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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신들은 목마르다-피가 피를 부른 혁명 과잉시대, 프랑스혁명을 쓴 소설의 첫 문단은 支離하게 시작된다 본문
제1장 “다비드의 제자이며, 이전에 앙리 4세 구(區)였던 퐁네프 구의 위원인 화가 에바리스트 가믈랭은, 3년 전인 1790년 5월 21일부터 구 총회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옛 바르나바 교회에 아침 일찍이 갔다. 그 교회는 재판소의 철책 근처, 좁고 어두침침한 광장 위에 서 있었다. 고전적인 두 기둥 양식에다 불꽃이 솟아나오는 화로들이며 거꾸로 놓인 까치발 달린 탁자들로 장식된 정면은 세월의 풍상에 시달려 음산해지고 인간의 손을 타 훼손된 모습이었다. 정면에 새겨진 종교적인 문장들은 망치질이 되어 있었고, 출입구 위에는 검은 글씨로 ‘자유,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공화파의 표어가 쓰여 있었다. 에바리스트 가믈랭은 중앙 홀 안으로 들어갔다. 둥근 천장은 성 바울 수도회 성직자들이 중백의(中白衣) 차림으로 성무일도를 올리는 소리를 들어왔으나, 이제는 시의 관리들을 선출하고 구 업무에 관해 토의하고자 모인 붉은 모자를 쓴 애국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인들은 벽감에서 끌어내려져 브루투스, 장자크(루소), 르 펠티에의 흉상으로 대체되어버렸고, 탈취당한 제단 위에는 인권선언문이 적힌 목판이 우뚝 서 있었다.”(아나톨 프랑스 저, 김지혜 옮김, 2011, 뿌리와이파리)
1.도입부가 너무 지리멸렬(支離滅裂)한 문장의 연속이어서 숨이 막힐 정도다. 번역 문체가 매끄럽지도 깔끔하지도 않아 불편한 느낌이 그대로 다가온다. 3인칭 주인공을내세워 3년 전 일을 회상하듯이 써내려 갔지만 바르나비(Barnabites) 교회 묘사를 통해 종교와 혁명에 대한 회의(懷疑)가 짙게 드러난다. 특히 혁명의 위대함보다 불온한 혁명 분위기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음미할수록 혁명의 광기(狂氣)와 허망함이 묻어난다. 이는 소설의 전개와 결말을 예고하는 것이라 하겠다.
본문에 나오는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 전후 활동한 유명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다. *앙리4세(Henri IV, 1553~1610)는 부르봉가 출신 최초의 프랑스 왕이다. *성무일도(聖務日禱, Divine office Liturgy of the hours Daily Office Breviary)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공적이고 공통적인 기도를 말한다. *퐁네프(Pont Neuf)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으로 파리의 두번째 다리이다.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 BC 85~BC 42)는 로마시대 공화주의자로 개선장군이자 독재관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BC 100~BC 44) 암살에 동참한 이다.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교육가,인민 주권론자로 프랑스 혁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르 펠티에는 혁명 당시 치안판사 출신 법학자이자 공화주의자로 식당에서 왕당파에 살해당한 루이 미셸 르 펠레티에 (Louis-Michel Lepeletier, Marquis de Saint-Fargeau, 1760~1793) 이다.
2.아나톨 프랑스의 ‘신들은 목마르다(Les dieux ont soif,1912)’는 장엄한 혁명의 아름다움이 아닌 혁명의 주체인 인간 군상의 모습을 제대로 묘사한 걸작(傑作)이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발발한 프랑스 혁명(La Révolution française, French Revolution)의 후반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혁명의 위대함’이 아닌 ‘혁명의 서늘함과 회의주의’가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1911년 11월 중순~1912년 1월 중순까지 ‘레뷔 드 파리(Revue de Paris,1829년 창간된 문학잡지, 1970년 폐간)’에 처음 연재된 후 6월 중순 칼만 레비(Calmann-Lévy, 1836년 설립 출판사)에서 나왔다. 간행 당시 역사 소설의 거의 모든 요소를 갖춘 소설로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제목 ‘신들은 목마르다’는 프랑스 혁명파의 저널리스트이지만 자코뱅파(Jacobins,파리 자코뱅 수도원을 본거지로 한 데서 유래)의 과격주의를 비판하다가 처형당한 프랑스 언론인 카미유 데물랭(Camille Desmoulins,1760~1794)이 파리에서 낸 간행물 ‘르 비유 코들리에(Le Vieux Cordelier,1793년12월5~1794년2월 3일 발행)’의 마지막 호에서 가져온 것이다. 카미유 데물랭은 1794년 4월5일 단두대에서 처형됐고, 아내 안느 루실 필리프 데물랭(Anne-Lucile-Philippe Laridon-Duplessis)도 핏덩이 아들 호레이스 카밀 데물랭(Horace Camille,1792~1825)을 남긴 채 4월 13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 평단에서 1900~1950년 사이 출판한 최고의 프랑스어 소설 12편에 주는 문학상인 ‘반세기 최고의 소설 그랑프리(Le grand prix des Meilleurs romans du demi-siècle, 1950년6월3일 르 피가로 발표)’에 선정됐다. 영어로는 ‘The Gods Are Athirst’로 번역됐다.
