elio Vittorini , 1908~1966)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부정 평가했기 때문이다. 엘리오 비토리니는 탁월한 에디터였지만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Leonidovich Pasternak, 1890~1960,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1957)' 와 독일 소설가 귄터 그라스(Günter Wilhelm Graß, 1927~2015,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양철북(Die Blechtromme,The Tin Drum, 1959)'의 이탈리아 출판도 무시한 인물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소설을 폄하해 에디터의 삶에 흑역사를 남긴 셈이다.
소설은 결국 저자가 사망한 이듬해인 1958년 11월 이탈리아 밀라노 서점체인이자 출판사 펠트리넬리(Feltrinelli, 1954년 출판 등록,1957년 피사 첫 매장)에서 나왔다. 작가이자 환경운동가 엘레나 크로체(Elena Croce , 1915~1994)가 작가이자 정치인 조르조 바사니(Giorgio Bassani, 1916~2000)에게 보냈고, 바사니가 이를 출판사에 추천해서 간행된 것이다.
그런데 소설은 나올 때부터 호평을 받으며, 날개돋힌듯 팔렸다. 출간 8개월 만에 인쇄 부수가 25만 부에 달했고, 1년만에 100만 부 넘게 찍었다. 이탈리아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이듬해인 1959년 현대 이탈리아 소설에 대한 최고상인 '스트레가(Strega, 1947년 첫 시상)상'을 받았다. 영어로는 The Leopard로 번역된다. 영국 신문 더 가디언은 2012년 "세계 10대 역사소설"이라고 평가했다.

3.소설 '표범'은 구상에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저자가 구상은 일찍 했지만 황혼에 들어서 집필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1954년 여름 시인이자 번역가 유제니오 몬탈레(Eugenio Montale, 1896~1981, 197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초청으로 사촌이자 시인인 루시오 피콜로(Lucio Piccolo di Calanovella, 1901~1969)와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 인근 산 펠레그리노 테르메의 시인 컨퍼런스에 참석한 것이었다. 이 때 하인까지 데려간 저자는 시인 컨퍼런스에서 귀족 티를 낸 구닥다리 인물로 누구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사촌 루시오 피콜로가 컨퍼런스에서 호평을 받자 심리적 충격을 받았고, 소설을 쓰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고향 시칠리아로 돌아온 저자는 팔레르모의 저택과 마차라 카페 등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 초고를 완성하고 개인 레슨을 해주던 어린아이 프란체스코 올란도(Francesco Orlando, 1934~2010,나중에 이탈리아 문학비평가)에게 타이핑(받아쓰기)을 시켰다. 올란도는 이를 4부 타이핑했고, 저자는 1957년 사망 전까지 다듬었다. 최종 원고는 사촌 루치오 피콜로(Lucio Piccolo di Calanovella, 1901~1969)에게 넘어갔고, 출판사로 보내졌다. 하지만 주요출판사 3곳 모두 간행을 거절했다. 그러는 사이 저자는 1957년 영면했다.


이후 저자의 부인 알렉산드라 볼프 스토머제가 자신의 환자로 교류하던 엔지니어 조르조 가르지아에게 얘기했고, 지인 엘레나 크로체에게 사본이 전달됐다. 크로체는 소설가이자 시인, 편집자 조르조 바사니(Giorgio Bassani, 1916~2000)에게 보여줬고, 그는 엄청난 가치를 부여했다. 바사니는 친구인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영화 감독 마리오 솔다티(1906~1999)에게도 읽게 했는데, 솔다티가 '걸작'이라고 하자 1958년 2월 팔레르모를 방문해 원고 전체를 받아 같은 해 11월11일에 직접 편집해 출판에 들어갔다.
소설 제목은 람페두사 가문 문장의 동물에서 유래했다. 이 동물은 팔레르모 람페두사 가문 성채 '팔라초 란차 토마시' 건너편 아프리카 북부 해안과 시칠리아 일부에 서식하는 고양이과 동물로 서벌 속의 유일한 종인 '서벌(Felis leptailurus serval)'이다. 그런데 서벌이 세계적으로 생소한 동물이어서 제목을 지을 때 생김새가 비슷하고 더 잘 알려진 ‘표범(gattopardo)’으로 대체했다. 원본 원고(타이핑 본)는 시칠리아 서부 자치단체 아그리젠토 산타 마르게리타 디 벨리체(AG) 가토파르도 박물관과 저자의 집인 팔레르모 '팔라초 란차 토마시'에 보관돼 있다.


