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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미들마치-빅토리아 시대 여류작가가 쓴 대작의 첫 문단은 만연체의 서사로 시작된다. 본문
“인류의 역사라든가, 인간이라는 불가사의한 선악의 혼합이 세월의 갖가지 시도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치고 성 테레사의 생애에 잠시나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 가련한 소녀가 어느 날 아침 남동생을 데리고 걸어오면서 무어인의 나라에 가서 순교하기를 꿈꾸는 일을 생각하면 기특하고 갸륵한 나머지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그란 눈동자를 크게 뜨고 불안한 표정으로 아빌라의 자갈길을 위태위태한 걸음걸이로 가는 모습은 흡사 두 마리의 새끼 사슴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의 자식, 그 어린 가슴은 벌써 국가적인 어떤 이상에 부응하여 맥박치고 있었다. 그러나 가정이라는 현실은 끝내 큰아버지라는 모습으로 다가가 그들을 이 위대한 결의로부터 돌려놓았다. 이 어린애 같은 순례 여행은 그야말로 그녀다운 출발이었다.”(미들마치-서곡, 이가형 역, 주영사, 2023)
1.소설로서는 보기드물게 논문형 구조를 지녔다. 서곡이라는 타이틀이 먼저 붙고, 1장이 시작된다. 특히 묵직하고 난해한 주제로 서곡을 시작하고 있다.
역사, 불가사의, 성 테레사, 국가적인, 순례 등의 어휘는 소설이 장편의 서사 문학으로 진행될 것을 예고하는 단어들이다.
번역의 한계인 지는 몰라도 글이 눈에 쏙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읽기에 불편한 느낌을 준다. 문체도 난삽한 만연체 문장이 이어진다. 이런 긴 문장과 문체는 독자들의 주의력을 집중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첫 문단 이해의 난감함을 불러온다. 과장하면 책을 읽다가 흐름을 놓칠 수 있는 서술문체다.
도입부에 나오는 *성 테레사(Theresia Magna,1515~1582)는 스페인 카르메르( Carmelo) 수도회 성녀. 수도원 개혁자로 1622년 성인 품에 올랐다. 아빌라(Ávila)의 테라사라고도 한다.*무어인(Moors)은 711년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아랍계 이슬람인의 총칭이다. *아빌라는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 지방의 아빌라 주를 말한다.
2.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지방 생활의 연구(Middlemarch, A Study of Provincial Life,1871∼1872)’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장편 소설이다.
1871년 12월부터 1872년 12월까지 여덟 권의 책으로 나온 대형 걸작(傑作)이다. 남녀의 사랑과 결혼, 야망, 여성의 지위라는 틀에 19세기 영국의 선거, 토지 개혁, 철도 부설 등이 교묘하게 짜여진 19세기 풍속화다.
이 소설은 가상의 지방인 미들마치에 대한 이야기와 저자가 기존에 써놓았던 ‘브룩 양(Miss Brooke)’이라는 소설을 결합해 탄생했다.
소설 마지막 권 출판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살아있는 영국 소설가’로 인정받았다. 나중에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1882~1941) 는 “미들 마치는 어른을 위해 쓰인 훌륭한 소설로 몇 안되는 장엄한 책”이라고 극찬했다.
이 소설은 21세기 들어 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고 있다. 2020년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위대한 소설 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 2015년 BBC 선정 최고의 영문소설 1위, 같은 해 가디언지 선정 최고의 영문소설 21위에 올랐다.
2019년 11월5일, BBC 뉴스는 “미들마치가 BBC에서 선정한 100개의 ‘가장 영감을 주는(most inspiring)’ 소설 목록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3.이 책은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학술 논문형의 소설 구조다. 그래서 서곡(Prelude)이 나오고 1장이 나온다. 그래서 논문 제목 같은 ‘지방 생활의 연구’라는 부제도 붙어 있다. 또 소설답지 않게 작가가 붙인 주석이 많다. 당연히 논문처럼 마지막엔 ‘종곡(Finale)’이 나온다.
영국의 작은 도시 미들마치 이야기지만 서사(敍事)는 넓다. 소설 속에 지주와 목사, 농부, 노동자, 여성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결혼과 직업의 선택 중요성을 소설 전개를 통해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4.1830년대의 영국 미들마치 지방과 그 주변 사회 중상류층의 삶이 배경이다. 청춘남녀의 연애 이야기와 결혼의 실생활, 1832년의 선거법 개정, 선거, 토지 개혁, 철도 부설 등 당시의 정치 사회적 변화가 그물처럼 짜여져 있다.
등장 인물들인 도로시아와 커소본, 리드게이트와 로저먼드, 메리와 프레드의 러브 스토리 같지만 얽히는 사랑, 사치와 도박, 격변하는 사회 현상이 맞물려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굴곡을 깊은 통찰력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글솜씨가ㅡ 압권이다.
