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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에밀리를 위한 장미-남부 고딕의 절정을 보여주는 소설의 첫 문단은 주인공의 장례식으로 서두를 연다 본문
1.“미스 에밀리 그리어슨이 죽었을 때, 우리 마을 사람 모두가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남자들은 무너진 기념물에 경의 어린 애정 같은 감정을, 여자들은 대부분 호기심 그러니까 정원사 겸 요리사를 겸한 늙은 남자 하인을 제외하곤 적어도 10년 동안은 아무도 들어가 보지 못한 그 집의 내부를 보고픈 호기심을 품었다. 그 집은 한때 흰색이었던 크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목조주택인데, 1870년대의 아주 우아한 양식으로 둥근 지붕이며 첨탑이며 소용돌이 무늬의 발코니를 꾸며 예전에는 가장 세련됐던 상류층 거리에 세워졌다. 그러나 차량 정비소와 조면기들이 이웃의 존엄한 이름들마저 침해하고 지워버렸다. 오로지 미스 에밀리의 주택만이 면화를 운반하는 마차와 가솔린펌프 위로 완고하고도 교태 섞인 퇴락의 모습을 치켜들고 남아 있으니 흉물도 이런 흉물이 없었다. 이제 미스 에밀리도 제퍼슨 전투에서 전사한 뒤 늘어선 북군과 남군 무명병사들의 무덤 사이, 삼나무로 물든 묘지에 누워 있는 그 존엄한 이름들의 대표자로 합류하게 됐다.”(윌리엄 포크너 저, 정진영 옮김, 바톤핑크, 2023)

1.소설은 독특하게 주인공의 죽음을 알리면서 시작한다. 이름 없는 내레이터가 마을의 집단적 목소리을 대변하는 형식이다. 이른바 군중형 내레이터다. 도입부는 마을 분위기를 통해 중요인물의 알레고리와 상징, 은유로 다양한 암시를 하고 있다. 미국 남부출신 작가답게 길고 난해한 문장이 뒤섞여 있지만 읽기가 어려운 편은 아니다. 장례식과 기념물 목조주택, 마차, 묘지가 빛바랜 영광과 퇴락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첫 문단이다.
본문에 나오는 *조면기(繰綿機)는 목화솜(Cotton)에서 씨앗을 분리하는 기계다. 미국에서 1793년 발명 특허로 나왔다. *제퍼슨은 포크너가 창조한 가상 공간인 요크나파토파 카운티(Yoknapatawpha County)의 행정 중심지를 말한다.

2.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A Rose for Emily,1930)’는 미국은 물론 제3세계 영문학 시간에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명작이다. 저자를 미국 주류 소설계에서 작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 한 계기가 된 걸작(傑作)이다.
저자가 전국적인 메이저 잡지 ‘포럼(The Forum)’에 발표(1930년 4월30일자)한 첫 번째 단편 소설로 저자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잡지 포럼은 독일 출신 유태계 사업가이자 작가 아이작 레오폴드 라이스(Isaac Leopold Rice, 1850~1915)가 1885년 뉴욕에서 창간했고,1950년 발행이 중단됐다.
소설이 첫 발표될 때 주목한 비평가는 없었다. 단편인 데다 지역적인(미국 남부) 소재에 호러적 요소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해 단편 모음집(앤솔러지, Anthology, 꽃을 따서 모은 것, 꽃다발 뜻) ‘These 13(1931)’에 수록되면서 평단의 눈길을 끌었다. 복잡한 구조와 의식의 흐름 형식의 전개, 남부 고딕 또는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에 새삼 주목한 것이다. 이후 인기를 얻기 시작, 미국에서 지금까지 가장 널리 읽히고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 됐다.

3.쇠락해 가는 미국 남부의 장엄한 노을을 그린 남부 고딕(Southern Gothic)소설의 대표적 작품이다. 남부 고딕은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년 4월12~1865년4 월5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남부 상류층의 몰락상과 고딕 요소를 결합한 독특한 장르로 자리잡았다. 결함을 가진 주인공과 초자연적 현상이 겹쳐져 미스터리, 호러, 스릴러 형식으로 배덕(背德)적이며 부도덕한 상류사회의 사회상을 고발한다.
소설은 1인칭이나 2인칭, 3인칭도 아닌 4인칭(?, 익명의 화자가 1인칭 복수형으로 이야기 하는 형식)이다.다중 화자(話者)의 회상으로 비선형적(직접적 인과 관계가 아닌 사건을 묘사하는 내러티브)인 방식으로 진행한다. 또 시간을 건너뛰고, 조작하는 방식으로 전개돼 독자들을 당황하게 한다.