4. 등장인물은 돈 파브리지오 코르베라 살리나 가문 왕자 파브리치오 코르베라(Fabrizio Corbera), 마리아 스텔라 공주 캐롤라이나, 상속자 프란체스코 파올로, 둘째 딸 콘체타, 왕자의 여동생의 고아 아들 탄크레디 팔코네리가 나옥, 가족의 반려견 벤디코도 등장한다. 여기에 예수회 가문의 사제 피로네 신부, 청지기 피에트로 루소, 회계사 치치오 페라라, 가정교사 마드모아젤 돔브뢰유도 살리나의 일원으로 함께 한다.
돈나푸가타(Donnafugata) 시장 칼로게로 세다라(Calogero Sedàra)와 딸 안젤리카, 성모 성당의 사제인 트로톨리노 대주교, 공증인 치치오 제네스트라, 집사 오노프리오 로톨로, 의사 토토 지암보노, 성모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왕자의 사냥 파트너 치치오 투메오, 롬바르디아 출신의 탄크레디 팔코네리의 친구 카롤로(Carlo Cavriaghi) 백작, 피에몬테 출신 관료이자 기사, 시칠리아 관청서기 아이모네 슈발레이 디 몬테주올로(Aimone Chevalley di Monterzuolo) 등도 나온다.

역사적 인물도 등장한다. 이탈리아 통일을 이끈 군사 지휘관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1807~1882), 양시칠리아의 부르봉 왕가의 왕 페르디난드 2세(1810~1859), 양시칠리아의 마지막 부르봉 왕가 국왕 프란치스코 2세(1836~1884), 사르데냐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 1820~1878) 등이다.


줄거리는 19세기 중엽 가리발디 혁명군이 일으킨 통일운동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시대를 배경으로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전체의 정체성 변화를 관통한다. 소설은 가리발디가 '천인의 붉은 셔츠단'을 이끌고 1960년 5월 이탈리아 남단의 섬 시칠리아에 상륙하면서 대 귀족 가문의 수장이자 영주인 돈 파브리초 살리나의 기도에서 시작된다.
돈 파브리치오 코르베라(Fabrizio Corbera)는 호화로운 살리나 궁에서 아내 스텔라,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는 훌륭하고 매력적인 신사이자 천문학자이다. 귀족치고는 세속적이고 감각적이며 유연한 사고방식도 갖고 있다. 시대 변화를 냉정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던 그는 이 체제가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가리발디와 그의 군대가 상륙하고, 새로운 계급, 즉 부르주아들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살리나는 자신이 아끼는 진취적이고 젊은 조카 탄크레디 팔코네리가 가리발디군에 합류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탄크레디는 순수한 열정으로 혁명에 참가했다가 부를 좇으며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탄크레디는 살리나의 딸 콘체타와 약혼한 거나 다름없는 사이였으나, 전장에서 돌아온 후엔 교활하고 야심찬 부르주아이자 신흥 부호인 돈 세다라의 아름다운 딸 안젤리카에게 빠져든다. 살리나는 자신의 딸이 미모로든 재산으로든 탄크레디의 야심과 미래를 만족시켜줄 수 없음을 꿰뚫어보고, 가문의 미래인 탄크레디에게 자유를 주기로 한다.
세월이 지나며 시칠리아를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하는 건을 두고 시칠리아인들이 투표한다. 왕국은 사라지고 이탈리아 통일의 기운이 차장온 것이다. 신민이 아니라 ‘국민’ 시대 도래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하고, 자본가들은 탐욕을 부린다. 살리나는 자신이 예견했던 시대의 도래를 품위 있게 맞으며 죽는다.


