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박씨전-수능에도 출제되는 國難 극복 소설의 첫 문단은 보조캐릭터 소개로 시작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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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전-수능에도 출제되는 國難 극복 소설의 첫 문단은 보조캐릭터 소개로 시작한다.

지성인간 2023. 8. 2.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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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조대왕 시절이었다. 한양성 안국방에 이득춘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이득춘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쓰더니 열살이 되기전에 남다른 총명함을 갖추었다. 아울러 문장과 무예,그리고 재주와 덕을 갖추니 전국에서 으뜸이었다. 소년 시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더니 마침내 재상이라는 높은 벼슬에 이르렀다. 재상이 되어서 위로는 충성을 다하여 임금을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어진 정치를 베풀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상공은 마음씀이 너그럽고 재주가 뛰어난 덕에 귀한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이름이 시백이었다. 시백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리하여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은 오래 기억하였다. 열다섯살에 이미 비범한 재주를 보여 문장ㅇ로는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이백거ㅏ 두보를 뛰어넘었다. 또 필법은 중국 진나라 서예가인 왕희지를 본받았고, 지혜는 중국 삼국시대의 제갈량을 본받았다.힘써 배우고 익혔다.(작자 미상, 장경남 글, 현암사, 2006)

현암사에서 2006년 발행한 '박씨전' 표지그림.일러스트레이터 겸 그림책 작가 이영경(1966~현재)의 작품이다

1.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주인공이 아닌 보조인물의 등장을 알리는 도입부다. 독자의 궁금증 유발을 위해 보조캐릭터  속에 주인공을 숨기는 서술기법이다.전형적인 전기 소설 등에 많이 사용된다. 문체적으로는  산문적이라기보다는 운문체 특성을 갖고 있다. 장르문학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 후기에 쓴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에 읽어도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다. 첫문단에 나오는 재상(宰相)은 임금을 보필해 모든 관원을 지휘 감독하는 2품이상의 벼슬아치를말한다.

2.작자 미상의 ‘박씨전(朴氏傳, 조선 후기)’은 조선 시대 제 구실을 못한 남성 지배 사회를 통박하는 여걸(女傑)소설이자 국난 극복 서사 소설이다. 
조선시대 최초로 여성영웅을 주인공ㅈ으로 한 '슈퍼우먼  소설' 이다. 호란(胡亂, 오랑캐의 난)을 겪은 민중들의 염원 등 시대정신을 반영한 작품으로 규방(閨房,집안의 여성 공간)의 베스트셀러였다. 국난 극복을 다른 세력이 아닌 당대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여성 주도로 해낸다는 점에서 자주성이 매우 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패배주의 시대에 여성을 통한 국난 극복의 의지가 숨어 있는 셈이다.
작자를 알수 없는 데다 창작 시기도 정확하게 모른다. 학자들이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때인 18세기 중반에 창작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글로 쓴 원본 없이 필사본만 전해진다. 당대 목판본(구한말 발행 활자본은 있음)이나 한문본도 발행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전하지 않고 있다. 판본에 따라서 명월부인전, 이시백전, 박씨부인전 이라고도 한다.

작자,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박씨전 첫 페이지. 연세대 도서관 소장.photo by www.aks.ac.kr