3.프랑스 혁명 시기 피를 피로 씻는 ‘공포정치(1793~1794)’의 시간, 빵도 자유도 아닌 ‘죽음’의 잔치, 혁명의 과잉이 이어지던 시기의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소설은 혁명은 죽은 이도, 죽인 이도, 살아남은 이도, 모두가 희생자라는 것을 드러낸다.
프랑스 혁명기 파리의 특정한 사건들이 사실 그대로 드러나 있는 소설은 당시 드물게도 보통 사람(일반 민중)들의 ‘보잘 것 없는’ 일상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특히 다양한 인물 군상에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재치있는 언어를 접목, 혁명가의 허망한 정의(正義), 성직자의 탐욕(貪慾), 장광설(長廣舌)의 학자(지식인) 등을 비꼰다.
혁명에 휘말리는 일반 민중의 다양한 행태를 통해 ‘정치와 인간’ 또는 ‘혁명과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4.등장인물은 혁명 쪽에 선 주인공인 가난한 화가 에바리스트 가믈랭(Évariste Gamelin), 가믈랭의 연인인 인쇄상 장 블레즈(Jean Blaise)의 딸 엘로디 블레즈(Élodie Blaise), 혁명주의자 자크 모벨(Jacques Maubel), 옛 귀족 모리스 브로토(Maurice Brotteaux) 등이 주요 인물이다.
또 옛 귀족 여인인 로슈모르, 비르나바회의 롱그마르 신부, 어린 매춘부 아테나이스, 엘로디의 전 연인 자크 모벨, 장교 포르튀네 드 사샤뉘, 엘로디의 나중 애인 데마이 등도 나온다. 이밖에 프랑스 혁명 공포정치 당시의 혁명가들인 장 폴 마라 (Jean-Paul Marat, 1743~1793, 의사이자 물리학자), 조르주 자크 당통(Georges-Jacques Danton,1759~1794, 변호사),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 1758~1894, 변호사) 등이 직간접적으로 등장한다.
5.줄거리는 순수한 열정의 가난한 화가가 프랑스 대혁명에 환호하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공포의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의 이야기다. 파리의 젊은 화가 에바리스트 가믈랭은 혁명에 환호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가믈랭은 연인 엘로디를 사랑하는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혁명에서는 완장을 차고, 퐁뇌프(Pont-Neuf, 새로운 다리)의 지방 정부에 관여한다. 또 혁명가 마라, 로베스피에르를 추종하면서 혁명 재판소의 배심원이 된다.
가믈랭은 특히 혼란의 한복판에서 혁명의 성과를 말살하려는 음모에 맞서 단두대에서 수많은 이들을 처단하는 등 피와 공포에 대한 갈증의 시간을 이어간다. 그렇지만 가물랭 역시 자신이 사용한 정의 권력에 의해 단두대에 선다.
가믈랭은 단두대로 가면서 적의 피를 아꼈던 혁명재판소의 관대함을 한탄한다. 가믈랭이 처형되고, 혁명이 사그라든 이후 엘로디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6.마리 클레르 방콰르트(Marie-Claire Bancquart, 1932~2019)는 1950년대에 나온 갈리마르-폴리오 판의 서문에서 “프랑스 혁명의 시기에 대해 쓰여진 가장 아름다운 역사 소설 중 하나”라고 썼다.
일본의 저명한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1995)는 “‘혁명심리’에 관해 여느 정치학 교과서보다 더 귀중한 암시를 주는 문학 작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Eric Arthur Blair,1903~1950)은 1944년 10월 트리뷴에 기고한 글에서 “(프랑스 혁명에서 인간 군상을 잘 묘사해)소설이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면서도 “(소설 속 공포와 관능 묘사는)포르노그래피에 대한 끊임없는 취향"이라고 평가했다.
