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아Q정전-중국인의 정신승리를 질타하며 변혁의 열망을 담은 소설은 자아비판으로 시작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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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중국인의 정신승리를 질타하며 변혁의 열망을 담은 소설은 자아비판으로 시작된다.

지성인간 2023. 5. 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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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Q에게 정전을 써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한두 해 된 게 아니다. 그러나 막상 쓰려다가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내가 문장가가 못 된다는 확실한 증거이리라, 대개 불후의 인물인 경우 불후의 문장력을 지닌 사람이 써왔다. 글을 통해 사람이 전해지고 글은 또 사람을 통해 전해져서 결국은 누가 누구에 의해 전해지는지 점점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아Q를 글로 전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내가 귀신에라도 씐 모양이다.”(이욱연 역, 문학동네, 2011)
 

1923년 전후 영역된 ‘아Q정전’ 영문판 표지. photo by wikipedia

1. 옛 문체의 번역본임을 감안하면 의외로 쉽게 읽힌다. 또 문장 하나 하나가 길지 않아서 몰입하기 좋은 첫 문단이다. 화자(話者)인 내가 직접 적 행위를 하지 않고, 주인공 아Q(중국 민족)을 내세운 것은 풍자를 비판을 쉽게 하기 위한 서술 기법이다. 계몽 소설의 도입부로 제격인 셈이다.정전(正傳)은 바르게 쓴 전기를 말한다.

2.루쉰의 ‘아Q정전(阿Q正傳, Ā Q Zhèngzhuàn,1923)’은 청나라가 멸망하고, 신 중국이 들어서는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에 우매한 민중을 계몽하기 위해 쓰여진 소설이다.
특히 만주족의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한족 중심의 나라를 가져온 신해혁명(1911)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중국인의 ‘정신 승리’를 풍자와 해학으로 날카롭게 꼬집었다.
소설 곳곳에는 자국민을 비판하는 풍자 자체가 서늘할 정도로 강하다. 이는 봉건 사회에 익숙한 당시 중국인을 일깨우기 위한 채찍질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 번역 제목은 ‘The True Story of Ah Q’이다.

3.아Q정전은 백화(白話, 입말(口語體), 특히 베이징 말)로 쓰여진 중편소설이다. 1921년12월에서 1923년2월까지 베이징 신문 ‘천바오(晨報)의 부록판에 연재됐다. 필명은 파촉인(巴蜀人,중국 파 지방 사람을 줄인 파인(巴人)이었다.파인은 중국에서 촌사람,시골뜨기로 쓰인다.
아Q라는 품팔이꾼이 주인공을 통해 중국인의 나쁜 근성을 다양한 풍자와 은유 등을 통해 지적한다. 특히 자국인(봉건 중국인)에 대한 조소와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아Q는 마지막엔 총살당한다. 이는 '봉건 중국'을 보내는 장송곡(葬送曲)인 셈이다.

홍콩 명배우 장국영·장만옥·유덕화가 출연한 영화 ‘아비정전’ 스틸 것. photo by wikipedia

4.아Q정전은 영화는 물론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재생산됐다. 1981년 루쉰 탄생 100주년에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나왔다. 이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압권이다.
“아Q는 죽었다. 그에게는 여자가 없었으나, 젊은 비구니가 욕했던 것처럼 자손이 끊이지 않았다. 집안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Q는 후손이 있으며 자자손손 번창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왕자웨이(王家卫, Wong Karwai) 감독이 만든 홍콩영화 ‘아비정전(阿飛正傳,1990)’은 아Q정전을 패러디 한 것이다. 이영화는 홍콩의 스타들인 장국영(張國榮,Leslie Cheung,1956~2003), 장만옥(張曼玉,Maggie Cheung,1964~현재), 유덕화(劉德華,Andy Lau,1961~현재) 등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5.아Q정전은 루쉰을 중국의 대표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소설이다. 중국 근현대 소설 중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됐다. 당시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1866~1944, 19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등이 호평했다.

중국 사진 작가 사페이(沙飛,1912~1950) 가 찍은 1936년 9월말의 루쉰.사망 11일 전 사진이다. photo by wikipedia

#.루쉰(魯迅, Lu Xun,1881~1936)=중국의 작가이자 사상가. 근현대 중문학의 아버지.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유년기에는 장서우(樟壽)로 불렸다.

1.청나라 시대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縣)의 부잣집(봉건 소지주)에서 태어났다. 사오싱 사립학교, 난징(南京) 징난사관학교(광산 및 철도학교), 일본 센다이의학전문학교(현 도호쿠대학) 중퇴.
1909년 일본에서 귀국 직후 저장성 항저우(杭州) 등에서 교사를 하다가 사오싱사범학교 교장을 맡는다. 1927년 광저우 중산대학 교수 역임.

