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추리소설 여왕의 소설은 反轉을 예비하는 첫 문단으로 시작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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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추리소설 여왕의 소설은 反轉을 예비하는 첫 문단으로 시작한다.

지성인간 2023. 6. 20.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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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열차 흡연실에 몸을 실은 전직 판사 워그레이브는 시가를 피우면서 타임지의 정치면 기사를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다. 잠시 뒤, 그는 신문을 내려놓고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지금 열차는 서머싯을 달리고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아직 두 시간 정도 남았다. 그는 인디언 섬에 대해서 신문에 실렸던 기사들을 마음속에 떠올려 보았다. 첫번째로….”(이가형 역, 해문출판사, 2002)

1.첫 문단에서 샐러리맨이 출장 가는 모습을 통해 등장 인물의 행위 변화와 감정의 흐름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장소와 시제를 분명하게 못 박고, 도착 시간까지 제시해 제 3의 인물이 관찰하는 듯한 도입부다. 글의 흐름이 깔끔하면 치밀한 스토리를 예비하고 있다. 글의 구성과 문체 등이 논술이나 자기소개서 등에 활용해도 좋은 도입부다.

2.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 1939)’는 추리소설 최고의 명작이다. 미스터리(Mystery) 장르의 최고 고전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책 이름은 미국 출판 때 쓴 제목이다. 영국 출판 시 원제는 ‘열 명의 흑인 소년(Ten Little Niggers)’이었다. 나중에 ‘Niggers’가 ‘인디언 소년(Indians)’, ‘병정 소년(Soldiers)’으로 바뀌기도 한다. 인종차별 논란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추리소설이다. 2020년 이전까지 1억 부 넘게 팔렸다. 미국의 추리소설 작가로 필명 엘러리 퀸(Ellery Queen, 프레더릭 더네이(1905~1982)와 맨프리드 리(1905~1971) 2명)이 쓴 ‘Y의 비극’, 윌리엄 아이리시(코넬 울리치,Cornell George Hopley Woolrich의 필명)가 쓴 ‘환상의 여인’과 함께 세계 3대 추리 소설로 꼽힌다.

영국 런던 웨스트 스트리트에 있는 애거서 크리스티 기념조각물. 출처=위키피디아.

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추리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기발한 줄거리에 반전(反轉)은 기본이고, 기승전결과 서스펜스(suspense, 불안과 쫄림을 주는 것)가 압권이다. 여기에 스릴러 요소까지 갖췄 다.
다만 80년 전의 소설이어서 지금 읽으면 너무 낯익은 느낌이 든다. 어쩔 수 없는 기시감(旣視感)은 그동안 추리소설과 영화가 이 소설을 오마쥬(Hommage, 존경의 모방)했거나 구성을 패러디(Parody, 모방해 재창조)했기 때문이다. 수수께끼 인물, 고립, 범죄자, 범인 살해, 반전 등의 원조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4.주요 등장 인물은 은퇴 판사 ‘로렌스 존 워그레이브’, 전직 가정 교사이자 오언 부부의 비서 ‘베라 엘리자베스 클레이슨’, 전직 군인(대위)으로 총 소지자 ‘필립 롬바드’, 노년의 독신녀 ‘에밀리 캐롤라인 브렌트’, 참전 영웅 ‘존 고든 매카서’, 런던의 저명한 의사 ‘에드워드 조지 암스트롱’, 부유한 미남 ‘앤서니 제임스 마스턴’, 사립 탐정 ‘윌리엄 헨리 블로어’, 하인 부부 ‘토머스 로저스’와 ‘에델 로저스’ 등이다.
또 뱃사공 ‘프레드 내러코트’, 런던 경시청 부경시총감 ‘토머스 레그 경’ 런던 경시청 메인 경감 등이 나온다. 편지를 보내 인디언 섬으로 초대하는 ‘얼릭 노먼 오언’과 ‘유나 낸시 오언’ 부부는 정체를 모른다.

