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프랑스 중위의 여자-위선과 억압의 사랑, 복잡한 심리 묘사, 깊은 통찰의 소설은 영상에세이처럼 시작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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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위의 여자-위선과 억압의 사랑, 복잡한 심리 묘사, 깊은 통찰의 소설은 영상에세이처럼 시작한다

지성인간 2023. 6. 2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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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서쪽으로 다리를 뻗은 돌출부의 아래쪽에 한입 크게 물어뜯은 듯 들어가 있는 라임만-이곳에서 가장 불쾌한 바람은 샛바람이다. 1867년 3월 말 춥고 새 찬 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날 아침, 별로 크지는 않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라임읍-라임만이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했다-에서 한 쌍의 남녀가 안벽(岸壁)을 따라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들을 보고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면 당장에 그럴듯한 몇 가지 상상을 떠올릴 수도 있었으리라.”(김석희 옮김, 열린책들,2001)

열리책들이 2001년에 낸 '프랑스 중위의 여자' 표지 그림.

1.첫문단 장소 설명부터 상세하게 묘사해 단순하게 보면 영상 에세이처럼 보일 정도다. 첫 문단에 나오는 돌출부, 새찬 바람, 한쌍의 남녀, 안벽 등은 소설 전개를 암시하는 중의적 의미의 키워드다. 도입부의 마지막 문장에서 전지전능한 작가 시점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실제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작가가 적극 개입해 인생 철학을 펼치기도 한다.

2.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The French Lieutenant's Woman,1969)’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이다.
존 파울스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판됐다. 2005년에는 타임 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로 선정됐다.

3.영국 소설 전통에 메타픽션(Meta fiction)이라는 새로운 기법의 등장을 알리는 작품이다. 메타픽션은 글쓰기 행위에 대한 자의식(의심, 상상, 환상 등 )이 드러나는 서술 기법을 말한다. 소설 속 화자의 목소리에 작가의 개성을 입혀 개입하는 독특한 문체를 선보이며, 작가인지, 화자인지 모호한 서술 기법이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또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심리를 묘사하는 문체 전개가 압권이다. 뛰어난 상상력과 깊은 통찰, 복잡하면서도 빈틈이없는 구성도 대단하다. 많은 소설가들과는 드물게 한 작품에서 여러 가지 문체를 사용한 것도 이 소설의 특징이다.

영국과 미국 동시 발매때 나온 '프랑스 중위의 여자(1969)' 초판본. photo by wikipedia.

4.소설은 위선과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남녀의 사랑이 테마이지만 중의적 주제로 이야기를 병행하면서 19세기와 20세기를 넘나든다.
하층 여인의 귀족 남자에 대한 사랑 얻기는 19세기 이전에는 불가능했지만 20세기에서는 성공한다는 점도 내포한다.
주류에서 비주류로 과감하게 들어간 주인공 찰스, 쟁취한 사랑이지만 남자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서기하는 사라, 이는 20세기 현상을 상징한다.

5.전체적으로 문체가 까다롭고, 책 분량도 많을뿐더러 등장인물도 매우 많다. 부자집 딸 어니스티나 프리먼(티나). 과학자 찰스, 프랑스 중위의 여자 사라 우드러프, 말버러 저택의 안주인 풀트니 부인, 티나의 이모 트랜터, 찰스 할아버지 찰스 스미스선 경, 아버지 ,찰스 백부 로버트 나리(로버트 경)., 풀트니 부인 댁 주임 상사 페얼리 부인, 풀트니 부인의 요절한 남편 프레드릭 등이 나온다.
또 소작인 사라 아버지, 사라의 가정교사 집 주인 존 탤벗 대령, 포사이드(라임 교구), 퍼시 해리스(차머스 교구) 목사, 프랑스 중위 바르귀엔 씨, 찰스 하인 샘 패로, 하녀 메리(트랜터 부인 댁), 하녀 밀리(풀트니 부인 댁), 존 탤벗 부인, 주교 필포츠 박사, 의사 그로건 박사 등이다.
이밖에 매력적인 젊은 과부 벨라 톰킨스(톰킨스 부인), 마사 엔디콧 부인(패밀리 호텔 주인), 티나 아버지 프리먼과 프리먼 부인, 찰스 대학 동창 너대니얼과 토머스 버그, 포주 터프시코어 할멈, 창녀 사라와 딸, 과부 요리사 로저스 부인, 해리 몬터규와 머피, 오브리 씨 등 변호사,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 사라 우드러프의 딸 랠러지 등이 등장한다.