2.중국 최초의 신소설 ‘광인일기(1912)’ 발표. 루쉰의 첫 작품이자,백화(입말) 문체로 썼다. 이후 많은 소설을 발표하지만 루쉰을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문학인으로 떠오르게 한 것은 ‘아Q정전(阿Q正傳)’이다.

1931년 상하이에서 찍은 루쉰(오른쪽 앞)과 가족들. 뒤 왼쪽이 아내 쉬광핑(許廣平,1898~1968)과 아들. 앞줄 왼쪽은 중국 작가 펑쉐펑(馮雪峰,1903~1976, 중국 우화의 창시자)이다. photo by wikipedia

3.루쉰은 평생 두 여인의 사랑을 받는다. 고향에 있는 본부인은 주안(朱安,1878~1947)으로 어머니의 중매로 혼인했다. 이른바 향처(鄕妻,고향에 있는 부인)다.
루쉰은 도회지로 나와 신여성 쉬광핑(許廣平)과 사실혼 관계로 지냈다. 이른바 경처(京妻,도시에 있는 부인)다.
루쉰은 고향의 본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죽기 전까지 본처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주안은 37년 동안 시골에 살면서 루쉰 어머니와 가족을 챙겼다. 지독히도 박복(薄福)한 삶이었다.
본부인 주안은 죽어서라도 루쉰 곁에 묻히기를 희망했지만 그것마저 이루지 못하고, 고향의 시어머니 옆에 묻혔다. 참으로
가엷은 구식 여자의 일생이었다.
주안의 일기 등을 토대로 한 책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차오리안 상하이 루쉰기념관 연구원 지음, 김민정 옮김, 파람북,2023)’가 한국에서 출판됐다.
루쉰의 실질적인 부인 쉬광핑(許廣平,1898~1968)은 루쉰 사망 때까지 함께 했고, 아들도 낳았다. 쉬광핑은 루쉰 사후에 ‘차개정잡문(且介停雜文,1937), ’차개정잡문 2집(1937), ‘차개정잡문 말편(末編,1937) 등을 편집, 출간했다.

4.필명 루쉰은 러시아 문호 뚜르게네프의 소설 ‘루딘’에서 착안해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 문학청년들은 루쉰을 ‘중국의 막심 고리키(러시아 소설가)’로 부른다.
루쉰은 한문 폐지를 주장했다. ‘漢字不滅,中國必亡(한자를 없애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5.루쉰은 1936년10월 천식 발작으로 장쑤성(江蘇省) 상하이(上海)에서 영면해 공동묘지인 만국공묘(万国公墓)에 안장됐다. 이 공묘는 1981년 쑨원 부인인 쑹칭링(宋慶齡,1892~1981)능원으로 개칭됐다.
루쉰의 장례식에는 1만여 명의 군중들이 참가해 애도했다. 이후 루쉰 묘는 서거 20주기(1956)에 상하이 훙커우(虹口)구 루쉰 공원(옛 훙커우 공원)으로 이장했다.

6.중국엔 루쉰문학관이 많다.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사오싱(紹興)·난징(南京)·광저우(廣州) 등에 있다. 이중 고향 사오싱에는 루쉰 생가 겸 기념관이 있으며, 상하이 루쉰공원에 루쉰의 묘와 기념관(上海鲁迅纪念馆)이 있다.
중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인 루쉰문학상이 1998년부터 3년마다 개최된다.

헝가리 중남부 바치기스쿤 키스쾨뢰스(Kiskőrös)에 있는 국민 시인 페토피 산도로(Petőfi Sándor,1823~1849) 공원에 설치된 루쉰 상. photo by wikipedia

7.루쉰은 생전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사후 중국 건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에 의해 ‘위대한 문학가이자 사상가, 혁명가’로 신격화된다.
후세의 작가들은 루쉰의 문학을 호평했다. 일본의 반전(反戰) 친한(親韓)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 健三郎,1935~2023,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아시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1949~현재)는 “루쉰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중국인 작가”라고 평가했다.
독일 본 대학교 동양아시아연구소장 볼프강 쿠빈은 “루쉰은 20세기에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작가”라고 평했다.

8.한국에서 루쉰은 시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바뀐다. 1920년대는 무정부주의자로, 1930년대는 좌파 작가로, 1960~1970년대에는 실천적 지식인 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루쉰 권위자는 김시준(1935~현재)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다.
김 교수가 번역해 ‘루쉰 소설 전집(서울대 출판부,1996)’이 나왔고, 이는 2008년 을유문화사에서 다시 출간했다. 그린비 출판사는 2018년 루쉰전집번역위원회를 구성, 런민문학출판사(1981, 2005년 판)간행본을 토대로 '루쉰 전집' 총 20권을 완간했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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