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올리버 트위스트-출생의 비밀, 팬덤, 북콘서트의 원조 작가가 쓴 소설의 첫 문단은 論文처럼 쓰여졌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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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출생의 비밀, 팬덤, 북콘서트의 원조 작가가 쓴 소설의 첫 문단은 論文처럼 쓰여졌다.

지성인간 2023. 6. 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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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을이 있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특정하지 않는 게 현명하겠고, 굳이 가상의 이름을 붙이지도 않겠다. 이곳에도 여러 공공건물이 있었고, 크든 작든 마을이라면 으레 있기 마련인 공공건물, 정확히 말하면 구빈원이 있었다. 이 구빈원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아기 하나가 태어났는데 출생 요일과 날짜는 독자에게 전혀 중요치 않으니 따로 거론할 필요가 없겠고 아기의 이름은 이 장의 말머리에 밝힌 대로다.”(황소연 역, 시공사,2020)

1. 상징과 은유, 문체는 필요없다는 듯이 학술 논문 쓰듯이 구성한 첫 문단이다. 독자를 도발하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자극 서술마저 재미있게 느껴진다. 작가의 의도적인 소설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문체인데다 난삽(難澁)한 문장 전개여서 굳이 글쓰기 연습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문단에 나오는 구빈원(救貧院)은 가난한 이들을 규제하는 곳이다.

시공사가 낸 '올리버 트위스트(2020)' 책 표지 일러스트.

2.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1837)’는 근현대 대중 소설의 원전(原典)이다.
연재 소설의 개척자 답게 쉬운 주제를 재미있게 쓰면서 사회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당대에는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이지만 현대에도 통용되는 소설 쓰기의 원형이랄 수 있다.
이 소설은 원래 리차드 벤틀리(Richard Bentley,1794~1871)가 런던에서 운영하는 월간 문학 잡지 ‘벤틀리 미스첼러니(Bentley's Miscellany, 1836~1868)의 연재물이었다. 디킨스가 이 잡지의 편집자였다. 편집을  하고 소설까지 연재한 것이다.
사회 리얼리즘 소설의 원류이자 출생의 비밀, ‘착한 창녀 이야기’의 시초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소설 히트 이후 ‘착하고 아름다움 창녀’가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1862)’의 창녀 팡틴, 제정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1866)’의 창녀 소냐 등 많은 명작이 선한 이미지의 ‘창녀 클리셰(cliché, 틀에 박힌, 스테레오 타입)’를 내세웠다.

3.올리버 트위스트는 스물 다섯살 디킨스의 출세작이다. 어린이에 대한 인격체 인식이 희미했던 당대 분위기로는 파격적인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소설이었다. 어린이 주인공 최초의 장편 소설인 셈이다.
어린이 주인공의 첫 소설로  인식하는 요하나슈피리(1827~1901)의 ‘하이디(알프스 소녀 하이디)’도1880년,81년에 2부작으로 나왔다.
연재물 특유의 큰 틀에 독립된 에피소드를 집어넣는 ‘피카레스크(Picaresque, 데카메론과 천일야화 등이 이런 방식)형식’에 ‘클리프행어(cliffhanger) 서술 기법(마지막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을 취했다.
그래서 연재할 때마다 주인공 외에 착한 창녀, 도우미 노신사, 뒤늦게 알게 된 이모, 이복형, 악한의 벌 받는 모습 등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농노(農奴)들이 도시로 몰리는 시대, 산업혁명으로 급증한 소시민들이 좋아하는 소설 요소를 두루 갖춘 것이다.
현대인이 읽으면 전형적인 권선징악(勸善懲惡),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멜로물이지만 당시에는 월간지 발행을 기다릴 정도로 파격적이고 재밌는 소설이었다.

4.등장인물은 주인공으로 이름만큼 인생이 꼬인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 이름 그대로 교활한 도둑 ‘아트풀 도저(The Artful Dodger, 본명 잭 도킨스)’, 본심은 착한 창녀 ‘낸시(Nancy)’, 소매치기 아이들의 관리자이자 장물아비 ‘페이긴(Fagin)’, 강도 두목 ‘빌 사이크스(Bill Sikes)’, 또다른 출생의 비밀인 올리버의 이복 형 ‘몽크스(Monks)’, 올리버 친구 ‘딕(Dick)’, 구빈원(救貧院)의 악질 관리자 ‘범블(Bumble)’ 등이다.
이밖에 올리버를 도와주는 ‘로즈 메일리(Rose Maylie)’, 늙은 신사 ‘브라운로(Brownlow)’, 올리버 친구 ‘찰리 베이츠(Charley Bates)’, 올리버를 낳고 죽은 엄마 ‘아그네스 플레밍(Agnes Fleming)’ 등이 나온다.

