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0세기 문학사의 전무후무한 걸작의 첫 문단은 사소설 같은 내적 독백과 의식의 흐름으로 거대 서사를 예고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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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0세기 문학사의 전무후무한 걸작의 첫 문단은 사소설 같은 내적 독백과 의식의 흐름으로 거대 서사를 예고한다.

지성인간 2024. 12. 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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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 시대 파리 술집 '맥심 바' -프랑스 장식화가 피에르 빅토르 갈랑(Pierre Victor Galland,1822~1892)이 1880~1914년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 시대 파리의 술집을 1890년 그린 '맥심 바(Le bar de Maxim)'. 풍요와 퇴폐의 벨 에포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www.messynessychic.com

1부 스완네 집 쪽으로(Du côté de chez Swann) 1. 콩브레 
1 "오랜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때로 촛불이 꺼지자마자 눈이 너무 빨리 감겨 '잠이 드는구가' 하고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그러다 삼십여 분이 지나면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잠이 깨곤 했다. 그러면 나는 여전히 손에 들고 있다고 생각한 책을 내려 놓으려 하고 촛불을 끄려고 했다. 나는 잠을 자면서도 내가 방금 읽은 책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약간 특이한 형태로 나타났다. 마치 나 자신이 책에 나오는 성당, 사중주곡, 또는 프랑수아1세와 카를 5세와 경쟁관계라도 되는 것 같았다. 이 믿음은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몇초 지속되어 내 이성에 거슬리지는 않았지만 내 눈을 비늘처럼 무겁게 짓눌러 촛불이 꺼졌다는 사실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 이 믿음은 윤회설에서 말하는 전생에 대한 상념처럼 전혀 이해할 수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책의 주제는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 나는 마음대로 책의 주제에 전념하거나 전념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내 시력을 회복한 나는 주위의 어둠에 놀랐다. 내눈에 부드럽고도 아늑한 어둠은, 내 정신에는 아무 이유도 없는, 이해할수 없는, 정말로 모호하기만 한 그 무엇으로 느껴졌다. 몇시나 되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기적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가더니, 마치 숲속에서 우는 새의 노래마냥 거리감을 드러내면서, 나그네가 다음역을 향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그 황량한 들판의 넓이를 그려보였다. 그가 따라가는 오솔길은 새로운 장소, 익숙하지 않은 행동, 밤의 침묵속에 따라다니는, 낯선 램프 불밑에서 나누었던 얼마전의 대화와 작별 인사, 임박한 귀가의 감미로움에서 오는 흥분으로 그의 추억 속에 아로새겨질 것이다."(마르셀 프루스트 저, 김희영 역, 민음사, 2013)

벨 에포크 시대 상류층의 풍요와 사치를 보여주는 파리 한 무도회장(The ball). 프랑스 화가 빅토르 가브리엘 질베르(Victor Gabriel Gilbert, 1847~1933)가 1890년 그린 '우아한 야회(Une soirée élégante)'이다. 개인 소장. https://commons.wikimedia.org

1.소설의 명성(?)에 걸맞게 첫 문단이 작은 테마에서 거대서사로 나아간다. 거의 사소설같은 1인칭 시점에서 나의 잠덧을 평범한 내적 독백으로 말하지만 점점 커지는 주제의식이 집중을 부른다. 촛불과 교회, 사중주곡, 그러다가 갑자기 역사의 흐름과 윤회라는 무한대의  용어로 읽는 이를 당황하게 한다. 기억을 통한 '의식의 흐름'이 도입부부터 깔리면서 강력한 서사를 예고하고 있는 장중한 이야기 전개다. 섬세한 기억의 파편들이 모인 문장과 지리한 만연체가 거슬리고, 쉼표가 많은 번역문이지만 읽기에는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난삽한 만연체 문장치고는 의외다. 본문에 나오는 *사중주곡(四重奏曲)은 4개의 독주악기로 연주하는 실내악곡을 말한다. *프랑수아1세(François I, 1494~1547)는 프랑스 발루아-앙굴렘 왕조(Dynastie des Valois,1328~1589) 초대 국왕으로 아들이 없었던 선왕(先王) 루이 12세(Louis XII, 1462~1515)의 사위이다. 스페인 카를 5세와 이탈리아를 두고 7차까지 전쟁을 치렀으나 패했다. 제4차 이탈리아 전쟁(1521~1526) 중이던 1525년 2월 파비아(Pavia,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도시) 전투에서 스페인군에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카를5세(Karl V, Charles V,1500~1558)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3대)이며, 스페인의 국왕, 이탈리아의 군주 카를로스 1세를 말한다. 통칭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로 쓴다. *윤회설(輪廻說)은 생명이 있는 모든 사물은 자신이 지은 업보에 따라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는 불교 교리, *귀가(歸家)는 집으로 돌아가거나 오는 것이다.

