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춘향전-한민족의 정서가 살아 숨쉬는 고전의 백미는 이중 내레이터 구조로 전개된다. 본문

카테고리 없음

춘향전-한민족의 정서가 살아 숨쉬는 고전의 백미는 이중 내레이터 구조로 전개된다.

지성인간 2023. 8. 29. 07:06
728x90
반응형

“숙종대왕 즉위 초에 성덕이 크시니 훌륭한 자손들이 뒤를 이어 백성들이 요순시절을 누리는 지라. 좌우에는 충성스러운 신하들과 용맹한 장수들이 늘어섰고 조정의 덕이 방방곡곡 퍼져 집집마다 효자, 열녀가 나며 백성들이 풍요로우니 곳곳에서 격양가가 들려오는 태평성대였다. 이때 전라도 남원부에 살던 월매라는 기생이 일찍이 일을 그만두고 성가라는 양반과 함께 물러나 살았는데 나이 사십이 되도록 한 점 혈육이 없어 그것이 한이었다. 하루는 남편에게 의견을 묻기를, ‘들으시오 전생에 무슨 은혜 있었는 지 이생에 부부되어 기생 일 다 버리고 예를 숭상하고 부인의 덕을 닦으며 지내왔소. 그런데 무슨 죄로 일점 혈육이 없으니 우리 신세 조상 제사는 누가 지내며 우리 죽은 후 장사는 어찌하겠고. 명산대찰에 기도해 아들이든 딸이든 낳으면 평생 한을 풀 것이오. 당신의 뜻은 어떠시오?’ 성 참판 말이, ‘자네 말이 맞네만 기도로 자식을 낳는다면 자식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월매가 대답하기를...,”(홍인숙 풀어옮김, 서해문집, 2022)

서해문집이 2022년에 낸 '춘향전'표지 부분.

1.구전인 판소리가 쌓여서 거대 서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도입부에서 보여주고 있다. 노래형 서술, 시대 배경과 시점, 주요 인물 소개가 한꺼번에 이뤄지는 것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첫 문단 자체를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이중 내레이터 형식을 취했다. 소설 액자 밖 내레이터가 설명을 하다가 갑자기 액자 안 등장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형식이다. 운문체와 산문체, 대화체가 섞인 것은 판소리계 소설 특징으로 단독창작 아닌 공동창작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숙종대왕’은 조선19대 왕 숙종(肅宗,1661~1720)이고, ‘요순시절’의 ‘요순(堯舜)’은 중국 신화 시대 가장 살기 편했다는 요(堯)와 순(舜) 임금 시기다. 격양가(擊壤歌)는 시절이 편안해 백성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며 부르는 노래다. 명산대찰(名山大刹)은 유명한 산과 큰 절이다.

한글로 쓰여진 '춘향전' 영인본. 시대, 지은이 불명.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창작 시기와 지은이를 모르는 ‘춘향전(春香傳)’은 한국 민족문학의 백미(白眉)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넘어 신분 상승을 고스란히 담은 소설이다.
특히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가 녹아 있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판소리(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관중의 호응 속에 부르는 노래) 계통 소설의 첫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판소리 ‘춘향가’가 원본으로 단순한 판소리가 아니라 스토리가 살아 있는 ‘거대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시대의 베스트 셀러인 만큼 이본(異本)만 120개가 넘는다.
굳이 따진다면 ‘春香歌’는 판소리이고, ‘春香傳’은 (인쇄본을)읽는 이야기다. 이에따라 춘향가가 먼저 나오고, 춘향전이 나중에 나왔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의견이다.
노래로 부르던 춘향가가 목판이나 활자로 찍혀 나왔거나 필사한 것이다. 하지만 歌와 傳 중에 어느 쪽이 먼저 나온 지는 고증되지 않고 있다.
20세기 이전에 중국어, 일본어, 영어, 독어, 러시아,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됐다. 영어로는 ‘The Story of Chunhyang’ 또는 ‘The Tale of Chunhyang’이다.