3. 실제와 허구를 교묘히 결합한 전쟁이야기인 군담(軍談)소설이다. 특히 ‘여성 영웅’이 종횡무진한 이야기다. 그것도 ‘천하 박색’의 주인공이 허물을 벗은 후 신출귀몰(神出鬼沒)하는 판타지 형식을 취했다. 
또 전생의 허물을 벗는 불교 윤회 사상, 한양과 금강산을 쉽게 오가는 공간이동 등 도교 사상 색채도 강하다. 이는 성리학의 유교가 가져온 국난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새로운 사상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밖에 번듯한 양반집으로 시집온 박씨부인이 남편의 홀대속에 후원의 피화당(避禍堂)에서 삼년 동안 홀로 기거한 것은 조선의 모진 시집살이 문화를 에둘러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조선 시대에 창작된 소설 중 ‘허물벗기’, 변신(變身)을 소재로 한 작품 중 백미(白眉)로 꼽힌다. 단순하게 보면 변신해서 미인이 된 주인공이 국난을 극복한다는 '미인 영웅주의'이지만 역설적으로 변신하지 않아도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실제 주인공  여인을 변신과 관계없이 하룻밤사이에 시아버지 조복을 짓고, 말장사로 부를 일군  여장부로 표현하고 있다.
얼굴로 여성의 가치를 따지는 조선 사회의  ‘미인 중심주의’를 비꼬고,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 인 셈이다. 외모, 신분, 남녀로 평가하는 조선 시대의 고질적인 편견과 차별에 경종(警鐘)을 울리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박색 여인이 홀대하는 시댁에서 삼종지도(三從之道,여자가 지켜야할 세가지 도리)를 지키면서 남성중심 세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언문(한글)만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조선 부녀자층에게 많은 카타르시스를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씨전은 조선시대  지배계층과 남성주도 사회의 맹점을 비판하고 대안(여성 영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선민(選民)도 아니면서 선민 행세를 하는 조선인들,  명분에 치우친 북벌론, 북방족를 오랑캐로 인식하는 것 등은 극복하지 못했다. 수십년간 이어진 변란으로 핍박해진 조선 백성의 정신승리를 담은 판타지 역사소설의 한계라고 할수 있다.

영화 '남한산성' 에 묘사된 병자호란의 무대인 남한산성 모습.영화 스틸 컷.

4.박씨전의 시대 배경은 대의명분에 집착한 조선과 신흥 강국 청나라가 싸운 '병자호란(丙子胡亂, 음력 1636년12월3~1637년1월30일, 양력 1637년1월3~1637년2월24일)'이다.
음력으로 병자년에 일어난 오랑캐 난 이어서  병자호란으로 부른다. 당시 청나라의 조선 침공은 한민족 역사상 유례 없는 치욕을 불렀다. 왕이 오랑캐의 군왕 앞에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한 것이다.
삼궤구고두례는 청나라 황제를 대면할 때 하는 인사법으로 만주어로는 ‘일란 냐퀀 우윤 헝킨 이 도로'(ilan niyakūn uyun hengkin i doro, 세 번 무릎 꿇기와 머리 아홉 조아리기의 예)’로 부른다.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라고도 한다.
병자호란은 왕조와 지배 세력의 허망한 대처로 정치적·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특히  백성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규수집 여인들까지 오랑캐에 잡혀간 사례도 많았다. 이런저런 사유로  백성들은 정서적으로 강한 패배 의식에 사로잡히게  한 초대형 사변(事變)이었다.

5.등장인물은 주인공인 박씨(부인)와 남편 이시백(李始白, 실제 이름은 李時白), 병자호란 때의 임금 인조,  인조 측근 김자점(金自點, 1588~1651, 영의정을 지냈으나 효종2년 사약), 장군 임경업(林慶業, 1594~1646), 원두표((元斗杓, 1593~1664, 인조때 형조판서), 호장(胡將) 용골대(龍骨大, 1596~1648, 청나라 이름 타타라 잉굴다이) 등이다.
또 박씨부인의 아버지 박처사, 시녀인 계화(桂花), 오랑케 왕후(胡王后) 마 씨(馬氏), 오랑캐 여자 자객 기홍대(奇紅大, 길홍대), 용골대의 동생 용홀대(龍忽大) 등도 나온다.

병자호란 때 조선 방어군을 치러 달려드는 청나라 기병대. 영화 '남한산성' 스틸 컷.