6.책이 나오자 공산주의자들은 "반동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비난했다. 또 가톨릭 교회는 "반교권적"이라고 비난했다. 시칠리아 귀족들 중 상당수는 경악할 정도로 놀랐다. 팔레르모의 군주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쓴 것에 크게 놀란 것이다. 또 출판를 거부했던 소설가 엘리오 비토리니(Elio Vittorini, 1908~1966),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Alberto Pincherle Moravia, 1907~1990) , 시인이자 번역가 프랑코 포르티니(Franco Fortini, 1917~1994) 등은 '우익적 소설'이라고 비판했다. 모라비아는 특히 "소설이 지배계급의 사상과 인생관을 표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을 주도한 좌파 시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1897~1982)은 "(리소르지멘토에 성공한) 지배계급을 비판한 것"이라 힐난했다.
하지만 미국에 번역 소개되자 주요 매체들이 격찬했다. 뉴욕 타임스는 "모든 세대의 독자들에게 전해질 작가의 천재성과 떨림이 담긴 작품", 뉴스위크는 "걸작이다. 위대한 전통과 장엄한 양식으로 쓰인 걸작 소설", 뉴요커는 "장엄하고 멜랑콜리하며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격찬했다.이탈리아 평론가들은 소설 '표범'을 "시칠리아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고 말한다.


7.소설 '표범'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시칠리아 어느 서점에서나 가장 좋은 자리에 놓여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책이다. 영상으로는 1960년 이탈리아에서 다큐멘터리 '표범의 시칠리아'로 나왔다. 이탈리아 감독이자 극작가 우고 그레고레티(Ugo Gregoretti, 1930~2019)가 저자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삶과 소설 '표범'의 기원 등을 다큐 형식으로 엮었다. 뮤지컬은 1967년 극작가이자 감독 루이지 스콰지나(Luigi Squarzina,1922~2010)의 대본 연출, 안젤로 무스코(Angelo Musco, 1925~19769)가 주연으로 제작됐다.


영화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선구자인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di Modrone,1906~1976)가 연출, 1963년 개봉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지난 3월 5일 영국-이탈리아 합작 TV 드라마가 넷플릭스 에서 상영됐다.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Giuseppe Tomasi di Lampedusa, 1896~1957)=이탈리아 작가이자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람페두사 가문 마지막 공작. 이탈리아 최고 베스트셀러인 유일한 소설 '표범'은 사후 출판됐다. 전체 명칭은 람페두사의 11대 왕자, 팔마의 12대 공작, 몬테키아로의 남작 겸 라 토레타의 남작, 스페인의 1등 대공인 돈 주세페 토마시(XI Prince of Lampedusa, XII Duke of Palma, Baron of Torretta and Montechiaro, Giuseppe Tomasi) 이다.


1.1896년 12월 23일 팔레르모에서 람페두사의 제10왕자 줄리오 마리아 토마시(Giulio Maria Tomasi, 1868~1934)와 도나 베아트리체 마스트로조반니 타스카 디 쿠토(Beatrice Mastrogiovanni Tasca Filangieri di Cutò, 1870-1946)의 아들로 태어났다. 누나 스테파니아( Stefania, 1897년 사망)가 디프테리아로 사망, 외동아이가 됐다. 어머니의 쿠토 가문에서 물려받은 산타 마르게리타 벨리체 저택과 작은 극장을 소유했다.
토마시 가문은 330년 무렵 비잔틴 제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렬한 종교적 열정으로 유명한 이 가문은 성인 주세페 마리아 토마시(1649-1713)와 존경받는 이사벨라 토마시 (1645-1690)가 있다. 삼촌 피에트로 토마시 델라 토레타는 이탈리아 외무장관 겸 상원 의장을 역임했다. 사촌으로는 이탈리아 유명 보석상 풀코 산토스테파노 델라 세르다, 베르두라 공작(1898~1978)도 있다.
유년기를 팔레르모에서 보낸 토마시 디 람페두사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힘입어 8세때 프랑스어 회화를 했지만 정작 모국어도 일고 쓸줄 몰랐다. 1911년부터 로마에서 공립 중등학교(14~19세, 1859년 설립) 리체오 클라시코( liceo classico)에서 공부하다가 다시 팔레르모의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때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마스터했을 정도였다. 고교졸업 후인 1914년 제노바 대학 법학부를 등록했다가 이듬해인 1915년 로마의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지만 학업에 뜻이 없었다.

