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북회귀선-이념과 性의 범람에서 찾은 고뇌의 자전 소설은 잡담같은 자조로 시작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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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회귀선-이념과 性의 범람에서 찾은 고뇌의 자전 소설은 잡담같은 자조로 시작한다.

지성인간 2023. 7. 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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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라 보르게세에 살고 있다. 이곳에는 먼지도 없고, 의자들도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여기서는 우리 모두 고독하며, 생기를 잃고 있다. 어젯밤에 보리스는 몸에 이가 득실거리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그의 겨드랑이 밑을 면도해 주어야 했지만 그래도 가려움을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깨끗한 곳에 있는 데 이 따위가 득실거릴까. 하지만 그건 어떻든 상관없다. 만일 이가 없었다면, 보리스와 내가 이토록 친해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보리스는 대충 그의 의견의 개요(槪要)를 내게 얘기해주었다. 그는 일기예보의 명인이다. 이 악천후가….”(김진욱 옮김, 문학세계사, 1991)

문학세계가 번역 출판한 북회귀선(1991년) 초판 표지 부분

1.흐트러진 마음을 비꼬는 자존감 없는 도입부다. 자신의 처지를 우울한 날씨와 열악한 환경에 비유하면서 버거운 하루하루를 지내는 느낌이 묻어난다. 1인칭 작가 시점임에도 마치 타인의 삶을 설명하는 듯하다. 특별할것 없는 별장에서 느끼는 삶의 고단함과 우울이 잘 드러나는 첫 문단이다. 깨끗한 별장과 득실거리는 이, 일기예보의 명인과 악천후는 역설적이다. 역설을 통해 대체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 지 1인칭 화자도  모를 정도다. 이가 준 친숙도 부조리하다. 상징도 은유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난삽하게 써내려간 에세이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작가의 의도가 아니면 번역의 한계인 듯 한 데 혼란스러운 문장 전개라는 느낌이다. 본문 첫 줄의 ‘비라’는 ‘빌라’다.

2.헨리 밀러의 ‘북회귀선(Tropic of Cancer,1934)’은 작가의 반 자전적 소설로 마흔이 넘은 무명의 작가를 ‘셀럽’으로 등극하게 한 걸작이다.
지금은 고전(古典) 반열에 올랐지만 출간 초기에는 그다지 팔리지 않은 데다 경멸과 비판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노골적 성관계 묘사로 ‘성애물 작가’라는 오명도 써야 했다. 또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자서전인지 분간이 안간다는 비판도 많았다.
프랑스 오벨리스크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할 때 사실상 자비(自費)를 들였다. 출판비 5000프랑을 작가의 정부(情婦) 아나이스 닌(Anaïs Nin,1903~1977)이 조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는 머리말이 있으며, 아나이스 닌이 썼다.
처음에는 책  제목을 ‘미친 수탉(Crazy Cock)’이라고 붙이려 했으나 막판에 바뀌었다고 한다. 북회귀선은 한문 ‘北回歸線(지구 적도 북위 23˚27′의 위선, 열대와 온대를 구분하는 경계선)’이다. 영어로 Tropic of Cancer이다.

1934년 파리에서 나온 '북회귀선(Tropic of Cancer)초판본 표지. Cancer(게자리)는 북회귀선을 뜻한다. 게가 나체의 여성을 물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여기서 게는 헨리 밀러 자신을 뜻한다. photo by wikipedia