5.줄거리는 남녀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에 19세기 사회상이 잘 드러나 있다. 선한 세상을 만들려는 이상을 품은 도로시아 브룩은 미들마치의 지성인이지만 나이가 많은 40대의의 커소번과 결혼한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 결혼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불행한 종말로 끝난다.
탁월한 미모를 바탕으로 좋은 결혼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은 로저먼드 빈시는 다른 지역 출신의 초보 의사 리드게이트와 결혼한다. 하지만 이 결혼도 불행한 결말에 이른다.
결혼 생활이 오히려 편안한 이들은 미들마치 출신의 난봉꾼 프레드 빈시와 시골 처녀 메리 가스다. 이들은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산다. 도로시아는 커소번이 죽고 홀로 지내다가 커소번의 유산을 모두 포기하고 레이디슬로라는 가난한 청년과 재혼한다.
돈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하고, 남편 레이디슬로는 의원이 된다. 그렇치만 서곡에 나오는 성 테레사(도로시아)의 꿈은 끝내 좌절된다.
6.영국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마틴 에이미스(Martin Amis, 1949~2023)와 줄리언 반스(Julian Patrick Barnes, 1946)는 “소설 미들마치는 영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격찬했다.
1968년 BBC 제작 TV 미니 시리즈 ‘미들마치’로 나왔다. 감독은 존 크래프트(Joan Craft)가 맡았다. 또 1994년에도 앤소니 페이지(Anthony Page, 1935~현재) 감독이 제작 반영됐다.
미국 작곡가 앨런 레이먼드 시어러(Allen Raymond Shearer, 1943~현재)가 오페라 ‘Middlemarch in Spring’으로 만들어 20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연됐다.
7.한국에서는 1990년 금성출판사에서 ‘미들마치’로 출간됐다. 영어영문학자 이가형(1921~2001) 전 국민대 영문과 교수 번역이었다.
그런데 2023년에 나온 주영사 출간본(전 4권)도 이 교수 번역본을 사실상 재출간했다. 그래도 문학계에서는 고 이가형 교수가 현대영어가 아닌 빅토리아 시대 영어를 나름대로 잘 번역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1819~1880)-
영국 여류 소설가이자 언론인, 번역자. 19세기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 한국에서 묻힌 작가이지만 문학계와 영국에서 위상은 매우 높은 작가. 당대의 어떤 작가에 견줘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위대한 문호로 꼽힌다. 본명은 메리 앤 에번스(Mary Anne Evans)이다.
1.영국 워릭셔 주 너니턴 및 베드워스 자치구 너니턴(Nuneaton) 아버리 에스테이트(Arbury Estate) 농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로버트 에번스(Robert Evans, 1773~1849)와 지역 공장주의 딸 크리스티나 피어슨(Cristina Pearson, 1788~1836)의 세 번째 자녀였다.
형제 자매들은 크리스티아나(Christiana, 1814~59), 아이작(Isaac, 1816~1890)과 1821년 태어나자 곧 죽은 쌍둥이 남동생이 있었고, 아버지의 전처 자녀인 이복오빠 로버트(Robert, 1802~1864)와 언니 페니(Fanny, 1805~1882)가 있다.
2.1820년 초 엘리엇 가족은 인근 너니턴와 베드워스 사이의 그리프 하우스(Griff House, 너니턴 남쪽 콘벤트리 로드 옆)로 이사갔다. 아버지는 엘리엇이 미인이 아니어서 결혼을 하지 못할까봐 특히 교육에 심혈을 쏟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섯 살때부터 기숙학교 생활을 했다.
5~9살까지 아틀버러(Attleborough)의 미스 라텀(Miss Latha) 학교, 9~13살까지 너니턴의 월링턴(Wallington) 부인 학교, 13~16살까지는 코벤트리의 복음주의 학교인 미스 프랭클린(Miss Franklin) 학교에서 지낸다.
다만 16살 이후로 엘리엇은 공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은 아버지 덕분(?)에 일찌감치 독서에 열중했고, 고전 장서가 많은 아버리 홀( Arbury Hall) 도서관 출입을 허락받았다. 스스로도 라틴어 고전 장서를 읽는 등 독학 열이 대단했다. 이런 독서가 나중에 자유주의와 무신론에 심취하게 만든다.
3.엘리엇은 아버지가 관리하던 토지와 그곳에 있는 아버리 홀(Arbury Hall) 도서관을 자주 방문하면서 지주와 가난한 이들 간의 빈부 격차 등을 체험했다. 또 영국 국교회(성공회) 종교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곳의 프로테스탄트(신교도) 등 비국교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36년 어머니 사망으로 가정 살림을 시작했고, 21살 때는 오빠 아이작의 결혼으로 집을 내주고 아버지와 함께 코벤트리 근처 폴실(Foleshill)로 이사했다.
엘리엇은 이 곳에서 리본 제조업자로 부자가 돼 '코벤트리 헤럴드 앤 옵저버'를 발행하는 찰스 브레이(Charles, Cara Bray) 부부와 친해졌고, 급진적인 자유 사상을 접했다.