4.소재는 남북전쟁 이후 북부에서 남부로 부는 세찬 변화의 바람을 거부한 채 사는 몰락한 남부의 뼈대있는 가문의 여인 이야기에서 따왔다. 배경은 포크너가 창조한 가상공간 요크나파토파 카운티(Yoknapatawpha County, 미국 남부의 어느 마을)의 행정중심지인 제퍼슨이다.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 미국 남부의 오이디푸스적 상황, 가부장제(남성 중심 문화), 등장인물들이 속한 공동체 의식 지배와 강요. 억눌린 섹슈얼리티 등이 호러 형식으로 전개된다.
등장인물은 주인공인 은둔형 외톨이 에밀리 그리어슨(Emily Grierson)과 아버지 그리어슨 씨(Mr. Grierson), 에밀리의 집사 역할을 하는 흑인 토베, 북부 출신의 노동자로 에밀리의 연인 호머 배런(Homer Barron), 카운티의 수장인 사르토리스 대령(Colonel Sartoris), 앨라배마 출신의 에밀리의 친척인 사촌 등이 나온다. 또 이름없는 다중형 내레이터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에밀리의 인생 전체를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로 추정된다.

5.줄거리는 1920년대 남부의 몰락한 ‘그리어슨’ 가문의 딸 에밀리가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의 사망 이후 전통과 의무 사이에서 방황하다 유색 연인과 함께 죽는 이야기다. 에밀리는 과거의 화려한 영광은 있으나 현재와 미래가 없는 마을의 ‘전통이고 의무’이지만 또한 ‘근심’으로 존재한다. 이런 에밀리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다.
소설은 에밀리 양의 성대한 장례식에서 시작된다.10년 동안 하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오지 않은 근방에서 가장 좋은 저택에 사람들이 모이고, 불특정 내레이터에 의해 과거를 회상한다. 에밀리의 저택은 세금 고지서가 쌓이지만 납세를 거부하자 세금 징수원은 에밀리의 집에서 악취를 맡는다. 아버지가 사망한 지 2년 후의 일이고, 연인은 사라졌다. 당국은 남부 이름있는 집의 딸인 에밀리와 대면하고 싶지 않아 냄새를 없애는 석회를 뿌린다.
그런데 에밀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3년 동안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에밀리는 아버지를 놓아주고 싶지 않은 채 마을에 있는 유색인종 호머 배런과 데이트를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여겨 둘의 관계를 끊기 위해 에밀리의 사촌들을 데려온다. 그러던 어느 날, 에밀리가 약국에서 비소를 산다. 호머가 마을을 떠나고, 사촌들이 마을을 떠난다. 그런데 연인 호머 베런이 다시 돌아온다.
장례식이 마무리되면서 에밀리의 하인 토베는 마을 여자들을 들여보내고 자신은 뒷문으로 떠난다. 마을 사람들은 40년 동안 못봤던 에밀리의 방에 들어가고, 침대에서 썩어가고 있는 호머 배런의 시체를 발견한다. 호머 옆의 베개는 움푹 들어가 있고, 길고 흰머리 카락이 떨어져 있다.

6.소설에는 실제 장미가 등장하지 않는다. 굳이 장미를 거론한다면 소설 뒷부분에 나오는 신혼 방 침대의 퇴색된 장밋빛 빛깔 커튼, 장밋빛 전등 갓 정도다. 장미는 저자가 주인공의 불운과 불행의 여인 에밀리에게 주는 ‘헌화(獻花)’이자 알레고리(allegori, 우화 寓話)적인 제목이다.
장미는 치명적 사랑, 죽어서도 지키는 비밀이다. 실제 장미는 고대 종교가 박해받는 시대에 중동 유럽에서 ‘비밀’ 혹은 ‘비밀을 지키다’는 뜻으로 사용된 꽃이다. 이 소설에서도 에밀리가 모든 것을 똑같이 유지하고, 변하지 않기 위해, 그래서 비밀을 지키는 것으로 나온다.

