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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순수의 시대-상류층의 억압과 위선을 비꼰 ‘로맨스 소설의 교과서’는 음악당 품평으로 시작한다 본문
“1870년대 초 1월의 어느 저녁, 크리스티네 닐손은 뉴욕 음악 아카데미에서 열린 ‘파우스트’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40번가 위쪽‘ 머나먼 곳에 호사스러움이나 장려함으로나 유럽 대도시들과 견줄만한 새 오페라 극장을 짓는다는 이야기가 진작부터 들렸지만, 사교계 사람들은 겨울마다 이 포근한 아카데미의 붉은 색과 황금색의 낡은 박스석에 모이는 데 아직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곳이 작고 불편해서 ’신흥 부자들이‘ 꼬이지 않는다고 좋아했다. 뉴욕은 이미 그들을 두려워 하면서도 그들에게 끌리고 있었다. 또한 감상적인 사람들은 이곳에 어린 추억들 때문에, 음악 애호가들은 음악 공연장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탁월한 음향 효과 때문에 이 건물에 애착을 보였다.”(이디스 워튼 저, 고정아 옮김, 열린책들,2011)

1.첫 문단이 선뜻 읽히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도입부가 일반적인 소설과 달리 부드럽게 읽히지 않는다. 번역문이 웬지 낯선 문체로 다가오기 때문일까. 스릴러 소설 도입부같은 문장 전개가 이유일수 있다. 특히 전지적 내레이터가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듯 하다가 공연장(음악당)새로 짓는 것과 신흥부자 이야기로 넘어가 버린 것도 갑작스럽다. 그렇치만 확장되고 있는 뉴욕시와 상류사회 주민들의 반응 등 주변 환경을 세밀하게 묘사해 당대 현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첫 문단이다.
본문에 나오는 *파우스트는 프랑스 작곡가 샤를 프랑수아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 1818~1894)의 5막 오페라 ‘파우스트(Faust)’를 말한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파우스트 1편(Faust-der Tragödie erster Teil)를 각색한 것이다. 1859년 3월 19일 파리의 리리크(Liryque,오페라를 많이 공연한 테아트르 리리크)극장에서 초연. *새 오페라 극장은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아카데미는 뉴욕 음악 아카데미를 말한다.*크리스티네 닐손(Christina Nilsson, 1843~1921)은 스웨덴 출신의 실존 인물로 실력과 미모를 갖춘 소프라노였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유명한 디바 중 한 명으로 1888년 은퇴했다.

2.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1920)’는 삼각관계 연애소설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사랑과 선택을 그려낸 정교한 묘사가 일품인 고전(古典)이다. 특히 1870년대 뉴욕판 사랑과 전쟁을 다룬 로맨스 소설 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나고 미국의 풍요가 시작되는 해인 2020년 7월부터 10월까지 미국 여성 잡지 ‘픽토리얼 리뷰(Pictorial Review,1899년 9월 창간)’에 4부작으로 연재됐다가 그해 10월25일 뉴욕과 런던에서 D. 애플턴 앤 컴퍼니(D. Appleton and Company)에 의해 출간됐다. 저자는 1판 6쇄 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고, 출간 직후부터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영미 문단에서 “옛 것과 새로운 것을 조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라는 평가와 함께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른바 풍요의 아메리칸 드림이 솟구치는 1920년대 재즈의 시대에 상류사회의 위선과 억압을 비꼬며 공동체의 가치와 자아 성찰을 이야기 했기 때문이었다.
소설이 미국 보수 사회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으며, 192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명저 100’에 포함됐고, 미국도서관협회의 모던라이브러리도 ‘20세기 100대 영문학’에 선정했다.

3.이 소설은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겉으로는 뉴욕 상류사회의 세련된 외적 매너 등이 드러나지만 안으로는 억압과 위선이 가득차 있는 아이러니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결코 순수하지 못한 시대에 순수한 사람과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녹인 것이다. 그래서 제목에 나오는 영어 *Innocence(이노센스-천진난만,순수, 무결점,무죄)*를 순수로 번역하는 것도 모호하다고나 할까. 제목은 영국인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1723~1792)가 1785년 혹은 1788년에 완성 한 캐릭터 그림 ‘어린 소녀(A Little Girl)’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그림 제목은 조각가 조셉 그로저(Joseph Grozer)가 1794년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로 바꾼 뒤 굳어졌다.
소설에는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만연한 도금시대(The Gilded Age,1877~1900)인 1870년대 뉴욕이 배경이다. 당시 쉽지 않았던 불합리한 가부장제에 저항하고, 여성의 독립과 여성 간의 유대관계 회복 등 미래 여성의 초상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도 받았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력과 차가운 현실 묘사가 압권이다.

