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워털루 전투 전후 영국 상류층의 퇴폐와 위선, 물질만능을 비꼰 소설 '허영의 시장' 첫 문단은 세밀한 설명문체로 시작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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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투 전후 영국 상류층의 퇴폐와 위선, 물질만능을 비꼰 소설 '허영의 시장' 첫 문단은 세밀한 설명문체로 시작한다

지성인간 2024. 9.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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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허영의 시장'배경 '워털루 전투 전야'.영국 역사 화가 헨리 넬슨 오닐(Henry Nelson O'Neil, 1817~1880)이 1868년 그린 '이별'. 1815년 6월15일 브뤼셀의 리치먼드 공작부인의 무도회(Duchess of Richmond's ball)에 도중 나폴레옹 프랑스군의 워털루 인근 콰트르 브라 진입으로 장교들과 여인들의 혼란스런 이별을 그렸다. 세계 각국에서 소설 '허영의 시장' 표지로 많이 썼고, 2020년 나온 영국 드라마 '벨그레이비어( Belgravia,버킹검 궁 옆 부자촌)'에 잘 묘사했다.https://en.wikipedia.org

제1장 치즈윅 산책길
"19세기도 10년을 조금 넘긴 6월의 어느 화창한 날 아침. 치즈윅 산책길에서 핑커턴 여사가 경영하는 여학교의 큰 철문 앞으로 화려한 마구를 찬 살찐 말 두필이 커다란 자가용 마차 한대를 이끌고 시속 4마일로 다가왔다. 가발과 삼각모를 쓴 뚱뚱한 마부가 마차를 몰고 있었다. 마부 곁에 앉아 있던 흑인 하인은 마차가 핑커턴 여사의 번쩍거리는 놋쇠 표찰 앞에 서자 안짱다리를 밖으로 뻗었다. 그가 끈을 당겨서 종을 울리자 당당하고 오래된 벽돌 건물의 좁은 창문들에서 적어도 스무명이 넘는 소녀들이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상냥한 제미마 핑커턴이 언니인 핑커턴 여사의 객실 창가에서 제라늄 화분 위로 발돋움하여 그 조그맣고 빨간 코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언니 세들리 부인의 마차예요.' 제미마가 말했다. '검둥이 하인 샘보가 지금 막 초인종을 울렸어요. 마부는 빨간 새 조끼를 입고 있네요.' '세들리 양의 출발 준비는 다 마쳤니,제미나?' 당당한 여학교 교장인 핑커턴 여사가 물었다. 그녀는 해머 스미스의 세미라미스(아시리아 전설에 나오는 여왕)라 불릴만큼 여걸이자 존슨박사(영국 저술가 새뮤얼 존슨)의 친구이며 차폰부인과도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였다."(허영의 시장,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저, 최홍규 역, 동서문화사, 2012)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댄스파티'-1815년 6월15일 워털루 인근 콰트르 브라 전투 전날 브뤼셀에서 열린 '리치먼드 공작부인의 무도회(Duchess of Richmond's ball)'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무도회로 불린다. 리치먼드 공작부인 샬럿 레녹스(Charlotte Lennox,1768~1842)가 주최한 이날 무도회에는 영국군 사령관 웰링턴 장군을 포함한 대부분의 고위 장교(3명 제외)가 참석했다. 이날 무도회는 나폴레옹 프랑스군이 워털루 옆 콰트르 브라로 진입으로 중단됐다. 리치먼드 공작부인은 브뤼셀 외곽 방어를 맡은 찰스 레녹스, 리치먼드 공작 4세(1764~1819) 부인이다. 영국 화가 로버트 알렉산더 힐링포드(Robert Alexander Hillingford , 1828~1904)가 1870년대 그린 작품. 영국 굿우드 하우스 소장.https://en.wikipedia.org