7. 1983년 동명의 제목 ‘에밀리를 위한 장미(A Rose for Emily)’로 단막 영화(27분)로 나왔다. 미국 피라미드사에서 린돈 처벅(Lyndon Chubbuck,1954~2011, 감독 겸 사진작가) 감독 작품으로 선보였다. 주인공 에밀리는 존 휴스톤(John Marcellus Huston,1906~1988) 감독의 딸 안젤리카 휴스톤(Anjelica Huston,1951~현재,2005년 골든글로브 TV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조연상)이다. 이 영화는 1983년 시카고 국제 필름 페스티벌(Chicag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최우수 단편상 후보, 1983년 CINE Competition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2022년 바닷가 극장(자막 번역/DRFA,김교수)에서 상영됐다.
2018년에는 미국 켈리 파이크(Kelly Pike,LA기반 여성 감독 겸 영화제작자) 감독이 단막극(21분) ‘에밀리를 위한 장미’로 제작했다. 이 극은 장편 영화인 미시시피 레퀴엠(Mississippi Requiem, 2018)에 포함돼 있다. 미시시피 레퀴엠은 아르케시 아제이(Arkesh Ajay), 켈리 파이크, 제렐 로잘레스(필리핀계 미국인)가 공동 제작했다.

#.윌리엄 커스버트 포크너(William Cuthbert Faulkner,1897~1962)=20세기 미국의 대문호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1949).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1899~1961,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 등과 함께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소설가.
미국 고유의 남부 고딕(Southern Gothic)소설의 대표적인 작가. 생애의 대부분을 미시시피 주 라파예트 카운티 옥스포드에서 보낸 인물로 요크나파토파(Yoknapatawpha, 뜻은 갈라진 땅, 분단) 연작물로 유명하다. 두 작품 ‘A Fable(1954)’과 ‘The Reivers(1962)’로 퓰리처상 소설 부문 2회 수상자가 됐다.

1.미국 북부 미시시피 주 뉴올버니의 한 마을에서 머리 커스버트 포크너(Murry Cuthbert Falkner,1870~1932)와 모드(마우드) 버틀러(Maud Butler, 1871~1960)와 사이에서 4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는 머리 찰스 포크너(1899~1975, FBI특수요원), 셋째는 존 웨슬리 톰슨 포크너 3세(1901~1963, 미국 작가), 넷째는 딘 스위프트 포크너(1907~1935)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인근 옥스퍼드로 이사해 말(馬) 임대업과 공구상 등을 하다가 주립대학교 경영이사가 됐다. 증조(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남북전쟁 때 무공을 쌓았던 윌리엄 클라크 포크너William Clark Falkner, 1825~1889) 대령이었다. 리플리~테네시 간 철도를 건설한 인물로 ‘멤피스의 백장미(The White Rose of Memphis,1881)라는 소설을 썼는데, 36쇄(약 16만부)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유년기에 흑인 보모 캐롤라인(캘리) 바(Caroline Barr, 포크너는 ’모세여 내려가라‘를 캘리에게 헌정했다)와 어머니, 외할머니 렐리아 버틀러(Lelia Butler)의 격려로 창작 활동에 관심을 가졌다. 이중 특히 보모 캐롤라인 바는 삶의 여러 측면에 영감을 주었다.
포크너는 고교를 자퇴할 때까지 빌리 또는 '메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대단한 독서가로 알려졌다. 특히 아버지가 소장한 영국 유명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1812~2870)의 소설 등을 즐겨 읽었다. 하지만 교교 2년 중퇴후 할아버지의 은행에 일하면서 독학을 했고, 프랑스어에 심취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캐나다의 왕립 항공부대에 입대, 1918년 수습비행사가 됐지만 훈련을 마치기 전에 전쟁이 끝나 다시 고향 옥스퍼드로 돌아왔다. 이후 1919년 '전역군인을 위한 특별배려'로 미시시피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1920년 자퇴했다. 1921년 가을 뉴욕시의 한 서점에서 일했고, 이듬해부터는 옥스퍼드 외곽의 우체국장을 지냈다.

