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세계 제국의 잔영이 느껴지는 수필의 첫 문단은 悲哀로 다가온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오랜 세월 동안 내 뇌리의 한 구석에, 이스탄불 골목들 중 한곳에, 우리 집과 비슷한 다른 어떤 집에, 모든 면에서 나와 비슷한, 아니 나와 꼭 닮은 또다른 오르한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생각을 처음 언제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아마도 오해, 우연, 장난 그리고 두려움으로 짜인 긴 세월끝에 내마음속에 스며든 것 든 것 같다. 이 상상이 머릿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이난아 옮김, 민음사,2008)
 
1.첫 문장에 사실적이고 꾸밈없는 자전 수필임을 보여주고 있다. 문장 하나에 4개의 쉼표가 있는 만연체 서술로 수필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첫 문단이다. 이어지는 사유와 은유가 담긴 문장들도 호흡이 길다. 3인칭 시각에서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객관적으로 써내려가려다 보니 길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장이 연속 이어지고, 문맥 구조상 빡빡한 느낌은 지울 수 없을 정도다. 논술 시험 용 글쓰기 연습을 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문체라고 볼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의 영광이 살아 숨쉬는 이스탄불 아야소피아(Aya sofya, 거룩한 지혜) 성당. 2019.5.photo by kimgsan

2.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İstanbul, Hatıralar ve Şehir,2003)’은 튀르키예 제국의 역사와 자신의 개인사를 엮은 자전적 에세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스탄불 작가’로서의 오르한 파묵의 정체성이 물씬 묻어나는 수필이다.
수필 곳곳에 사라진 제국에 대한 향수와 잔영, 쇠락의 제국에 남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묘사되고 있다. 특히 오스만 투르크 제국(1300~1922) 시절 세계의 심장이었던 이스탄불과 몰락한 제국에 대한 비애, 무기력, 가난, 우울한 정서가 배어 있다. 

3.이 수필은 작가의 성장기가 향기없는 매혹으로 다가온다. 이스탄불에 대한 작가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담았다. 책을 읽으면 이스탄불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온 작가와 함께 도시를 거닐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ㅇ에세이 이스탄불의 밑 바탕에는 '비애'라는 정서가 깔려있다. 제국의 쇠망에 대한 비애, 현실의 팍팍한 삶에 대한 비애가 자리잡고 있다. 책에 쓰인 이 파묵의 어린 시절을 담은 흑백사진 200여 점은 이같은 비애를 더 도드라지게 한다. 세계 제국의 시대의 잔영과 작가의 글, 사진이 이스탄불을 관통하는 정서로 다가온다. 

4.이 수필은 이스탄불 이라는 한 도시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개인사에 이스탄불의 역사, 문화, 예술을 엮으면서 글을이를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에 대해 간단하게 한 말 중 가장 압축한 말은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중 언급한 것이다. "문화 간 충돌과 복잡함"이 그것이다.이 말에  딱 어울리는 수필이다.
에세이 '이스탄불'은 영국에 번역 소개된 2005년 인디펜던트지 선정 ‘올해의 가장 좋은 작품’으로 꼽혔다.

5.이 에세이에도 파묵이 잘 쓰는 서술 기법이 내비친다. 파묵은 소설에 ‘알레고리(allegory) 기법(본래 뜻은 감추고 나타나 있는 것 이상을 살피게 하는 문장 수사법)적 메타픽션(Metafiction, 등장 인물들이 작품속 세계가 픽션이라고 인지하는 설정)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파묵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소설에 참여하는 것을 기대하는 수용미학 측면의 소설쓰기를 하는 것처럼 에세이 '이스탄불'도 독자가 마치 이스탄불 어딘가를 걷고 있는 것처럼 읽힌다.

오스만제국의 마지막 궁전 돌마바흐체(Dolmabahce, 가득찬 정원) 궁전 모습.2019.5.photo by kimgsan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년~현재)=튀르키예(터키) 최고의 소설가, 수필가다. 튀르키예인 최초의 노벨문학상(2006) 수상자.본명은 Ferit Orhan Pamuk이다.