4.등장 인물은 젊고 인기 있는 성공한 변호사 뉴랜드 아처(Newland Archer), 아처의 약혼녀(아내) 메이 웰랜드, 메이의 사촌이자 맨슨 밍고트(Mingot) 부인의 손녀 엘렌 올렌스카(백작 부인), 밍고트 가문의 가장이자 엘렌과 메이의 할머니 맨슨 밍고트 부인, 딸을 제대로 된 사교계 여성으로 키워온 메이의 어머니 오거스타 웰랜드 부인 등이 중심이다.
보조 등장 인물로 첫 문단에 나오는 유명 가수로 실존인물인 크리스틴 닐손(Christine Nilsson), 메이와 엘렌의 이모 로웰 밍고트(Lovell Mingot) 부인, 부유한 청년이자 아처(Archer) 사교 서클 회원 로렌스 리퍼트(Lawrence Lefferts), 뉴욕 가족 족보 전문가 실레톤 잭슨(Sillerton Jackson)등도 나온다. 이밖에 오만한 영국 은행가 줄리어스 보퍼트와 그의 아내이자 맨슨 밍고트 부인의 조카딸 레지나보퍼트. 아처의 미망인 어머니 아델린 아처 부인, 아처의 미혼 여동생 제니 아처, 뉴욕 사교계 외곽 여성 레뮤엘 스트루더스 부인. 엘렌의 남편 올렌스카 백작, 아처의 바람 상대 유부녀 러시워스 부인 등이 나온다.

5.줄거리는 삼각관계 로맨스로 열정과 욕망, 허위와 위선, 삶의 성숙을 다룬 이야기다. 1870년대 미국 뉴욕 상류 사회를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통해 그려낸다.
1870년대 뉴욕, 부유한 변호사 뉴랜드 아처는 티 없이 순수한 명문가의 딸 메이 웰랜드와 약혼한다. 이상적인 연인들의 만남은 메이의 사촌 엘렌 올렌스카의 등장으로 깨진다. 아내에 대한 폭력 등 잔혹한 남편을 피해 뉴욕에 왔지만 사교계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뉴랜드는 메이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엘렌을 돕다가 그녀의 독특한 매력에 이끌린다. 그리고 '조화(造花)같은 약혼자' 메이에게 사랑보다 느끼지 못한다. 뉴랜드와 엘렌은 사랑에 빠지지만 이미 때가 늦은 상태다. 결국 뉴랜드와 메이는 예정대로 결혼하고, 세월은 흐르고 각자는 나음대로의 삶을 영위한다.
그렇치만 뉴랜드의 마음속에서 늘 '가지 못한 길', 엘렌을 소망한다. 엘렌은 뉴랜드 인새에서 얻지 못한 ‘꽃’이었다. 세월은 또다리 흘러 25년이 지난다. 메이도 남편 뉴랜드와 아들을 두고 사망한다. 뉴랜드와 아들 댈러스는 파리에 갔는데 어느날 아들은 어머니의 사촌이 그곳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이끌고 엘렌의 아파트를 방문한다.
그래서 뉴랜드는 아들 손에 이끌려 엘렌의 집을 방문한다. 아파트 앞까지 온 뉴랜드는 엘렌을 다시 볼 수 있지만 망설인다.결국 아들 혼자만 먼저 엘렌의 집으로 간다. 뉴랜드는 엉거주춤한 끝에 엘렌을 만나지 않고 호텔로 돌아온다.

