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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야간비행-어린 왕자 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긴 소설의 첫 문단은 서정시처럼 스며든다. 본문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언덕들은 벌써 황금빛 노을 속에 골마다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들판은 아직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눈부신 빛으로 환했다. 이곳의 언덕과 들판에는 겨울이 끝났어도 여전히 눈이 남아 있듯이 황금빛 노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남쪽 끝 파타고니아에서 우편기를 몰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오던 파비앵은 항구의 바닷물을 보고 저녁 무렵임을 알아차렸다. 평온한 구름들이 물살 위로 살짝 만들어 놓은 가벼운 주름이 밤이 다가온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거대하고 행복한 정박지로 들어서고 있었다.(Les collines, sous l’avion, creusaient déjà leur sillage d’ombre dans l’or du soir. Les plaines devenaient lumineuses mais d’une inusable lumière : dans ce pays elles n’en finissent pas de rendre leur or, de même qu’après l’hiver elles n’en finissent pas de rendre leur neige).”(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저, 용경식 역, 문학동네, 2018)

1.잘 쓴 산문시를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뛰어난 운율이다. 시적이고 섬세한 문체가 정연한 문장과 어울리면서 마치 하늘을 날면서 석양을 보는 느낌을 주고 있다. 서정적인 문장과 단어, 몽환적인 분위기 하나하나가 따뜻하게 다가오는 첫 문단이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냉혹할 만큼 객관적인 서술이 돋보인다. 본문에 나오는 *파타고니아(Patagonia)는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걸쳐 있는 아메리카 최남단 지역을 말한다.*우편기(郵便機, A postal aeroplane)는 우편을 실어나르는 비행기다.*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는 아르헨티나 수도. *정박지(碇泊地)는 사람 사물이 안전하게 정박하는 곳이다.

2.앙트완 드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夜間飛行, Vol de nuit, 1931)’은 출간 초에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걸작(傑作)이다. 출간한 해에 프랑스 유명문학상인 ‘페미나 상(Prix Femina,1904년 첫 시상)’을 받았다.
저자의 조종사 경험과 문학적 상상력이 녹아 있는 소설로 1931년 9월19일 프랑스 파리 에디션 갈리마르(Éditions Gallimard)에서 간행됐다. 에디션 갈리마르는 1911년 가스통 갈리마르(Gaston Gallimard, 1881~1975)가 파리에 설립한 출판사다.
저자가 아르헨티나 항공 우편 회사(Aeroposta Argentina Company) 근무 당시 상사였던 '디디에 도라(Didier Daurat(1891~1969, 프랑스 항공의 서구자)를 모델로 삼았고, 그에게 이 소설을 헌정했다.
출간 이듬해인 1932년 미국과 영국에서 영국 번역가 스튜어트 길버트(Stuart Gilbert,1883~1969, 프랑스 문학 전문번역가)에 의해 ‘나이트 플라이트(Night Flight)’ 로 영역됐고, 나오자 마자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1933년 미국에서 영화 ‘나이트 플라이트’로도 만들어지면서 저자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줬다. 영어로는 ‘Night Flight’로 번역된다.

3.출간 초 평단에서는 제목에 빗대 ‘밤하늘에 띄운 숭고한 찬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저자의 경험에 고독과 죽음에 맞선 인간의 용기,그리고 강인한 의지가 서정적인 문체로 펼쳐지면서 감동을 줬기 때문이었다.
서문을 쓴 당대 프랑스 유명 작가 앙드레 지드(André Gide, 1869~1951, 대표작 좁은 문, 1947년 노벨문학상 수상)는 “이 이야기는, 내가 문학적 가치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록으로서의 가치에 감탄하는데, 이들 두 특성들이 전혀 예상치 못하게 결합돼 ‘야간 비행’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4.등장 인물은 많지 않다. 비행사들을 관리 지휘하는 운영 책임자인 리비에르(Rivière), 직원들을 감독하고 보고서를 적는 감독관 로비노(Inspector Robineau), 야간 비행 비행사 파비앙(Fabien)과 그의 아내 시몬, 동료 비행사 펠르랭(Pellerin), 늙은 정비반장 르루, 무선사 등이 나온다.

