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고백록-인류사 가장 유명한 자서전의 첫 문단은 독창적인 고백문학을 보여준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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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인류사 가장 유명한 자서전의 첫 문단은 독창적인 고백문학을 보여준다

지성인간 2023. 7. 1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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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께서는 위대하시고 크게 찬양받으실 분이십니다. 당신의 권능은 크고 당신의 지혜에는 한량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 당신 창조계의 조각 하나가 당신을 찬미하고 싶어합니다. 인간, 자기 죽을 운명을 메고 다니며, 자기 죄의 증거와 당신게서 오만하신 자들을 물리치신다는 그 증거를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래도 인간, 창조계의 조각 하나가 당신을 찬미하고 싶어합니다. 당신을 찬미하며 즐기라고 일깨우시는 이는 당신이시니,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성염 역주, 경세원, 2016)

성 어거스틴과 어머니-네덜란드 출신 프랑스 화가 아리 셰퍼(Ary Scheffer,1795~1858)가 1846년 그린 아우구스티누스와 어머니 성 모니카(Saint Monica). photo by wikipedia

1.사랑하는 님을 향한 마음의 편지 형식으로 시작한다. 자기고백이지만 제3자가 읽어도 거침이 없도록 최대한 객관적  서술 방식을 택했다. ‘하느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라는 주제 그대로 열정을 가득 담아 주님을 찬미하고 있다. 고백하는 스스로는 창조계의 조각 하나로 최대한 낮게 지칭하는 대신 주님의 한량없는 지혜를 최대한 찬양했다.  역주본(譯註本)이지만 찬양 서사로서의 문장 구성과 문체는 본받을 만한 도입부이다. 다만 중간에 중복 문장이 있어 어색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종교적 서사여서 문단 구성상 강조하기 위한 삽입으로 보인다. 어떤 행사의 환영사나 찬양 문구를 쓸 때 참고하면서 활용할 만한 서술방식이다.

2.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告白錄, Confessiones, 397~400)’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백록이자 실존 철학서다. 형식상 자서전이지만 문학사나 사상사적으로도 ‘정통 문학’에 손색이 없는 빛나는 걸작이다. 유사 이래 가장 뛰어난 고백 자서전으로 세계 문화 유산으로 꼽을 정도다.
라틴어로 된 13권의 책으로 집필 목적이 확실히 드러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본인은 생전에 “내 작품 중의 어느 것이 ‘고백록’보다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자부했다. 영국 신학자 헨리 채드윅(Henry Chadwick, 1920~2008)은 ‘서양 문학의 위대한 마스터피스(Masterpiece, 걸작)’라고 평가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어로 '성 어거스틴(Saint Augustine)', '히포의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으로 쓰고 있다.고백록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있다. 영어로는 ‘고백록(Confessions)’,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The Confession of Saint Augustine)’ 등으로 나왔다. 원본 영어 제목은 ‘Confessions in Thirteen Books’이다.

13세기 초 독일에서 나온 '고백록' 판본 부분. photo by wikipedia

3.고백록은 이교(異敎)인 마니교라는 이단(異端)에 빠지고, 사생아를 낳는 등 방탕한 생활에 사로잡혔던 나날들이 고스란히 쓰여 있는 자기 고백서다. 물론 이같은 고백은 주님과 신앙에 대한 믿음으로 뒷받침된다.
문장과 문체가 독창적일 뿐 만아니라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면서 썼다. 수사학과 변증법적 논리 등에 통달하지 않으면 쉽게 쓸 수 없는 문체라 하겠다.
로마 세계 통틀어 당대 최고의 문장가답게 그리스 로마 시대 고전(古典)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잘 드러나 있다.

4.고백록은 후대 철학과 문학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실존주의 철학의 형성에 디딤돌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ergo sum)’는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René Descartes,1596~1650)의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로 발전했다는 게 가톨릭계의 설명이다.
철학적 사유의 산물인 고배록은 프랑스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의 유명 저서 ‘팡세’, 덴마크 출신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85)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 등의 바탕이 됐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출신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은 ‘지금까지 쓰여진 책 중 가장 진지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5.우리나라는 1953년 김정준이 ‘고백록’ 13권 중 10권을 영어 일본어 등을 중역해 출간했다. 최초의 원전 완역은 최민순(崔玟順, 1912~1975, 요한 신부)전 가톨릭대 교수가 1965년에 번역, 출간했다.
그리고 라틴어 원문 번역이라는 짐을 지고 역주까지 한 이는 주교황청대사관 대사를 지낸 성염(1942~현재) 전 서강대, 한국외국어대 교수다. 성 전 교수가 역주한 책은 2016년 경세원에서 출판했다. 성 전 교수 번역본은 ‘해제’만 40페이지가 넘는다.