2.토마시는 1915년 19살 때 군에 징집, 제 1차 세계 대전에 포병으로 참전했다. 1917년 5월~9월초 토리노에서 장교 훈련을 받고 이탈리아 북부 트리에스테 북서쪽 전선 카포레토(Caporetto)전투에 참전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군대가 크게 패배,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에 포로로 잡혔다. 비엔나 근처 포로수용소로 끌려 갔으나 그 곳에서 탈출, 기적적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다시 군대에 합류한 토마시는 1920년 중위로 전역한 후 시칠리아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외국 문학 연구에 몰두했다. 또 사촌 루치오 피콜로(Lucio Piccolo di Calanovella, 1901~1969)와 제노바로 가서 약 6개월 동안 머물며 문예지 '레 오페라 이 조르니(Le opere ei giorni)'에 기고도 했다.
이후 영국을 처음 방문, 의식의 흐름으로 유명한 소설 '율리시즈'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a Joyce, 1882~1941)에 빠졌다. 당시 토마시의 삼촌 피에트로 토마시 델라 토레타(1873~1962,영국 주재 이탈리아 대사-1922~1927)을 통해 미래의 아내 알렉산드라 폰 볼프-스토머제 Alexandra von Wolff-Stomersee, 1894~1982, 별명 리시)도 만났다.

3.토마시는 1934년 아버지 줄리오 마리아 토마시 람페두사 공작(Giulio Maria Tomasi, 람페두사의 제10왕자 돈 줄리오 토마시, 1868~1934)이 사망하자 작위를 물려받았다. 공식 명칭은 람페두사의 제11왕자 돈 주세페 토마시였다. 아버지 사망을 계기로 토마시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구상을 했다. 나중에 쓴 소설 '표범'의 초고를 생각한 것이다.
토마시는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0년 전역장교 출신으로 군 복무에 소집됐다. 하지만 나이가 이미 40를 훌쩍 넘긴데다 세습 농업 재산의 소유주여서 곧 제대했다. 그러나 1942년 1월에 다시 징집됐고, 결국 오른쪽 다리 골막염으로 의가사 전역했다. 어머니는 가족 피난처로 시칠리아 북부해안 카포 도를란도(Capu d'Orlannu)로 정해 이사했다.

4.토마시는 약혼을 두번이나 했다. 한 번은 영국 소녀, 또 한 번은 이탈리아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들의 이름은 알려져지지 않았다. 토마시의 마지막 뮤즈는 1925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만난 이혼녀였다. 토마시의 삼촌인 이탈리아 외교관 피에트로 토마시 델라 토레타,1873~1962,영국 주재 이탈리아 대사,1922~1927)의 두번째 부인인 이탈리아 바이올리스트이자 메조 소프라노 앨리스 라우라 바르비(Alice Laura Barbi, 1858~1948)의 딸로 러시아 정신 분석학자인 알렉산드라 남작부인 폰 볼프-스토머제(Alexandra, Baroness von Wolff-Stomersee, 별칭 리시, 1894~1982)다. 리시는 어머니 라우라 바르비가 발트해 독일 남작 보리스 폰 볼프-스토머제와 결혼해 낳은 딸이었다. 삼촌의 의붓딸인 리시는 당시 유부녀였다.리시는 토마시를 만나기 전 1918년에 발트해 독일 귀족 가문 후손 국제 은행가인 발트-독일 남작 안드레 필라르 폰 필차우(André Pilar von Pilchau,1891~1960)와 결혼했다가 남편의 동성연애를 알고 사실상 결혼생활이 유지되지 않았다. 둘은 1932년 7월 리시가 남편에게서결혼 취소문을 받아내면서 그해 8월 24일 러시아 식민지(현 라트비아) 리가 정교회 성당인 리가의 성모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에서 결혼했다. 토마시는 어머니의 반대를 대비해 결혼식후 가족에게 알렸다.