5.줄거리는 하늘길 개척 시대, 항공기가 선박 및 열차와 경쟁하던 시대, 야간 비행을 하는 비행사 이야기다. 주인공 파비앵은 우편물 비행기 조종사로 남아메리카 대륙 남쪽 끝 파타고니아에서 출발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귀환하고 있다. 온화한 날씨 덕에 순조로운 비행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뇌우(雷雨,천둥과 폭우)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천둥과 번개, 돌풍은 물론 비까지 파비앵의 비행을 방해했지만 우회할 수도 없었다.
돌풍 소용돌이로 비행기가 우왕좌왕하고 무전도 연결되지 않았지만, 파비앵은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혹독한 밤을 견뎌낸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기항지에서는 전 항공 노선을 총괄하는 책임자 리비에르가 파비앵의 우편기가 연락 두절된 상황에서도 다른 우편기들의 일정을 챙긴다. 리비에르의 이런 냉정함은 파비앵처럼 위험한 순간을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밑거름이다.
파비앵은 홀로 뇌우(雷雨)와 싸우면서도 태풍 사이로 보이는 별을 응시한다. 결혼한 지 6주밖에 되지 않은 파비앵은 결국 뇌우를 피해 별들을 향해 올라간다. 보석처럼 빼곡히 들어찬 별들 사이에서 밤새 연료를 소진한 파비앵의 우편기는 실종된다. 파비행은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별들사이로 떠난 것이다. 그럼에도 리비에르는 다른 우편기들의 야간비행을 멈추지 않는다.

6.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는 서평에서 “생텍줴페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그는 객관적이거나 주관적 시선을 벗어나 영혼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고 썼다. 프랑스 평론가이자 전기작가 앙드레 모루아(André Maurois, 1885~1967)는 “세련된 문체로 유례없이 아름답게 묘사됐다”며 “이 책이 이보다 더 빛나는 것은 영융적인 인물들의 감정(이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문학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 니컬러스 레저드(Nicholas Lezard, 1963~현재)는 “안데스 산맥을 넘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뿐만 아니라 그 순간 엄습하는 아득한 공포감까지 생생하게 재현해내며 독자를 안내한다”고 격찬했다.
저자는 하늘을 나는 비행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저자는 생전 한 기고문에서 “비행과 글쓰기 중 하나만 선택하기란 불가능하다. 행동하는 것과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둘 모두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7.프랑스에서 출간 직후 저자 절친이자 ‘향수의 마법사’ 자크 겔랑(Jacques Edouard Guerlain, 1874~1963,겔랑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조향사)이 이 책 제목 그대로 향수 '볼 드 뉘(Vol de Nuit)'를 출시했다.
출간 2년 뒤 미국에서 영화 ‘나이트 플라이트(1933)’로 나왔다. 클래런스 브라운(Clarence Brown, 1890~1987)이 감독하고, 존 배리모어(John Barrymore, 1882~1942), 헬렌 헤이스 브라운(Helen Hayes Browne, 1900~1993),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 1901~1960) 이 주연을 맡았다. 1934년 3월 프랑스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10주 동안 만원 관객 속에 상영됐다.
이탈리아 작곡가 루이지 달라피콜라(Luigi Dallapiccola , 1904~1975)가 1940년 오페라 ‘볼로 디 노테(Volo di notte, Night Flight)’로 만들어 그해 5월18일 이탈리아 피렌체의 델라 페르골라극장(Teatro della Pergola)에서 초연했다.1979년 영국 영화 및 텔레비전 감독 데스몬드 데이비스(Desmond Davis,1926~20121)는 ‘모험의 정신(Spirit of Adventure)’과 ‘야간 비행(Night Flight)’이라는 제목의 단편 텔레비전 드라마를 제작했다.

8.한국에서는 안암문고에서 1976년 11월 ‘야간비행(장세열 주석)’으로 발행됐다. 또 더클래식에서 2014년 윤정임 역으로도 나왔다. 2017년에는 자화상 출판사에서 김민주 역으로도 간행됐고,2028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6번(용경식 역)으로 출간됐다.
‘야간비행’을 모티브로 창작된 뮤지컬 ‘Via Air Mail, 비아 에어 메일(연출 김동연)’이 2024년 3월 6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TOM 1관에서 개막한다. 2020년 쇼케이스 당시 전회 매진됐던 뮤지컬이다.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1900~1944 )=프랑스의 작가이자 공군 장교. 소설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The Little Prince, 1943)’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 원래 이름은 앙투안 마리 장 밥티스트 로제 생텍쥐페리 백작(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comte de Saint-Exupéry)이다.

