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적과 흑-스탕달 신드롬의 작가가 쓴 소설의 첫 문단은 깔끔한 여행기처럼 쓰여졌다. 본문

카테고리 없음

적과 흑-스탕달 신드롬의 작가가 쓴 소설의 첫 문단은 깔끔한 여행기처럼 쓰여졌다.

지성인간 2023. 5. 19. 10:35
728x90
반응형

“베리에르라는 작은 도시는 프랑슈콩테 지방에서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로 통할 만하다. 붉은 기와를 얹은 뾰족한 지붕의 하얀 집들이 언덕의 비탈에 늘어서 있으며, 무성한 밤나무 수풀은 그 언덕의 작은 굴곡을 드러내 보인다. 두(Doubs)강은 옛날에 스페인 사람들이 건축했으나 이제는 폐허가 된 그 도시의 요새 수백미터 밑을 흐르고 있다. 베르에르의 북쪽 높은 산은… ”(이동렬 옮김,민음사 2013)

민음사가 2013년 낸 스탕달 소설 '적과 흑' 표지 부분.

1.잘 쓰인 기행문을 읽는 듯한 문장이 이어지는 첫 문단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길지 않고 편안하게 읽히는 부드러운 문체다.
이국의 도시를 첫 방문할 때 한눈에 들어오는 느낌이 그대로 표현된 듯하다.
특히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명료하고 현실주의적 묘사로 논술이나 입사시험 등에서 모방해 볼 만하다.

2.스탕달의 장편소설 ‘적과흑(赤과 黑,Le Rouge et le Noir--1830년사, 1830)’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1827년 7월 스탕달의 고향 근처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토대로 했다.
세속적인 출세, 상류로 가는 사다리를 열망하는 가난한 청년 줄리앙 소렐이 주인공인 이야기다.사랑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는 고전(古典)이라고 할 수 있다.적과흑은 프랑스 중고교생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수능시험인 바깔로레아(Baccalaureate, 프랑스 대학입학자격시험)에 자주 나오는 소설이다. 영어 번역 제목은 'The Red And The Black' 이다.

1831년 판 '적과 흑' 표지.photo by wikipedia

3.줄거리는 19세기 초 계급사회 속에서 평민 주인공의 벼락 출세부터 파멸까지를 다르고 있다.

목수의 아들로 신학생 줄리앙 소렐은 평민의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류층과 귀부인들에게 접근해 신분 상승을 꾀한다. 이를 위해 시골도시 시장 집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시장 부인 레날 부인을 유혹한다.

이 염문 때문에 신학교로 돌아온 줄리앙은 늙은 대주교의 흠모를 받으면서 파리 권력의 중심인 라 몰 후작의 개인 비서가 된다. 줄리앙은 이곳에서 후작의 딸 마틸드를 유혹, 임신을 시킨다. 결국 결혼해 귀족이 되고 거액의 돈과 영지까지 받는다.

새로운 성까지 얻고 기병대 중위로 임관, 출세의 발을 내딛는 찰나에 레날 부인의 폭로 편지가 후작에게 도착한다. 이에 모든 것이 조각난 것에 분노한 줄리앙은 레날 부인을 쏘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쥴리앙의 참수형을 막기 위한 레날 부인과 마틸드, 친구 푸케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간다. 줄이앙은 참수된 후 얼마후 레날 부인도 생을 마감한다.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의 그림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1575~1642)의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1599)'photo by wikipedia

3. 소설 '적과 흑'이 나온 이후 스탕달은 유명세를 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은 스탕달이 피렌체를 방문했다가 산타크로체 성당 등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압도당해 “무릎에 힘이 빠지고 숨이 가빠져 의식을 잃고서 곧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쓴 글에서 연유한다. 피렌체의 정신과 의사(심리학자) 그라치엘라 마게리니가 1979년 ‘스탕달 신드롬’으로 명명, 유명해졌다.
스탕달이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귀도 레니(Guido Reni,1575~1642)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1599)’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설이다. 하지만 당시 그 그림은 로마에 있었다고 하는 고증이 나오고 있다. 현재도 로마의 바르베리니(Barberini) 궁전(현재 국립 미술관)에 있다.