3.현존 가장 오래된 판본은 조선 영조(英祖,1694~1776) 30년인 1754년 지방 은거(隱居) 유학자 유진한(柳振漢,1711~1791)이 한시(漢詩)로 옮긴 ‘춘향가’다. 호는 만화당(晩華堂)이다. 저서로 만화집(晩華集)이 있는데 거기에 실려 있다.
이밖에 문장체 한글본, 한문본, 소리를 적은 창본 등 수많은 판본이 존재한다. 구전 이야기가 백성들의 입을 거쳐 첨삭이 자유롭게 이뤄지면서 판본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춘향전은 특히 일제 강점기에 인기가 높았다. 잡지 ‘개벽(1924년 6월1일자)’에는 “경성의 각 책방을 기웃기웃 더듬어보라.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 10판(대부분)은 ‘춘향전’, ‘평양수심가’ 그 따위 것이요”라고 쓰여 있다. 잡지 ‘삼천리’1935년 6월호에는 춘향전이 연간 7만 권이 팔렸다는 기록도 있다.

일제시대때 출판된 '춘향전' 표지. 딱지본, 혹은 육전(六錢)소설이라고 불렸다. photo by naver.com

이 당시에는 ‘육전(六錢)소설’이라 불렸다. 이른바 딱지본 소설로 값이 싸고 부피가 적어 서민들이 편하게 읽을수 있도록 제작됐다. 표지가 딱지처럼 채색돼 나와서 ‘딱지본’이라고 했다. 춘향전은 현대에 올수록 해석이 분분하다. ‘춘향학’이라고 할 정도로 논문도 많고, 관련 책도 많이 나와 있다.

4.춘향가는 판소리 중 단연 으뜸이다. 판소리 5바탕의 대장이다.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중에서 예술적 가치가 가장 높다는 데 학자들의 평가가 대체로 일치한다.
춘향가는 완창할 경우 평균 7~8시간 걸린다. 이는 판소리 5바탕 중 가장 길다. 춘향가는 소리로 하는 창본이 남아 있는 것은 몇 안 된다. 이름난 명창들인 신재효(申在孝), 이선유(李善有), 이동백(李東伯), 박기홍(朴基弘) 등의 창본만 남아 있다.
춘향가는 옥중화(獄中花)로도 유명했다. 구한말 온건 개화론자이자 신소설 작가인 이해조(李海朝, 1869~1927)가 박기홍본을 토대로 쓴 소설이 ‘옥중화’다.  1912년 1월부터 3월까지 경성에서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됐다. 그해 8월27일 인쇄소 보급서관에서 초판을 찍은 이후 1930년까지 1000쇄를 찍을 정도로 특급 베스트셀러였다.

5.춘향가(전)가 만들어진 설은 다양하다. 첫 번째가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풀어 준다는 ‘신원(伸寃)설’이다. 춘향이라는 기생이 한 도령을 사랑하다가 죽었는데, 원귀가 돼 남원에 재앙을 가져오자 이를 액풀이하기 위해 지었다는 설이다. 양진사(梁進士)라는 사람이 제문(祭文) 형식으로 창작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암행어사(暗行御史) 설이다. 조선 중기이후 전국을 순행했던 암행어사 노진(盧稹, 1518~1578, 선조때 대사헌), 성이성(成以性,1595~1664, 인조때 홍문관 부교리), 김우항(金宇杭,1649~1723, 숙종때 우의정), 박문수(朴文秀,1691~1756) 등의 이야기를 백성들이 창작했다는 것이다.
이중 유명한 것이 호가 계서(溪西)인 성이성이다. 암행어사를 3차례나 지냈으며, 아버지 성안의(成安義)가 남원부사(종3품)를 지내 춘향전의 내용과 비슷한 캐릭터을 지닌 인물이다.
세 번째는 조선시대 야담인 도령과 기생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인 애련(哀戀)설이다. 양반 자제와 기생의 사랑을 다룬 성세창(成世昌)이야기가 그것이다.
네 번째는 고구려 22대 왕 안장왕(安臧王, 498?~531) 설화가 발전했다는 설이다. 안장왕과 한씨 미녀 설화 스토리가 춘향전 이야기와 매우 닮았다. 한편 작가를 아예 지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남원 출신으로 의병활동을 한 조경남(趙慶男, 1576~1642)이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조경남은 1623년 50세가 넘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으나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솔오페라단이 2022년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국립 아카데믹 볼쇼이 오페라 발레 극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춘향' 포스터.photo by gabt.uz/en(플레이뉴스 이화미디어 재인용)

6.춘향전은 직접적으로 해석하면 춘향 모녀의 ‘고난 극복 연대’를 기록한 입신양명(立身揚名) 기록이다. 정확하게는 춘향의 신분 상승 욕구가 충족된 것이다.
어쩌면 극복할 수 없었던 조선시대 신분 차별이라는 천형(天刑, 하늘이 내린 형벌)을 극복한 진짜 ‘신분 세탁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사회 부패나 탐관오리 횡포 등은 신분 상승 욕구의 해소를 위한 보조 장치일 뿐이다.