1.전지적 작가 시점의 내레이터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도입부다. 세밀화를 그리듯이 사물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묘사했다. 인형극을 연출한 듯한 치밀해 독자가 옆에서 보는 듯할 정도다.인위적 조종을 통해 경치를 클로즈업하고 등장인물이 순서대로 나오는 형식이다. 유럽 전역을 나폴레옹이 휩쓴던 19세기 초라는 시대 배경을 정확히 알리고, 부유한 집안의 교통수단(마 두필의 마차)과 하인, 학교 철문, 유명인 등이 소설의 전개를 예고하고 있다.첫 문단 곳곳에 희극적 요소는 많지만 풍자나 해학,거대 서사는 눈에 띠지 않는다. 그럼에도 첫줄을 읽으면 가볍게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근시'에서 '원시'로 전환하는 문장 구성 방식이 이를 받처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본문에 나오는 *마구(馬具)는  말(馬)을 부리거나 꾸밀 때 사용하는 각종 도구, '말 갖춤'이다. *시속 4마일은 시속 6.43킬로미터, *제라늄(Geranium)은 남아프리카 원산의 홀겹으로 꽃이 피는 관상용 식물 *해머스미스(hammersmith)는 철을 두드려서 만드는 대장간, * 세미라미스(Semiramis)는 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BC 2500~BC 609), 바빌론(BC18세기~BC4세기,메소포타니아 최대 도시 )시대의 전설적 여왕(Queen of Assyria)이다. *존슨 박사는 영국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을 말한다 *차폰부인에서 차폰은 히브리어에 나오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북쪽 산(혹은 지역)을 뜻한다.집이 북쪽에있는 귀족부인을 지칭한다.

소설 '허영의 시장(배니티 페어)' 첫 문단에 등장하는 고대 메소포타니아의 제국 아시리아의 전설적 여왕(Queen of Assyria) '세미라미스(Semiramis)'. 이탈리아 화가 체사레 사카기(Cesare Saccaggi,1868~1934)의 1905년 작품. 개인 소장. https://aqua-regia009.tumblr.com
'가장 유명한 무도회 도중 이별'. 영국 화가 로버트 알렉산더 힐링포드(Robert Alexander Hillingford , 1828~1904)가 그린 1815년 6월 15일 '리치먼드 공작부인의 무도회' 도중 비상 출동하는 장교들과 여인들의 이별을 묘사했다. 장교들은 이날 귀족여인들 무도회에서 환락에 빠져 있었으나 나폴레옹 군의 워털루 인근 콰트라 브라 진입으로 곧바로 전투에 투입됐다. www.prisonersofeternity.com

2.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배니티 페어, Vanity Fair, 1848)'은 19세기 최고의 걸작이자 인기 소설이었다. 나폴레옹 전쟁과 그 이후 풍요와 퇴폐의 영국 상류사회를 신랄하게 비꼰 풍자소설의 극치를 보여준 작품이다. 당대 최고의 작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여러 소설 못지않은 평가를 받은 고전(古典)이자,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1837~1901, 빅토리아 여왕 재임 시기) 가정 소설의 원류, 사실주의 소설의 이정표로 지목되곤 한다. 
소설은 런던에서 나오는 잡지 '펀치( Punch, 1841년 런던 창간)' 등에 1847년부터 1월부터 1848년7월까지 19개월 동안 월간(19부)으로 연재됐다. 당초 저자는 펀치에 비슷한 주제의 '영국의 속물인간들(The Snobs of England)을 연재했다가 적당히 마무리하고 '영웅 없는 소설-펜과 연필로 그린 영국 사회 스케치'를 연재했다. 영웅이 없는,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1848년 말 단행본으로 런던 출판사 브래드버리 앤 에반스에서 초판이 나올때에도 ‘영웅 없는 소설’을 부제로 붙였다. 

런던 잡지 '펀치'에 1847~1848년 연재한 '배니티 페어(Vanity Fair) -영국 사회의 펜과 연필 스케치' 첫 번째 호 제목 페이지. 저자가 일러스트도 직접 그려 넣었다.https://en.wikipedia.org

연재물과 초판본 모두 저자가 그린 삽화를 실었다. 저자 이름의 첫 번째 책으로 불티나게 팔렸지만 로열티(인세)가 적어서 돈을 축적하지는 못했다. 명성만 얻은 것이다. 문단에서는 저자가 직접 수정해 출간한 1853년 보급판을 '정본'으로 취급하고 있다. 영국 미디어 가디언이 2015년 선정한 100대 소설 14위,  20세기 유명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이 꼽은 최고의 소설에 '제인 에어(샬럿 브론테) 등과 함께 뽑혔다. 또 BBC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국 소설 100선(2015) 중 10위에 올랐다.