3. 이 책은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의 우울과 정치이데올로기 범람, 지식인의 사회주의 경도 등 격동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파리에서 쓰여졌다. 1930년 대 파리는 거의 모든 것이 용납되던 용광로였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개인의 자유와 일탈,방탕, 고뇌, 구원을 다룬 소설이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이  소설이 당대 문단과 사회로부터 비판이 강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책 제목 '북회귀선'은 태양이 머리 위 천정을 90도 각도로 지나는 가장 북쪽 지점을 잇는 지구상의 선(線)이다. 적도의 북쪽에서 태양이 90도로 지표면에 내리쬘 수 있는 최북단의 지점을 이은 선(태양방위각 직각 90도)을 뜻한다.
 소설 ‘북회귀선(Tropic of Cancer)에서  cancer는 라틴어로 캉케르로 읽으며,  게자리를 뜻한다. 남회귀선은 capricon 염소자리를 말한다. 제목 'Tropic of Cancer'는 다른 뜻으로 '열대의 암’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암은 문명의 질병을 상징한다. 암은 잘못 접어든 길의 종착지다. 동시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 가는 길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4.미국 작가가 쓴 소설인데도 미국에서는 출간도 못하고 금서(禁書)로 묶였다. 불안한 경제(대공황 지속)와 청교도적 엄숙주의가 지배하는 미국 사회에서 너무 리얼하고 부도덕한 애정 행위 묘사가 용납될 수 없었다. 실제 소설 속 성 묘사는 기성 윤리를 파괴하듯이 대담하게 묘사돼 있다.
세월이 흘러 27년이 지난 1961년에야 미국 그로브 프레스(Grove Press)가 출간했지만 ‘외설 도서’로 기소됐다. 이후 오랜 재판 끝에 1964년 미 연방 대법원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재판 중 펜실베니아 대법원의 한 판사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오물 웅덩이, 열린 하수구, 부패의 구덩이, 인간 타락의 잔해 속에서 썩은 모든 것의 끈적끈적한 집합체”라고 격하게 비난했다.

5.주요 등장 인물은 많지 않다. 1인칭 화자 나(헨리 밀러)를 중심으로 빌라 보르게세에서 방을 빌려주는 친구 보리스와 작가 친구 칼 등이다.
또 친구가 되는 선원 콜린스와 외교관 필모어, 두 번째 부인 모나, 실베스터와 결혼한 여자 타니아, 성적으로 부패한 남자 반 노르덴 등이다.

6.줄거리는 1인칭 화자 밀러의 끊임없는 성 탐구와 주변의 성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고뇌와 시대적 우울을 이야기한다.
1931년 반역 정신과 방랑벽이 심했던 밀러는 빈털털이 신세로 파리에 온다. 이곳에서 여류작가 지망생 아나이스 닌과 만나 인생이 바뀐다. 둘은 금지된 사랑을 자유롭게 향유한다. 둘 다 배우자가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들 앞에 아름답고 매력적인 나의 아내 준이 나타나 삼각관계가 된다. 아나이스가 준의 매력에 빠지면서 밀러와 준, 아나이스는 열정적인 연인들로 살아간다. 양성과 동성애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아나이스의 남편은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한다.

7.소설가 조지 오웰, 시인 에머슨 등의 호평에도  북회귀선은 1980년대 이후에야 제대로 평가받는다. 영국과 미국의 도서관위원회, 사서 설문조사 등에서 20세기 최고의 영어 소설 40위권에 올랐고, 2006년 미국 타임지의 좋은 영어 소설 목록에도 포함됐다.
영국 서식스 대학 피터 박스올(Peter Boxall) 교수  등이 2006년 선정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권'에도 들어갔다. 또 영국 가디언지가 선정한 ‘모두가 읽어야 할 소설 2009편’에도 포함됐다. 2011년에는 잡지 에스콰이어가 선정한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75권의 책’ 목록에도 들었다.
 

필립 카우프먼 감독이 헨리 밀러의 불륜 연인 작가 아나이스 닌(1903~1977)의 소설을 1990년 영화로 만든 '헨리와 준'. 모자 쓴 남자가 무릎을 세운 여성을 껴안는 모습을 형상화한 포스터다.photo by wikipedia

8.이 소설은 1970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미국 영화 감독 조셉 스트릭(Joseph Ezekiel Stric, 1923~2010)이 만들었는데 X 등급을 받았다.
다만 나중에 NC-17(No Children under 17 admitted) 등급으로 완화됐다. NC-17은 미국영화분류및등급위원회(Classification and Rating Adminis-tration)가 부여하는 등급의 하나다. 17세 미만은 관람하지 못하는 영화에 부여한다.
미국 유명 영화감독 필립 카우프먼(Philip Kaufman, 1936~현재)은 헨리 밀러의 연애 상대였던 아나이스 닌(Anaïs Nin,1903~1977)의 회고록 ‘헨리와 준(Henry & June)’을 토대로 1990년 영화화했다.
프레드 워드(Freddie Joe Ward, 1942~2022)와 우마 서먼(Uma Karuna Thurman, 1970~현재) 주연 영화로 NC-17 등급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1995년 4월22일 ‘미성년자 관람불가’를 달고 개봉했다.

헨리 밀러 초상.photo by wikipedia

#.헨리 발렌타인 밀러(Henry Valentine Miller, 1891~1980)=미국 소설가. 반(半)자전적 소설 선구자.