1.프랑스 리옹에서 장 드 생텍쥐페리 자작( Jean de Saint-Exupéry, 1863~1904)과 마리 드 퐁스콜롱브(Marie de Fonscolombe,1875~1972) 사이의 다섯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성주(城主)이자 보험사 르솔루이(Le Soleil, The Sun)사의 중개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저자가 4살 때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성(城)에서 자라면서도 일치감치 연극 대본 등 예술을 가까이했고, 좋아했다. 다만 학교 성적은 좋지 않았다. 1917년에 보쉬에 학교와 생루이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으나 1차(필기)에서 떨어졌다. 이후파 리에 있는 국립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 건축학과에 비학위 과정 청강생으로 들어갔다.


2.대학을 적성에 안맞는 학과 청강생으로 간만큼 학업보다는 대학가 카페와 센 강변의 여러 곳을 전전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 1921년 4월 프랑스 육군 이등병으로 육군 제2항공연대 항공정비병으로 입대한다. 직후부터 비행기에 매력을 느껴 그해 6월 자비로 민간항공기 조종훈련을 받고 민간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듬해 육군 상등병 진급과 동시에 군용기 조종 면허장을 취득했다. 이를 발판으로 그해 4월 파리에 있는 육군 사관후보생으로 입교, 예비 소위로 임관했다. 1922년 8월 모로코 카사블랑카 육군 제37항공연대에 이어 10월 프랑스 파리 르 부르제에 있는 육군 제34항공연대에 근무한다.

3.항공기 추락 사고로 두개골이 골절된 1923년 소위로 전역했다. 이후 보알롱 타일제조회사의 제품 검사원, 1924년에는 트럭회사 자동차판매 영업사원으로 이직했다. 그런데 1년 6개월간 1대의 트럭을 판매하고 사직했다.
이후 문학에 몰두하면서 산문과 시를 발표했고, 1926년 첫 저서인 ‘비행사(L'Aviateur)’를 낸다. 같은 해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취업, 프랑스령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와 현 세네갈의 다카르간의 정기 항공우편 조종사로 근무했다.
1927년에는 야간 항공우편 비행을 시작했고, 불시착 항공기 수리 업무와 조난 비행사 구조 업무도 했다. 그해 ‘남방 우편기(Courrier Sud)’를 발표, 작가로 데뷔했다. 이 저술은 3년 뒤인 1930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왔다.
출세작 ‘야간 비행(Vol de Nuit)’를 집필한 것은 1930년 6월 무렵이었고, 이듬해 출간했다. 12월에 ‘야간 비행’으로 당대 유명 문학상인 페미나상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4.생텍쥐페리의 뮤즈는 여러명이었다.중등학교 시절에 댄스파트너 오데트 드 시네티 (1897~1987)와 만났으나 얼마 못가 헤어졌다. 첫 사랑은 그르네티에 가문의 딸인 루이즈 드 빌모랭(Louise de Vilmorin, 1902~1969, 시인)이었다. 생텍쥐페리는 그녀와 약혼까지 하고 1923년 결혼하려 했으나 양가 집안의 반대로 파혼했다.
결혼은 두 명의 남편과 사별한 부유한 미망인과 했다. 1930년 말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알리앙스 프랑시스(Alliance Française)의 살롱에서 만난 콩쉬엘로 순신 산도발 세세냐(Consuelo Suncín-Sandoval Zeceña, 1901~1979, 엘살바도르의 화가이자 조각가)였다.
콩쉬엘로는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 히폴리토 이리고옌(Hipólito Yrigoyen,1852~1933, 민주적으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의 초청으로 프랑스 작가 그룹과 함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방문했는데 그 때 만났다. 둘은 1931년 4월 22일 프랑스 니스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남프랑스 지방 귀족 가문의 보수적인 생텍쥐페리 집안은 그녀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1931년 결혼 후 생텍쥐페리가 죽은 1944년까지 13년 동안 그녀를 무시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넬리 드 보구에(Nelly de Vogüé, 1908~2003)도 있다. 보구에는 나중에 피에르 슈브리에라는 필명으로 콩쉬엘로를 음해하는 책을 쓰기도 했다. 또 러시아 귀족 출신 나탈리 페일리 (Natalie Paley, 1905~1981, 본명 Natalia Pavlovna), 여배우 애너벨라(1907~1996, 본명 수잔 조젯 샤르팡티에,Suzanne Georgette Charpentier), 지휘자이자 교사 나디아 불랑제 (Nadia Boulanger, 1887~ 1979, 파리 음악원 교수), 1942년 초 뉴욕에서 만난 젊은 저널리스트 실비아 실비아 해밀턴(Sylvia Hamilton, 나중에 고트프리트 라인하르트(Gottfried Reinhard)와 결혼)도 연애 상대였다.