1913년 프랑스 파리 베르나르 그라세 출판사에서 나온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부 '스완네 집 쪽으로' 초판본 표지. 파리 주요 출판사에서 퇴짜 맞아 마르셀 프루스트가 돈을 내서(자비 출판) 간행했다. www.the-saleroom.com

2.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1913~1927, 전 7권)'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작이자 모더니즘 문학의 최고봉에 올라 있는 위대한 소설이다. 현대 문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걸작으로 세계 문학사에서 '현대 소설의 결정판'으로 평가한다.
1913년 제1편인 ‘스완네 집 쪽으로’가 프랑스 파리의 작은 출판사 베르나르 그라세(Glasse)에서 겨우 나왔다. 파리의 출판사 아무데도 관심을 갖지 않아 저자가 자비(自費)출판했다. 2편은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때문에 출판사가 쉬면서 못냈다가 종전 후 1919년에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로 옮겨 1권 재판과 함께 냈다. 4편을 낸 1922년 저자는 5~7편의 초고를 모두 끝내고 병세가 악화해 숨을 거뒀다.  초고(初稿) 마무리 후 저자는 "전 어젯밤 제 글의 마지막에 끝이라는 단어를 적었답니다.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고 말했다. 인생을 바쳐 쓴, 혼을 담은 역작이 된 셈이다. 5편부터는 동생인  비뇨기과 겸 산부인과 의사 로베르 프루스트(Robert Emile Sigismond Léon Proust, 1873~1935)의 지도 편달 아래 출간했다. 
영어로는 첫 번역 때 'Remembrance of Things Past'로 나왔다. 스코틀랜드 작가 찰스 케네스 스콧 몬크리프(Charles Kenneth Scott Moncrieff, 1889~1930)가 1922년 번역, 그해 9월19일 'Swann's Way'로 출간했다. 현재는  'In Search of Lost Time'으로 번역된다. 스페인 잡지 엘파이스(El Pais)가 조사한 '100명의 스페인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책' 1위, 영국 작가이자 편집자 로버트 맥크럼(Robert McCrum, 1953~현재)이 가디언에서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 10권'에서 1위에 올랐다. 또 그레이트 북스가 뽑은 위대한 소설(The 100 Greatest Novels-greatbooksguide.com)에서도 1위에 등극했다. 이밖에 프랑스 신문 르몽드가 뽑은 '100대 세기의 책'에서도 2위에 올랐다. 또 프랑스 웹사이트 텔레라마(Télérama)가 2009년 프랑스 작가 1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뽑는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 베르뒤랭 부인에 영감을 준 프랑스 화가이자 삽화가로 사교계 명사인 마들렌 르메르(Madeleine Lemaire,1845~1928) 부인의 살롱에서 가수 어니스트 지베르(Ernest Gibert)가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스위스 출신 프랑스 인상파 화가이자 디자이너 피에르 조르주 쟌니오(Pierre-Georges Jeanniot, 18487~1934)의 1891년 작품. 프랑스 북부 루베(Roubaix) 피신느미술및산업 박물관( La Piscine-Musée d'Art et d'Industrie André Diligent) 소장. 출처=Wikimedia Commons.

