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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의 어원이 된 불멸의 고전 첫 문단은 고대 그리스와 소아시아의 전쟁 원인을 탐사보고서처럼 분석한다 본문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의 어원이 된 불멸의 고전 첫 문단은 고대 그리스와 소아시아의 전쟁 원인을 탐사보고서처럼 분석한다
지성인간 2025. 12. 31. 08:22
1.클레이오
이 글은 할리카르낫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하는 탐사보고서이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 인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데 있다.
"페르시아 학자들에 따르면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이 반목하게 된 것은 포이니케인들 탓이라고 한다. 포이니케인들은 홍해라고 불리는 바다에서 우리쪽 바다로 옮겨왔는데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정착하면서 해외무역에 조아했다고 한다.그들은 아이귑토스와 앗쉬리아의 화물을 싣고 여러곳을 들르곤 했는데, 그중 한 곳이 아르고스였다. 당시의 아르고스는 지금 헬라스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모든 점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국가였다. 한번은 포이니케인들이 아르고스에 도착해서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도착한지 5일째 아니면 6일째 되어 그들이 물건을 거의 팔았을 때, 많은 여인들과 함께 공주가 해변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이름은 이나코스의 딸 이오였는데, 헬라스인들도 그녀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여인들은 뱃고물 주위에 둘러서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고 있었다. 그때 포이니케인들이 서로 부추기며 여인들을 덮쳤다. 여인들 대부분은 도망쳤지만, 이오는 몇몇 여인들과 함께 사로잡혔다. 그러자 포이니케인들은 여인들을 배에 태우고 아이귑토스로 출항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 '역사', 천병희 역, 숲, 2009)

