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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마지막 잎새-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단편 소설은 채색화처럼 쓴 지리 설명서로 연다. 본문
“워싱턴 스퀘어 서쪽에는 길이 이리저리 얽히며 뻗어 나가 조각조각 끊어져 있는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이곳의 길들은 기묘하게 경사지고 굳어 있어 한두 번씩 제 길과 교차하고 있다. 예전에 어떤 예술가는 이곳의 요긴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물감, 종이 캔버스 대금을 받으러 온 수금원이 이 길로 들어오면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길을 헤매고 제자리걸음을 한 게 아닌가! 그 때문에 북향 창문과 18세기 박공지붕, 그리고 네덜란드식 다락방의 값싼 셋집을 찾아 진기하고 예스러운 그리니치 빌리지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6번가에 백랍 머그잔과 채핑디쉬(음식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풍로가 딸린 냄비-옮긴이)를 가져왔고 그들의 촌락을 구성했다.”(오 헨리 저, 김명철 역, 더클래식, 2020)

1.소설 전개 과정에서 장소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하는 독특한 내레이션이다. 동네 지리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마치 지리상의 발견 같은 느낌을 준다. 이야기로 쓰는 채색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밀한 묘사다. 관찰자 시점에서 상징이나 비유 등을 자제한 채 어렵지 않게 쓴 문장들이다. 가난한 화가들의 캔버스 대금 이야기가 소설의 반전을 예고하고 있다. 도입부의 소설 설명 문장 속에 보기 드물게 ‘!’를 써서 감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2.O. 헨리의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 1905)’는 반전(反轉)의 페이소스(pathos, 불쌍히 여기는 마음, 비애 혹은 애절)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작가가 죽기 전에 쓴 사실상 마지막 작품으로 O. 헨리의 소설 중 가장 유명하다. 현미경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작가의 자연 관찰 묘사, 특유의 아이러니와 재치있는 이야기 전개가 압권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단편 소설 중 하나다. 1907년에 나온 25편의 단편 소설집 ‘다듬는 등불(The Trimmed Lamp)’에 수록됐다.

3.이 소설은 예상 외의 반전(反轉)이 독자를 매혹시킨다. 이른바 ‘오 헨리 식 결말’로 마무리 된다. 소소한 일상을 그리면서 그 속에서 인간성, 휴머니즘을 생생히 녹여내는 오 헨리 소설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확실한 서사(敍事,어떤 사건, 상황을 연쇄 전개하는 것)가 없는 단편소설에 반전과 유머, 재치있는 묘사로 독자를 상상의 세계로 유도한다.이는 뛰어난 상상력과 풍부한 어휘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작가 오 헨리의 번득이는 생각의 재치가 돋보인다고 하겠다.
4. 등장 인물은 강인한 화가 지망생 소녀 수지(Susie, 약칭 수)와 심약하고 예민한 소녀 존시(Johnsy, 조안나 Joanna), 수와 존시의 이웃인 노인 화가 베어먼(Behrman) 등이다. 배경은 뉴욕 맨해턴 남부 주택촌으로 가난한 화가들이 많이 사는 동네 그리니치 빌리지다.
줄거리는 폐렴(肺炎) 투병을 하는 화가 지망생과 가난한 원로화가의 휴머니즘이다. 뉴욕 거주 여성으로 화가 지망생인 존시는 폐렴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의사는 병이 깊어지는 존시의 생존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었다. 존시 역시 절망의 끝에서 담장에 있는 잎새가 모두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존시의 집 아래층에 사는 원로 화가 베어먼은 별다른 그림을 그리지 않고 술을 마시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언젠가는 걸작을 그리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걸작을 그리겠다고 장담한다.
베어먼은 위층의 존시가 담장의 잎이 다 떨어지면 죽는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헛소리로 일축한다. 그런데 어느날 비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담쟁이 잎은 마지막 한 장만 남고 다 떨어졌다.
존시는 죽음이 다가온 것을 감지한다. 하지만 다음날 밤에도 심한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아침에 마지막 한 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마지막 잎새 한 장의 끈질긴 생명력을 본 존시는 서서히 기력을 되찾는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잎은 베어먼이 담장에 붓으로 정밀하게 그린 것이었다. 사다리를 타고 차가운 비바람을 맞고 밤을 지새며 벽에 잎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이틀만에 폐렴으로 죽고 만다. 베어먼이 죽은 장소에서는 팔레트에 녹색, 노란색 물감이 남아있었다. 마지막 잎새는 베어먼의 마지막 ‘걸작(masterpiece)’이었던 것이다.
6.소설이 발표되고 나서 등장인물로 나오는 수(Sue)를 존시의 남자 친구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초기 번안 소설에서는 일본 번역본 영향으로 남자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잎새는 반전이 있는 소설로 인기가 있었던 만큼 다양한 해석과 문학평론이 나왔지만 황당한 분석도 나왔다. 그 중에 압권은 소설 속 여인들인 수와 존시가 레즈비언으로 연인 관계라는 해석이라고 한다. 소설을 소설로 보지않고 해석하려는 것에서 나오는 어이없는 현상이라 하겠다.