6.이 소설은 출간이후 꾸준히 평단의 호평이 이어졌다. 출간 직후 뉴욕 타임스는 “슬프고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인 동시에 재기 넘치는 풍자 소설”이라고 썼다.미국의 비영리 독서 교육 운동 단체인 그레이트 북스 재단은 토론용 도서로 이 책을 추천하고 있다.
미국 소설가이자 배우 고어 비달(Gore Vidal, 1925~2012)은 “미국 문학에서 비운의 올렌스카 부인처럼 매혹적인 여성은 없었다”고 평했다. 문화 평론가 힐러리 켈리(Hillary Kelly)는 “스토리텔링을 소설 구조 속에 내장하고 무기화 했다”고 평가했다.
여성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엘리프 바투먼( Elif Batuman, 1977~현재)은 “워튼은 문학의 위대한 낙관주의자 중 한 명은 아니지만 소설 마지막 장에 이르러사람들이 조금 덜 위선적이고, 조금 더 기꺼이 세상을 보고 받아들인다”며 “ 더 큰 삶과 더 관대한 관점, 그것이 이 소설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가장 큰 약속”이라고 말했다.

7.영화, 연극 등으로도 많이 나왔다. 1924년 웨슬리 러글스(Wesley Ruggles,1889~1972)가 감독한 미국 무성 영화 ‘The Age of Innocence’로 나왔다.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thers) 제작으로 비벌리 베인(Beverly Bayne, 1894~1982)이 올렌스카 백작부인 역을, 엘리엇 덱스터(Elliott Dexter,1870~1941)가 뉴랜드 아처 역을 맡았다. 이 필름은 현재 사라졌다.
1934년 필립 묄러(Philip Moeller, 1880~1958)가 RKO 스튜디오(RKO Studios, 20세기 할리우드 황금기의 빅5 영화 스튜디오 중 하나)에서 영화로 나왔다. 아이린 던(Irene Marie Dunn, 1898~1990)이 올렌스카 백작부인 역을, 존 볼스(John Boles, 1895~1969)가 아처(Archer) 역을 맡았다.

8.영화 중에서는 1993년 나온 마틴 스콜세지(Martin Charles Scorsese, 1942~현재) 감독의 영화가 유명하다. 명배우 미셸 파이퍼(Michelle Marie Pfeiffe, 1958~현재)가 엘렌 올렌스카 백작부인 역을, 다니엘 데이 루이스(Daniel Michael Blake Day-Lewis,1957~현재)가 아처 역을, 위노나 라이더(Winona Ryder,1971~현재)가 메이 웰랜드 역을 맡았다. 제6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받았고, 여우조연상(위노나 라이더), 각색상, 음악상, 미술상은 후보에 올랐다. 그해 골든 글로브도 받았다. 다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연극은 1928년 마가렛 에이어 반즈(Margaret Ayer Barnes, 1886~1967)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제작, 무대에 올렸다. 독일 출신 유명 배우 캐서린 코넬(Katharine Cornell, 1893~1974)이 엘렌 올렌스카 백작 부인 역으로 출연했다.
뮤지컬로는 2018년 더글라스 맥그래스가 각색, 여배우 시에라 보게스(Sierra Marjory Boggess, 1982~현재)와 보이드 게인즈(Boyd Payne Gaines, 1953~현재)가 주연으로 나와 코네티컷 주의 하트포드 스테이지와 맥카터 극장에서 공연됐다.
2009년 미국 CW 네트워크에서 방영한 텔레비전 청소년 드라마 시리즈(2007년 9월 19일부터 2012년 12월 17일) '가십걸-불협화음의 시대'에서 등장인물들이 '순수의 시대'를 연극 버전으로 제작, 상연한다.

9.한국에서 책은 1993년 오리진 출판사에서 '순수의 시대(석은영 옮김)'로 나왔다. 그해 나온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동명 영화 스틸 컷을 표지로 해서 출간됐다. 이후 민음사, 열린책, 문예출판사 등 다양한 출판사에서 번역됐다. 영화는 1994년 9월17일 서울에서 개봉했다.

#. 이디스 워튼 (Edith Wharton,1862~1937)=미국 소설가, 디자이너. 여성 최초의 소설 부문 퓰리처상 수상자(1921). 예일대 명예 문학 박사 학위 취득자. 본명은 이디스 뉴볼트 존스(Edith Newbold Jones)이다.
1.미국 뉴욕웨스트 23번가 14번지의 브라운스톤에서 아버지 조지 프레드릭 존스(George Frederic Jones), 어머니 루크레시아 라인란더 존스(Lucretia Rhinelander Jones) 사이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두명의 오빠, 프레드릭 존스와 헨리 존스가 있었다.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저명한 가문 출신으로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 매우 부유했다. 가족은 남북전쟁(1862~1865) 전후의 어지러운 국내 상황으 피해 이디스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시기부터 열 살이 될 때까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2.이디스는 아홉 살 때 장티푸스를 앓아 생사를 넘나들었고, 가족은 이디스가 10살이던 1872년에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디스는 유럽에 머물던 시기부터 유능한 '입주 가정교사(governess)'인 안나 캐서린 발만(Anna Catherine Bahlmann,1849~1916)의 지도를 받았다.
특히 가정 교사 안나의 도움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문학, 철학, 종교 서적을 탐독했다. 안나는 작가로서 이디스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 보았고, 더 많은 문학과 글쓰기 시간 커리큘럼에 넣었다. 16살 때인 1878년 첫 시집 ‘Verses’을 개인적으로 출간했다. 1882년 아버지가 사망했다.