7.춘향전은 등장 인물 한사람 한사람의 리얼리티가 살아 있고, 각 캐릭터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이름만 들어도 풍자와 해학(諧謔)을 풍길정도다. 주인공이자 내레이터의 한사람인 성춘향(성 참판과 기생 월매의 딸), 남원부사의 아들로 춘향의 연인 이몽룡, 몽룡의 하인 방자(이름이 아니라 직책이다.심부름꾼), 남원 부사 변 사또(변학도) 등이다. 이밖에 춘향의 어머니 월매, 춘향의 몸종 향단, 변 사또 생일잔치 초대손님 운봉(현 남원시 운봉면) 영장(營將,군영의 지휘자), 곡성(현 전남 곡성군) 원님 등이다.

8.줄거리는 양반의 아들 이몽룡과 퇴기(退妓, 은퇴한 기생) 월매의 딸 성춘향이 양반과 천민이라는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연애담이다.
남원의 미녀 춘향이 몸종 향단이와 함께 단오 날 그네를 타다가 양반 가문 자녀 이몽룡을 만난다. 둘은 만나는 날 눈이 맞아 불같은 사랑을 한다. 하지만 몽룡의 아버지 남원 부사가 조정의 부름을 받고 가족과 함께 한양으로 떠난다.
졸지에 사랑을 잃은 춘향은 몽룡을 그리워하며 정절을 지키며 산다. 그런데 신임 사또 남원부사 변학도가 수청을 들라고 한다. 이를 거절한 춘향은 괘씸죄로 옥에 갇힌다.
춘향의 수청을 받고 싶었던 변사또는 잔치때 춘향에게 수청을 들 기회를 주지만 거절한다. 이에 크게 성질이 난 변 사또는 치죄(治罪)한다. 고문을 당하던 춘향은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고, 다시 옥에 갇힌다. 이런 와중에 거지꼴을 한 몽룡이 옥에 갇힌 춘향을 면회한다.
다시 변사또 생일 잔치 날 남원 주변 운봉, 곡성, 정읍 등의 고을 사또들이 축하 인사를 온다. 잔치에서는 양반들의 한시 놀이가 펼쳐지고, 거지꼴로 겨우 음식을 얻어먹던 몽룡이 한시를 읉조린다.이에 참석한 고을 원님 중 유식한 운봉 영장은 깜짝 놀라지만 잔치는 무르익는다. 그 사이 몽룡은 관아를 빠져 나가 암행어사 차림을 하고 다시 나타난다.  변 사또는 옥에 갇히고, 참석한 원님, 아전들은 혼비백산한다. 정절을 지킨 춘향은 몽룡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정실 부인 약조를 받고, 한양으로 올라간다. 이후 몽룡의 벼슬은 크게 오르고, 춘향은 정경부인이 돼 잘먹고 잘산다.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은 조선 후기 풍속과 남녀간 사랑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그림은 조선 최고의 화가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 photo by gongu.copyright.or.kr

9.춘향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순수한 사랑 얘기 이지만 정독(精讀)할수록 신분 세탁을 위한 춘향 모녀의 목적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관료부패, 백성의 생활상은 부수적 장치로 작용한다.
김석배 금오공대 교수는 “남녀 간의 관능적인 사랑을 열린 공간에 드러내놓고 자연스럽고 떳떳하게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춘향전”이라고 말했다.

#.춘향전과 얽힌 다양한 이야기
1.춘향전은 구한말과 일제를 거치는 동안 이해조의 ‘옥중화’에 이어 춘원 이광수(1892~1950)에 의해 재탄생했다. 춘원은 ‘춘향’을 1925년 9월30~1926년1월3일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이 연재소설은 1929년 단행본 ‘일설 춘향전’으로 나왔다.
1800년대부터 각국에서 번역됐다. 1882년 6월 일본 소설가이자 기자(아사히 신문 부산특파원 등 지냄)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 1861~1926)가 ‘계림정화 춘향전’을 오사카아사히 신문에 20회 번역 연재했다. 이 연재는 큰 인기를 끌면서 일본에서 한글 고전문학 번역의 시초가 됐다.
나카라이 도스이는 일본 유명 여류 소설가로 요절한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일본 돈 5000엔 표지모델)의 스승이기도 하다. 비구니 승려로 유명한 김일엽(金一葉,1896~1971, 본명 김원주)의 이름은 이치요에서 따왔다고 한다.