5.줄거리는 주인공의 초기 인생이 험난했지만 ‘키다리 아저씨’ 도움과 출생의 비밀(부잣집 아들)이 밝혀지면서 결국 인생 역전한다는 이야기다.
구빈원 출생의 올리버 트위스트는 출생과 함께 고아가 된다. 식사 때 죽을 더 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장의사에 팔려간다. 이후 학대당한 장의사에서 나와 런던으로 가서 놀이(소매치기) 친구들에게 끼었다가 잡힌다.
감옥에 갔지만 소매치기당한 노신사 브라운로 등의 증언으로 무죄 방면돼 신사의 집에서 심부름 등을 하며 지낸다. 어느날 책 심부름을 나왔다가 창녀 낸시의 소개로 만난 깡패들과 어울리다가 도둑질 범인으로 몰리면서 총상을 입는다.
올리버는 의식을 회복, 범인 잡기 수사 돕기에 나선다. 낸시도 합류하지만 깡패 사이크스에 걸려 죽고 만다.
낸시를 죽인 사이크스는 자살하고 장물아비 페이긴과 그 패거리도 잡히는 데 그중 한 명이 올리버의 이복형 몽크스다. 몽크스는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 하기 위해 온갖 계략을 꾸민다.
하지만 올리버는 브라운로의 양자가 돼 몽크스가 가로챈 아버지의 유산을 되찾는다. 유산은 절반을 몽크스에 주지만 이복형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서 죽는다.
구빈원 책임자도 쫓겨나다가 가난에 찌들려 구빈원 신세를 진다. 유산을 받고 양자가 된 올리버는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6.올리버 트위스트는 다양한 풍자와 유머가 쓰였다. 또 밑바닥 삶에 대한 절묘한 묘사, 사투리, 하층민들 삶과 밀접한 은어, 속어 등이 많이 사용됐다.
이는 작가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 스페인의 위대한 작가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1616), 중세 르네상스를 연 대작가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 등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디킨스도 이를 인정했고, 특히 세익스피어에 대해 “위대한 거장”이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영국 웨일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1850년의 찰스 디킨스 초상화.en.wikipedia.org(위키피디아 영문판)

#.찰스 존 호프만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1812~1870)=영국 소설가. 사회 비평가. 19세기(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천재 작가. 연재물의 개척자이자 크리스마스 소설가로도 불린다.

1.1812년 영국 햄프셔 주 포츠머스 교외(현 포츠머스 커머셜 로드 393번지)에서 해군 경리국에 근무하는 하급관리 존 디킨스와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출생.
아버지가 1824년 런던 사우스워크(Southwark)에 있는 ‘마샬시 채무자 감옥(Marshalsea Debtor's Prison)’에 수감되면서 어렵게 성장했다. 이에 소년기에 정규교육을 제대로 못받은 채 12살 때부터 구두약 공장에서 병 라벨 작업 등을 했다.

2.디킨스는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1827년 변호사 사무소 직원, 법원 속기사, 신문기자로도 일했다.
1833년 첫 단편 ‘포플러 거리의 만찬’을 발표, 문단에 나왔다. 당시 필명으로 ‘Boz(보즈)’를 사용했다. 1836년 ‘보즈의 스케치’, 다음해 ‘픽윅 클럽 여행기’로 주목받았고,  ‘올리버 트위스트’로 당대 인기 작가로 올라섰다.

올리버 트위스트 초판본.1837 영국 런던.출처=위기피디아 영문판

3.디킨스는 19세기 영국의 패권시대의 문학 아이돌(Idol)이었다. 디킨스 소설은 유럽과 미국 부르주아(Bourgeois, 유산계급)들의 필수 교양품일 정도였다.
특히 디킨스 자체가 팬덤(Fandom)을 형성, 영국 전역은 물론 미국까지 독서강연회(요즘 말로 북 콘서트)를 다녔다. 당시 디킨스의 인기는 ‘가장 디킨스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다’라는 관용어가 나오게 할 정도였다.
후대의 영국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데이비드 로지(David Lodge,1935~현재)는 “지속적인 대중의 관심과 찬사의 대상이 된 최초의 작가”라고 말했다.