1.전형적인 탐구보고서 형식의 설명문체로 첫 문단을 시작한다. 역사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은 시대에 과감하게 '역사'를 관장하는 신(클리오, Clio,클레이오)을 소제목으로 내세워 글의 객관성을 담보하고있다. 이를위해 문장속에 자신의 이름을 제3자처럼 썼다. 글을 읽지 못하는 수많은 민중에게 들려주기 위해 지정학적 설명과 곁들여 인종간의 갈등의 원인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생산을 위한 선택-여인의 납치를 전면에 다루는 것은 흥미유발요소를 첨가한것이다. 나중에 쓰여진 로마 건국신화 등 많은 건국 초 이야기의 본류다. 첫문단에 음유시인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에서 보여준 구전 채집, 인과관계 서술 등이 폭넓게 활용됐다. 주관적 시각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설명하려 직설적 묘사와 건조한 문장을 전개한것도 특징이라 하겠다.누군가를 설득하기위한 글을 쓰는데 도움을 줄만한 도입부다.첫 머리에 저술의 목적과 주제를 쓴 보기드문 역저다. *.소제목으로 나온 클레이오(클리오, Clio)는 무사의 여신 중 역사를 관장하는 신으로, 제우스와 므네모시네(Mnemosyne,그리스 로마 신화의 티탄 12신 중 한 명,기억의 여신)의 딸이다. *.포이니케는 고대 그리스 이피로스에 있었던 도시,현재는 알바니아와 그리스가 분점하고 있다. *할리카르낫소스는 소아시아 카리아(현재의 튀르키예 서부 아나톨리아의 지역) 의 도시 *. 헬라스는 그리스 *비헬라스는 그리스 외 지역, 이민족 *.홍해는 페르시아 만, 현재의 홍해는 아라비아 만이다. *.우리쪽 바다는 그리스 앞바다, 곧 지중해를 말한다. *아이귑토스는 이집트, *앗쉬리아는 아시리아로 현재의 티그리스강 유역 *.아르고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동부 도시 이름이다. *.뱃고물은 배의 뒤쪽 부분을 말한다.
2.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는 문자그대로 불멸의 고전이다.기원전 5세기에 고대세계를 아우르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이만큼 완벽하게 다룬 책은 없다. 신화에서 인간으로 이어진 문명사를 문자로 기록한 서사 문학의 원전이다.
역사(history)의 어원이 된 역작으로 원뜻은 그리스어로 '조사하다, 조사해서 알다, 탐구하다',이다. 탐구'(ἱστορίαι)가 라틴어 히스토리아(historia)로 차용되고 유럽어의 '역사'란 뜻의 단어가 되었다. 그리스 고어로 Ἱστορίαι(탐구) ,현대어로 Historíai, 영어로 The History로 표기하고 있다. 지리,역사, 종교 등을 냉정하고 세밀하게 고찰한 금자탑같은 저서지만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발췌문 파피루스는 옥시린쿠스에서 발굴된 것이댜. 현존 가장 오래된 전체 사본은 서기 9~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비잔틴 시대(동로마제국) 나온 것이다. '로렌티아누스 사본 A'(이탈리아 피렌체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소장)로 불린다.한편 ' 역사'는 그리스인이든 비 그리스인이든 인간이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 집필의 주요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3.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문자로 기록한 역저다.페르시아 제국의 발흥과 기원전 5세기 전후 페르시아와 그리스 도시 국가 들 사이의 갈등을 기록한 가장 초기 문헌이다. 후대의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이 편의상 나누어 총 9권 구성이며 각 권은 학예(학예) 의 여신들인 무사이로(무사,뮤즈 Muse )이름 붙어있다. 클레이오(Clio), 에우테르페(Euterpé,음악), 탈리아(Thalia,희극), 멜포메네(Melpomene,비극),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춤과합창), 에라토(Erato,서정시), 폴리힘니아(Polymnia,찬가), 우라니아(Urania,천문학), 칼리오페(Calliope,서사시) 순이다
1~6권의 내용은 소아시아(현재의 튀르키예,시리아,이란 일대)의 리디아는 크로이소스 왕(BC595~BC546,리디아왕국 마지막 왕)때인 BC546년 수도 사르디스 인근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페르시아 키루스대왕에게 패배, 소아시아 패권을 신흥국인 페르시아에 빼앗긴다. 동방의 대표 세력으로서 페르시아제국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서방에서는 그리스 본토 도시국가들 특히,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부흥한다. 마침내 페르시아와 대결할 그리스 세력이 발흥한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오니아(현재의 튀르키예 중남부) 여러 도시의 페르시아에 대한 반란에 아테네가 가담, 리디아의 수도였던 사르디스(Sardes)를 파괴한다. 이때부터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적대관계는 돌아올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몇년 후 소아시아를 평정한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왕은 눈엣가시인 그리스 도시국가 공격에 나선다. 하지만 최초의 그리스 공격(1차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은 페르시아가 그리스 아티키 지역 마라톤에서 벌어진 마라톤전투(BC490년 9월)에서 패전한다. 이후 다리우스 왕이 죽고 제국을 이어받은 후계자 크세르크세스는 다시 선왕의 앙갚음을 위해 그리스 정벌에 나선다.2차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의 시작이다.
7~9권이 백미다. 페르시아 통치자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 원정을 자세히 다루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솜씨가 그대로 드러나는 중심부라 할수 있다.서술 속도도 빨라지고 BC 480년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투 (Battle of Thermopylae,뜨거운 문,온천) 등에 대한 실감난 묘사도 이어진다. 특히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는 설명이나 군더더기도 거의 없다. 테르모필레는 뚫렸지만 아테네 앞바다에서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BC480), 플라타이아 전투(BC 479)로 그리스-페르시아의 리턴매치는 그리스연합군의 승리로 실질적으로 종결한다.다만 저자는 승리의 여운을 만끽하듯이 몇 번의 작은 전투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미칼레전투(Battle of Mykale,BC 479년 8월 소아시아 미칼레 곶에서 벌어진 그리스-페르시아군 교전,그리스 승리)가 첫째이고 세스토스(에게해 다르다넬스 해협 유럽쪽 도시)공략이 둘째다. 저자는 플라타이아 전투의 세스토스 함락(BC 479년 말)으로 페르시아전쟁 종결로 본다.
전체적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 전쟁이 서술의 중심이지만 실제 전쟁이야기 는 7권부터다. 6권까지는 장황할 정도로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원인, 경과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4.역사는 사실상 처음으로 이야기의 출처를 밝힌 저술이다.고대 사서 중에 보기드물다.그래서 현대인들도 당대의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지리·풍속·역사·삽화·종교 등에 대해 어느정도 알 수 있다.
특히 역사에 나오는 많은 인물과 지역이 현대에 와서 유명해졌다.주로 레오니다스1세(BC540~BC480,스파르타 아기아다이 왕조 17대 국왕) 아르테미시아1세(Artemisia I,페르시아 해군 여자사령관,카리아의 여왕), 살라미스 , 플라타이아(테베 남쪽, 펠로폰네소스 전쟁때 스파르타에 의해 파괴) , 미칼레(Mykale,소아시아 서부 도시),테르모필레, 마라톤 등 당대 왕들의 삶과 유명한 전투현장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동과 서―아시아와 유럽이 충돌한 첫 전쟁에 대한 서술로서는 대단한 책이다.