5.토마시가 가족 몰래 이혼녀와 결혼한 것은 결국 고부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결혼후 팔레르모로 온 아내 리시는 시어머니인 도나 베아트리스 마스트로조반니 타스카 디 쿠토(Beatrice Mastrogiovanni Tasca Filangieri di Cutò, 1870~1946)와 갈등으로 리가에 많이 거주했다. 2차세계대전 때 리시는 남편의 징집으로 고향인 리가에 가 있었으나 전쟁이 발트해 주변지역으로 확대하면서 로마로 내려왔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간섭 등으로 로마에 많이 있었다.
토마시가 징집 해제로 돌아오자 부부는 시칠리아 북부 해안 카포 도를란도(Capu d'Orlannu) 인근 피카라(Ficarra)에서 재회했지만 고부 갈등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전쟁이 마무리 단계로 가자 부부는 팔레르모로, 어머니는 카포 도를란도(Capu d'Orlannu)로 돌아갔다. 다만 고부 갈등에도 리시의 남편에 대한 사랑을 변함없었다.
리시는 나중에 이탈리아 정신분석학회 회장(SPI, 1954~1959)를 지낼 정도로 권위있는 학자로 전후 이탈리아 정신 분석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리시는 프랑스의 배우이자 가수인 '누벨 바그의 여신' 잔 모로Jeanne Moreau, 1928~2017)가 연기한 영화 '왕자의 원고(Le manuscript du Prince, 2004)', 그녀의 환자이자 학생인 수지 이조(Susy Izzo)가 2005년 9월 로마에서 낸 책 ' 귀부인과 표범(La dama e il Gattopardo)'에 등장한다. 리시의 여동생은 올가 폰 볼프-스토머제 남작부인(Olga von Wolff-Stomersee, 1896~1984)이다. '롤레트'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전 대사이자 작가로 FIEG 회장(이탈리아 외교국제협력부 사무총장,1995~1997)을 지낸 보리스 비안케리 치아포리(Boris Biancheri Chiappori, 1930~2011)의 어머니다.


6.토마시의 팔레르모에 있는 람페두사 성채는 2차 세계대전을 비켜가지 못했다. 미군 주도의 연합군이 1943년 시칠리아에 상륙하면서 그해 4월 팔레르모를 대대적으로 폭격할 때 크게 파손됐다. 다만 주택 일부와 서재는 폭격을 피해 토마시의 어머니가 생애 마지막 1년을 그곳에서 보내기도 했다.2 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토마시는 지역사회의 요청 등으로 1944~1947년초 팔레르모 적십자사 총재로 지역 봉사에도 심혈을 쏟았다. 이후 사촌 피콜로(Lucio Piccolo di Calanovella,1901~1969)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한편 팔레르모의 젊은 지식인 그룹과도 소통했다.
이 때 만난 이들이 문학평론가이자 프랑스학자 프란체스코 올란도(Francesco Orlando, 1934~2010), 로마 출신 음악학자로 먼 친척인 조아키노 란차 디 아사로(Gioacchino Lanza Tomasi, 1934~2023, 팔레르모대학 음악과 교수 역임) 등이었다. 토마시는 아사로를 입양까지 해 해 자신의 작위를 물려줬다.

7.문학에 진심이었으나 뚜렷한 창작 열정을 보여주지 않았던 토마시는 1954년 사촌이자 시인인 루시오 피콜로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 베르가모현에 있는 산펠레그리노 테르메(San Pellegrino)에서 열리는 문학 컨퍼런스에 참석하면서 달라졌다. 이 컨퍼런스에는 유명 시인 유제니오 몬탈레(Eugenio Montale, 1896~1981, 1975년 노벨문학상 수상) , 문학, 미술 평론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에밀리오 체키(Emilio Cecchi, 1884~1966), 이탈리아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마리아 빌라베키아 벨론치 (1902년 11월 30일 ~ 1986) 등이 참석했다.
유명 문학인을 만나고 돌아온 토마시는 소설 '표범'을 본격 집필하기 시작, 1955년 6월까지-1860년의 어느 하루 24시간 동안의 일로 첫 번째 장를 완성했다. 영국에 있을 때 푹 빠졌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본 딴 것이다. 이후 소설을 확장하고 수정, 1956년 원고를 완성해 출판사를 물색했다. 하지만 3~4개의 출판사에서 책 간행을 거절했고, 생전에 끝내 책이 나오지 못했다.