4.적과흑은 당시 대세를 이뤘던 낭만주의 예술 사조 타파에 일조한 리얼리즘의 선구적 소설로 평가받는다.
현대에 와서 더 유명해진 소설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1857)’을 쓴 구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1821~1880), 미국 작가로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을 쓴 헨리 제임스(Henry James,1843~191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1871~1921) 등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스웨덴 화가 올로프 요한 쇠데르마르크(Olof Johan Södermark,1790~1848)가 그린 스탕달 초상화(1840). photo by wikipedia

#.스탕달(Stendhal,1783~1842)=프랑스 근대소설 개척자.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주재 프랑스 영사.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상(1835). 본명은 마리 앙리 벨(Marie-Henri Beyle)이다.
스탕달이라는 필명(평생 동안 약 170개 사용)은 독일 작센안할트주 알트마르크의 소도시 ‘슈텐달(Stendhal)’에서 따왔다고 한다.

1.프랑스 동남부 도시 그르노블의 변호사 집안에서 금수저로 태어났으나 7살 때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아버지와 불화로 많은 시간을 인근에 있는 외할아버지(닥터 앙리 가농) 집에서 보냈다.
그래서 스탕달이 쓴 여러 가지 글에서 고향 이미지는 결코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살아 생전 고향 그르노블과는 화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17살에 파리로 갔고, 나폴레옹의 군대에서 복무했는데 병참  부대전쟁 용품 감독관으로 모스크바가 갔다. 러시아 모스크바 침략후 퇴각(1812년 12월 전후)하다가 리투아니아에 머물기도 했다. 1814년 공무원으로 전직했다. 이후 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썼다.

스탕달이 1812년 12월 머물렀던 빌뉴스(Vilnius, 현 리투아니아 수도)의 한 주택가 집에 걸린 기념 표식. 1812년 12월은 나폴레옹 러시아에서 퇴각할 때로 많은 프랑스인 피난을 가 있을 때다.

2.스탕달은 풍운아였다. 그 자체가 소설적 인생이다. 집도 자식도, 평생을 사랑해 준 애인도 없었다.

그가 사랑한 여인은 유부녀인 마틸드 뎀보스키(1790~1825) 백작부인이다.마틸드가 스탕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아 짝사랑이 지속됐다고 한다.

스탕달은 1835년 쓴 헨리 브룰러드의 생애(Life of Henry Brulard)에 그가 사랑했던 여성들(마틸드 뎀보우스키 등) 10여명의 실명을 써놓기도 했다.

3.1842년 3월 뇌출혈로 사망했다. 프랑스 파리 19구 몽마르트르 언덕 묘지(Cimetière de Montmartre)에 있다. 스탕달은 생전에 이탈리아어로 “밀라노인 베일레,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고 묘비명을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스탕달은 생전에 고향 그르노블과 화해하지 못했다. 사후 200년이 넘은 뒤인 스탕달 탄생 200년이 지난 2005년에야 그르노블시에서 외할아버지 닥터 가농(Henri Gagnon)의 집을 개조해 ‘스탕달 기념관’으로 개관했다.

프랑스 화가 쥘 셰레(Jules Chéret,1836~1932)가 1894년에 제작한 토닉와인 광고 포스터. 벨 에포크(Belle Époque)의 활기찬 정신을 담고 있다. photo by wikipedia

3.스탕달은 프랑스 예술계에서 말하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아름다운 시대,1870년 전후부터 1914년 사이)’의 태동기의 주역으로 후대 작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SF와 모험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1828~1905, 대표작 ‘80일간의 세계일주’),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1802~1885, 저서 ‘레미제라블’), 에밀 졸라(Émile François Zola,1840~1902, 저서 ‘목로주점’ 등),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1821~1867, 시(詩) ‘악의 꽃’ 등), 모파상(Guy de Maupassant,1850~1893, 저서 ‘비계덩어리’ 등), 여성 작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1804~1876,저서 ‘사랑의 요정’등), 발자크(Honore de Balzac,1799~1850, 소설‘고리오 영감’ 등), 플로베르(Gustave Flaubert,1821~1880) 등이 19세기 프랑스 예술을 꽃피운 이들이다.

4.스탕달은 말년에 “수많은 세월과 사건 후에도 나에게 기억되는 것은 사랑했던 여인의 미소뿐이다”고 말했다.

저서로는 ’연애론(De l'amour,1822), ‘라신과 셰익스피어(Racine et Shakespeare,1823, 1825), ’로시니의 생애(Vie de Rossini,1823), ‘아르망스(Armance,1827), ’로마 산책(Promenades dans Rome,1829), ‘파름의 수도원(Chartreuse de Parme,1839)’ 등이 있다.
스탕달 사후 30년이 지난후 이탈리아에서 집필했던 ‘나폴레옹전(Vie de Napoléon, 1876)이 나왔다.(콘텐츠 프로듀서)

 

728x90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