5.소설 야간 비행으로 유명해진 이후에도 생텍쥐페리는 비행을 즐겼다. 특히 1935년에는 코드롱사(Société des avions Caudron)에 의뢰해서 개인 전용기 '코드롱 씨630 시몬(Caudron C.630 Simoun)'를 인도받는다.
그런데 당시 비행기는 고장이 많았다. 그해 11월 파리~사이공 구간의 비행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장거리 비행 연습 도중 기체 결함으로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해 실종됐다가 5일 만에 구조된다.
1938년에는 과테말라 상공에서 항공기 엔진 폭발로 불시착, 두개골과 좌측 쇄골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는다. 한편 생텍쥐페리의 절친 앙리 기요메(Henri Guillaumet, 1940년 이탈리아군에 격추 사망)도 남미 횡단 비행기를 몰다가 안데스 산맥에 추락했으나 6일만에 살아서 돌아온다. 이 실화는 1995년 장자크 아노(Jean-Jacques Annaud, 1943~현재) 감독의 아이맥스 영화 ‘사랑의 날개(Wings of Courage, 40분, 소니 픽처스)’로도 제작 상영됐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6.제2차 세계 대전을 목전에 둔 1939년 2월 소설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를 출판, 그 해 권위있는 프랑스 문학 아카데미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의 소설 대상을 받는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1939년 9월 3일 군에 동원됐고, 민항기 조종 경력을 인정받아 공군 대위로 공군 제33정찰비행대대 2비행대에서 정찰기 조종사로 근무한다. 1940년 5월10일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전쟁이 본격화 하면서 정찰 출격, 독일 전차부대를 발견한 직후 대공화기에 피격됐다. 그럼에도 무사 귀환해 정찰비행 사진을 제공한다. 1940년 6월 2일 훈장을 받았지만 파리가 완전 함락되면서 공군도 와해된다.
그해 ‘성채(Citadelle, 시타델)’ 집필에 들어갔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12월에 미국 망명을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1941년 1월 뉴욕에 도착해 ‘전시 조종사(Pilote de Guerre)’를 집필한 데 이어 2년 뒤 4월에는 대표작 ‘어린 왕자(1943)’를 출간했다.

7.뉴욕에 있는데 프랑스 친독 정부인 비시 정부(1940년 6월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후 비시에 세운 친독(親獨) 정권)가 일방적으로 정부 요직에 임명한다. 생텍쥐페리의 엉거주춤한 상황을 이용한 것이다.
이에 자유 프랑스 정부 샤를 드골(Charles André Joseph Marie de Gaulle,1890~1970, 제18대 대통령,1959~1969) 장군이 생택쥐페리를 친독일 인사라고 비난한다. 오해를 받은 생택쥐페리는 자유 프랑스군에 재입대하기 위해 1943년 5월 4일 프랑스령 알제리로 간다.
43세의 생텍쥐페리는 조종사 연령제한(35세 이하)에도 유명인사인 데다 고위 장교들과 친분으로 예비군 공군 소령 계급을 달고, 조종사로 복무한다. 1943년 7월21일 튀니지 부근의 라 마르사 기지 미 제7군 소속 자유 프랑스 공군 제33정찰비행대대 2비행대였다.
그런데 2번째 출격 후 착륙 과정에서 조종 미숙으로 항공기를 고장내자 비행대장이 지상근무를 명령, 8개월간 하늘을 날지 못한다. 이에 지중해 지역 연합공군사령관 아이라 C. 이커(Ira C. Eaker) 미 육군 중장에게 청탁, 1944년 5월16일 이탈리아 섬 사르데냐(Sardegna) 알게로 기지에서 비행대에 복귀한다.