1897년부터 20년 동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동양학부에서 한국어 강의 교본의 '춘향전' 페이지 부분. photo by Санкт-Петербург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홈페이지.월간중앙 재인용.

2.프랑스에서 일찌감치 번역됐다. 번역자는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인 홍종우(洪鍾宇 ,1850~1913)로 1892년에 소개됐다. 제목은 ‘춘향(Printemps Parfumé, 프렝탕 파르퓌메, 향기로운 봄)’이었다.
프랑스어 번역 출판 계기는 자비(自費) 유학한 홍종우의 공이 컸다. 유학간 직후 프랑스 작가에게 춘향전을 소개한 것이다. 홍종우는 자비 유학을 위해 오사카아사히신문 식자공으로 일했고,돈을 모아 1890년 12월 파리에 갔다
홍종우의 공은 또 있다. 파리 기메 박물관(현 국립 기메 아시아 예술 박물관, 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 Guimet)은 1893년부터 한국실을 개관했는데 홍종우의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홍종우는 귀국해 황국협회를 이끌다가 나중에 갑신정변(甲申政變, 1884년 12월 개화파의 쿠데타)의 주역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을 저격, 살해한다.
1906년에는 대만의 한 신문에 연재됐다. 이 연재소설은 춘향이 매를 맞고 죽어서 집으로 실려가는 중에 다시 살아나서 다시 감옥에 갇히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1900년대 중반에 전해져 여 주인공 춘향의 베트남식 발음, ‘난 수엉 후엉’으로 소개됐다고 한다.

1971년 신성일 문희 주연의 영화 '춘향전' 포스터. 문희는 당대 빅3 배우인 남정임, 윤정희와 경쟁해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photo by

3. 춘향전은 한국의 거의 모든 예술 작품의 텍스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만큼 ‘글로벌 춘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영화1=한국 최초 발성(토키) 영화가 1935년판 춘향전이다. 초기 영화산업의 선구자 이명우(李明雨, 1901~1959) 감독이 연출했는데 음악은 홍난파(洪蘭坡, 1898~~1941)가 맡았다.
조명을 맡은 이필우는 이명우 감독의 형으로 조선 최초의 촬영, 녹음기사이다. 한편 세계 최초의 유성 영화는 미국 ‘재즈 싱어(The Jazz Singer, 1927)이고, 일본 최초는 ’마담과 마누라,マダムと女房, 1931)이다.

1955년에는 당대 최고의 미녀 여배우 조미령을 내세운 ‘춘향전(감독 이규환, 李圭煥, 1904~1982)’이 나왔다. 전후 한국 영화 흥행의 시작으로 알리는 작품이었다. 추정 집계로 18만여 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한국 최초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화도 춘향전이다. 1961년  나온 ‘춘향전(감독 홍성기, 김지미 주연)’과 ‘성춘향(감독 신상옥, 주연 최은옥)’이다.
두 영화는 감독과 주연이 부부 사이여서 제작 초기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흥행에서는 ‘성춘향’의 완승(관객 38만여 명)으로 끝났다.

최초의 70mm 필름 영화도 1971년판 ‘춘향전’이다. 이 영화는 명감독 이성구(李星究, 1928~2005) 연출에 각본은 당대의 최고 지성인 이어령(李御寧,1933~2022, 전 이화여대 교수)이 맡았다. 또 몽룡역은 신성일(본명 강신영,姜信永,1937~2018)이었다.
이 때문에 주인공 춘향 역을 두고 당대 여배우 ‘빅3’인 문희(본명 이순임, 李順任, 1946~현재), 남정임(본명 이민자, 李敏子,1945~1992), 윤정희(본명 손미자, 孫美子,1943~2023)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승자는 문희. 문희는 나중에 한국일보 사주 장강재(1945~1993)와 결혼한다.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조승우와 이효정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2=2000년 개봉 ‘춘향뎐(감독 임권택, 각본 김명곤,1952~현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한국 영화 최초 칸 영화제 경쟁 진출작이다.
임권택(林權澤, 1934~현재)은 당시 단국대 연영과 조승우(曺承佑,1980)와 정신여고 1학년(만16세) 이효정(1983~현재)을 내세워 명작으로 탄생시킨다. 하지만 미성년자 가슴 노출 등으로 논란을 빚었고, 이효정은 그후 은퇴해 연세대 법대를 졸업하고 일반인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김대우 감독이 만든 '방자전'스틸 컷.