3.이디스의 사랑은 많은 제약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1880년 무렵 뉴햄프셔 시골 출신의 부유한 호텔리어이자 부동산 투자자인 파란 스티븐스(Paran Stevens)의 아들인 헨리 리덴 스티븐스(Henry Leyden Stevens)가 구애, 1882년 약혼까지 했다. 하지만 가족들이 반대, 무산됐다.
1883년 메인 주 바 하버에서 작은 오빠의 친구로 열두살 연상의 에드워드 로빈스(테디) 워튼(Edward Robbins(Teddy) Wharton, 1850~1928)를 만났다. 둘은 1885년 뉴욕 맨해튼의 트리니티 채플 콤플렉스(Trinity Chapel Complex)에서 결혼했다.
둘은 뉴욕시와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에 있는 집을 오가며 살았다. 그런데 1894년 무렵부터 남편 테디 워튼은 만성 우울증을 앓았다. 이때부터 남편과 불화를 겪으며, 신경 쇠약증에 걸렸다.
1901년 에디스의 많은 것을 제약하던 어머니가 사망, 많은 유산을 남기면서 워튼 부부는 매사추세츠 주 레녹스에 큰 집 ‘더 마운트’를 지었다.
그곳이 그들의 주 거주지가 되었다. 하지만 부부는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는 일이 거의 없었고 아이도 낳지 않았다. 우울증을 앓던 남편 테디 워튼의 정신 상태는 1908년에 이르러 불치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4.이디스는 디자인과 건축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더 마운트’를 지을 때도 건축과 조경에 많은 관여를 했고, 건축 관련 책인 ‘The Decoration of Houses(1897)’를 오덴 코드맨 주니어(Ogden Codman, Jr.)와 공동 저술했다.
이디스는 신경 쇠약을 치료하기 위해 유럽으로 이주, 이후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유럽 지역의 역사, 건축, 미술에 대한 글과 소설을 썼다.
1905년 장편소설 ‘환락의 집’을 발표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이 때부터 소설 이론의 대가인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 ), 싱클레어 루이스(Harry Sinclair Lewis, 1885~1951, 1930년 미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 프랑스 시인이자 극작가 장 콕토(Jean Maurice Eugène Clément Cocteau,1889~1963),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André Gide,1869~1951, 1947년 노벨문학상 수상), 폴란드 출신 영국 작가 조셉 콘라드( Józef Teodor Konrad Korzeniowski, 1857~1924) 등 유명한 문인들과 교류했다.

5.이디스는 1906년 무렵 지적인 남자를 만나 푹 빠졌다. 작가이자 런던 타임즈의 외국 특파원인 모튼 풀러턴(Morton Fullerton, 1865~1952)이었다. 둘은 1906년부터 1909년까지 불륜과 지적 파트너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디스와 풀러턴의 금단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디스는 풀러턴과 헤어지면서 두 사람 사이의 모든 편지 등을 파기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풀러턴은 보관했고, 이 편지는 두 사람 사후 수십년이 지난 1968년 부분 공개됐고, 1988년에 ‘이디스 워튼의 편지(The Letters of Edith Wharton)’라는 책으로 나왔다. 편지가 공개되면서 소문으로 떠돌던 두 사람의 불륜이 세상에 정확하게 알려졌다.
6.1911년 테디 워튼은 이디스에게 자신이 불충실했고, 이디스가 글쓰기를 통해 번 돈 대부분을 썼다고 고백했다. 부부 관계는 막판으로 내몰렸다. 이디스는 1911년 어머니의 유산으로 지어서 부부가 살던 ‘더 마운트’를 팔고 파리로 건너갔고, 1913년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결혼 28년 만인 1913년 말 테디 워튼과 이혼했다. 남편 테디는 더 마운트를 떠난 후 레녹스의 워커 스트리트 81번지에 있는 어머니의 여름 별장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28년 사망했다.

