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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권력의 오만과 미망(迷妄)이 부른 고통을 쓴 '페르시아 사람들'의 첫 문단은 웅장한 출정식으로 시작한다 본문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수도 수사 궁전앞. 서막(원로들로 구성된 코로스, 등장
"코로스 장-페르시아인들, 그리스 땅으로 출병했고/우리는 그들의 충실한 대리인이오./ 황금이 넘치는 왕궁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소./ 우리의 왕 크세르크세스 폐하는/ 선왕 다리우스의 아드님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왕좌를 이어 받으셨소./ 폐하께선 지위와 나이에 따라 우리를 뽑아/ 그분의 왕국을 지키도록 부탁하셨소./ 그러고는 황금 무구로 장식한 위풍당당한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셨소. 하지만 폐하와 병사들의 귀향을 생각하니/고통스런 가슴속에 불안감만 가득합니다./ 아시아 각국에서 모여든 병사들,/젊은 왕을 연호하며 떠나갔지만/그 어떤 전령도 그 어떤 기병도/ 페르시아 제왕들이 묻힌/ 이 왕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네./ 우리 병사들, 왕경(王京)인 수사와 아그바타나 문을 박차고 나갔네!/ 페르시아 병사들, 키시아의 오랜 성벽 뒤로 하고 멀리멀리 떠났네!/더러는 말을 타고, 더러는 배를 타고,/ 더러는 밀집대형을 하고 걸어서 떠났네! 군대를 이끌고---."(아이스킬로스 저,김종환 역, 지만지드라마, 2017)

1.고대 그리스 희곡의 원형을 보여주는 도입부로 복잡한 서정적 노래 운율로 장식한다.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코로스(코러스)를 통한 극의 전개를 암시하는 내레이션도 획기적이다. 특히 직접 듣지 않아도 코러스의 말(노래)이 관객을 웃고 울리는 웅장한 소리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도입부에 극의 줄거리와 감정이 녹아있는데다 운문체여서 더 격렬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구어체의 강렬한 언어, 상징과 말투 등도 압권이다. 막강한 페르시아군의 위용을 보여주면서 긴장과 불안이 엄습하는 극 구성이어서 관객에게 짜릿한 느낌을 주는 도입부라 할 수 있다. 첫 머리의 *수사(Susa)는 티그리스 강 동쪽 약 250km(160마일) 떨어진 자그로스 산맥 하부에 있는 고대 도시로 아케메네스 제국의 겨울 수도 이름이다. 코로스는 chorus로 합창단 *크세르크세스(Xerxes, BC 516~BC 465)는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4대 샤한샤(황제)다. 뜻은 영웅들의 지배자, 성경에서는 아하수에로(Ahasuerus)로 나온다. *다리우스(Darius, BC 550경~BC 486)는 크세르크세스의 아버지로 아케메네스 제국의 제3대 샤한샤(황제), *아그바타나(Ecbatana)는 페르시아 또다른 도시 *키시아(Cissia)는 도시 이름이다.

2.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 사람들(Πέρσαι , Persai , 라틴어 Persae)'은 유럽 연극의 원류 작품이자 시조새같은 작품이다. 모든 희곡의 원형으로 오만한 인간의 비극적인 몰락을 다룬 원조다. 현존하는 희곡 중 가장 초기 작품으로 BC 472년 첫 공연됐다. 극의 거의 절반이 코러스와 찬송으로 꾸며졌다. 공연은 일정한 무대와 관람석 등을 갖춘 공간(Theatron,테아트론,보는 곳)에서 이뤄졌고, 나중에 극장, 씨어터(Theatre), 떼아뜨르로 불린다. Theatre의 뜻은 ‘자기를 제3의 눈으로 보는 장소’다.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 사람들은 공연 당시 아테네의 미래 지도자인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BC 429,아테네 황금기의 정치인이자 장군)가 후원(choragus, 제작자)했다. 저자의 비극 3부작 중 두 번째이자 유일하게 현전(現傳)하는 작품이다. 첫 극은 트라키아(Trakya, 불가리아) 왕를 다룬 '피네우스(Phineus, 제우스와 괴물이야기)', 세번째 작품은 글라우코스(Glaucus, 아프로디테 혹은 오티아 농부 이야기)이다. 현대에 알려진 저자의 '페르시아 사람들'은 15세기에 라틴어 필사본을 로렌초 데 메디치가 수집했고, 그로부터 100년 후 인쇄본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스-페르르시아 전쟁 관련해서는 비극시인으로 비극의 진정한 창시자(극에 여성 가면,여성 캐릭터를 도입한 최초 작가)로 불리는 프리니쿠스( Phrynichus, BC 511년 디오니소스 연극대회 우승자)가 '포에니사에(Phoenissae, 페니키아 여인이라는 뜻)'라는 제목으로 먼저 썼다. 영어로는 영국의 성직자, 고전 학자, 번역가, 시인 로버트 포터(Robert Potter,1721-1804)가 1777년에 'The Persians'으로 첫 번역했다.