소설의 시대 배경인 워털루 전투(1815년6월18일)의 종언. 네덜란드 화가 얀 빌럼 피에네만(Jan Willem Pieneman, 1779~18531)이 1924년 그린 '워털루 전투'. 승전 사령관 웰링턴 공작(아서 웰즐리, Arthur Wellesley,1769~1852,영국 25,28대 총리)이 중앙에 있고,앞쪽에 부상당한 오렌지 왕자가 옮겨지고 있다.https://en.wikipedia.org

3.제목 'Vanity Fair(허영의 시장)'는 작가이자 전도사 존 번연의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 1678)'에서 가져온 말이다. 천상으로 가는 순례의  중간에 있는 한 시장 이름이다. 여기서 'Fair'는 욕망의 전시장이자 행위가 이뤄지는 곳이다. 이 시장에는 금은보화, 주택, 토지, 지위, 명예, 승진, 직위, 나라, 왕국, 욕망, 쾌락 등이 있다. 또 아내, 남편, 자녀, 주인·하인, 생명, 피, 육체와 영혼, 요술사, 협잡꾼, 도박꾼, 놈팽이, 바보까지 상품으로 있다. 만물 백화점인 셈이다. 저자는 소설의 주제를 확연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배니티 페어'가 떠오르자 한밤중 기쁨에 넘쳐 집안을 세 바퀴나 돌았다고 한다. 배니티(Vanity)는 'Vain' 으로 허망(虛妄)이다.빛나는 겉모습과 달리 공허한 내면, 화려하지만 순간에 사라지는 덧없는 상태를 뜻한다.
단행본으로 나오자 마자 비판적 찬사를 들었는데 소설에 풍자한 영주와 그 부인 등 상류사회에서 인기가 높았다. 나폴레옹의 영국 압박(대륙봉쇄)에 따른 불안과 공포, 전쟁 속의 환락, 승전의 광란과 순간의 허영, 나폴레옹의 엘바 섬 탈출과 프랑스와 전쟁 재개, 다시 승전(워털루 승리)과 상류사회 인간의 워선과 오만, 허망한 인생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너였다.19세기 변혁의 물결이 휘몰친 유럽과 어리석고 이기적이며 허영을 쫓는 상류 사회 인간들의 이야기에 공감한 것이다. ‘허영’이라는 도시에서 만난 세속 욕망이 가득한 ‘시장’, 인간의 탐욕이 펼쳐지는 곳에 대한 속물 귀족들의 허위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도 인기에 한몫했다. 누군가의 조종(操縱)아닌 조종으로 꼭두각시처럼 사는 삶이 당대 지식인들에게  희열을 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런던의 핫 플레이스-영국은 워털루 전투 승리후 상류사회가 허영과 퇴폐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런던 최고 인기 무도회장 크레모른에 들어가기 위해 서있는 신사숙녀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1855~1878년 런던에서 활동한 독일 화가 피버스 레빈(Phoebus Levin)이 1864년 그린 '크레모른 정원의 춤추는 플랫폼' 이다. 런던 박물관 소장.https://en.wikipedia.org

4.등장인물은 국왕에서 마부나 하녀까지 다양한 신분이 나온다. 하지만 주인공이 없다.소설을 이끄는 이는 전지적 작가,  3인칭 혹은 1,2인칭 내레이터다. 귀족의 딸 에미 세들리(Emmy Sedley, 아멜리아,Amelia), 미술 교사와 프랑스 무용수의 딸 베키 샤프(Becky Sharp, 레베카,Rebecca), 조지 오스본(George Osborne), 조지의 친구 윌리엄 도빈(William Dobbin, 군인) 등 주요 인물이다.
또 천박하고 방탕한 남작 피트 크롤리(Pitt Crawley)와 두 아들 로든(Rawdon)과 피트(Pitt), 누이동생 마틸다 크롤리(Miss Matilda Crawley), 아멜리아의 오빠로 인도에서 수집가로 상당한 재산을 모은이들(나밥) 중 하나인 조셉 세들리(Joseph Sedley,조스), 오다우드 소령과 그의 부인, 브르그스 부인 , 래글스 부부, 러셀 스퀘어거리 등도 보조 역할을 한다.