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방대한 분량으로, 집필에만 14년이 걸린 대하 소설이자 위대한 교향곡같은 역작이다. 소설을 쓴 계기는 저자가 1909년 1월 차(茶)에 담근 러스크(rusk, 단단하고 건조한 비스켓, 소설에서 마들렌, madeleine, 프랑스 전통과자)를 맛보던 중 어린 시절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면서다. 1912년 9월 1부 초안(初案)을 완성했다. 
소설은 원래 크게 3개 부문, 1~7부로 나뉜다. '이름의 시대(스완네 집 쪽으로)', '말의 시대(게르망트 쪽)' , '사물의 시대(되찾은 시간)'로 구성된다. 1부는 1913년 나온 '스완네 집 쪽으로(Du côté de chez Swann)'이다. 1부는 1권 콩브레(Combray),  2권 스완의 사랑(Un amour de Swann), 3권 고장(country)의 이름-이름(Noms de Pays-le nom)으로 구성돼 나왔다. 2부는 1919년 낸 '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이다. 프랑스 권위있는 문학상 공쿠르상 수상작으로 1권 스완 부인을 둘러싸고(Autour de Mme Swann),  2권 고장(country)의 이름-고장(Noms de Pays- le pays)으로 나왔다. 1920년 출간한 3부는 국가(군대)가 저지른 반(反)유대주의 인권 유린 사건인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 유대인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에게 군부가 국가 반역죄(독일 간첩 혐의) 판결로 반유대인 물결이 일었던 사건, 나중에 조작 확인으로 석방)을 다룬 '게르망트 쪽(Le côté de Guermantes)'이다.
4부는 1922~1923년 출간한 동성애가 테마인 '소돔과 고모라(Sodome et Gomorrhe)', 5부는 1923년 작가 사후 출간한 '갇힌 여인(La Prisonnière)'으로 질투를 다루고 있다. 6부는 친구와 우정을 다룬 '사라진 알베르틴(Albertine disparue)'으로 1925년 나왔다. 7부는 전쟁(1차세계대전)과 처음으로 회귀를 다룬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é)'으로 1927년 나왔다.

벨 에포크 시대 파리 퇴폐 술집-네널란드 화가 키스 반 동엔(Kees Van Dongen,1877~1968)이 1947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온 소설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그린 일러스트 중 하나. 1880~1914년 벨 에포크 시대의 풍요와 퇴폐를 묘사했다. https://en.wikipedia.org

4.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랑스가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 발전으로 번영과 풍요를 맞았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시절,1880~1914)' 시대가 배경이다. 보-불전쟁(普佛戰爭)으로 불리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Franco-Prussian War, 1870년 7월19~1871년5월10일)의 무참한 패배이후 절치부심한 프랑스가 발딱 일어선 1880~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사이의 풍요와 퇴폐가 중심이다. 여기에 전쟁의 악몽(1차 세계 대전-프랑스인 130여만 명 사망)이 자리하고 있다.
소설은 자서전 격 연대기라 할정도로 묘사가 정밀하고 탁월하다. 화자 '나'가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닫는 여정 속에  시간과 기억, 사랑과 질투, 예술과 삶, 사회와 계층에 대한 철학이 배어 있다. 또 소설 속에 당대 프랑스 사회의 보잘 것 없는 일상은 물론 각종 사건 사고가 세밀화처럼 그려져 있다.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일상을 겹겹히 쌓고, 집단 기억을 끄집어내 문학사의 위대한 거탑(巨塔)을 세운 것이다. 특히 철학, 미술, 음악, 심리학 등을 하나로 아우르는 '통섭(通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내는 것)의 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당대 유명 작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본명 Francois Anatole Thibault, 1844~1924)는 1913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첫 번째 권을 읽은 후  "인생은 너무 짧고, 프루스트(소설)는 너무 길다" 고 말했다. 아나톨 프랑스의 말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긴 대작(大作)이어서 모국(母國) 프랑스에서도 이 소설을 다 읽은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모델이 된 파리의 유명한 미인이자 사교계 명사 엘리자베스 그레풀레(Élisabeth Greffulhe,1860~1952) 백작부인. 벨기에 은행가 가문의 앙리 그레풀레 백작(1848~1932)과 1881년 결혼, 부와 미를 함께 쥔 여인이었다. 헝가리 화가 필립 알렉시우스 드 라슬로( Philip Alexius de László , 1869~1937)의 1905년 작품.https://en.wikipedia.org