1.뉴욕 맨해튼의 요크빌(Yorkville) 구역에서 독일 출신 어머니 루이스 마리(Louise Marie Neiting)와 재단사인 아버지 하인리히 밀러(Heinrich Miller)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문은 할아버지때부터 양복점을 운영했다.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이스턴 디스트릭트 고등학교를 마친후 뉴욕시립대학에 들어갔으나 1년도 다니지 않고 중퇴했다.

2.대학 중퇴 후 급사나 전신기사 등 임시직을 전전했다. 또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서 거리에서 팔고, 여인들과 광란의 시간을 즐기는 등 방황의 날을 보낸다. 1차세계대전 기간안 1917년에는 육군성에서 잠시 근무했다가 나와서 1920년에는 배달부 생활도 한다.
그러다가 30대 후반에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또다시 방랑  생활을 했다.

3.헨리 밀러의 성(性) 연대기는 화려하다. 16세때 같은 고교 코라 시워드라는 학생과 플라토닉 러브를 한 이래 거리의 여인은 물론 숍걸, 간호원, 극장 매표원, 버스 안내양 등과 연애했다. 특히 30년 쯤 연상의 여인(폴린 차토)과 동거하느라 집에서 준 학자금까지 소진했다.
공식 결혼은 26세 때인 1917년 피아니스트 베아트리체 실바스 위켄스와 했다. 둘은 딸, 바바라 실버스를 낳고 1921년 헤어졌다. 이 딸은 30여년이 지난 1955년 바바라 샌포드가 돼 아버지와 재회한다.
결혼기간 동안 불륜 관계에 있던 준 맨스필드(June Mansfield)라는 예명을 가진 21세의 댄서 줄리엣 에디스 스머스(Juliet Edith Smerth, 1902~1979)와 1924년 재혼한다. 하지만 1929년에 이혼한다.밀러는 1944년 30살 어린 철학도인 야니나 렙스카(Janina Martha Lepska)를 만나 결혼했다. 둘은 아들 토니와 딸 발렌타인을 뒀다.하지만 또 1952년에 이혼했다.

헨리 밀러와 37살 연하 아티스트 이브 맥클루어와 다정한 한때. 출처=akg 이미지. photo by google 재인용.


이듬해 37살 연하의 예술가 이브 맥클루어와 결혼했다가 1960년에 이혼했고, 일본 도쿄 태생의 가수 도쿠다 호키(徳田ホキ,1937~현재)와 결혼했다가 1977년에 이혼했다.
이밖에 젊은 플레이보이 모델이자 칼럼니스트, 배우이자 댄서인 브렌다 비너스(Brenda Venus, 1947~현재)와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고, 이는 책으로도 나왔다.

1946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헨리 밀러의 불륜 상대이자 연인이었던 은행가의 아내이자 작가 아나이스 닌(왼쪽).photo by wikipedia

4.1934년 6월 ‘북회귀선’ 출판은 밀러의 정부(情婦)였던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의 아내 아나이스 닌(Anaïs Nin,1903~1977)이 주도했다. 당시 43세의 헨리 밀러는 20년이 넘게 글을 써왔지만 무명 작가였다.
아나이스 닌은 편집과 교정은 물론 서문까지 썼다. 또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가인 오토랭크(Otto Rank,1884~1939)로부터 돈을 빌려 책을 출판했다.
밀러는 문학적 능력 외에도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 많은 수채화(약 200개)를 그렸고, 관련 책도 썼다.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이 밀러의 수채화를 소장하고 있다. 2001년에 문을 닫기 전에 일본 나가노의 오마치 시립 미술관은 헨리 밀러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다.

헨리 밀러가 그린 여배우 지아 스칼라(Gia Scala, 1934~1972)의 초상화.photo by wikipedia

5.1940년대 미국 순회 여행을 한 밀러는 “미국은 냉방된 쾌적한 악몽(an air-conditioned nightmare)”이라고 평가했다.
198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퍼시픽 팰리세이드 자택에서 60세로 숨졌다. 사망 원인은 ‘순환기 합병증’이었다. 시신은 화장됐고, 유골은 아들 토니(Tony)와 딸(Val)이 공유했다. 아들은 자신의 사후 아버지 유골과 자신의 유골을 합쳐 캘리포니아만  바다에 뿌릴려고 보관 했다고 한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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