소설 '배니티 페어' 도입부에 나오는 아시리아의 전설적 여왕(BC 9세기) '세미라미스'가 정원에서 여흥을 즐기는 모습. 오스트리아 화가 발덱 한젠드(Waldeck Hangende)의 1900년 그린 작품. www.dorotheum.com/de

줄거리는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부를 축적해 영국으로 돌아온 부자들인 ‘나와브(나밥)’들의 허영과 나폴레옹 전쟁에 얽힌 이야기다. 소설은 제멋대로 전개된다.1~3인칭을 오가는 내레이터가 곳곳에서 개입하는 등 복잡하다. 결혼을 잘해 평생을 잘살려는 여자들의 허영과 상류사회 워선을 고발한 소설로 귀족들의 속물근성을 풍자했다. 가난한 고아 레베카와 유복한 상인 집안에서 자란 아멜리아의 대조적인 삶과 그들의 운명에 얽혀 있는 다양한 인물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전개된다. 
레베카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도빈은 겸손하고 이타적이며 아멜리아를 향해 충직하다. 도빈의 친구이자 아멜리아와 오래전부터 혼인 이야기가 오간 조지는 인간의 자만심과 천박함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소설 끝으로 가면 절친 베키와 아멜리아는 자선 박람회에서 만나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스친다. 내레이터도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아이들이여, 상자와 인형을 닫자. 우리의 연극이 끝났으니까'로 맺는다.

'향락의 야회'-초상화와 장르화 전문 영국 화가 롤린다 샤플스(Rolinda Sharples, 1793~1838)가 18세기 초 상류사회 야회(夜會)모습을 그린 '클로크 룸, 클리프턴 어셈블리 룸(The Cloak-Room, Clifton Assembly Rooms)'. 클리프턴 어셈블리 룸은 1811년 문을 연 무도회장이다. 영국 브리스톨 시립박물관및미술관 소장.https://en.wikipedia.org

6.소설 '허영의 시장(배니티 페어)'은 가정 사회소설의 원류, 반영웅 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유럽 사실주의 소설 발전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 스타일은 판사 출신의 선배 작가인 헨리 필딩(Henry Fielding, 1707~1754)의 풍자와 해학, 유머에 많은 빚을 졌다. 1749년 나온 코믹 소설 '버림받은 아이, 톰 존스의 역사(The History of Tom Jones, a Foundling)'이다.
소설 '달과 6펜스'의 저자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865)은 "허영의 시장은 최고의 영문소설"이라고 격찬했다. 영국 여류 소설가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1816~1855)는 "소설 '배니티 페어(허영의 시장)에 압도되었다"며 소설 '제인 에어'를 저자 새커리에게 헌정했다. 브론테는 특히 "진실이 다시 여신이 된다면 태커리는 그녀의 대제사장이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또 문학 비평가이자 옥스퍼드대학교 석좌교수인 존 캐리(John Kerry, 1934~현재, 2005년  맨 부커 국제상 심사 위원단 위원장)는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며 "범위와 주제 면에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견줄 만한 유일한 영문소설"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림 공부를 했던 저자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가 일러스트 한 연재소설 '허영의 시장(Vanity Fair)'의 소설속 제목 페이지. 1847~1848년 잡지 펀치 연재 당시 삽화.미국 하버드 대학 호튼박물관 소장.https://en.wikipedia.org

7.수많은 영화, 드라마로 나왔다. 1911년 영국계 미국 배우이자 감독 찰스 켄트(Charles Kent , 1853~1923), 1915년 영국계 미국 감독 찰스 브라빈(Charles Brabin , 1882~1957), 1922년 영국 각본가 W. 코트니 로든(Walter Courtney Rowden), 1923년 미국 화가이자 감독 휴고 발린(Hugo Ballin NA(1879~1956)이 동명의 무성영화로 내놓았다.
첫 유성영화는 1932년 나왔다. 미국 배우이자 감독 체스터 M. 프랭클린(Chester Mortimer Franklin, 1889~1954)이 미르나 로이(Myrna Loy, 본명 미르나 아델 윌리엄스,1905~1993) 주연의 '배니티 페어'를 내놓았다. 가장 최근은 영국에서 인도계 미국 영화감독 미라 네어(1957~현재)가 만들어 2005년 개봉한 영화 '베니티 페어(Vanity Fair)'로 나왔다. 미국 배우이자 프로듀서 리즈 위더스푼(Laura Jean Reese Witherspoon, 1976~현재)이 베키 샤프 역을 맡았다.

2005년 개봉한 영국 영화 '베니티 페어(Vanity Fair, 허영의 시장)'에서 베키 샤프(레베카) 역을 맡은 배우 리즈 위더스푼을 모델로 한 영화 포스터.photo by google

텔리비전 드라마로는 1998년 영국에서 영화감독 마크 먼든(Marc Munden)이 연출, 동명의 드라마(전체 300분)로 나왔다. 이 드라마는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 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연극은 1899년 미국 국작가 랭던 엘윈 미첼(Langdon Mitchell, 1862~1935)이 쓴 희곡이 첫 공연됐고,  뮤지컬은 남아공 출신 영국인으로 미국에서 정착한 버나드 J. 테일러(Bernard J. Taylor)작사, 작곡한 뮤지컬 'Vanity'가 2023년 공연됐다. 