5.등장인물은 200명이 넘는다. 저자의 자서전 격으로 쓴 글에다 허구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인물이 나오고, 그들 상당수 실존인물과 겹치기도 한다. 우선 저자로 인식되는 내레이터이자 주인공 나(마르셀-명확한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와 아버지(세속적, 기상학 관심), 어머니(헌신, 순종주의자), 외할아버지 아메데, 외할머니 바틸드, 작은 외할아버지 아돌프, 외고모 할머니, 외고조 할머니 레오니, 외이모 할머니 셀린과 플로 등이다.
또 부유한 중권 중개인의 아들이아 사교계 총아 스완과 화류계 여인으로 부인이 된 오데트, 둘의 딸로 화자의 친구이자 첫 사랑 질베르트, 화자의 유대인 친구 블로크,  화자의 정신적 멘투 베르고트, 화자 집 요리사 프랑스와즈와 부엌 하녀, 노처녀 할멈 욀릴리, 콩브레성당 주임신부, 성가대원 테오도르, 엔지니어 르그랑댕, 피아노 선생 뱅퇴유와 딸, 의사 페르스피에, 명성과 돈을 가진 게르망트 공작 바쟁과 공작부인 오리안, 그의 고모 빌파리지 후작 부인 등도 나온다.
이밖에  부르죠아 여인 베르뒤랭 부인, 살롱 단골이자 파리 의사 코타르와 그의 아내 코타르부인, 현학적인 대학교수 브리쇼, 화가 비슈(엘스티르), 스완의 질투를 유발하는 포르슈빌 후작과 그의 동서로 고문서 학자 사니에트, 스완의 친구로 동성애자 샤를뤼스(팔라메드), 명문귀족 생퇴베르트 부인, 르그랑댕의 여동생 캉브르메르부인 등도 있다.

파리 최고 멋쟁이-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과 7권에 등장하는 음탕한 게이 남성 팔라메드 드 샤를뤼스 남작의 모델인 로베르 아나톨 드 몽테스키우 페장삭(Robert Anatole de Montesquiou-Fézensac, 1855~1921) 백작의 초상. 이탈리아 장르 화가이자 초상화가로 파리에서 활동한 조반니 볼디니(Giovanni Boldini,1842~1931)가 1897년 그렸다. 몽테스키우는 프랑스의 미학자 , 상징주의 시인, 화가로 파리 최고의 멋쟁이였다. https://en.wikipedia.org

6.소설은 주인공 나(마르셀)의 1인칭 고백 형식이다. 나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시절) 시대 프랑스 신흥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로 사교계를 출입한다. 그러면서 여인에 대한 동경, 사회적 명성에 민감하지만 삶의 이면에 절망하고 회의를 느낀다. 어느 날 마들렌을 먹다가 무의식적으로 과거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시간의 위대함을 알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자각한다. 그래서 예술적 자아의 성취를 고민한다. 
소설은 길고 긴 대작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삶에 대한 회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고뇌와 슬픔, 사랑의 덧없음, 삶의 `잃어버린 시간`이 배어있다. 소설이 인기를 끈 이후  '프루스트 효과(The Proust Effect)',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이라는 말이 생겼다. 일상의 기억이 주는 행복으로 인해 삶의 활기를 얻는 것을 말한다. 영어에서는 '점화(點火) 효과(프라이밍,priming)'라고도 한다. 한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위대함은 거의 모든 소설이 흔히 추구하는 리얼리즘과 상징주의, 이데올로기의 개입 없이 개별성과 독창성만으로 전무후무한 명작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 파리 서북부 일드프랑스 발두아즈주 아르장퇴유의 보트장에서 휴가를 즐기는 부부를 그린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의 1874년 작품 '보트 타는 사람들' , 프랑스 투르네 미술관 소장. https://en.wikipedia.org

7.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현대 문학사 최고 걸작인만큼 격찬이 쏟아졌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모로아(Andre Maurois, 본명 Emile Salomon Wilhelm Herzog, 1885~1967)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독일 문학가이자 철학자 E. R. 커티스(Curtis)는 “프루스트 이전의 소설들은 모두 여기(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도착하고, 이후의 소설들은 모두가 여기서 출발한다”고 격찬했다.
영국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194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은 후 "과연 앞으로 쓸 게 뭐가 남아 있을까요? 어떻게 어떤 사람이 내 손에서는 언제나 빠져나갔던 것을 확고하게 담아내서 이 아름다우면서도 완벽하게 영원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요? 책을 내려놓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군요”라고 말했다.
영국 소설가 E. M. 포스터(Edward Morgan Forster,1879~1970)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소설” 이라고 말했고, 영국 문호로 '달과 6펜스'의 저자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현재까지 가장 위대한 소설”,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1899~1977) “20세기 산문의 4대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베르뒤랭 부인 모델 중 한명인 사교계 명사 레옹틴 리프만(Léontine Lippmann,1844~1910). 마담 아르망 드 카야베(Madame Arman de Caillavet)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의 뮤즈이자 유명한 문학 살롱의 여주인이었다. www.marcelproust.it