7.1912년 영화로 나왔다. 프랑스 출신 최초의 여성 감독이자 선구적인 영화 제작자 앨리스 게이 블랑쉬(Alice Guy-Blaché, 1873~1960)의 무성영화 ‘떨어지는 잎(Falling Leaves,낙엽)’이다.
1952년 미국에서 유명 감독이자 제작자 하워드 혹스(Howard Hawks, 1896~1977) 등 5명의 감독이 오 헨리의 단편을 옴니버스(Omnibus, 독립된 이야기를 한편으로 만는 것) 영화로 만든 ‘오 헨리의 풀 하우스(O Henry's Full Hous)’로 제작됐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1957년 6월 8일 서울 수도극장에서 ‘인생의 종착역’으로 개봉됐다. 이중 마지막 잎새 제목은 ‘최종(最終)의 일엽(一葉)’이었다.
가수 배호(본명 배신웅,1942~1971)의 노래 ‘마지막 잎새,1971’도 유행했다. 배호는 그해 서른살의 나이에 숨졌다. 1977년에는 영화감독 이성구(李星究, 1928~현재)의 연출로 ‘O.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나왔다.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 1862~1910)=한국에서는 ‘오 헨리(O. Henry)’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미국 단편 소설의 황제이자 휴머니즘 단편 소설의 개척자이다.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단편소설 작가. 미국 문학사에서는 현대문학의 태동기와 전성기를 잇는 작가로 분류된다.
1.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1865)이 한창인 시기에 남군에 속해 있던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Greensboro)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 앨저넌 시드니 포터(Algernon Sidney Porter, 1825~88)이며, 어머니는 부잣집 딸 메리 제인 버지니아 스웨임(Mary Jane Virginia Swaim, 1833~65)이었다. 그런데 세살 무렵 어머니가 셋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후 사망해 가족은 친할머니의 집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에드워드 레인(Edward William Lane, 1801~1876)의 ‘천일야화(One Thousand and One Nights)’, 영국 작가 로버트 버튼(Robert Burton, 1577~1640)이 쓴 백과사전 ‘우울증의 해부(Anatomy of Melancholy, 1621)을 즐겨 읽으며 문학의 꿈을 키웠다.
1876년 숙모 에벨리나 마리아 포터(Evelina Maria Porter's)가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숙모는 15살까지 포터를 가르쳤다. 이후 1879년 린지 스트리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고교 졸업 후 삼촌이 경영하는 약국 조수로 들어가 19세 때인 1881년 약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런데 약국 근무가 아닌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1882년 지인 제임스 홀(James Hall)을 따라 텍사스의 라 설레 카운티(La Salle County)로 이주해 제임스의 아들 리처드 홀(1890년 주지사 선거 낙선)의 목장에서 살았다.
1884년 텍사주 주도 오스틴으로 가서 리차드의 친구인 조셉 하렐(Joseph Harrell)의 집에서 3년 동안 머문다.하렐 부부의 일을 도와주며, 몰리 브라더스 제약사(Morley Brothers Drug Company)에서 약사로 일하기도 했다. 또 오스틴에서는 극단에서 기타와 만돌린을 연주하기도 했다.
3.오 헨리는 28세 때인 1885년 부유한 가정 출신의 17세 소녀 애솔 에스테스(Athol Estes)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애솔 어머니의 격렬한 반대로 어려움을 겪다가 1887년7월1일 애솔을 데리고 도망쳤다.
둘은 그해 스무트(R. K. Smoot) 목사의 집에서 결혼했고, 1년 후 1888년 아들으 낳았지만 곧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1889년에 딸 마가릿 워스 포터(Margaret Worth Porter)가 태어났다.

아내 애솔이 아들과 딸을 잇달아 낳자 처가에서도 인정했다. 오 헨리는 오스틴 등에서 은행원과 기자 등으로 일하면서 첫 작품 ‘구르는 돌(The Rolling Stones)’을 발표했다. 하지만 1500부밖에 팔리지 않았다.
이후 처가와 아내의 도움으로 1894년 주간지 ‘롤링 스톤(The Rolling Stone)을 창간했으나 판매 부진으로 실패했다. 이듬해 휴스턴으로 이사했고, 우체국에서 나오는 잡지 필진으로 참여해 글을 썼다.
4.오 헨리는 감옥살이도 경험했다. 오스틴의 은행(First National Bank) 근무 당시 계산 실수 등으로 1894년 횡령 혐의로 실직했다. 포터에게는 횡령죄가 쒸어져 구금됐다.