5. 역사는 구전돼온 이야기를 처음으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역사상 최초의 거대 제국인 아케메네스 제국(Achaemenid Empire, 기원전 550년부터 기원전 330,페르시아 제국,현재의 튀르키예, 이란 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압권으로 꼽힌다.
또 로마의 기원도 밝힌다.로마는 현재의 이탈리아 북중부에 있었던 에트루리아(Etruria, 기원전 900년 무렵~기원전 264년)의 기원은 물론 이들과 융합한 이오니아인도 드러낸다. 실제 로마인은 근현대에 들어와 고고학적인 연구를 통해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소아시아 기원설에 신빙성이 실리고 있다. 에트루리아인의 기원이 이탈리아반도 선주민과 이오니아(아나톨리아)계 이주민의 혼혈임을 밝힌 것이다.
나일강 삼각주의 기원도 나온다. 상류에서 내려온 토사가 쌓여 바다를 지중해 쪽으로 밀어냈다는 것이다.
이밖에 고대국가 리디아(BC 1200년경~BC 546년,현 튀르키예)가 최초로 금화와 은화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도 남겼다.2025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화가 리디아 금화다.

6.헤로도토스의 역저 '역사'는 위대한 여행가이자 고대 그리스 문학의 선구 작가인 밀레토스의 헤카타이오스(BC 5세기 초,이오니아에활동)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헤카이타이스 '페리에게시스(Periēgēsis, 세계 일주)'라는 저술을 남겼다. 이 저작은 지브롤터(스페인)해협에서 시작~이탈리아 그리스, 소아시아 지중해 남부를 거쳐 모로코 에서 끝나는 여행기를 썼다.

7.비판도 많다. 가장 큰 비판은 과장이다. 흥미진진한 사건, 위대한 드라마, 기이한 요소(이국적인 것)를 통해 (독자에게)즐거움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당대 라이벌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 BC460년경~BC400년경)는 "헤로도토스가 오락용으로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헤로도토스는 " 보고 들은 것을 기록했다"고 응수했다.
후대의 학자 켄턴 L. 스파크스는 "고대에는 헤로도토스가 신뢰할 수 없고, 편향적이며, 영웅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고, 거짓말쟁이라는 평판을 얻었다"고 썼다. 사모스의 역사가 두리스는 헤로도토스를 "신화 유포자"라고 불렀다. 로마의 웅변가이자 원로원 의원, 철학자 키케로는 그의 저작이 전설이나 "헤로도투스 저작은 전설과 우화로 가득차ㅈ있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리아의 문법학자 하르포크라티 온은 헤로도토스의 거짓말를 풍자한 책을 썼다. 사모사타의 루키아누스는 저서 진실한 역사 에서 헤로도토스 유명 인사 반열에 올리는 것조차 거부했다.
하지만 현대 와서는 극찬을 받고 있다. 미국 역사학자 배리 S. 스트라우스(1953~현재, 코넬 대학교 역사 인문학 교수)는 "(헤로도투스는)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꾼 중 한 명이자 선구자"라며 "저서 '역사'는 현대 학문의 기준으로 평가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서사적 글쓰기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8. '역사'는 수많은 예술작품에 영감을 주고 인용됐다.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 등은 서양 많은 영화와 여극, 미술 등에 고스란히 차용된다. 미국 소설가이자 카피라이터,논픽션 작가 스티븐 프레스필드 (1943~현재)의 '불의 문', 폴란드 작가 볼레스와프 프루스(Bolesław Prus,1847~1912, 본명은 Aleksander Głowacki)의 장편소설 '파라오(1897)', 미국 정치 평론가이자 수필가유진 루터 고어 비달(Eugene Luther Gore Vidal, 1925~2012) 비달, G. 창조 . 페르시아적 관점에서 여러 장면을 해석한다.
미국의 과학 소설 및 판타지 작가 진 로드먼 울프(1931~2019)가 쓴 '안개의 병사(Soldier of the Mist,1986)' 등도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
국내는 그리스어 원전을 천병희 교수,김봉철 교수가 번역,출판했다.