1.이스탄불 상류층이 거주하는 니샨타쉬의 부유층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가 어려서 이혼하면서 정서적 어려움을 겪었다. 로버트 칼리지 고교와 이스탄불 공대 건축학과를 자퇴했다. 1976년 이스탄불 대학 언론학 연구소를 졸업했다.

2.1979년 첫번째 소설 ‘어둠과 빛(Karanlık ve Işık, Darkness and Light)’으로 문단에 공식 데뷔했다. 이 소설은 '밀리예트 언론 소설 콘테스트'의 공동 수상 작품이었다. 두 번째 소설인 '고요한 집(Sessiz Ev, Silent House)'으로 1984년 마다라리 소설상(Madarali Novel Prize) 등을 받았다.

3.소설 ‘하얀 성(Beyaz Kale,1985)’ 은 1990년대 미국에서 'The White Castle'로 번역됐으며, 뉴욕타임스(1991년 5월 19일자)가 "동양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고 격찬했다. 이후 파묵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소설 ‘새로운 인생(Yeni Hayat], The New Life,1994)’은 튀르키예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고 한다. 그의 책은 세계 100국에서 1300만 권이상이 팔렸다.

4.파묵의 삶에는 4명의 여인이 교차한다. 파묵은 1982년 역사학자 아일린 튀레귄(Aylin Türegün)과 결혼했다. 둘 사이에는 딸 Rüya(꿈)가 있으나, 2002년 이혼했다.
 이후 파묵은 작가 키란 데사이(Kiran Desai)와 관계를 공개적으로 인정했으나 헤어진 뒤 2011년부터 아슬레 악야바슈(Aslı Akyavaş)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한 명의 연인으로 터키계 아르메니아인 예술가 카롤린 피셰크치(Karolin Fişekçi told Hürriyet)가 있으나 파묵은 부인했다.

5.파묵은 튀르키예 정치나 인권 문제 등에 대해  비판도 많이 한다. 튀르키예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인권 발언 등으로 조국에서 보수파들의 반발로 생명의 위협(튀르키예 민족주의자들의 살해 협박)을 느껴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미국으로 가서 컬럼비아 대학교 비교문학과 글쓰기 교수로 재직했다.
정치적 이유로 조국을 떠나 있음에도 파묵은 튀르키예 문학계의 원톱이며, 최고의 셀럽이다. 2012년에는 그의 소설 ‘순수 박물관(Masumiyet Müzesi, The Museum of Innocence)’ 이라는 이름그대로의 ‘순수박물관’이 이스탄불에 개관했다.

6.문학 관련 다양한 상을 받았다. 영국 독립 외국 소설상(1990), 프랑스 르 리브르 느와르로 프랑스 문화상(1995), 독일 도서 무역 평화상 (2005), 노벨문학상(2006), 루마니아 오비디우스상(2008), 덴마크 소닝상(2012),올해의 유럽 박물관상(2014) 등을 수했다.파묵은 무인도에 가야 한다면 반드시 챙겨갈 저서 중 하나로 영국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버트란드 러셀(1872~1970)의 ‘러셀 서양철학사’를 꼽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책이 많이 팔린 작가로 유명하다. 국내 첫 소개 작품은 '하얀 성(Beyaz Kale, 최종수 역)'이다. 이후 대부분의 저서는 이난아(번역가)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번역했다.

7.파묵의 대표적인 소설로 '고요한 집(Sessiz Ev, Silent House,1983)', '내 이름은 빨강(Benim Adım Kırmızı, My Name Is Red,1998)' , ‘하얀성(Beyaz Kale,The White Castle,1985)’,  ‘눈(Kar, Snow,2002)’, 내 마음속의 낯섦(Kafamda Bir Tuhaflık], A Strangeness in My Mind),  ‘새로운 인생(Yeni Hayat], The New Life,1994)’ , 순수박물관(Masumiyet Müzesi, The Museum of Innocence, 2008)등이 있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