경세원이 2016년 낸 '고백록' 표지 부분. 아우구스티누스 초상화를 썼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로마 제국시대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라틴 문학 말기를 대표하는 문장가. 라틴어 본명은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히포넨시스(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이름은 '작은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이다.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Caesar Augustus, BC63~AD14,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 Octavianus)에서  따온 이름이다.

1.로마 제국 누미디아 속주 타가스테(현 알제리 수크아라스)에서 이교도 관리인 아버지 파트리키우스(Patricius)와 그리스도인인 어머니 모니카(Monica)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에게서 그리스도교 교육, 라틴어 학교에서 문법 교육 등을 받았다. 카르타고 대학에 입학해 수사학을 전공했다.

2.카르타고에서 문학 등을 가르치다가 373년에는 열렬한 마니교도가 되지만 382년에 배교(背敎)한다. 다음해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 로마로 가서 수사학을 가르치다가 다시 밀라노로 옮겨간다.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오(Sanctus Ambrosius, Saint Ambrose, 330~397) 주교를 만나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도 자신을 ‘쾌락에 빠진 노예’로 생각한다. 실제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심(回心)이전에 이교(異敎) 신앙, 노예 출신 애인과 동거,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사생아 이름은 ‘아데오다투스(A deo datus, 하느님이 내린 선물이라는 뜻, 372~388)’인데 청소년기에 사망했다.

네덜란드 브라반트 공국 출신 플랑드르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1577~1640)가 그린 아우구스티누스. photo by wikipedia

3.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에서 번민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가 ‘집어라, 읽어라(Tolle, lege)’라고 하는 어린이들의 소리를 듣게 된다.
서재로 들어와 무심코 펼쳐 읽었는데 그것이 ‘사도 바오로(Paulus, Paul, AD5~AD67)의 로마서 13장 13절’이었다고 한다. 이후 회심(回心)과 개종(改宗)으로 32살 때 가톨릭 세례를 받는다.
이후 388년 고향에 돌아와 수도(修道) 공동체를 세운다. 이 공동체에서 신앙과 성서 연구 등에 전념한다. 이 공동체는 13세기에 탁발(托鉢,음식 등을 기부받는 행위)수도회인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로 발전한다. 396년에는 로마제국 지배하에 있던 카르타고 히포의 주교가 된다.

4.아우구스티누스는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등 그리스도교에서 받드는 성인이다. 4명의 교부 중 한명이다.기독교 교리를 확립했으며, 삼위일체설·원죄설·구원설을 주장했다. 이같은 논리는 16세기 시작된 종교개혁(1517년 마르틴 루터 95개조 반박문 발표) 이후 현대 기독교 신앙의 토대 구축의 이론을 제공한다.

스페인(카탈루냐) 화가 하우메 위게(Jaume Hugue, 1412~1492)가 그린 아우구스티누스 봉헌식. 1462~1475 년 추정.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 소장. photo by wikipedia

중세 스토아 철학의 대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1224,1225~1274)도 아우구스티누스를 자신의 첫 번째 스승으로 인정했다.

5.게르만족 일파로 훈족(게르만 대이동을 유발한 민족)에 쫓긴 반달족(429년 북아프리카 점령)이 로마제국을 휩쓸던 무렵인 430년8월 서로마 제국 누미디아 속주 히포 레기우스(현 알제리 안나바)에서 시편 7장을 읊으며 선종(善終)했다. 향년 76살이었다.
반달족은 북아프리카로도 넘어와 무자비한 파괴를 일삼았으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대성당과 도서관은 살아남았다.

6.추종자들은 반달족의 횡포 속에서 선종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유해 훼손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 사르데냐(Sardegna) 칼리아리(Cagliari)로 옮겨 묻었다.
이후 사라센(Saracens, 이슬람 세력)융성으로 사르데냐마저 위기에 처하자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 파비아로 옮겼다. 파비아의 ‘씨엘드로 산 피에트로(Ciel d' Oro San Pietro, 황금하늘의 성 베드로)’가 안식처였으나 일부는 다시 1700년쯤에 밀라노로 옮겨 안장됐다.

아우구스티누스유해가 있는 이탈리아 북부 파비아의 '씨엘드로 산 피에트로'성당 내부.photo by wikipedia

6.주요 저서로는 ‘재론고(Retractationes)’, ‘서간(Epistulae)’, ‘설교집(Sermones)’, ‘시편 상해(Enarrationes in Psalmos)’ 등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그중에서 유명한 명언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Cum dilectione hominum et odio vitiorum)’이다.
지난 2016년에 나온 ‘고백록’를 번역하고 주석를 단 성염(1942~현재) 전 한국외대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를 '진리를 향한 구원(久遠)의 불꽃'이라고 표현했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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