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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권력의 광기 앞에 무릎꿇은 교과서 수록 작가의 수필 첫 문단은 서정시처럼 짙게 스며든다 본문

1부. 우리를 슬프게하는 것들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초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오색영롱한 깃털의 작은새의 시체가 눈에 띄었을 때. 대체로 가을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를테면 비내리는 잿빛 밤, 소중한 사랑하는 이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져 갈때. 그러고 나면 몇 주일이고 당신은 홀로 있게 되리라. 아무도 살지 않는 텅빈 고궁. 고궁의 벽에는 석고 장식이 떨어져 내리고 있고, 삭아버린 한 나무 창뜰에서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를 읽게 될 때. 숱한 세월이 흐른뒤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한통. 편지에는 무슨 사연이 쒸어 있는가? '아들아, 너의 소행으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이르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나의 소행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릇된 행동, 아니면 복잡한 연애사건, 거짓말, 또는---. " (안톤 슈낙 저, 차경아 역, 문예출판사, 2017)

1.한편의 좋은 시를 읽는 듯한 서정성이 짙게 배인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파고드는 도입부다.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 단순하게 지나칠 수 있는 주변 모습을 절묘하게 포착한 문장 전개다. 한줄 한줄을 읽다보면 아무일도 없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게 해준다. 1인칭 화자의 회상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읽을수록 감칠 맛 나는 첫 문단이다. 다만 너무 유려한 문장 전개와 문체, 삶을 달관한 듯한 시선이 거슬리는 것은 옥의 티라고나할 까. 가볍게 써내려가는 일기나 감상문, 에세이의 습작으로 연습하면 좋은 문장 구성법이라 하겠다. 본문에 나오는
*.아이세는 알자스(Alsace, 독일-프랑스 분쟁 지역이었다가 1871년 보불전쟁 후 독일병합, 1차세계대전 후 프랑스 귀속) 출신의 작가 르네(혹은 레네) 시켈레(René Schickele, 1883~1940)의 소설 '아이세(Aïssé)'의 주인공 아이세를 말한다. 노예로 팔려간 인도 여인 아이세와 프랑스 백작 아이딘(Chevalier d'Aydin)의 이루어질 수 사랑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르네 시켈레는 독일 영토 시기 알자스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차세계대전 후 국적이 프랑스로 바뀌면서 평생을 정체성 갈등에 시달리며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문제 해결에 노력한 작가다.

2.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Was traurig macht, 1946)'은 저자의 조국 독일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에세이다. 짧은 산문의 정수이자 감성 에세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글이다. 저자의 문집 '로빈손의 낚시(Die Angel des Robinson, 1946, 독일 뮌헨 쿠르트 데쉬 출판사)'에 실려 있다.
이 수필은 독일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 지 한국에 소개된 1940년대 말 이후 '언제 어디에 실렸는지'에 대해 국내에서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1941년 판 '젊은 날의 전설'이 아닌 1946년 판 '로빈손의 낚시'에 실렸다는 것이 굳어지고 있다. 이는 2003년에 발행된 '안톤 슈낙 전집(독일 엘펜바인 출판사, 전 2권)'에 서평을 쓴 독일 평론가이자 전시 큐레이터 롤프-베르나르트 에시히(Rolf-Bernhard Essig, 1963~현재)가 확인하고 있다.
제목으로 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작품집 '로빈손의 낚시' 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의 앞부분(1부)은 자전 에세이 형식이다. 문자 그대로 어린 시절, 고향, 자연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뒷부분(2부)은 단편 형식의 산문이다. 젊음과 사랑, 방랑과 숲이 이야기의 흐름을 이룬다.

3.한국에서 유명세를 탄 계기는 1946년 서울대 교수로 있던 독문학자 청천(聽川) 김진섭(金晉燮,1903~?, 1950년 6.25 때 행방불명, 일제시대 극예술연구회 창립멤버)의 소개가 계기였다. 김 교수는 이 에세이를 자신의 수필집 '생활인의 철학(1947년, 선문사)'에 권두 작품으로 실어 소개했다.
이후 정부 수립 이후 나온 제 1차 교육과정(1954~1963)에 따라 1954년 국정 고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수필로 자리매김했다. 이 수필이 교과서에서 빠진 것은 제 4차 교육과정(1981~1987) 개정 이후인 1982년이다.
1990년대 노래 '개똥벌레'로 유명한 가수이자 작곡가 신형원(辛炯琬, 1958~현재)이 1992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앨범에 제목으로 사용했다. 타이틀곡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조병석 작사·작곡)'이다. 한국에서 안톤 슈낙의 다른 수필과 함께 묶여 한권의 책으로 출간된 것은 1974년이다.

#.안톤 슈낙(Johann Anton Schnack, 1892~1973)=독일의 저널리스트로 최고의 산문 작가. 전쟁 시인.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1889~1945)에게 충성 서약을 한 작가 88명 중 1명.