스웨덴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  벵트 홀므퀴스트(Bengt Holmqvist, 1924~2002)는 “프랑스 최고의 산문 전통의 마지막 위대한 고전이자 누보 로망의 우뚝 솟은 선구자”라고 극찬했다.  스위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성장한 소설가이자 철학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현재)은 “한 인간 삶의 가장 완벽한 재현”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한없이 다시 읽고 또 읽고 싶은 작품”,  미국 유명 평론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1930~2019)은 “20세기의 주요 소설”이라고 평가하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3명으로 제임스 조이스, 카프카와 함께 꼽았다. 영국 소설가이자 비평가 그레이엄 그린(Henry Graham Greene, 1904~1991)은 "톨스토이가 19세기에 했던 것처럼 프루스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화가 피터 밀튼(Peter Milton,1930~현재)이 그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미국 뉴욕 밀우드 에보갤러리(ebo Gallery) 소장.마루셀 프루스트(앞부분 왼쪽)가 과거의 기억을 소재로 글을 쓰는 모습을 표현했다. www.petermilton.com

8.프랑스 최고 권위있는 문학상 공쿠르상(Le prix Goncourt, 1903년 첫 시상, 영문 The Goncourt Prize) 심사에서 프루스트의 첫 소설을 잘못 봤던 당대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지드(Andre Paul Guillaume Gide, 1869~1951,194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1919년 저자에게 사과했고, 직후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거액의 저작권료와 함께 파리 최대 출판사 갈리마르로 판본이 넘어갔다.
소설은 난해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써진데다 정밀 묘사, 길고 긴 스토리 전개 등으로 영화로 많이 만들어 지지 않았다. 다만 첫 편 '스완네 집쪽으로'가 독일 출신 영화 감독 폴커 슐렌도르프(Volker Schlondorff, 1939~현재)에 의해 '스완의 사랑(Swann In Love)'으로 1984년 나왔다. 영국 출신 명배우 제레미 아이언스(Jeremy John Irons, 1948~현재)와 이탈리아 배우 오르넬라 무티(Ornella Muti,1955)가 열연했다. 이밖에 소설에 영감을 받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Attila Marcel)'도 2014년 프랑스 감독 실뱅 쇼메(Sylvain Chomet, 1963~현재) 연출로 나왔다.

1919년 프랑스 최대 출판사 갈리마르(nrf)에서 나온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부 '스완네 집 쪽으로' 표지. https://www.the-saleroom.com

9.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전 세계 언론이나 문학 사이트에서 알고리즘 등을 합산해 뽑은 '최고의 책 리스트'에서 3위에 올랐다. 1위는 미국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1925)', 2위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Ulysses, 영웅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 1922)', 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Cien años de soledad, 1967)', 5. JD 샐린저 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1951), 6.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Lolita, 1955), 7. 조지 오웰의 1984(Nineteen Eighty-Four, 1949), 8. 레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1875), 9. 허먼 멜빌의 모비딕(Moby-Dick; or, The Whale), 10.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1847)'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1985년 처음 완역됐다. 한국 불문학계의 제1세대인 김창석 시인(1923~2013)이 프랑스에서 1954년 나온 판을 저본(低本)으로 번역했다. 국일미디어(김창석 역)와 펭귄클래식(이형식 역), 동서문화사(민희식 역) 등에서도 나왔다. 이후 나온 민음사 출간본이 명번역(名飜譯)으로 꼽히고 있다. 번역가는 40년간 마르셀 프루스트를 연구한 프루스트 전문가 김희영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 명예교수다.

프랑스 파리 출신으로 독학으로 런던과 파리에서 화가로 성공한 자크-에밀 블랑슈(Jacques-Emile Blanche,1861~1942)가 1892년 그린 '21세의 마르셀 프루스트' 초상화. - http://www.lne.es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프랑스의 위대한 소설가. 20세기 소설 문학사의 핵이자 세계에서 영향력 있고 중요한 작가.  20세기 소설 혁명을 이끈 명작가이다. 본명은 발랑탱 루이 조르주 외젠 마르셀 프루스트(Valentin Louis Georges Eugène Marcel Proust)이다.