이곳에서 공상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Robert Owen, 1771-1851),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1820~1903), 영국 최초 여성 사회학자 해리엇 마티노(Harriet Martineau,1802~1876),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1803~1882) 같은 사상가, 독일 출신 신학자 겸 철학자 데이비드 스트라우스(David Strauss)나 독일 철학자 루드릭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1804~1872) 같은 작가와 교류했다. 이른바 ‘로즈힐 서클’이었다. 엘리엇은 이곳에서 스트라우스의 ‘예수의 생애(1846)’,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1854)’을 영어로 번역했다.
4.엘리엇의 종교 의구심에 대해 아버지가 반대하자1849년 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교회를 다니며 집의 살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 장례직후 찰스 브레이 부부와 함께 스위스로 여행을 가서 제네바 플롱종(Plongeon)에 홀로 머문다. 이후 친구 프랑수아 쥘리에 달베르 뒤라르(François Juliet d'Albert Durade)가 소유한 샤누안(Chanoines)에 위치한 저택에 산다. 뒤라드는 그곳에서 서른살이 된 엘리엇의 초상화를 그려줬다.
5.1850년 잉글랜드로 돌아온 엘리엇은 작가의 꿈을 안고 런던으로 이사했다. 머문 곳은 급진적인 출판업자로 스트라우스 번역본을 출판해준 존 채프먼 집이었다.
채프먼은 좌파 미디어 ‘웨스터민스터 리뷰’ 소유주로 엘리엇은 1851년 메리 에번스라는 이름으로 부 편집장이 된다. 엘리엇은 실질 편집자로 신문을 출간하고, 1854년까지 수필과 논평을 쓴다.
6.엘리엇의 사랑은 파격 그 자체였다. 유부남으로 정부까지 있던 채프먼과 사랑을 했고, 허버트 스펜서와 관계를 가졌다.
특히 1851년 만난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유부남 조지 헨리 르웨스(George Henry Lewes, 1817~1878)와 1854년 동거에 들어가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루웨스는 4명의 아이가 있는 과부 아네스 제르비스(Agnes Jervis)와 살면서 3명의 아이를 낳는 등 파격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여동생의 난감하고 파격적인 연애에 울화통이 터진 오빠 아이작은 오누이 관계까지 끊어버렸다.
루웨스와는 1854년부터 1878년까지 동거했다. 엘리엇은 61살 때 루웨스가 죽자 20세 연하의 남자 존 월터 크로스((John Cross, 1840~1924)와 공식 결혼했다.
두 커플은 신혼여행을 간 베네치아에서 크로스가 운하로 뛰어내리는 자살 소동이 있었으나 돌아와서 첼시에 집을 얻어 살았다.
7.엘리엇의 죽음은 허망했다. 크로스와 첼시에서 살았는데 어느날 목 감염에 이은 신장질환을 앓았다. 그러다가 결혼 7개월만인 1880년 12월22일 영면했다. 향년 61세였다.
엘리엇은 신앙(영국국교회, 가톨릭) 거부, 루웨스와 파격적인 동거 등으로 런던 웨스트 민스터 작가 구역에 묻히지 못했다.
엘리엇이 묻힌 곳은 불가지론자들의 묘지인 런던 하이게이트 동쪽 묘지에 있는 동거남 조지 헨리 루이스 옆이었다. 하이게이트 묘지는 경제학자이자 사회주의자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친구 허버트 스펜서(출판인) 무덤이 있는 곳이다.
주요 작품으로 ‘플로스강의 물방앗간(The Mill on the Floss,1860)’, ‘사일러스 마너(Silas Marner,1861)’, ‘미들마치(Middlemarch,1871~1872)’, ‘다니엘 데론다(Daniel Deronda,1876)’, ‘벗겨진 베일, 1859’ 등이 있다.
8.엘리엇은 19세기의 자연주의 작가로 현실주의 문학의 길을 연 위대한 영국 작가로 평가받는다. 유명 문학 평론가(전 예일대 교수)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1930~2019)은 1994년 “서양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극찬했다.
영국의 20세기 문학 비평가 F. R.리비스(Frank Raymond Leaaavis, 1895~1978)는 저서 ‘위대산 전통’에서 “영국 소설의 전통은 제인 오스틴에서 조지 엘리엇을 거쳐, 토머스 하디, D. H. 로렌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9.엘리엇의 출생지인 너니턴(Nuneaton)에는 사후에 곳곳에 그녀를 상징하는 이름이 붙었다.조지 엘리엇 아카데미(The George Eliot Academy), 미들마치 중학교(Middlemarch Junior School), 조지 엘리엇 병원(George Eliot Hospita) 등이 있다. 또 코번트리 폴스힐에는 조지 엘리엇 길(George Eliot Road)도 있다.
리버슬리 파크(Riversley Park)에 있는 너니턴 박물관과 아트 갤러리에는 엘리엇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또 너니턴 뉴데게이트 거리에는 엘리엇의 조각상이 서 있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