박씨전은 추녀(醜女)로 양반 대가집에 시집와서 홀대를 당한 박씨의 삶을 담은 전반부와 허물을 벗고(변신), 신기(神奇)의 미인으로 거듭나서 병자호란 때 활약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6.줄거리는 천하박색(天下薄色) 처녀가 재상집으로 시집을 와서 어려운 시집살이 끝에 전생에 진 허물을 벗고 신기를 가진 미인이 돼서 국난을 극복한다는 이야기다.
한양 사는 이득춘이 뒤늦게 득남을 했는데 이름은 시백이다. 성장하면서 사람됨이 총명하고 비범했는데 어느 날 박 처사라는 사람이 찾아와 자기 딸과 혼인을 청한다.
득춘은 쾌락(快諾)하고 정해진 날짜에 시백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가서 박씨와 혼인시킨다. 그런데 시백은 신부가 천하박색임을 알고 실망해 돌보지 않는다. 가족들마저 박씨의 얼굴을 보고 비웃고 욕한다. 이에 박씨는 후원의 피화당(避禍堂)에서 3년 동안 홀로 거처한다.
박씨는 독숙공방(獨宿空房) 하면서도 시아버지 득춘의 조복(朝服)을 하룻밤에 만드는가 하면 '말(馬) 장사'를 통해 재산을 늘리는 영특함을 보인다. 또 남편이 과거 보러 갈 때 신기(神奇)한 연적(硯滴, 벼루 물그릇)을 줘 장원급제를 돕는다.
시집살이 3년이 지난 어느날 박씨는 친정에 갔다 온다. 아버지 박 처사가 액운을 풀어주니 일순간에 절세미인으로 변한다. 능력있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탈바꿈한 박씨를 본 남편 시백과 가족들은 모두 좋아한다.
시백은 평안감사를 거쳐 병조판서에 이르고, 임경업과 함께 중국 난징(南京)에 사신으로 간다. 둘은 명나라에서 일어난 난을 진압하고 귀국해 시백은 우승상, 임경업은 부원수가 된다.
호왕(胡王, 청나라)이 조선 침공 전에 임경업과 시백을 죽이려고 기룡대라는 여자를 첩자로 보내지만 박씨가 이를 알고 혼을 내 쫓아버린다. 두 장군의 암살에 실패한 호왕은 용골대 형제에게 조선을 치라며 10만 대군을 준다.
그런데 천기를 점쳐보고 이를 안 박씨는 시백을 통해 왕에게 방비를 청하지만 간신 김자점의 반대로 무산된다. 결국 오랑캐가 침입해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왕(인조)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지만 끝내는 항복한다. 호란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으나 박 씨의 피화당은 화를 면한다.
이에 적장 용골대의 동생 용홀대(龍忽大)가 피화당에 침입하지만 박씨에게 죽고, 복수하러 온 형 용골대도 크게 혼낸다. 용골대는 인질들을 데리고 퇴군하다가 의주에서 임경업에게 대패한다. 왕은 박씨를 충렬부인에 봉한다.

7.박씨전은 조선 후기 부녀자들의 '최애(最愛) 소설'로 베스트셀러였다. 그래서 무수한 필사본 등 이본(異本, 다른 판본)이 아주 많다. 현재까지 발견된 이본이 국문 필사본 153편, 활자본 20편에 이른다.
국문 필사본 외에 활자본으로 한성서관판 ‘박씨전’, 대창서원판 ‘박씨부인전(朴氏夫人傳)’ 등이 있다. 필사본인 ‘명월부인전(明月夫人傳)’은 이 작품의 이명(異名, 다른 이름)이다.
박씨전 이후 수많은 아류(亞流, 독창성 없는 모방) 여성 주인공 소설이 등장했다. 여성 영웅 소설은 ‘곽낭자전’, ‘금방울전’, ‘뎡각록’, ‘방한림전’, ‘설소저전’, ‘여장군전’, ‘이대봉전’, ‘이봉빈전’, ‘운향전’, ‘위봉월전’, ‘여자충효록’, ‘장국진전’, ‘정현무전(정비전)’, ‘진양문록’, ‘홍계월전’, ‘황부인전’ 등이 있다. ‘여장군전은 주인공 이름을 따서 ’정수정전(鄭秀貞傳)‘이라고도 한다. 이밖에 작품의 전모가 아직 드러나 있지 않은 ‘쇼져영춘전’도 있다.