1.독일 중남부 바이에른 주 프랑켄(FRANKEN-Franconia) 지방 리넥(Rieneck)에서 헌병대 의 주둔지 사령관(혹은 역 경찰대 간부) 헤르맨 슈낙(Hermann Schnack, 1853~?)과 엘리자베스(Elisabeth Schnack, 생몰 미상)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형제 중에는 자연사와 아동문학 작가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슈낙(Friedrich Schnack, 1888~1977)이 있다.
아버지의 임지 변경에 따라 바이에른 주변 도시인 데텔바흐(Dettelbach), 크로나흐(Kronach), 함멜부르크(Hammelburg) 등에서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1913년 뮌헨 대학교에 들어가 문학과 음악, 철학을 공부하면서 아방가르드(avant-garde, 군대의 앞열,전위대 뜻)문학에 심취했다. 뮌헨대 졸업 후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독일 작센주 할버슈타트(Halberstadt)와 이탈리아 볼차노(Bolzano,1919년 이탈리아 합병이전 대다수 주민 독일어 사용) 등에서 활동했다.

2.스물두살 때인 1914년 1차 세계대전(First World War, 1914~1918)이 터지자 독일제국군(Imperial German Army, Deutsches Heer)에 입대, 1915~1916년 서부 전선에서 4개월을 보내면서 전투를 치르다가 부상당해 집으로 돌아왔다. 1917년 1월 첫 번째 전쟁 시 '마리아 자매(Schwester Maria)'를 발표했다.
문단에 공식 데뷔한 것은 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19년 '욕망의 노래'를 발표하면서다. 그해부터 차례로 2년 동안 4권의 시집을 냈다. 처음 세 권인 '탐욕의 시(Strophen der Gier,1919)', '천개의 웃음(Die tausend Gelächter, 1919), '모험가(Der Abenteurer,1919)는 팸플릿 시집 형태로 냈다. 종전 직후에는 사회주의에도 관심을 가져 1919년 사회주의 잡지 '심판-Das Tribunal(다스 트리부날,The Tribunal)'의 창간호에 '베르덩(Verdun)'를 발표했다.

1920년 네번째 시집으로 가장 중요한 전쟁 시집(60편으로 구성) '짐승은 짐승과 강력하게 싸웠다(Tier rang gewaltig mit Tier)'를 1,000부의 한정판으로 냈다. 이 시집은 1914~1918년 벌어진 1차세계대전 시기 독일 전쟁 시인이 쓴 최고의 단일 시집이라는 평을 들었다. 영국 더럼 대학교(University of Durham)의 독일어 명예교수인 패트릭 브리지워터(Patrick Bridgwater, 1931~현재)는 1985년 영국 루트레지(Routledge) 출판사에서 낸 '루트레지 문학선집-독일문학(German Literature,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시인을 다룸)'에서 슈낙의 시집을 '1914~1918년 독일 전쟁 시인이 쓴 가장 훌륭한 단일 컬렉션'이라고 극찬했다.

3.슈낙은 1920~1925년 사이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남쪽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만하임(Mannheim)의 좌파신문인 노이에 바디셰 란데스차이퉁(NBL, Neuen Badischen Landes-Zeitung, 1866~1934)에서 문학 편집자이자 연극 평론가로 일했다. 편집자로 일할 때인 1924년 10월 마리아 글뢰클러(Maria Glöckler, 생몰 미상)라는 여성과 결혼, 바이에른 주 베르히테스가덴에 정착했다.
슈낙의 삶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1933년 1월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가 되면서다. 그해 작가들에게 충성맹세 압박이 들어오면서 10월 충성 서약(Gelöbnis treuester Gefolgschaft,가장 충성스러운 복종의 약속)'에 서명했다. 히틀러에 충성을 맹약한 작가 88명 중 한 명에 오른 것이다. 슈낙의 히틀러 충성서약은 이후 나온 시와 에세이가 전체주의자(혹은 전범 동조자)의 글로 평가절하된 이유다.
1935년 작품집 작은 독서(Kleines Lesebuch), 1936년에는 장편소설 '철새의 사랑(Zugvögel der Liebe, 사랑의 후조로도 번역)', 1937년에는 '우울한 프란츠(Der finstere Franz)-해적 이야기'를 발표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해 슈낙은 1937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으로 이주했다.

4.슈낙은 52세 때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쟁이 기울어져가는 1944년 징집으로 베르마트(Wehrmacht, 독일 방위군)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미군에게 포로로 잡혔고, 1945년 종전과 함께 풀려났다. 슈낙은 종전 후 바이에른 주 마인 강변에 있는 칼 시(Kahl am Main)에 정착, 다양한 작품활동을 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다. 히틀러에 대한 충성 서약이 끝까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슈낙이 유일하게 받은 문학상은 1968년 뮌헨 작가들이 주는 '바이에른 시인' 상이었다. 이후 1973년 바이에른 주 바바리아(Bavaria) 칼 암마인 하나우에서 영면했다. 향년 80세. 저서로는 '우울한 프란츠', '아름다운 소녀 이름', 'ABC에 대한 아라베스크' '프랑켄-로맨스의 땅', '프랑코니아의 해(1951)', '프랑코니아 와인 여행(1964)' 등이 있다.
슈낙은 독일 유명 전쟁 시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히틀러 충성맹세 작가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슈낙을 영국 군인이자 시인 윌프레드 에드워드 살터 오웬(Wilfred Edward Salter Owen MC, 1893~1918, 1차세계대전 전투에서 사망)와 비교한다. (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