장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려났으나 불구속 재판을 받게 받게됐다. 공식적인 첫 재판은 1896년 7월7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감옥에 갈 것을 두려워한 오 헨리에 대해 주변 친구들이 도피를 도와줘 처음에는 뉴올리언스로 도망갔다.
이후 범죄 인도 협약이 없는 온두라스로 도피했다. 오 헨리는 1897년 1월까지 온두라스(Honduras) 수도 테구시갈파( Tegucigalpa)에서 반 년 정도를 숨어 살았다. 하지만 아내가 사경을 헤매자 귀국했다. 아내 애솔은 1897년 7월 25일 사망했고, 오 헨리는 장례를 치르고 체포됐다.
1898년 2월 횡령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오하이오 교도소 수감됐다. 약사 자격이 있는 오 헨리는 감옥에서 약국 담당으로 일하면서 필명으로 단편 소설 여러 편을 기고했다.
필명 ‘O. Henry’는 이 때 등장한다. 1899년으로 감옥에서 쓴 원고를 전달받은 뉴욕의 친구가 ‘작가의 투옥(投獄)’ 사실을 모르게 하기 위해 가명을 붙인 것이다. 1901년 출감했다.
5.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장인 집에서 11살 딸 마거릿과 함께 있던 오 헨리는 1902년 처음으로 뉴욕으로 이사했다. 잡지 ‘뉴욕 월드 썬데이 매거진’과 ‘월드’ 등에 매주 1편(1903년 12월~1906년 1월)의 글을 실을 정도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다.
오 헨리는 뉴욕을 사랑했지만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뉴욕 입성 이후 한 글에서 ‘(뉴욕은)지하철 위에 세워진 바그다드’라고 묘사했다.
1904년 출판한 온두라스 도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양배추와 왕들(Cabbages and Kings)’을 출간했다. 이 소설에 처음 등장한 말이 지금도 유명한 ‘바나나 공화국’이다.
6.오 헨리는 1907년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방문했고, 거기서 다시 만난 어린 시절의 연인 사라(샐리) 린지 콜먼(Sarah (Sallie) Lindsey Coleman)과 재혼했다.
하지만 1908년 건강이 악화돼 글쓰기를 중단했고, 다음해 사라와 이혼했다. 그러다가 1910년 6월5일 영면했다. 향년 47세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간경화, 당뇨병 합병증 및 확대된 심장 등이 사인이었다. 또 뇌출혈로 사망 기록도 있다.
유일한 자녀 마가렛에게 남긴 유언은 “불을 밝혀다오-어둠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Turn up the lights-I don't want to go home in the dark)”였다고 한다.
뉴욕의 한 교회(소설 ‘경찰관과 찬송가’의 배경 교회)에서 장례식을 한 후 노스캐롤라이나의 애슈빌(Asheville)에 있는 리버 사이드 묘지(Riverside Cemetery)에 묻혔다.
딸 마가렛 워스 포터는 1916년 뉴욕의 만화가 오스카 체사레와 결혼했지만 4년 후 이혼했다. 마가렛은 1927년 결핵으로 사망했고, 아버지 옆에 묻혔다.
7.오 헨리의 주요작품으로는 ‘캐비지와 왕(Cabbages and Kings,1904)’, ‘400만(The Four Million,1906)’, ‘다듬는 등불(The Trimmed Lamp, 1907), ‘서부의 마음(Heart of the West,1907)’ 등이 있다.
사후에 ‘6과 7(Sixes and Sevens, 1911)’, ‘뒹구는 돌(Rolling Stones,1912), ’Waifs and Strays,1917) 등 3권의 선집이 나왔다. 이밖에 제럴드 랭퍼드가 쓴 전기 ‘앨리어스 O. 헨리 Alias O. Henry’가 1957년에 출판됐다.
8.당대와 후대 평론가들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평가했다. 풍자와 해학, 반전 등이 모파상의 소설을 연성케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오 헨리는 모파상과 비교나 영향에 대해 생전에 극히 싫어했다.
오 헨리는 물질 만능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뉴욕의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소시민 이야기 속에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특히 말초신경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소설을 수백편이나 내놓았다.
오 헨리 전기를 쓴 알폰소 스미스는 “미국 문학사를 장식한 뛰어난 단편 작가들인 어빙, 포, 호손, 하트 등과 견줄 수 있다”며 “미국의 단편 소설을 인간답게 만든 작가”라고 격찬했다.

9.오 헨리의 이름을 딴 ‘O. Henry Award’가 1919년 설립돼 매년 시상된다. 영미권에 상당히 권위있는 연례 문학상으로 뛰어난 단편 소설에 주어진다.
텍사스 주 오스틴에는 텍사스 주립 대학 시스템이 소유하고 있는 ‘O. Henry House’와 ‘O. Henry Hall’이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스보로에 윌리엄 시드니 포터 초등학교, 텍사스 주 갈랜드에 O. 헨리 초등학교, 오스틴에 O. 헨리 중학교가 그의 이름으로 명명됐다.
헨리 탄생 100주년인 1962년에 소련 우편국은 오 헨리를 기념하는 우표를 냈다. 미국 우편 서비스는 오 헨리 탄생 150 주년인 2012년 9월11일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