프랑스 여류 화가 아나이스 보베( Anaïs Beauvais, 1832~1898)가, 1880년 그린 마르셀 프루스트의 어머니 '잔 프루스트의 초상'. 마르셀 프루스트 메종(Musée Marcel Proust-Maison de tante Léonie) 소장. https://en.wikipedia.org

1.파리 근처 오퇴유 일리에(현 일리에 콩브레, 1971년 프루스트 탄생 100주년 기념 개명)에서 아버지 애드리언 프루스트(Adrien Achille Proust,1834~1903)와 알자스(Alsace) 출신의 유대계 부르조아 어머니 잔느 클라망스 베유(Jeanne Clémence Weil, 1849~1905) 사이에서 태어났다. 1871년 8월 5일 생루이당탱 교회(현 파리 9구)에서 세례를 받았다. 아버지는 콜레라 연구가이자 역학과 위생학의 대가로 매우 부유한 파리 의과대학 교수였다.  유명 철학자로 192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 유대인 첫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외가 쪽으로 6촌 인척이다.
프루스트는 9세에 첫 천식 발작을 일으켰고, 평생을 천식으로 고생했다. 초등교육은 마리 파프 카르팡티에서 받았고, 19세기 낭만주의 오페라의 3대 거장(이탈리아 베르디, 독일 바그너)중 한명인 작곡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와 주느비에브 알레비(Geneviève Halévy, 1849~1926)의 아들인 자크 비제(1871~1922)가 동기동창이다. 이후 중고교 과정 최고 명문 리세 콩도르세(Lycée Condorcet, 1803년 개교)에서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42~1898)를 만났고, 문학청년으로 작가를 꿈꿨다. 이 때 친구 다니엘 알레비(Daniel Halévy, 1872~1962, 나중에 역사학자 수필가 활동)들과 동인지'향연(饗宴, Le Banquet)'을 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의사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Robert Emile Sigismond Léon Proust, 1873~1935). 로베르는 프랑스에서 위생학의 선구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https://en.wikipedia.org

2.프루스트는 문단 입문을 비평으로 했다. 문학적 토양은 고향 일리에, 할머니와 피서 갔던 노르망디의 해변, 파리의 샹젤리제, 리세 콩도르세(Lycée Condorcet), 교교때부터 드나들었던 문학살롱 등이었다. 특히 사교계와 문학 살롱은 프루스트의 청장년 시절 많은 경험을 안겼다. 이 때 아르망 드 카야베 부인 (Madame Arman de Caillavet)인 레옹틴 리프만(Léontine Lippmann, 1844~1910,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  Anatole France 연인), 장미의 여제로 불린 화가 마들렌 르메르(Madeleine Lemaire, 1845~1928)등 여러 사교계 여성과 여성 명사들을 만났고, 나중에는 사교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때문에 문단에서 '문학을 교양으로 즐기는 속물'이라는 비판도 들었다. 

프랑스 파리 보수신문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1863년 창간 1944년 폐간)’ 1895년 1월 13일자에 실린 '반역자'. 프랑스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앙리 메예(Henri Meyer,1841~1899)가 1895년 1월 5일 파리 군사학교 연병장에서 있었던 드레퓌스(Alfred Dreyfus, 1859~1935) 대위 해임식 현장을 그린 것이다. 드레퓌스는 1899년 대통령 특사로 석방됐고, 사건 발생 12년 만인 1906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https://gallica.bnf.fr

19세 때 군에 지원해 1889~1890년 오를레앙의 76 보병연대에서 복무했다. 군을 제대한 프루스트는 국립고문서학교(École des chartes)에 가기 위해 소르본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다. 이 때 6촌 인척인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1895년 3월 문학사 학위를 받았고, 1896년에는 아나톨 프랑스의 추천사를 받아 '즐거움과 그 나날(Les Plaisirs et les Jours)'을 발표했다. 그런데 동료들의 외면을 받아 상처를 받기도 했다. 20대 후반에는 영국 작가이자 평론가,화가로 활동한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에 심취, 그의 저서를 번역,  '아미맹의 성서(La Bible d'Amiens,1904)', '참깨와 백합(Sésame et les Lys,1906)'을 출간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프랑스 최고 명문학교 리세 콩도르세(Lycée Condorcet, 1803년 개교) 출신이다. 동기동창들과 함께 한 프루스트(둘째줄 왼쪽 첫번째). 작가 미상.https://en.wikipedia.org