7.영화는 1926년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피에르 폴 기욤 마로동(Pierre Paul Guillaume Marodon,1873~1949)에 의해 동명 제목으로 나왔다. 한편 한국에서는 완역이 늦어졌다. 2011년 뿌리와이파리 출판사(김지혜 번역)에서 나왔다.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1844~1924)=프랑스 소설가이자 비평가. 노벨문학상 수상(1921) 작가. 고대 그리스 로마 고전과 프랑스 문학과 철학사에 정통한 고전주의자.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19세기 말~1914년) 시대 공화주의자이자 대표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화자 마르셀의 문학적 우상 베르고트의 모델. 아나톨 프랑스는 본명 프랑수아 아나톨 티보(Francois Anatole Thibault)를 줄인 이름이다.
1.파리의 서적상 프랑수아 노엘 티보(François Noël Thibault, 1805~1895?)와 어머니 앙투아네트 갈라스(Antoinette Gallas, 1840년 티보와 결혼, 생몰 미상)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파리 센 강 기슭에서 ‘리브레리 드 프랑스’(프랑스 서점)라는 고서점을 운영했다.
가톨릭 명문 사립 학교인 콜레주 스타니슬라스(Collège Stanislas de Paris, 1804년 개교, 파리 6구 Rue Notre-Dame-des-Champs)에서 공부했고, 졸업 후 일시적으로 아버지 서점에서 일했다.
2.1867년 파리에서 나오는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가 1876년 프랑스 상원의 도서관 사서로 취직했다. 1873년 ‘황금 시집’을 출판, 문단에 데뷔했다.
‘실베스트르 보나르의 범죄(Le Crime de Sylvestre Bonnard, 1881)’로 첫 성공을 거뒀다. 이 소설은 1884년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를 받는데 영향을 줬고, 1886년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상을 받는데 한몫했다. 1896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Académie Française) 회원으로 선출됐다.
3.22세 때 연상의 여배우 엘리스 디보요드(Elise Devoyod,1838~1912, 본명 Pierrette Louise)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그 무렵 마담 드 로네(Madame de Launay)가 된 이자벨 꽁브루즈(Isabelle Combrouse)와도 관계를 맺었다.
또 수도회에 들어간 엘리사 라울린(Elisa Rauline) 등과 연애했다. 1867년에는 마드모아젤 노테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 에밀 폴 부인이 됐다.
4.결혼 상대는 화가의 딸이었다. 루이 16세(Louis XVI, 1754~1793, 단두대 처형)를 그린 세밀화가 장 우르뱅 게랭(Jean-Urbain Guérin, 1760~1836)의 손녀인 마리 발레리 게랭 드 소빌(Marie-Valérie Guérin de Sauville, 1857~1921)과 1877년 결혼했다. 둘 사이에서 1881년 딸 수잔(1881~1918)이 태어났다.
하지만 1888년 은행가의 딸로 유명한 문학 살롱 주인인 유부녀 아르만 드 카일레베 부인(Madame Arman de Caillavet, 본명 레옹틴 리프망(Léontine Lippmann, 1844~1910)을 만나 불륜 관계를 지속한다. 결국 1893년 부인 마리와 정식 이혼했다. 마담 아르만 카일레베와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다.
남미 여행 중 코메디 프랑세즈 (Comédie Française)의 여배우 잔 브린도 (Jeanne Brindeau)와 또 다른 불륜을 저질렀으며, 그녀는 자살 시도까지 했다. 1910년 무렵에는 게이지 부인(Madame Gagey)을 만나 깊은 관계를 맺었는데 게이지 부인은 1911년 절망 속에서 자살, 충격을 줬다.
1920년에는 전 연인 카일레베 부인의 비서였던 엠마 라프레보테(Emma Laprévotte, 1871~1930)와 결혼, 1924년까지 영면할 때까지 함께 한다. 이후 엠마 라프레보테는 참정권 운동가로 여권 신장에 이바지하다가 사망한다.
5.프랑스에서 19세기 말 ‘드레퓌스 사건( Dreyfus affair, 1894~1899)’이 터지자 작가이자 언론인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와 함께 비판적 지식인의 대열에 합류한다. 드레퓌스 사건은 알자스 출신의 유태계 군인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 1859~1935)를 독일 스파이로 조작, 기소한 사건이다.
아나톨프랑스는 당시 ‘드레퓌스 사건’을 옹호한 가톨릭계가 자신을 비난하자 “어리석은 소리를 5천만 명이 지껄인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어리석은 소리”라며 ‘드레퓌스 사건’를 강력 비판했다.
1902년 에밀 졸라가 자택에서 일산화탄소 중독(나중에 굴뚝청소부가 범인으로 자백)으로 사망하자 장례식에서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에게 바치는 경의’를 제목으로 조사를 했다. 이 조사는 ‘명문(名文)’으로 유명하다. 이런 진실 투쟁의 선봉에 서자 로마교황청은 모든 작품을 가톨릭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에 올렸다.