4.1838년 음악 비평가 조지 호가스(George Hogarth)의 딸인 캐서린 톰슨 호가스(Catherine Thomson Hogarth,1815~1879)와 결혼했다.
하지만 1858년 결혼생활(1838~1858) 22년 만에 10명의 자녀를 두고 이혼했다. 20년이 넘는동안 모범 가장이었던 디킨스가 18살의 여배우 엘런 테넌(Ellen Lawless Ternan, 1839~1914)과 바람을 피웠는데, ‘불륜 증거’가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이혼까지 갔다.
디킨스에게 어린 여배우 테넌은 ‘뮤즈(Muses, 예술의 여신)’였다. 그는 테넌에 푹 빠져서 ‘나의 마법의 원(Magic circle of one)’이라고 불렀다.
디킨스는 1870년 사망 시 유언장에 테넌에게 1000파운드의 유산과 그녀가 다시는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 신탁 기금도 남겼다. 하지만 테넌은 1876년 조지 와튼 로빈슨(George Wharton Robinson)과 결혼, 딸과 아들을 낳고 학교를 운영했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드라마 ‘디킨스(2002)’와 영국 채널4의 드라마 ‘디킨스와 비밀의 연인(2008)’등이 이를 주제로 다뤘다.
첫 부인 캐서린과 이혼했으나 그녀의 여동생인 조지나 호가스는 디킨스 자녀들을 돌보면서 1870년 디킨스가 사망할 때까지 가정부, 조언자, 친구로 함께 했다.

5.디킨스는 1870년6월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라는 소설의 마지막을 집필하다가 쓰러져 영면했다. 마지막 말은 ‘On the ground?!’(땅바닥이라니?!)였다고 한다.
조용한 장례를 원했던 디킨스의 바람과는 달리 수많은 인파의 추모 속에 영국인 사후 최고의 영예의 전당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안장됐다. 찰스 디킨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한 소녀가 말한 “크리스마스 할아버지도 죽은 것이냐”는 말이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묘비명은 “가난하고 고통받고 억압받는 자들의 지지자, 우리는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하나를 잃었다”이다.

6.주요 작품으로는 이후 ‘니컬러스 니클비(1839)’, ‘오래된 골동품 상점(1841)’, ‘바너비 러지(1841)’ ‘크리스마스 캐럴(1843, 수전노 스크루지 영감으로 유명)’, ‘데이비드 코퍼필드(1850)’, ‘두 도시 이야기(1859)’, ‘위대한 유산(1861)’등이 있다.
한편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서 ‘찰스 디킨스의 어린이를 위한 영국사(A Child's History of England,1852~1854)’시리즈도 펴냈다.

7.디킨스에 대해 러시아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와 레흐 톨스토이(1828~1910)와 “위대한 기독교 작가”라고 말했다.
미국의 20세기 최고 비평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1930~2019)은 “영어로 소설을 쓴 천재 작가에 대해 말하라면 그 시작도 끝도 디킨스다”라고 격찬했다.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은 “인간보다 더 강렬한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탁월했다”고 평했다.
영화감독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1889~1977)은 “디킨스는 영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유머 감각을 지닌 소설가”라고 평가했다.
악평도 있다.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는 “가장 대표적인 얄팍한 소설가”라며 “디킨스를 위대한 소설가로 인정한다는 것은 인류에 대한 모독”이라고 폄하했다.

8.가장 최근에는 디킨스의 별명인 ‘크리스마스를 발명한 남자(The man who invented Christmas,2017, 감독 바랏 날루리 )'라는 영화가 북미에서 개봉됐다. 한국에서도 2018년 ‘찰스 디킨스의 비밀 서재’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디킨스는 최고의 인기 작가인 만큼 세계 곳곳에서 기리고 있다. 영국 은행이 발행한 10파운드 지폐(1992~2003)의 모델이었고, 영국에서는 2012년 찰스 디킨스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 작가 관련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런던 중심지인 블룸스버리 다우티 거리에 찰스 디킨스 박물관이, 영국 포츠머스의 찰스 디킨스 출생지에도 박물관이 있다.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는 디킨스 친구 존 포스터(Jokn Forster,1812~1876, 전기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의 수집품에서 나온 인쇄소의 교정쇄, 초판, 여러 소설 원본 등이 소장돼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 스프루스 힐 근처의 클라크 공원에는 ‘디킨스와 리틀 넬(1890)’이라는 제목의 실제 크기 청동상이 있다. 또 다른 실물 크기의 디킨스 동상은 호주 시드니의 센테니얼 파크에 있다.
이밖에 캐나다 오타와 공공도서관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의 셰익스피어와 알프레드 테니슨(1809 ~1892, 영국 계관시인)사이에 디킨스의 초상화가 배치돼 있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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