8.토마시는 1957년에 폐암 진단을 받았고,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피아자 인디펜덴차(독립광장) 근처의 산 마르티노 델라 바탈리아 2번가에 있는 처형의 집에 머물렀다. 하지만 폐암은 나아지지 않았고, 7월 23일 영면했다. 향년 61세였다. 장례는 로마에 있는 가톨릭 교구이자 명의 주교좌 성당으로 성 프란치스코 데 살레시오회(Societas Sancti Francisci Salesii) 모교회인 사크로 쿠오레 디 제수 알 카스트로 프레토리오 (Sacro Cuore di Gesù al Castro Pretorio)에서 성대하게 진행됐다.
유해는 고향 팔레르모의 카푸 친 카타콤(묘원)에 안장됐다. 나중에 사망한 부인도 팔레르모의 카푸친 묘지에 남편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와 함께 묻혔다.이후 2024년 팔레르모 산 도메니코 교회(Basilica Pantheon Church of San Domenico, 시칠리아의 판테온)로 이장됐다. 자녀가 없었던 토마시의 상속인은 제자이자 먼 사촌인 조아키노 란차 디 아사로(1934~2023, 나중에 Gioacchino Lanza Tomasi)였다.

9.토마시는 소설 '표범'이 사후 출판되면서 뒤늦게 유명인이 됐다. 그렇치만 지상에서의 영광은 누리지 못했다. 1988년 영국 작가이자 역사가인 데이비드 로버트 길모어(David Gilmour, 1952~현재)가 '마지막 표범-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삶(The Last Leopard-A Life of Giuseppe Tomasi di Lampedusa, 영국 콰르텟 북스,1988)'이 나왔다. 2019년 캐나다 소설가 스티븐 프라이스(Steven Price)는 '람페두사(Lampedusa)'라는 제목의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Giuseppe Tomasi di Lampedusa)의 전기를 소설로 출판했다.
이탈리아 국적 항공사 알이탈리아 항공은 2011년 에어버스 A320-216 (EI-DSB) 중 한 대를 헌정했다. 2019년 시칠리아 자치단체 팔마 디 몬테키아로(Palma di Montechiaro)에 토마시 시립재단(Giuseppe Tomasi di Lampedusa)이 설립됐다. 2003년 시칠리아 서부 자치단체 산타 마르게리타 디 벨리체는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국제 문학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다. 튀니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여배우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의 선구자이자 뛰어난 예술가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di Modrone,1906~1976)가 만든 영화 '표범' 여주인공을 맡았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Claude Joséphine Rose Cardinale, 1938~현재)가 주요 후원자 중 한명이다.

10. 토마시는 시칠리아의 중세 다문화 유산을 20세기에 귀족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인물이다. 책을 너무나 사랑해서 심지어 책을 금고로 사용하기도 했다.책 속에 돈을 넣어두는 습관이 있었던 것 이다. 토마시는 멜로드라마와 이탈리아 오페라를 혐오했다. 야만의 예술로 치부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에디션의 편집장 주세페 실베스트리(Giuseppe Silvestri, 1967~현재)는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에서 가장 세련되고 독창적인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의 소설가로 '전망 좋은 방(1909)', '하워즈 엔드(1910)' 등을 쓴 에드워드 모간 포스터(Edward Morgan Forster, E. M. Forster,1879~1970)는 "토마시 람페두사는 나에게 삶의 방식이 얼마나 다양한지 깨닫게 해 주었다"고 말했다.(김순환-콘텐츠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