3.'페르시아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경험한 실존인물이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당시 공연을 본 많은 이들이 참전용사와 가족이었다. 그러서 애국심 고취를 위해 아테네 편향, 적에 대한 의도적 폄하(사치스럽고 감정적이고) 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적의 대장인 페르시아 대왕(아케메네스 제국 제4대 황제) 크세르크세스(Xerxes I, BC 518~BC 465)의 가족과 왕실도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비극은 BC 472년 아테네에서 열린 '디오니시아 축제' 의 연극 경연 대회에서 1등 차지했다. 공연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8년이 경과한 후였다. 그런데 연극이 상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 BC480년 9월)'을 승리로 이끈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BC524~460,망명후 페르시아에서 사망)는 도편 추방(陶片追放, 도자기 파편에 이름을 써서 나라밖으로 추방하는 시민투표)된다.

4.고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Greco-Persian Wars, BC 499~BC 4490)은 당대 최고 강국간의 세계대전이었다. 당시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 상태였고, 페르시아는 이란-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이집트-터키 등 동 지중해 및 소아시아(오리엔트)을 제패한 아케메네스 제국이었다.
1차전은 BC 499년 페릇시아 지배를 받던 튀르키예 남부 밀레투스(Miletus,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해안 그리스 도시)의 폭군 아리스타고라스(BC496 사망)의 선동으로 일어난 '이오니아 반란(Ionian revolt, BC 499~BC 494)'을 아테네 등이 지원하자 페르시아는 BC 492년 장군 마르도니우스(Mardónios, ?~BC 479 사망, 다리우스 1세의 조카)를 보내 그리스 북동부를 점령했으나 폭풍으로 후퇴했다. 이에 지도자 다리우스 1세는 BC 490년 그리스를 침공, 아테네 북부를 점령했으나 마라톤 전투(The Battle of Marathon, BC 490년 10월)에서 결정적으로 패배, 철군한다. 다리우스는 BC486년 '그리스 정복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아버지의 유훈을 받든 페르시아 대왕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 BC 518~BC 465)는 6년간 원정을 준비한 끝에 BC 480년 약 20만 대군과 1천 척의 전함을 이끌고 다시 그리스를 침공한다. 수십만 대군은 선교(船橋)의 사슬로 헬레스폰토스(Hellespontos) 해협을 건너 8~9월 테르모필레(Thermopylae)를 돌파(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병사 300여명 전사)하고 아테네를 불태우는 등 승리 직전까지 간다.
참고로 테르모필레 전투에서는 전투 현장에 있던 300명 중 아리스토데모스와 판티레스 두 명이 생존했다. 한 눈을 잃어 전투에서 제외된 아리스토데모스와 후방 연락활동을 한 판티테스다. 그런데 두사람에 대해 스파르타인인들은 비겁한 전사(벌벌더는 자 트리산테스), 비국민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아리스토데모스는1년간의 불명예 끝에 플라타이아이 전투에 참여 기회가 주어지자 페르시아 진영으로 돌진, 목숨을 잃었다. 판티레스는 불명예를 못 견뎌 자살했다.