춘향이 아니라 방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도 히트했다. 김대우(金大又, 1962~현재)감독의 영화 ‘방자전’이다. 이 영화는 방자역에 김주혁, 몽룡역에 류승범, 성춘향 역에 조여정, 향단역에 류현경(柳賢慶, 1983~현재)이 출연, 맛깔나는 연기로 흥행에 성공했다.

1987년 김봉은 감독의 비디오용 에로 영화 ‘탈선 춘향전’도 나왔다. 1999년에는 애니메이션 ‘성춘향뎐(成春香傳, The Love Story of Juliet)’도 나왔다. 감독은 앤디 김(Andy Kim, 한국명 김윤대) 이 맡았다.

*.영화3=북한에서도 몇 차례 춘향전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1959년 윤용규 감독의 ‘춘향전’, 1980년 유원준·윤용규 감독의 ‘춘향전(전편·후편)’, 1984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 사랑 내 사랑’이다. 신 감독의 ‘사랑 사랑 내 사랑’은 뮤지컬 영화로 제작됐다.

*.드라마=1980년대 초 ‘TV 춘향전’이 시초다. 1994년 단막 드라마 ‘춘향전’으로 나왔다. 9월20일에 방영되었던 KBS 1TV 추석 특집드라마다. 당시 17세 배우 김희선과 18세의 이민우를 성춘향과 이몽룡 역으로 캐스팅해 주목을 끌었다.
쾌걸 춘향(영어명 Delightful Girl Choon-hyang). 2005년 KBS에서 방영한 월화 미니시리즈. 2005년 1월 3일 첫 방송해 3월1일 종영했다. 마지막회에는 시청률 30%를 돌파했다. 홍자매( 홍정은&홍미란)작가 작품이다.
 2015년 KBS 2TV 드라마스페셜 ‘원녀일기’도 있다. 2015년 작품으로 주인공은 콩쥐이지만 춘향, 심청, 콩쥐가 한 마을 친구로 나온다.

*.기타=춘향전은 발레 ‘춘향’으로도 나왔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2006년 창작한 발레로 고양 어울림누리에서 쇼케이스가 공개됐고, 2007년 같은 장소에서 초연됐다.
루마니아 출신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이 연출한 창극 '다른 춘향'도 나왔다. 창극의 세계화 프로젝트의 하나였는데 흥행은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의 일본의 여성 만화가 집단 ‘클램프’가 만화 ‘신 춘향전’을 1992~1994년에 잡지 '세리에 미스테리 스페셜(セリエミステリーSPECIAL)' 연재됐다. 일본에서는 하쿠센샤에서 1996년 단행본으로, 한국에서는 서울미디어코믹스가 2002년 문고판으로 출판했다.
춘향전은 웹툰으로도 인기 테마다.네이버 웹툰 유령극단의 네번째 에피소드가 춘향전이 모티브이다. 네이버 웹툰 매일+에서 발칙한 춘향도 연재했다. 2021년 청춘향전이라는 인터랙티브 게임 형식의 웹드라마가 공개됐다. 여성국극제작소의 여성국극 '레전드 춘향전'도 제작 공연됐다.

전북 남원 광한루에 있었던 김은호 화가의 '춘향' 영정. 화가의 친일논란 으로 철거 소동을 빚었다.

4.전북 남원에서는 매년 음력 5월5일 ‘춘향제’가 열리고 있다. 행사 기간에 춘향묘 참배, 춘향 제향, 창극 춘향전, 전통 길놀이, 춘향선발대회 등이 열린다.
공간 배경이 남원이기 때문에 남원에는 ‘열녀춘향사(烈女春香祠)’라는 사당이 있다. 춘향의 생일로 믿는 음력 4월 8일 광한루 동편에 자리잡고 있는 춘향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콘텐츠 프로듀서)

728x90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