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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왜 세상이 잘못 돌아가나-21세기에 맞는 100년 전 통찰력의 수필은 병든사회의 근본을 질타한다. 본문
“현대사회를 다루는 책은 어느 정도 틀이 잡혀 있다. 일반적으로 분석과 통계, 인구를 나타낸 표가 등장하고, 회중교회 신자들의 낮은 범죄율, 신경발작을 일으키는 경찰관의 증가 추이 같은 확인된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러고는 ‘치료법’이라고 부르는 장으로 마무리한다. 그런데 ‘치료법’은 정작 나타나지 않는다. 오로지 주의 깊고 철저한 과학적 방법에 기댄 탓이다. 의료적 관점에서 질문하고 답하는 전략은 큰 실수다. 이것이 바로 사회학이 저지른 대실수다. 의료적 접근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치료법을 찾기 전에 질병을 진단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실제로 질병을 진단하기 전에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무엇이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사회가 초래한 질병에 잘 듣는 치료법도 찾을 수 있다.”(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지음, 서상복 옮김, 연암서가, 2021)
1.사회가 부지불식간에 느끼지 못하는 병리 현상을 꼬집는 탁견(卓見)을 첫 문단에 제시하고 있다. 100년 전인 20세기 초에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이렇게 정면으로 문제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학자는 없었다. 저널리스트답게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이해하도록 쓴 문장도 깔끔하다. 사회 병리 현상을 해결하는 대안 제시 등 통찰력이 대단하다. 좋은 글쓰기 습작은 물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쓸 때 활용할만한 도입부다.
*앞부분에 나오는 회중교회(會衆敎會)는 조합교회로 모이는 사람(회중)인 신도가 함께 교회 일을 결정하고 실천한다. 미국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이다.
2.체스터턴의 ‘왜 세상이 잘못 돌아가나(What's Wrong with the World, 1910)’는 제목 그대로 잘못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에세이다.
좋은 세상, 문명싀 올바른 발전을 위해 자유와 보편적 가치, 건전한 상식을 역설하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특히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각 분야의 병리 현상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내놓는다.
또 산업 혁명이후 영국 사회에 만연한 자본주의(산업주의)와 제국주의, 과격한 여성주의 등에서도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100년 전인 20세기 초 지식인의 사유인데도 21세기에 가장 와닿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최고의 지성인이었으며, 다작 문필가인 저자가 신문과 정기 간행물에 기고한 수천 편의 에세이에서 발췌한 글을 묶어 1910년에 내놓은 역작이다.
3.1910년 영국 ‘타임스’는 당대의 저명한 작가와 사상가들에게 ‘세상이 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묻는 일련의 설문기사를 다뤘다. 이때 체스터턴은 ‘아이엠(나부터)’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내가 탈불법을 하고,내가 기득권 젖어 스스로의 개혁을 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는 산업 발전에 따른 현대적 비인간화 만연, 가정의 파괴, 물질 만능 등이 사회 병리의 원인이었다. 실제 1900년 초는 산업자본가(기업)와 지식인들이 ‘진보’에 몰입하던 때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자본가와 진보 지식인은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여성문제 등에서 교묘한 일치를 보였다. 기업은 ‘여성 노동자가 더 저렴한 만큼 여성의 취업을 원한다’고 했고, 이에 진보 진영은 여성의 노동에 대해 ‘자신의 삶을 살 자유’라고 했다.
체스터턴이 이 책을 통해 영국 왕 에드워드 시대(Edwardian era,1901~1910, 또는 1914) 에 유행했던 사상을 비판하고 풍자한 이유다. 에드워드는 에드워드 7세(Edward VII, 1841~1910)를 말한다.
4.체스터턴은 인간의 자유를 해치는 폭정이나 이단이 형성되기 전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는 다른 모든 가치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또 평범한 인간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고 말한다. 자기 집과 사적 생활의 자유가 보장되는 가정, 먹거리를 생산할 토지, 노동의 대가로 정당하게 얻는 돈이다. 또 교육의 오류, 페미니즘 대 진정한 여성성, 어린이의 중요성 등에 대한 식견은 놀라울 정도다.
이런 식견과 분석은 당대보다 21세기인 오늘날에 더 유용하다는 평가도 많다. 1900년대 초의 지식인으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통찰력 있는 분석이었다.
이책은 가톨릭적인 종교 요소가 많다. 저자가 당시는 영국국교회 신도였지만 가톨릭에 경도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 저자는 이 책을 쓴 지 12년 후에 가톨릭 교회에 입교한다. 1922년 천주교로 개종한 것이다.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 1874~1936)=영국 언론인·비평가·시인·수필가·소설가·작가. 추리문학의 거장으로도 꼽힌다. 보편 가치를 옹호한 자유 사상가다.
1.영국 런던 켄싱턴의 캠든힐(Campden Hill)에서 부동산 중개업자 에드워드 체스터턴(Edward Chesterton,1841~1922)과 스위스계 프랑스인 마리 루이즈 그로스장(Marie Louise Grosjean)의 아들로 태어났다.
런던 세인트폴 학교(St Paul's School)를 졸업하고, 런던 대학교 예술학부(University College London)의 슬라드 스쿨 오브 아트(Slade School of Art)에서 일러스트와 문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학위는 획득하지 못했다.