5.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죄가 있는 데 법으로 처리할 수 없는 사람 심판하기’다. 한마디로 현행법으로 죄를 묻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징악(懲惡)이다.
8명의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각각 다른 목적으로 인디언 아일랜드(Indian Island)라는 섬으로 오언 부부의 초대를 받는다.
섬에 오언부부는 없고 편지로 고용된 하인 부부가 손님을 접대한다. 모두가 앉은 자리에서 초대자 한사람 한사람의 옛 악행을 들추는 말이 교묘하게 나온다. 초대자들은 불안에 떨지만 거센 폭풍우 때문에 아무도 섬을 떠나지 못한다. 물론 도망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후 한 명 한 명이 죽지만 생존자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경계하는 굴레에 빠진다. 결국 마지막 인물이 죽음을 맞이한 후 섬에는 누구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 범인은 10명 중 한 명이었다. 아홉 명을 죽인 뒤 사건의 모든 진상을 밝히는 글을 적고 병에 넣어 바다에 던진다. 이 자백서가 담긴 병을 지나가던 배 선장이 건져 런던 경시청에 보낸다. 범인은 누구일까?

1987년 소련에서 만들어진 영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포스터.출처=위키피디아.

6.영화도 많이 만들어졌다. 가장 먼저 1945년 미국에서 같은 제목의 흑백 영화(감독은 프랑스 출신 르네 클레어(1898~1981)로 제작됐다.
평가가 좋았던 이 영화는 1946년 스위스에서 열린 ‘1회 로카르노 영화제(Locarno Film Festival)’ 금 표범상을 받았다.
1965년에 영국에 이어 1974년 미국·이탈리아·영국·서독·프랑스·스페인 합작으로 이란에서 촬영한 영화 ‘Ten Little Indians’도 나왔다.
1987년 소련에서 스타니슬라브 고보루킨(1936~2018) 감독의 ‘Десять негритят(Desyat Negrityat, Ten Little Indians )’란 제목으로 나왔다. 원작에 가장 가깝다는 평이 있다. 영화가 가장 많이 만들어진 곳은 인도로 4편이나 나왔다.

30대 후반의 애거서 크리스티와 딸 로잘린드. 출처=위키피디아.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1890~1976)=영국의 소설가, 극작가. 역사상 가장 많은 소설을 판 작가(40억 부 이상). 탐정소설의 황금기(Golden Age of Detective Fiction)의 작가.
본명은 애거서 마리 클라리사 밀러(Agatha Mary Clarissa Miller). 결혼 후에는 애거서 메리 클러리사 크리스티 맬로언(Agatha Mary Clarissa Christie Mallowan)이다.

1.영국 잉글랜드 남서부 데번(Devon)주 토키(Torquay)에 있는 애슈필드 저택에서 미국인 사업가인 아버지 프레드릭 앨버 밀러(Frederick Alvah Miller)와 어머니 클라리사 마가렛 보머(Clarissa Margaret Boehmer,1854~?) 사이에서 늦둥이(언니와 오빠는 10살 이상 연상)로 태어났다.
6세 무렵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건강 악화로 남프랑스에 거주한다. 아버지가 사망한 11살 때 영국으로 돌아와 토키에 있는 미스 가이어 여학교(Miss Guyer's Girls' School)를 다녔다. 1905년 무렵 파리로 유학가 음성 훈련과 피아노 연주 개인교습을 받았지만 재능 부족을 깨닫고 목표를 포기한다.
1912년 약혼한 사람이 있는 상태의 크리스티는 한 댄스파티에서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아치볼드 크리스티(Archibald Christie)를 만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나자 자원봉사 간호사로 육군병원에 들어가 약국에 근무한다. 당시 아치볼드의 열렬한 구애로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2.첫 추리소설을 내기까지 여섯 번 연속 거절당했다. 첫 소설은 1919년 낸 ‘스타일스에서 신비한 사건(The Mysterious Affair at Styles)’이다. 이 해에 외동딸 로잘린드 마가렛 클라리사 크리스티(Rosalind Margaret Clarissa)를 낳았다.
1926년 6번째 장편 소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The Murder of Roger Ackroyd)’으로 ‘책이 팔리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3.1926년 12월 3일 실종사건은 유명하다. 저녁 식사 후 차를 끌고 나갔는데 다음날 차와 소지품만 발견되고 종무소식이었다. 당시 유명 작가 크리스티의 실종은 뉴욕 타임즈 1면에 실리기도 했다.
10일 후 잉글랜드 노스 요크셔 주 헤로게이트(Harrogate)의 스완 하이드로패틱(현재 올드 스완 호텔로 운영 중)에서 발견됐다.