3.프루스트는 1900년대 초반은 많은 일을 겪는다. 1903년 2월 의사 동생 로버트 프루스트(Robert Emile Sigismond Léon Proust , 1873~1935)가 결혼했고, 그해 말 아버지가 사망한다. 또 2년 후에는 어머니(1905년 사망)마저 잃어 충격을 받는다. 특히 병약한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본 정신적 지주 어머니의 죽음은 큰 고통이 됐다. 어머니를 잃은 충격은 프루스트의 천식 병세를 더 심하게 해 미세한 먼지와 꽃가루에도 발작을 일으켰다. 
프루스트는 이때부터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를 기억하고, 쓰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편 '스완네 집 쪽으로'를 1913년 냈다. 그런데 이 소설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복잡한 문체, 주제나 내용의 흐릿함, 의식의 흐름 등을  저명한 비평가와 작가들이 혹평한 것이다. 비판가들 중에는 대문호 앙드레 지드(André Gide, 1869~1951,나중에 "프루스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언급)도 있었다.

1876년 경 프루스트 형제와 친할머니 비르지니 프루스트. https://www.pinterest.com

4.프루스트의 사랑은 쓰라렸다. 첫 사랑은 러시아 제국 폴란드인 외교관의 딸 마리 드 베나르다키(1874-1949)였다. 하지만 1887년 헤어졌다. 이 사랑 이야기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편에 나온다.
동성애 논란에도 휘말렸다. 1897년 26세 무렵 유명 소설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의 아들 뤼시앙 도데(Lucien Daudet, 1878~1946)와 자주 만났다. 그런데 이를 안  시인 장 로랭(Jean Lorrain, 1855~1906)이 두사람이 동성애 관계에 있기 때문에 알퐁스 도데가 프루스트의 책에 서문을 써줄 것이라고 빈정됐다. 이에 결투을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한편 뤼시앙 도데와 30여년에 걸쳐 쓴 미공개 편지 1백여통중 40여통이 1999년 경매에 나왔었다.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는 1903년 결혼했지만 프루스트(당시 32세)는 여전히 독신을 고수했다. 그런데 36세 때 바캉스 중 택시 기사 아고스티넬리(Alfred Agostinelli, 1914년 사망)를 만나 비서로 채용하고, 동성애 수준의 만남을 지속했다. 또 작곡가 레이날도 한(Reynaldo Hahn, 1874~1947)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 1918년 1월 11일 밤 프루스트는 알베르 르 쿠지아트가 운영하는 남성 사창가에서 경찰이 현장에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프루스트가 공개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또 오랜 시간 함께 한 비서이자 가정부 셀레스트 알바레(Céleste Albaret,  1891~1984, 본명 Augustine Célestine Gineste)도 프루스트의 동성애를 부인했다. 한편 프루스트에게는 영국 출신 뮤즈가 있었다. '맨체스터 출신의 프랑스 장미'라 부른 마리 노르들랑거(Marie Nordlinger, 1876~1961)다. 마리는 1896년 사촌으로  음악가이자 작곡가인 레이날도 한의 파리 집에서 프루스트와 만났다. 그녀는 프루스트의, '사랑'아닌 '순수 뮤즈'였다. 한편 프루스트의 친구인 시인 폴 모란드는 "영원히 사냥을 하고, 모험에 결코 만족하지 않고, 영원한 탐방자, 지칠 줄 모르는 성적 모험가"라고 말했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게르망트 공작부인(Duchesse de Guermantes)과 창녀 오데트 드 크레시(Odette de Crécy)에 영감을 준 비제의 아내. 프랑스 학술화가 쥘 엘리 들로네(Jules-Élie Delaunay, 1828-1891)가 1878년 그린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아내 제네비에브 비제(Geneviève Bizet, 결혼전 제네비에브 알레비Geneviève Halévy,1849~1926) 초상화.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https://en.wikipedia.org