8.1944년 6월 29일 출격 순서가 아님에도 사부아(Savoie, 프랑스 남동부 주) 지역 정찰을 이유로 비행하다가 엔진 고장으로 나치독일 점령지인 이탈리아 제노바 상공에 진입, 격추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런데 사고는 다음 달 났다. 7월17일 코르시카 바스티아(Bastia) 인근 보르고(Borgo)로 기지를 이동, 8월 15일로 예정된 남프랑스 상륙작전(용기병 작전)을 위한 상륙지역 지도 제작용 항공사진 촬영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7월 31일 오전 8시 25분 일상적인 정찰비행을 위해 비무장으로 6시간 분의 연료를 탑재한 정찰기 ‘ F-5B-1-LO 라이트닝’를 몰고 이륙했다. 하지만 돌아오지 못했고, 이륙 8시간 30분 뒤 실종 신고됐다. 세계적인 작가 생텍쥐페리의 실종은 세계적인 톱뉴스였으나 전쟁 중이어서 추락 추정 지역 등에 대한 조사나 사고 원인은 이뤄지지 못했다. 공식 실종 사망 처리는 전쟁이 끝나고 한 참 지난 1948년이었다. 프랑스는 ‘전쟁 중 사망’으로 인정했다.

9.실종, 사망 처리됐던 생텍쥐페리는 그로부터 53년이 지난 1998년 4월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남동쪽 지중해 해저에서 흔적이 나왔다. 트롤 어선 로리종호의 선장 어부 장 클로드 비앙코가 우연히 그물로 건져 올린 팔찌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직후 마르세유의 전문 잠수부가 수중 탐사 장비로 바다 깊숙히 가라앉은 라이트닝 정찰기를 발견했다. 비행 동체에서는 총탄 자국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윤활유 누수 흔적은 찾았다.
그런데 2008년 3월의 나치 독일의 헤르만 괴링(Hermann Wilhelm Göring,1893~1946) 공군 원수에게서 훈장도 받은 조종사 호르스트 리페르트(Horst Rippert. 1922~2013)가 생텍쥐페리를 격추했다고 주장, 화제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격추설, 자살설이 상존하고 있다. 자살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생택쥐페리의 절친 기요메의 죽음을 이야기한 편지를 제시하고 있다. 편지는 '죽음 속에서, 안데스 산맥을 걸어서 빠져나온 그 친구도 결국 격추당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네....나도 그럴까?' 라는 글귀가 있다.

10.주요 작품으로 비행사(L'aviateur,1922), 남방 우편기(Courrier Sud, 1927), 야간비행(Vol de Nuit, 1931),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 1939), 전시 조종사(Pilote de Guerre, 1941), 어린 왕자(Le Petit Prince,1943) 등이 있다. 미완성 유고인 ‘성채(Citadelle)’가 있다.
1931년 페미나 상을 받은데 이어 레지옹 도뇌르 훈장(1930, 1939)을 두차례나 받았다. 1939년에는 프랑스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상, 이듬해에는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한편 생텍쥐페리 소설 가장 잘 알려진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는 전세계에서 200억 부가 팔렸다.

11.생텍쥐페리 고향 리옹은 위대한 작가는 물론 항공 우편의 선구자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사톨라스 공항을 리옹 생텍쥐페리 국제공항으로 명명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산 안토니오 오에스테의 공항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공항으로 이른 붙였다.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 이름을 딴 교육기관(2015년 조사 기준)은 418개(초중고, 대학 등)나 된다. 이는 빅토르 위고 (365), 루이 파스퇴르 (361), 마리 퀴리 (360)보다 많으며, 전체 중 8위에 해당한다. 1위는 성요셉(880개)이다.
1975년 11월 2일 러시아 천문학자 타마라 M. 스미르노바(Тамара Михайловна Смирнова,1935~2001)가 발견한 작은 소행성은 ‘2578 생텍쥐페리(2578 Saint-Exupéry)’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94년 로버트 엔리코(Robert Enrico)가 TV 영화 ‘생텍쥐페리-마지막 임무(Saint-Exupéry: The Last Mission, 프랑스 3(France 3)TV 방영)’를 제작했다.

12.학회와 재단등도 여러나라에서 운영되거나 활동하고 있다.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 청소년 재단은 2009년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의 후원자들이 프랑스 재단의 후원 아래 설립했다. 프랑스와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 컬렉션(참조 번호 153AP)은 프랑스 국립 기록 보관소에 있다.
2009년부터 생텍쥐페리 가문의 역사적인 유산인 생 모리스 드 레망 성(Château de Saint-Maurice-de-Rémens, Ain)은 작가와 어린 왕자를 둘러싼 기념하는 박물관 개관을 준비(2020년 기준) 중이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