3.포크너의 뮤즈는 이웃집 소녀인 에스텔 올드햄(Estelle Oldham,1897~1972)이었다.그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에스텔 집안에서 반대했고, 1918년 에스텔은 군인인 코넬 프랭클린이라는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여 중국 근무지인 상하이로 떠났다.
이후 에스텔은 두명의 아이를 낳고 이혼해 미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만난 두사람은 1929년 결혼했다. 포크너는 그녀의 두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둘 사이에서는 딸 둘을 낳았지만 1931년 태어난 첫째 앨라배마는 며칠 만에 죽었고, 1930년대 말 둘째 질 포크너 서머스(Jill Faulkner Summers,1938~2008, 폭스하운드 마스터,말 조련가)를 낳았다.

포크너는 장년이후 잇따른 스캔들에 휘말렸다. 로스엔젤레스 할리우드에서 일할 때인 1943년 무렵 시나리오 작가 하워드 호크스(Howard Winchester Hawks,1896~1677)의 비서인 메타 카펜터(Meta Carpenter Wilde, 1907~1994)와 연인 관계였다.

또 1949~1953년 사이에는 소설가 조안 윌리엄스(Joan Williams,1928~2004)와 불륜을 저질렀다. 이는 윌리엄스가 1971년 소설 ‘윈터링(The Wintering)’에서 밝혔다. 또 2006년 여성작가 리사 힉맨이 ‘윌리엄 포크너와 조안 윌리엄스-두 작가의 로맨스,William Faulkner and Joan Williams: The Romance of Two Writers)’를 냈다. 포크너는 1950년 말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 스톡홀름에 갔을 때 엘제 욘손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풍문도 돌았다.

4.1924년 포크너의 시에 매료된 변호사 필립 에이버리 스톤(Philip Avery Stone, 1893~1967)의 후원으로 첫 저서인 전원시 연작 ‘대리석의 목신(牧神, The Marble Faun,1924)’을 냈다.
1925년 뉴올리언스 문학 서클에 활동할 때 중심인물인 고향 출신 소설가 셔우드 앤더슨(Sherwood Anderson,1876~1941)을 알게 됐고, 함께 지냈다. 앤더슨은 1826년 첫 소설 ‘병사의 보수(Soldier's Pay)’를 출판업자에게 추천, 간행했다.
2번째 소설 ‘모스키토스(Mosquitoes,1927)’를 통해 뉴올리언스 문학 서클에 대한 심각한 풍자를 했다. 그후에도 단편과 장편을 많이 썼으나 대부분 출판을 거절당해 후원자인 필 스톤(Philip Avery Stone)의 서류함에 쌓이곤 했다.

1929년 10월 포크너는 대표작 중 하나인 ‘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를 냈다.이 소설은 기교나 심리 묘사 등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은 걸작이 됐다. 1930년4월 ‘에밀리에게 장미를(A Rose for Emily)’를 잡지 ‘포럼’에 실었고, 1932년 ‘8월의 빛’을 출간, 호평을 받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소설을 ‘음향과 분노’와 함께 1923년부터 2005년까지 최고의 영어 소설 100권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후 시나리오 작업으로 눈을 돌려 메트로-골드윈-메이어(Metro-Goldwyn-Mayer)와 맺었다. 조안 크로포드(Joan Crawford, 1906~1977)와 게리 쿠퍼(Gary Cooper,1901~1961)가 주연을 맡은 1933년 작 ‘투데이 위 라이브(Today We Live)’를 공동 집필했다.

5.포크너는 고향을 지극히 사랑했다. 남북전쟁 직전인 1840년대 지은 크고 낡은 집을 1930년에 사서 그곳을 ‘로원오크(Rowan Oak)’라고 불렀다. 스스로 톱과 망치로 직접 로원 오크를 수리할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 로원 오크는 작가 사후 1968년 국가 사적지로 지정됐고, 1972년 미시시피 대학교가 매입,포크너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1940년대 초반 포크너는 거의 잊혀졌다. 그런데 다시 명성을 얻은 것은 1946년 미국 유명 문학평론가 말콤 카울리(Malcolm Cowley,1898~1989)가 ‘휴대용 포크너 선집(The Portable Faulkner,1946)’ 출간하면서다. 몇몇 소설가들이 재평가의 글을 잇따라 기고했고, 출판사 랜덤 하우스가 포크너 소설을 차례로 재출판했다. 카울리는 포크너와 주고받은 서신을 엮은 ‘포크너-카울리 파일-편지와 기억, 1944~1962)을 1966년 간행하기도 했다.