#.헤로도투스(Ἡρόδοτος, Herodotus. BC 484년경~BC 425년경)=원래 이름은 할리카르나소스의 헤로도토스(Ἡρόδοτος ὁ Ἁλικαρνασσεύς)=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모험가. 비교 인류학의 아버지, 민족지학의 아버지, 산문의 호메로스’로 불린다.
사실(史實)을 시가(詩歌)가 아닌 실증적 학문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그리스인이다. 서구 문명에서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로 철학에서의 플라톤, 과학에서의 아이작 뉴턴과 같은 급의 인물이다.

1.페르시아 제국령 그리스 도시 카리아 사트라피 할리카르나소스(현재 튀르키예 보드룸)에서 BC 484년 전후 태어났다. 릭세스(Lyxes)와 드리오(Dryo)의 아들이고 테오도루스(Theodorus)의 형제였다.당시 서사시 시인이었던 파니아시스(Panyassis)와도 친척으로 전해진다.
후대 학자들은 헤로도투스에 대해 헬레니즘화된 카리아인 출신으로 규정한다.
BC 445년 친척할리카르나소스의 지배 가문을 축출하려는 시도에 연루된 친척 파니아시스가 참주(僭主) 리그다미스 2세에게 피살되자 일족이 사모스섬으로 망명했다.
2. 망명지에서 나중에 귀국했지만 고향인 할리카르나소스에 가지 않고 BC 445년경에는 아테네로 가서 살았다. 당시의 아테네는 전성기였는데, 거기서 페리클레스(Pericles)·소포클레스(Sophocles) 등과 친교를 맺었다. 떠돌이 이야기꾼으로 많은 모임의 사회자 역할을 했다.이야기의으로서 명성이 높아 주로 아테네의 여러 명문 가문 이야기, 전쟁 이야기, 역사적 사건들, 미지의 땅 등을 들려줬다
특히 시 낭독이 크게 인기를 얻어 아테네에서 1회당 10 탈렌트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3. 밀레투스의 헤카타이오스처럼 직접 견문을 찾아 널리 여행했다. 흑해 북안으로부터 페니키아 여러 도시와 바빌론을 거쳐 이집트,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 엘레판티네, 아프리카 북안의 키레네에까지 갔다. 이때부터 각지의 지지(地誌)·풍토·풍속과 역사이야기를 역사로 기록했다. 고대ㅈ그리스인들에게 '세계' 라 알려진 지역은 사실상 모두 다닌것이다.

4.역사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키케로에 의해서 처음 사용됐다.플루타르코스는 헤로도토스가 업적을 인정받아 아테네 의회로부터 금전 보상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5.말년은 현재의 이탈리아 남부에서 살았다. 아테네가 BC 444년(또는 BC 443년)에 건설한 남이탈리아의 식민지 투리오이다. BC425년 경 영면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