영국 데일리 헤럴드 1926년 12월 크리스티가 발견되었다 보도기사. 출처=위키피디아

실종 사건 전, 남편은 다른 여자(Nancy Neele)랑 사랑에 빠졌다며 이혼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정신적 혼란 등이 겹쳐 의도적 행방불명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결국 1928년 남편과 이혼했다.

4.1930년 26세의 청년 고고학자 맥스 맬로완(Max Mallowan 1904~1978)과 14년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재혼했다. 남편은 나중에 고고학에 대한 공로로 영국 왕실 기사작위(knighthood, 1971)를 받았다.
크리스티는 1934년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이 나오면서 유명세를 더했다. 이 소설이 히트하자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동쪽 종착역인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페라 팰리스 호텔은 ‘책이 쓰여진 방’이라며 ‘크리스티의 방’을 기념하고 있다.
1937년에는 ‘벙어리 목격자(Dumb Witness, Poirot Loses a Client)’,와 ‘나일강의 죽음(Death on the Nile)’을 발표했고, 1939년 ‘열명의 흑인소년(Ten Little Niggers,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으로 최고의 인기 추리소설 작가가 됐다.

5.크리스티 각색 ‘쥐덫(Mousetrap)’은 1952년 런던 웨스트 스트리트에 있는 앰배서더 극장(Ambassadors Theatre)에서 초연된 이후 1974년 웨스트엔드(West End's)에 있는 세인트 마틴극장(St Martin's Theatre) 으로 옮겨 코로나19이전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연됐다. 2021년 5월17일 재공연에 들어갔다.
2022년 11월 기준 2만8915번째 공연을 했다. 사상 최장기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쥐덫은 조지 5세(1865~1936)의 왕비이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할머니인 메리(Queen Mary, Mary of Teck, 1867~1953)의 생일 선물로 크리스티가 쓴 짧은 라디오극이다.
미국추리작가협회(Mystery Writers of America's)의 첫 번째 ‘그랜드마스터상(1955)’을 받았고, 1967년 여성 최초로 영국추리협회 회장이 됐다. 1971년에는 대영 제국 훈장(Dame Comman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았다.

6.1976년1월 옥스퍼드셔(Oxfordshire) 윈터브룩(Winterbrook) 자택에서 85세로 영면했다. 인근 성 마리아 교회(churchyard of St Mary's)에 묻혔다.
연극 ‘쥐덫’의 제작자 피터 손더스는 “버킹검 궁, 국회의사당, 런던 탑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존재였다”고 조사를 표했다. 사후 1년 뒤 직접 쓴 ‘자서전’이 출간됐다.
남편 맬로완은 크리스티 사망 후 1년 뒤 바바라 헤이스팅스 파커(Barbara Hastings Parker,1908~1993)와 재혼했으나 1978년 사망해 크리스티 옆에 묻혔다.

7.크리스티 사후 유산은 대부분이 유일한 자식인 딸 로잘린드(Rosalind Margaret Clarissa Hicks)에게 돌아갔고, 회사(Agatha Christie Ltd)의 지분 1/3 이상을 상속받았다.
하지만 로잘린드는 2004년 사망했다. 현재 Agatha Christie Ltd CEO는 로잘린드의 손자, 제임스 프리차드가 맡고 있다.
작가의 고향인 잉글랜드 남서부 데본의 토키 박물관에는 애거서 크리스티 갤러리가 있다.

8.크리스티의 작품들은 103개 언어로 번역됐고, 영어권 10억 부 포함 전 세계적으로 40억 부 이상 판매됐다. 소설 판매 1위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크리스티의 전기 작가 질리언 길(Gillian Gill, 1942~현재, 웨일스 출신의 미국 작가)은 1990년 낸 전기에서 “크리스티의 글은 희박함, 직접성, 서사적 속도, 동화의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며 “어른들을 위한 현대 동화”라고 말했다.
헤더 테렐(Heather Benedict Terrell, 1968~현재)은 2020년 마리 베네딕트(Marie Benedict)라는 가명으로 ‘크리스티 부인의 미스터리(The Mystery of Mrs. Christie)’를 출판했다. 이 소설은 뉴욕 타임즈(2022년5월30일)와 USA 투데이(2022년5월30일) 베스트셀러 목록에 포함됐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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