5.아테네에 진입한 페르시아군은 휴식과 선단(船團) 수리를 위해 2주를 허비한다. 이때 크세르크세스의 전략 회의에서 할리카르나소스의 여성 지도자(satrap,총독) 아르테미시아 1세(Artemisia I, 생몰 미상)가 지공(遲攻,천천히 공격하며 내분 유도) 작전을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에 아테네 앞바다 살리미스에서 양대 세력은 천하쟁패를 위한 자웅을 겨룬다. 역사에서는 이를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 BC480년 9월)'으로 부른다.
살라미스에서 그리스 연합군은 트리에레스(trieres, 고대 전함으로 3단 노선) 378척, 페르시아는 1207척의 트라이림이 있었다. 펠,시아는 이중 수리 중인 250척, 지휘함 방어 함선 200여척을 제외한 약 600~800척이 전쟁에 참여했다. 크세스크세스는 아이갈레오스의 높은 언덕에서 해전을 지휘,관전했다. 그리스는 테미스토클레스와 에우리비아데스가 지휘했다. 해전은 그리스 연합군이 승리했고,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북부에 병력을 남긴채 페르시아로 돌아간다.
하지만 전쟁은 다음해에도 계속된다. BC 479년 페르시아군의 마르도니우스 장군이 아테네로 진격, 다시 점령한다. 하지만 이어 벌어진 아테네 인근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페르시아 사령관 마르도니우스 장군이 죽는 등 그리스군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다. 50여년에 걸친 지중해 쟁패전이 막을 내린 것이다. 살라미스 해전은 고대 그리스 황금시대의 문을 연 전투이만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결성, 오만해지면서 결국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멸망당한다. 그 사이에 마케도니아가 최강국으로 부상하고, 부족국가 형식의 로마가 건국, 신흥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6.'페르시아 사람들'은 꿈이 소재로 쓰인 최초의 비극이다. 등장인물은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어머니(아토사), 아버지 다리우스의 유령, 메신저, 페르시아 장로로 이뤄진 코로스(합창단) 등이다.
줄거리는 기원전 480년에 그리스에서 페르시아군을 결정적으로 격퇴한 사건, '살라미스 해전'와 페르시아 상황 등을 다룬다. 배경은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중 하나였던 수사이며, 극은 장로들의 합창으로 시작한다. 곧 어머니이자 다리우스의 아내 아토사가 합류, 아들 크세르크세스 왕의 그리스 원정 소식을 기다린다 . 아토사는 불안과 걱정을 꿈으로 표현하는데 지친 사자가 도착해 살라미스 해전과 그패전을 알린다. 이어 크세르크세스가 철군해 돌아오고, 패배 원인을 깨닫지 못한다.극은 크세르크세스와 합창단의 애도(哀悼)의 노래로 끝난다

7.다양한 작가들이 오마쥬와 패러디에 동참했다. '페르시아 사람들'이 공연된 지 70년 후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 Aristophanes, BC 446~BC 386, 희극의 아버지)는 작품 '개구리(Frogs, BC 405)에서 저자 아이스킬로스를 초대한다. 이 극에서 아이스킬로스는 "(페르시아 사람들)은 승리 의지에 대한 효과적인 설교로. 내가 쓴 것 중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같은 극에 나오는 디오니소스는 "위대한 다리우스 시대에 대해 노래하는 부분을 좋아했고, 합창단이 이렇게 손으로 '와! 와!'라고 외치 부분이 좋았다"고 말한다.
나중에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렀던 로마와 비잔틴 제국에서도 인기있는 극으로 공연됐고, 그리스에서도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19세기에 들어와 영국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1)은 1821년 서정극 '헬라스'에 아이스킬로스와 페르시아 사람들을 인용했다. T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은 시 '황무지'의 '죽음의 매장' 부분에서 "나는 죽음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무너뜨릴 줄은 생각지 못했다"를 '페르시아 사람들'에서 인용했다.현대 그리스 작가 디미트리스 랴코스(Dimitris Lyacos, 1966~현재)는 자신의 디스토피아 서사시인 포에나 담니 1권 'Z213: 종료(Exit)' 에 비극 '페르시아 사람들'을 인용했다.

8.2015년 영국 미디어 가디언(The Guardian)의 연극 평론가 마이클 케이스 빌링턴(Michael Keith Billington, 1939~현재)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극 101편을 선정했을 때 1위에 올랐다. 지금도 그리스에서는 공연때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배우들의 대화를 환호로 방해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다. 그리스에서는 2020년 7월 살라미스 해전 2500주년을 맞아 에피다우루스 야외 극장에서 그리스 국립 극장 제작, 디미트리오스 리그나디스 연출 '페르시아 사람들'이 상연됐다.이 공연은 유듀브(YouTube)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라이브 스트리밍됐다.

#. 아이스킬로스(Aeschylus, BC 525/524~BC 456/455)=희곡(비극)의 아버지로 연극(희곡)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극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그리스 비극 작가 중 경연대회에서 두번째(1등은 소포크레스로 24번)로 많은 13번 우승했다. 약 90편의 비극을 집필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7개만 남았다.
1.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약 27킬로미터(17마일) 떨어진 비옥한 아티카 서부 계곡 작은 마을 엘레우시스에서 부자 가문인 아버지 에우포리온(Euphorion of Eleusis)과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키네게이로스(Cynaegirus, ?~BC 490년 사망) 와 아메이니아스(Ameinias, 생몰 미상)라는 최소한 두 명의 형제가 있었다. 청년 시절 포도원에서 일했으며, 26살 전후인 BC 499년 첫 희곡을 써서 공연했다.
BC 490년, 동생 키네게이로스와 마라톤 전투에 참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의 침략군에 맞서 아테네를 방어했다. 그러나 동생 키네게이로스는 해안에서 후퇴하는 페르시아 선박을 막으려다 죽었다.이후 BC 484년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공연한 비극이 호평 받아 비극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BC 480년 동생 아메이니아스와 함께 '살라미스 해전'에 다시 소집됐다. 이어 그리스 내에 남아 있는 페르시아 잔존세력과 싸운 플라타이아 전투(BC 479)에서도 싸웠다

