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종의 기원-인류사를 바꾼 名著의 첫 문단은 지루한 만연체로 시작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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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인류사를 바꾼 名著의 첫 문단은 지루한 만연체로 시작된다.

지성인간 2023. 5. 1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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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랫동안 키워온 동식물 중에서 동일한 변종이나 아변종(亞變種,sub-variety)에 속하는 개체를 살펴볼 때 우리를 가장 먼저 놀라게 만드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그것들이 자연상태에 있는 어떤 동일한 종이나 변종에 속하는 개체들보다도 훨씬 더 상호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우리가 기르고 있는 동식물들이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그것들이 각기 다른 기후와 환경 아래서 전 생애에 걸쳐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장대익 역, 사이언스북스, 2019)
 

아들 레오나르도 다윈(Leonard Darwin,1850~1943)이 찍은 1874년 무렵의 찰스 다윈 초상화. photo by wikipedia

1.첫 줄부터 만연체다. 호흡이 가파를 정도로 문장이 길어서 문단 전체를 한꺼번에 읽기에 쉽지 않다. 근대 학술서적의 특성이기도 하다. 실제 영어 원서도 문장 하나하나가 길다. 영문판 학술서적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 애를 먹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간결하고 정확한 문체를 원하는 논술이나 입사시험 등에서 채택하기 쉽지 않은 글의 흐름이다.

2.다윈의 ‘종(種)의 기원(Origin of Species,1859)’은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즉 생존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종족의 존속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가 원래 제목이다. 종의 기원은 약칭.
1859년 11월에 나온 초판 1250부는 당일 매진됐다. 당시 소설이 아닌 학술서로는 엄청난 판매부수다.
1872년까지 수정을 거듭하며, 6판을 찍은 스테디 셀러였다. 초판본은 현재 런던 크롬웰 로드에 있는 런던자연사박물관(London Natural History Museum)에 있다.

1859년 영국 런던에서 나온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표지. photo by wikipedia

4.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진화(evolution,1~5판에서는 진화라는 용어를 쓰지 않음)에 대한 이론으로 출간 즉시 큰 논란이 일었다.
생물학의 새 장을 열고, 인류사를 바꾼 역저(力著)이지만 출간 당시에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과학서로 인식됐다.
당시 학술서 답지않게 다양한 예시와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읽기가 어렵지 않다는 평이 많았다고 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대부분의 글이 긴 문장이어서 읽기가 답답하다.

5. 생물학자로 ‘신이 있는지 없는 지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agnosticism)을 만들어 낸 진화론 지지자 T. H. 헉슬리(Thomas Henry Huxley,1825~1895)는 “나는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정말 바보같으니라고….”했다고 한다.
헉슬리는 다윈 대신 창조론자들과 논쟁에 적극 나서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1870년대 초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 출판 이후 찰스 다윈을 오랑우탄(Orang-outang)으로 묘사한 풍자 잡지 The Hornet의 다윈 캐리커처(1871). University College London Digital Collections(1886). photo by wikipedia

6. 종의 기원 초기에는 ‘진화’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다윈이 처음으로 '진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저서는 1871년 출간한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이다.
종의 기원에 진화가 사용된 것은 1872년 6판부터이다.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1882)=영국의 생물학자, 철학자.

1.영국 슈루즈베리(현 슈롭셔 주)의 의사 집안(할아버지, 아버지)의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다윈이 7살때 어머니가 사망, 형제자매들과 성장했다. 이후 버틀러 기숙학교, 에든버러 대학교 의학과 2년 중퇴, 케임브리지 대학교 크라이스트 컬리지 신학과 졸업.

2.1831년 12월부터 1836년 10월까지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를 타고 남미와 오세아니아주를 탐험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비글호 항해기’를 펴냈다.

3.20여 년의 연구 끝에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진화론을 확고하게 설파한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을 출간, 또한번의 파장을 몰고 왔다.

4.1839년 5개 언어에 능통한 조수이자 외사촌인 에마 웨지우드(1808~1896)와 평생을 언약했다.
에마는 다윈과 사이에 10명의 자식을 뒀다.

화가 조지 리치몬드(George Richmond, 1809~1896)가 그린 찰스 다윈의 부인 엠마 웨즈우드(Emma Wedgwood,1808~1896)의 초상화. photo by wikipedia


5.다윈은 1882년 4월19일 켄트주 다운 마을 자택에서 영면했다. 다윈은 아내 에마에게 "쓰러질 것 같소."라는 말을 남기고 혼수상태에 빠진 후 숨졌다고 한다.
다윈은 생전에 부모, 할아버지, 형 등이 있는 가족 무덤에 묻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다윈의 명성은 그의 희망을 무산시켰다.당시 과학계와 의회(의원 20명이 청원서 제출) 등이 주도해 장례식을 국가장으로 치렀고,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안장했다.

6.다른 논문으로는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The Formation of Vegetable Mould Through the Action of Worms)’등이 있다.
영국 켄트주 다운 마을에 있는 집(HOME OF CHARLES DARWIN-DOWN HOUS)은 생전에 쓰던 물건을 그대로 전시하는 등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다.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 1층 로비의 계단 중앙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또 캐임브리지의 그리스도 대학 안뜰 다윈 가든에 있는 영국 조각각 앤소니 스미스(Anthony Smith, 1984~현재)가 제작한 청동상이 서있다.

다윈이 공부했던 영국 케임브리지의 그리스도 대학 안뜰 다윈 가든에 있는 영국 조각각 앤소니 스미스(Anthony Smith, 1984~현재)의 작품인 22살의 찰스 다윈 실물 크기 청동상. photo by wikipedia


7.다윈의 명언 중 가장 유명한 말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다. "가장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가장 똑똑하다고 해서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다."

8.미국 과학자이자 작가인 마이클 셔머(1954~현재, 저서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등이 있음)는 “20세기를 형성한 19세기의 3대 혁명가(생물학의 다윈, 공산이론의 마르크스, 정신학의 프로이트) 중 다윈만이 여전히 건재하다”고 말했다.

2009년 영국에서 다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크리에이션(Creation, 2009)’이 개봉했다. 국내에는 다윈을 연구하는 모임인 ‘다윈 포럼’이 있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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