6.말년에는 프랑스 중부 내륙도시 생 시르 쉬르 루아르(Saint-Cyr-sur-Loire) 근처 라 베첼레리(La Béchellerie)의 저택으로 하향, 사회주의자의 삶을 살았다.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볼세비키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 중심의 무장 봉기)이 일어나자 공공연히 지지했다. 또 1920년 파리에서 창당된 프랑스 공산당을 지지했다.
1921년 소설 ‘펭귄의 섬’ 발표 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노벨상위원회는 “고귀한 문체, 심오한 인간적 동정심, 우아함, 진정한 갈리아 기질로 특징지어지는 문학적 업적을 기린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7.아나톨 프랑스는 1923년 아내 엠마와 손자 루시앙 프시 차리(Lucien Psichari, 1918년 죽은 딸의 아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유언장을 작성했고, 1924년 10월12일 생 시르 쉬르 루아르(Saint-Cyr-sur-Loire) 자택에서 영면했다.
사망이 발표되자 하원 의장 폴 페인레베(Paul Painlevé, 1863~1933, 수학자이자 정치가)는 "오늘 밤 인간의 지능 수준이 떨어졌다"고 애석해 했다. 죽은 후 기묘한 일이 있었다. 뇌를 꺼내 무게를 측정했더니 겨우 1017g(성인 남성 1300~1400g)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 가벼운 뇌를 가지고도 시대의 지성으로 인정받았으니 뇌의 무게와 지능에 별 연관이 없다는 사례로 꼽힌다.
프랑스는 국장(國葬)으로 경의를 표했다. 파리 빌라 사이드(Villa Saïd, 1893년 첫부인과 이혼 후 살던 집)로 옮겨졌고, 국회의장 에두아르 헤리오(Édouard Herriot,1872~1957, 1926년,1932년 프랑스 총리)과 가스통 두메르그(Gaston Doumergue, 1863~1937, 1913~1914 프랑스 총리)대통령 등이 조문했다. 파리 근교 뇌이 쉬르 센(Neuilly-sur-Seine) 공동 묘지 부모님 옆에 묻혔다.
8.주요작품으로는 1912년 출간한 장편 소설 ‘신들은 목마르다(Les dieux ont soif, 영어 The Gods Are Athirst)’가 유명하다. 작품으로 ‘내 존재의 아픈 얼굴’, ‘실베스트르 보나르의 죄(Le crime de Sylvestre Bonard, 1881)’, ‘페도크 여왕의 통닭구이 집’, ‘제롬 쿠아냐르의 견해’, ‘타이스’, ‘붉은 백합(Le Lys rouge, 1894)’, ‘코린트의 결혼’, ‘에피쿠로스의 정원’, ‘펭귄의 섬(L'île des Penguins, 1908)’, ‘꽃다운 인생’, ‘드 뤼지 부인’ 등이 있다. 사후 1년 뒤인 1925~1935년 사이에 25권으로 출판사 칼만 레비(Calmann-Lévy)에서 간행됐다.
9.현대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정교분리(laicite, 라이시테)를 적극 지지해 가톨릭계의 견제를 받았다. 모든 저서가 가톨릭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에 오른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했다. 한편 프랑스는 1905년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관한 법률’을 채택, 정교분리 세속주의인 라이시테(laicite)를 사실상 문헌화 했다.
아나톨 프랑스는 생전 당대 프랑스의 이상적인 문인, 살아있는 지성으로 추앙받았지만1930년대 이후 젊은 세대의 비판을 받는다. 초현실주의자들의 눈에 ‘전형적인 구시대 작가’로 인식돼 비판 받은 것이다. 그래서 많은 평론가들이 ‘표절이 눈에 띈다’, ‘감수성의 깊이가 없다’, ‘문체가 너무 반질거린다’, ‘고전적이고 피상적인 문체다’, ‘이성적이고 타협적이다’, ‘자기 만족적이고 득의양양한 작가’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영국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1950)은 "(아나톨 프랑스가)부분적으로 정치적 동기에서 공격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프랑스 문단을 힐난했다.
10.프랑스 많은 공공 도로와 대중 교통(파리 지하철 등), 거리와 역에 이름이 붙어 있다. 파리 지하철 3호선 루이즈 미셸Louise Michel 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1844~1924)’ 거리다.177개 이상의 학교, 대학 및 고등학교가 학교 이름에 ‘아나톨 프랑스’를 넣어 사용하고 있다. 1937년에 프랑스 우체국, 1981년 스웨덴에서 초상이 새겨진 우표가 발행됐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