2.아테네에서 열린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공연한 비극이 첫 1등을 차지한 것은 BC 472년이었다. 아이스킬로스는 BC 470년 전후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32km 떨어진 엘레우시스(Eleusis) 지역에서 치러지는 엘레우시스 뮈스테리온(mysterion, 신비주의, 뜻은 '들어가다'는 입문) 에 입문했다.
비밀종교 성격의 엘레우시스 신비주의는 대지의 여신(가이아의 손녀) 데메테르(Demeter,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 파생어 Dmitri)와 그녀의 딸이자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ia, 봄과 죽음, 재물신, Proserpina)를 주신(主神)으로 엘레우시스에서 행해진 비밀 종교 의식이었다. 의식에서 교도들은 환각 물질이 들어 있는 음료 '키케온(kykeon)'을 마셨다. 나중에 엘레우시스 신비주의는 1년에 한번 ‘엘레우시스 제전’을 열었다.

그런데 아이스킬로스는 엘레우시스 뮈스테리온에 관한 비밀을 누설한 혐의(asebeia,불경죄)로 교도(민중)들의 지탄을 받았다. 이 때 교도들의 돌에 맞아 죽을 뻔 했는데 나중에 모함으로 밝혀져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편 유명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피타고라스 등도 엘레우시스 뮈스테리온의 교도였다. 소크라테스는 “이곳에서 정화 의식을 치른 사람들은 신과 함께 살 것’이라고 칭송했다.

4.아이스킬로스는 BC 470년대에 시칠리아(현 이탈리아,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를 여행했다. 시라쿠사의 폭군 히에론 1세(Hieron, BC 478-467) 의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 '애트나(Etna)의 여인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을 무대에 올렸다. BC 473년 비극 라이벌 작가인 프리니쿠스(Phrynichus, ?~BC 473)가 사망한 후에는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매년 가장 인기 있는 비극작가였다. BC 472년에 아이스킬로스는 페리클레스가 코레고스 역할을 맡은 '페르시아 사람들' 공연했다.
자식은 나중에 비극시인으로 성장하는 에우포리온(Euphoríōn, BC 430년 전후 활동) 과 에우아이온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에우포리온은 BC 431년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를 물리치고 비극 경연대회 1등을 차지했다. 조카인 필로클레스(Philocles, 누이의 아들)도 비극 시인이었고,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제치고 그해 1등을 차지했다 . 한편 아이스킬로스는 혁신가다. 무대 장치와 무대 기계 , 그리고 그의 작품 중 일부는 화려한 풍경 효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또한 의상을 디자인하고, 합창단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쳤다.

5..죽음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BC 458년, 아이스킬로스는 시칠리아 겔라(Gela)를 방문했다. 기록으로는 이것이 마지막이어서 BC 456년 또는 BC 455년 영면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죽음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1세기 라틴 작가이자 역사적인 일화 모음집의 저자 발레리우스 막시무스(Valerius Maximus)는 "아이스킬로스)가 도시 밖에서 거북이에게 맞아 죽었다"고 말했다. 거북을 잡아가던 독수리가 그의 머리를 돌멩이로 착각, 거북이의 껍질을 깰려고 떨어뜨렸는데 그것을 맞앗다는 것이다.

영면한 겔라에서 공개 장례식을 치렀고, 무덤에서 희생 제사와 그를 그리는 연극 공연도 열었다. 나중에 그 곳은 작가들의 순례지로 유명해졌다. 비문에는 극작가로서 성공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 승리에 따른 내용이 들어갔다. 현전 작품으로는 신혼 첫날밤에 신랑인 사촌 오빠들을 죽인 이집트 왕 다나오스 딸들의 이야기를 다룬 '탄원자들(The Suppliants)』(BC 490)', 페르시아와 전쟁을 다룬 '페르시아인(Persian, BC 472),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의 갈등과 싸움을 다룬 '테베 공격의 일곱 장군(Seven Against Thebes, BC 467),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인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Bound, BC 460), 아가멤논의 죽음을 둘러싼 오레스테스와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아가멤논의 아내)DHK 갈등과 대립을 다룬 『오레스테이아(The Oresteia)』(BC 458) 3부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