소설 '박씨전'의 실제 주인공으로 인조 때 병조판서 등을 지낸 이시백 초상화.효종1년(1650년) 영의정에 올랐다. photo by www.kogl.or.kr

#.박씨전에는 실존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1623~1649), 주인공 박씨의 남편 이시백, 임경업, 원두표, 김자점, 오랑캐 장군 용골대 등이다.

1.이시백(李時白,1581~1660)-연안이씨로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주도한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 1557~1633)와 인동 장씨 장민(張旻)의 딸 사이의 장남이다.
인조반정은 1623년 4월11일 서인 일파가 광해군(1575~1641,조선 15대 국왕)을 몰아내고 능양군 이종(李倧)을 왕으로 세운 사건이다.  이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定遠君)의 장남으로 반정 후에 왕으로 재위(1623~1649) 한다. 반정 핵심은 김류(金瑬, 1571~1648, 인조 때 영의정), 이귀(李貴), 신경진(申景禛, 1575∼ 1643, 임진왜란 무장 신립의 아들, 인조 때 영의정), 이서(李曙, 1580~1637, 인조 때 병조판서), 최명길(崔鳴吉, 1586~1647, 인조때 영의정) 등 이다.
이시백은 이귀의 아들로서 반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함경도 병마절도사 이괄(李适, 1587~1624)의 난(1624년 인조반정 논공행상에 반발해 일으킨 난)을 진압했다.
이시백은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년 1월~3월 사이의 조선과 후금의 전쟁, 조선 완패)이 났을 때는 병력을 이끌고 가장 먼저 동작나루(동작동 한강 남쪽 나루터)로 가서 인조를 강화도로 피난시켰다.

실존인물 이시백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방어전에서 분전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이시백으로 나온 배우 박희순의 열연 모습.

병자호란(丙子胡亂, 음력 1636년12월3~1637년1월30일, 양력 1637년1월3~1637년2월24일) 때는 병조참판으로 남한산성수어사·호위대장·특진관을 겸임했다. 이후 7번이나 판서를 지냈고, 만년에 영의정에 올랐다. 동생은 호조판서를 지낸 이시방(李時昉,1594~1660)이다.

2.용골대(龍骨大, 1596~1648)ㅡ호장(胡將,오랑캐 장군) =박씨잔에서 용렬하게 나오는 것과 달리 청나라의 명장이자 탁월한 정치가다. 청나라 이름은 타타라 잉굴다이. 중국식 한자로는 他塔喇 英俄爾岱로 쓴다.
만주족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정복하는 데 특등 공신으로 추앙받는다. 후금~청 건국 시기의 명신(名臣)으로  태조 누르하치(努爾哈赤,1559~1626, 재위 1616~1626)의 핵심이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에는 대 조선 외교의 실무자였고,  누루아치에 이어 홍타이지(皇太極, 숭덕제,1592~1643, 재위 1636~1643)의 최측근 장군이자 능력 있는 정치,행정가였다. 몽골 원정, 조선 침공(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명나라 정복 전투 등에서 맹활약했다
인조때 조선 지배층에서도 용골대의 외교력 등을 높게 평가했다. 그래서 용골대를 우대했다. 실제 승정원일기 4책 (탈초본 66책)에 따르면 병자호란이 끝난 이후인 인조 16년(1638년) 9월 조선은 용골대에게 홍포 500개를 보낸다. 또 국역비변사등록 12책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인조 26년 용골대가 죽자 예물(禮物)과 부물(賻物, 제사에 필요한 물건)을 보낸다.

3.박씨전은 고전 문학 중에서도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소설이다. 일반 고교 일반 모의고사에도 많이 나오고, 대입 수능시험에도 가끔 나온다.  2009학년도 수능 마지막 지문에 출제됐고, 2017학년도 수능에도 EBS 연계 지문으로 나왔다. (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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