6.1949년 포크너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년 뒤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 참석한 포크너는 "갈등에 빠진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글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다"(“The only thing worth writing about is the human heart in conflict with itself”)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얼음과 불의 노래(A Song of Ice and Fire)’ 저자인 미국 유명 환타지 작가 조지 R.R. 마틴(George R.R. Martin, 1948~현재)이 가장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말이다.
1950년 초에 출판된 ‘단편모음집(Collected Stories)’은 전미도서상, 1951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Chevalier de la Légion d'honneur)-슈발리에’를 받았다. 1954년 포크너의 가장 긴 소설 ‘우화(A Fable)’가 출판되었다. 1950년대 말에는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1년 동안 상주 작가로 지냈고, 다음해에도 계속됐다

7.1962년6월 ‘약탈자(The Reivers)’를 냈다. 이 작품은 옥스퍼드 근처의 한 병원에서 죽기 겨우 한 달 전에 출판되었는데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 소설은 사후인 1963년 퓰리처상에 선정됐다. 포크너는 낙마사고 등의 후유증으로 혈전증을 앓았는데 1962년 들어 병이 더 커져갔다. 7월6일 미시시피 마셜 카운티 비할리아(Byhalia)에 있는 라이트 요양원에서 치명적인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향년 64세였다. 인근 옥스포드의 성 베드로 묘원의 가족 묘지에 묻혔다.포크너는 생전 작품 대부분과 서신, 원고, 개인 논문 및 작업 도서관의 300권 이상의 책 등은 말년에 많은 시간을 보냈던 버지니아 대학에 보냈다. 이에 주요 원고와 개인 논문을 버지니아 대학의 앨버트 앤 셜리 스몰 스페셜 컬렉션 도서관(Albert and Shirley Small Special Collections Library)에 보관하고 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는 1966년 육사도서관에 윌리엄 포크너 방을 헌정했다.
미국 우체국은 1987년 8월3일에 22센트짜리 우표를 발행, 포크너를 기렸다. 미국 문학계는 2019년 10월10일, 미시시피주 옥스퍼드의 로완 오크에 포크너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미시시피 작가 트레일(Mississippi Writers Trail) 역사 표지석을 설치했다.

9.미국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랄프 엘리슨(Ralph Ellison, 1913~1994)은 "남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며 "미국 소설에서 포크너만큼 흑인 성격의 유형을 탐구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포크너가 “화자를 과거에 묻힌 고통의 심연으로 안내하는 단어와 문장의 소용돌이를 끝없이 풀어내는 방식으로 고전 비극을 20세기에 성공적으로 도입했다”고 썼다. 카뮈는 포크너의 '수녀를 위한 진혼곡'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미국 소설가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1925~1964)는 “포크너가 우리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작가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큰 차이가 있다”며 “아무도 그의 노새와 마차, 딕시 리미티드(Dixie Limited, 열차)가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것과 같은 트랙에서 멈추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 비평가이자 번역가인 발레리 마일즈(1963~현재)에 따르면 “포크너가 라틴 아메리카 소설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며,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 ‘마콘도’)와 우루과이 소설가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Juan Carlos Onetti, 1909~1994, ‘산타 마리아’)가 만든 허구의 세계는 요크나파타우파(포크너가 창조한 가상공간)에 있다”고 주장했다.

10.포크너는 동시대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1899~1962)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둘은 우회적으로 서로를 비판하기도 했다. 헤밍웨이는 포크너의 길고 난해한 문장에 대해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마구 꼬아서 그의 글을 읽으면 고구마 몇 개를 집어 삼킨 듯 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에 대해 포크너도 헤밍웨이에 대해 "고작해야 전쟁에 로맨스만 끌어들일 줄 아는 단세포 작가가 그 복잡한 남부의 연대기에 대해서 알기나 하겠느냐"고 공격했다.
포크너는 프랑스에서 인기가 높다.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1905~1980)는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게 포크너는 신"이라고 말했고,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1930~2022)는 자신의 영화에 포크너의 문장을 자주 인용했다. 2009년 프랑스 여론 조사에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1871~1922)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작가로 선정됐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