5.프루스트는 1910년 이후 파리 44번가 집필실에서 두문불출했다. 병이 깊어지는데도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쓰기에 매달렸다. 낮에는 자면서 오직 밤에만 가끔씩 외출, 친구들과 밥을 먹고 귀가했다. 이는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프루스트는 바람과 시끄러운 것을 막기 위해 창문 등을 코르크로 감쌌다.  하지만 건강은 회복하지 않았고, 1922년 11월18일 토요일 악화한 기관지염이 폐렴으로 이어져 죽음에 이르렀다. 10여년을 은둔자로 산 작가의 애처로운 죽음이었다.
프루스트의 마지막 사진은 프랑스 보르도 출신 사진작가 루이-빅토르-에마뉘엘 수지(Louis-Victor-Emmanuel Sougez , 1889~1972)가 찍었다, 이전에는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맨 레이( Man Ray, 1890~1976, 본명 Emmanuel Radnitsky)라는 사진작가가 사망 이틀후 병실에서 찍었다고 얼려졌었다. 영어 부고 기사는 프루스트 친구인 루마니아 귀족이자 외교관 앙투안 비베스코(Anton Bibescu, 1879~1951)의 부인으로 작가인 엘리자베스 비베스코(Elizabeth Bibesco, 본명 Elizabeth Charlotte Lucy Asquith , 1897~ 1945)가1922년 11월 '뉴 스테이츠맨(New Statesman, 런던 1913년 창간)'가 썼다. 
"부드럽고 의도적으로 그는 나를 그의 성격의 마법의 원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만지지 않아도 봉인되는 궁극적인 확신으로. 당신은 무감각하게 무지개빛 강철의 복잡한 거미줄, 그의 정신으로 끌려들었고, 당신의 정신과 얽혀 당신의 가장 친밀한 생각 위에 빛과 그림자의 패턴을 펼쳤습니다."
장례식은 11월 21일 파리 16구 샤요 지구, 마르소 거리 31번지에 있는 로마 가톨릭 교구 생 피에르 드 샤요(Pierre-de-Chaillot)에서 치러졌다. 많은 동료 작가와 수많은 시민, 헌병대 병사들의 추도 의식과 함께 했다. 유해는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 매장됐다.

프앙스 파리 최대 공동 묘원 페르-라셰즈 묘지에 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무덤. https://ko.wikipedia.org

7.프루스트가 좋아하고 영향받은 작가는 많다. 프랑스 서간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17세기 작가로 세비녜 후작 부인(Marquise de Sévigné, 1626~1696), 17세기 프랑스 3대 극작가 중 1명인 장바티스트 라신(Jean Baptiste Racine, 1639~1699),  19세기 작가로는 소설가이자 비평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1799~1850), 19세기 자유 연애 신봉자로 숱한 남자들과 염문을 뿌힌 조르드 상드(George Sand, 1804~1876, 본명은 아망딘 오로르 뤼실 뒤팽,Amandine Aurore Lucile Dupin)의 영향도 컸다. 한편 시인이자 비평가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1867)등은 상드에 대해 '매춘부'니 '공중변소' 등의 원색적인 비난했다.
프랑스 리얼리즘의 선구적인 인물로 '보바리 부인'을 쓴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1821~1880), 프랑스 형제 소설가 에드몽(Edmond, 1822~1896)과 쥘(Jules,1830~1870)을 의미하는 공쿠르 형제(Goncourt 兄弟,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지막 권에 공쿠르 형제의 일기를 길게 인용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단을 주도한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42~1898), 20세기 작가로는 앙드레 지드(André Gide, 1869~1951)가 있다. 
프루스트 비판자도 있다. 영국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아서 에블린 세인트 존 와우(Arthur Evelyn St. John Waugh , 1903~1966)는 1948년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낸시 프리먼-밋포드(Nancy Freeman-Mitford, 1904~1973)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으로 프루스트를 읽고 있는데 그가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썼다. 
또 일본에서 태어난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 石黒 一雄, 1954~현재,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한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해서 프루스트의 첫 권을 제외하고는 그가 압도적으로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한편 스위스 출신 영국 소설가이자 철학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현재)은 소설로 유명해지기 전인 27세 때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이라는 자기계발서를 써서 유명해졌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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