6.줄거리는 기존 질서의 세계에서 주춤하는 찰스와 안개에 휩싸인 듯한 여성의 틀을 깨는 사랑 이야기다.
귀족 출신 찰스는 방랑을 끝내고 부잣집 딸 어니스티나 프리먼과 결혼 예정이다. 그런데 찰스 앞에 사라 우드러프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프랑스 장교와 밀통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여인이다. 비하하듯 부르는 이름은 ‘프랑스 중위의 여자’다.
찰스는 사라에게 호기심을 느끼면서 사랑에 빠져든다. 그러나 현실은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는 물론 유산도 못받고, 직장도 못 구한다. 결국 사라와 도망치기 위해 약혼자와 파혼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못 견딘 사라는 찰스를 두고 사라진다.
명예와 미래까지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했으나 사랑이 사라지자 찰스는 또 다시 방랑한다. 그리고 몇 년 후 우연하게 사라의 연락을 받는다. 찰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7.1981년 영화화됐다.영국에서 카렐 라이즈(1926~2002) 감독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The French Lieutenant's Woman)’로 제작됐다.
주연은 연기파 배우 메릴 스트립(Meryl Streep)과 제러미 아이언스(Jeremy Irons)가 맡았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후보까지 올랐다.

말년의 존 파울즈 모습.사진작가 올리버 모리스가 찍었다. photo by wikipedia.

#.존 파울즈(John Fowles, 1926~2005)=영국의 소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등단 작가 중 가장 촉망받는 작가였다.

1.영국 남부 엑시스 주 리온시(Leigh-on-Sea)에서 로버트 존 파울즈(Robert John Fowles)와 글래디 메이(Gladys May)사이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 알렌코트 스쿨(Alleyn Court School)를 나와 1939년 베드포드 스쿨(Bedford School)에 입학했다. 하지만 1944년 2차세계대전에 징집돼 왕립 해병대 중위로 근무했다.
종전 후 옥스퍼드 대학을 다니면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다. 이 때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버트 카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2.1951년부터 프랑스와 그리스 등지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다가 1950년대 중반 귀국해 소설을 쓴다.
첫 소설은 1963년 발표한 ‘콜렉터’다. 이 소설 하나로 파울즈는 촉망받는 작가로 급부상했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발표한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가 대표적인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로 불리며 작가의 무게를 배가한다. 1969년 실버펜 상과 1970년 W. H. 스미스 문학상을 받았다.

3.그리스에서 교사를 할 때 만난 유부녀 교사 엘리자베스 위턴(Elizabeth Christy Whitton)과 사랑했다.
영국으로 홀로 돌아왔으나 다시 런던에서 만나 1954년 결혼해 1990년까지 함께 했다. 아내 엘리자베스는 파울즈의 ‘영원한 뮤즈’였으나 1990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사망했다.
이후 1995년 사라 스미스(Sarah Smyth)와 재혼했다. 2005년 11월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 도싯의 라임 레지스(Lyme Regis)에 있는 자택에서 쓰러져 액스민스터 병원(Axminster Hospital)으로 옮겨졌다. 공식발표는 자택 사망. 사인은 1980년대 후반부터 앓아온 뇌졸중과 심장병 악화였다.

4.주요작품으로는 ‘아리스토스(1964)’, ‘마법사(1966)’, ‘프랑스 중위의 여자(1969)’, ‘에보니 타워(1974)’, ‘난파선(1975)’, ‘다니엘 마틴(1977)’, ‘섬(1978)’, ‘나무(1979)’, ‘만티사(1982)’, ‘구더기(1985)’, ‘벌레 구멍(1998)’ 등이 있다.

5.존 파울즈는 문학적 형식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 작가로 유명하다. 전지전능한 신처럼 소설 속 화자에 개입하고, 독자의 반응을 요구하는 형식의 서술기법을 구사했다.
파울즈는 “우리는 모두 시를 씁니다. 시인은 말로 글을 쓰는 사람일 뿐이다”고 말했다. 또 “나는 어떤 예술이나 과학도 자연의 모든 현실을 묘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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