2.1895~1902년 런던의 출판사 2~3곳에서 일했다. 그러는 틈틈이 글을 써서 1900년 첫 시집 ‘놀이하는 회색 수염’을 냈다.
이듬해 프란시스 앨리스 블로그(Frances Alice Blogg)와 결혼했다. 앨리스는 영국국교회주의(Anglicanism)를 ‘하급 모방 종교(pale imitation)’라 비판했다. 둘은 사망 때까지 함께 했지만 슬하에 아이가 없었다.
3.1904년 첫 소설 ‘노팅 힐의 나폴레옹(The Napoleon of Notting Hill)’을 출간했다. 또 ‘크리스마스 캐롤(1843)’의 작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더블린 출신 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19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포함한 여러 작가에 관한 문학 비평서도 출간했다.
체스터턴은 1900~1910년 사이에 신문과 잡지에 수많은 정치·사회·경제·문화 관련 글을 쓴다. 이들 글은 나중에 몇권의 단행본으로 출간했고, 1910년에는 발표된 다양한 글 중에서 사회·정치 사상을 담은 ‘왜 세상이 잘못 돌아가나(1910)’를 냈다.
4.체스터턴의 가장 인기있는 작품은 역설과 기지가 넘치는 ‘브라운 신부’ 이야기다. 잡지에 먼저 게재된 이 소설은 친구인 존 오코너 신부가 모델로 알려져 있다.
5권의 단행본인 ‘브라운 신부의 결백(1911)’, ‘지혜(1914)’, ‘의심(1926)’, ‘비밀(1927)’, ‘스캔들(1935)’ 등이 차례로 나왔다.
소설 속에서 브라운 신부는 늘 우산을 들고 다녔는데 워낙 알려지면서 기존에 탐정의 상징으로 우산을 활용했던 작가와 출판사들이 이미지를 변경할 정도였다고 한다.
5.체스터턴은 1922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활동이 더 활발했다. 정통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벗어나 재기 발랄은 물론 독창성, 역설을 잘 활용해 ‘역설의 대가’라는 칭호를 얻었다.
또 ‘G. K.'s Weekly’ 라는 주간지를 만들어 직접 편집, 발행하는 한편 당대에 이미 저명했던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1856~1950), 공상과학소설의 창시자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1872~1970) 등과 치열하게 논쟁을 하기도 했다. 체스터턴은 그 모든 논쟁의 승자일 정도로 탁월한 논리력과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6.체스터턴은 거구(巨軀)였다. 키가 193센티, 몸무게가 130kg에 달했다. 그래서 스스로 거구를 활용한 풍자와 유머를 했고, 풍자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28년에는 영국 범죄소설 작가 앤소니 버클리(Anthony Berkeley, 1893~1971)가 설립한 영국신비주의작가협회에 가입했고, 1930~1936년 동안 회장을 지냈다.
1935년에는 노벨문학상(Nobel Prize in Literature)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그해는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7.체스터턴은 예상보다 일찍 사망했다. 1936년 6월14일 버킹엄주 비콘스필드(Buckinghamshire Beaconsfield) 자택에서 영면했다. 향년 62세였다. 사인은 울혈성 심부전(congestive heart failure)이었다. 마지막 말은 아내에게 건넨 ‘good morning’이었다고 한다.
교황청(교황 비오 11세, Pope Pius XI)은 체스터턴 사망 직전 ‘위대한 성 그레고리 훈장(Order of St. Gregory the Great)’을 수여하는 한편 교황의 별을 단 기사단장(Knight Commander with Star of the Papal)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8.사망 2주째인 6월 27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가톨릭 신학자이자 신부 로널드 녹스(Ronald Knox, 1888~1957)는 “이 세대는 모두 체스터턴의 영향을 받아 완전히 성장했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 체스터턴을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자택 인근 카톨릭 공동묘지인 비콘스필드(Beaconsfield)의 한쪽에 묻혔다. 뉴욕 타임즈는 당시 부고 기사에서 체스터턴을 “영문학에서 가장 활기찬 사람”이라고 평했다.
9.체스터턴은 평생에 걸쳐 200여 권의 저서를 냈다. 또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 등에 수많은 에세이를 썼고, 4000편 이상의 논설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는 추리 소설 ‘브라운 신부의 결백(1911)’, ‘지혜(1914)’, ‘의심(1926)’, ‘비밀(1927)’, ‘스캔들(1935)’ 등이 있다.
일반 에세이와 종교, 신학 관련 비평서인 ‘피고(1901)’, ‘12가지 유형(1902)’, ‘이단자(1905)’, ‘정통(1909)’, ‘가톨릭교회와 개종(1926)’ 등이 있다.
10.체스터턴은 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유명한 추리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Mary Clarissa Christie Mallowan,1890~1976)는 물론,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1899~196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 영국 소설가이자 극작가 그레이엄 그린(Henry Graham Greene,1904~1991) 등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Francisco Isidoro Luis Borges,1899~1986)는 “체스터턴은 에드거 앨런 포보다 더 훌륭한 추리 소설가”라고 격찬했다.
한국에는 덜 알려졌지만 영미권에서는 역랑있는 작가로 평가받고있다. 영국에서는 생전에 체스터턴협회(The Chesterton Society)가 활동을 했고, 미국에는 사후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협회(American Chesterton Society)가 창립돼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또 가톨릭계에서는 가톨릭체스터턴협회(Catholic GK Chesterton Society)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을 정도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