7.파리에 살던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이디스는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올수도 있었으나 파리에 남아서 정력적인 구호 활동을 펼쳤다. 벨기에 난민들을 위한 집과 학교를 짓는 자선 사업에 돈을 사용했고, 최전선을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이디스는 연합군의 최전선을 방문한 보기 드문 작가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1916년 4월18일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레이몽 푸앵카레(Raymond Nicolas Landry Poincaré, 1860~1934) 정부는 이디스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Ordre national de la Légion d'honneur)을 수여했다. 피난도 가지 않고 헌신한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이디스는 파리를 떠나 북부 일드프랑스(Île-de-France)의 발두아즈(Val-d'Oise) 주에 있는 생브리스수포레(St.Brice-sous-Forêt) 마을의 18세기 집, 파빌론 콜롬베(Pavillon Colombe) 구입해 이사했다.
이디스는 또 1920년에는 프랑스 남부에 복원된 수녀원인 샤토 생클레르(Château Ste.-Claire)를 매입했다. 이디스는 말년에 이 두 곳을 오가며 지냈다.

8.여성 최초로 1921년 퓰리처 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상 선정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언론인 스튜어트 프랫 셔먼(Stuart Pratt Sherman, 1881~1826), 작가이자 정치인 로버트 모스 로벳(Robert Morss Lovett,1870~1956,시카고대 영문학교수), 소설가 햄린 갈런드(Hamlin Garland,1860~1940,1922년 풀리처상 전기 부문 수상자) 등 3명의 소설 심사위원단은 싱클레어 루이스(Harry Sinclair Lewis, 1885~1951, 1930년 미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의 풍자 소설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1920)’로 결정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컬럼비아 대학 총장 니콜라스 머레이 버틀러(Nicholas Murray Butler,1862~1947,1931년 제인 애덤스와 노벨 평화상 공동수상)가 이끄는 컬럼비아 대학의 자문위원회는 심사위원단의 결정을 번복,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의 작가 이디스 워튼로 결정했다
이후 이디스의 명성은 더 높아졌고, 1923년에 미국 예일대학교는 문학적 업적을 인정해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1927년, 1928년, 1930년 세 차례에 걸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 했다.1930년에는 미국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됐다.

9.이디스는 1934년 자서전 ‘뒤돌아보는 시선(A Backward Glance)’를 출간했다. 다만 자서전에는 민감한 이야기는 거의 들어 있지 않았다. 어머니 루크레티아 존스에 대한 비판, 남편 테디 워튼과 갈등, 풀러턴과 불륜은 1968년 예일대의 베이네케 희귀 도서실과 원고 도서관에 보관된 그녀의 글이 공개될 때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디스는 일흔다섯의 나이인 1937년 6월1일 프랑스 시골집 생브리스수포레(St.Brice-sous-Forêt) 의 파빌론 콜롬베(Pavillon Colombe)에서 심장 마비로 쓰러졌다. 당시는 ‘The Decoration of Houses’의 개정판을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9.이디스는 병석에 누워 있다가 1937년 8월 11일 영면했다. 침대 곁에는 친구인 로얄 타일러 부인(Mrs. Royall Tyle)이 있었다. 공식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향년 75세.
장례식에는 약 100명의 친구들이 참석, 찬송가 '오 낙원이여'의 부르며 장송했다. 베르사유의 고나르 묘지(Cimetière des Gonards)의 개신교 구역에 묻혔다.
이디스는 평생 소설, 시, 에세이, 여행기, 회고록 등 40여 권이 넘는 책을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환락의 집(The House of Mirth)’, ‘그 지방의 관습(The Custom of the Country)’, ‘여름(Summer)’,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 ‘이단 프롬(Ethan Frome’ 등이 있다.
10.이디스의 삶은 여행, 그 자체였다. 19~20세기에 대서양을 가장 많이 건넌 작가였다. 태어나자 마자 남북전쟁을 피해 유럽으로 가는 등 일생 동안 대서양을 60번이나 건넜다. 목적지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이었다. 매년 유럽을 여행하는 데 몇 달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다양한 여행 관련 글을 썼고, 에게해 여행 일기 ‘바나디스의 크루즈’를 내기도 했다. (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