8.소설 '허영의 시장(배니티 페어)'이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Vanity Fair'는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특히 잡지 이름으로 많이 쓰고 있다. 첫 번째 'Vanity Fair'는 1859년부터 1863년까지 발행된 미국의 간행물 이름이다.  두 번째는 영국 간행물로 1868년부터 1914년까지 발행됐다. 세 번째는 미국에서 1902년에서 1904년 사이에 뉴욕에서 발행한 잡지 이름이다. 네 번째는 1983년부터는 글로벌 대중매체 회사 콘데 나스트(Condé Montrose Nast,1873–1942) 퍼블리케이션즈가 발행하는 미국 대중 문화 잡지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잡지 '보그'를 발행하는 미국 회사다.
한편 한국에서 불리는 ‘카레’는 영국인이 지은 커리(curry, '밥 양념' 뜻)의 일본식 이름으로 채소와 고기를 기름에 볶은 매콤한 요리다. 남부 인도의 단어 ‘카릴(karil)’ 또는 ‘카리(kari)’가 일본어 카레로 변한 셈이다. 영국 여왕이자 인도의 여제 빅토리아 여왕(Alexandrina Victoria, 1819~1901,하노버 왕조의 마지막 군주, 대영제국 최전성기를 이끌 여왕)은 인도인 요리사를 둘 만큼 커리를 좋아했고, 손자인 조지 5세 또한 좋아했다. 1824년 런던의 하노버스퀘어 근처에 문을 연 ‘오리엔탈 클럽’은 지금도 커리를 팔고 있다.

미국 사진작가 제시 해리슨 화이트허스트(Jesse Harrison Whitehurst, 19세기 중반 활동 사진가)가 찍은 윌리엄 메이크피스 태커리의 1855년 모습.https://en.wikipedia.org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William Makepeace Thackeray,1811~1863)=영국의 소설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영문학사상 찰스 디킨스와 더불어 빅토리아 시대(19세기)의 쌍벽을 이루는 소설가이자 대표 주자다. 특히 '배니티 페어(허영의 시장)'이라는 풍자 작품으로 유명하다.

인도와 중국 남부에서 활동한 영국 화가 조지 치너리(George Chinnery, 1774~1852)가 쓴 전기 '리치몬드, 앤,윌리암 새커리(Richmond, Anne, William Thackeray)'에 나오는 새커리와 부모. 아버지 리치몬드 새커리는 인도의 현지처 샬롯 소피아 루드(Charlotte Sophia Rudd)와 딸 사라가 있는 상태에서 18살의 앤 베처(Anne Becher,1792~1894)와 결혼했다. 에드워드 노르만 버틀러 부인(Mrs Edward Norman-Butler) 컬렉션 소장.https://freepages.rootsweb.com

1.인도의 캘커타 동인도회사 관리자(세무담당)였던 아버지 리치먼드 새커리(Richmond Thackeray,1781~1815)와 어머니 앤 베처(Anne Becher,1792~1864)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두사람은 1810년 10월 13일 캘커타에서 결혼했고, 새커리는 이듬해 캘커타 프레스스쿨 스트리트(Freeschool Street, 현 Mirza Ghalib Street)에 있는 자택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리치먼드는 잉글랜드 동부 허트 포드셔 의 허츠미어 자치구에 있는 사우스 밈스(South Mimms) 출신이지만 1798년 16세의 나이로 동인도 회사 의 작가(공무원)로 인도로 건너갔다. 리치먼드는 이미 인도 현지에서 샬롯 소피아 러드(Charlotte Sophia Rudd)와 동거하며서 딸 사라 레드필드(Sarah Redfield)를 낳아 키우고 있었다. 이른바 현지처로 당시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1815년 아버지가 죽자 영국으로 보내져 차터하우스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대학 중퇴로 학위를 받지 못했다. 21세에 받은 아버지의 상속 재산이 많았으나 대부분을 도박과 신문(The National Standard 와 The Constitutional)에 탕진했다.

새커리가 그린 자화상.말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자신을 묘사했다.https://en.wikipedia.org

2.새커리는 1833년에는 전문 화가가 될 결심으로 파리에 정착해 한동안 그곳에 살기도 했다. 그림 공부는 중도에 중단했지마 미술적 재능은 나중에 자신의 글 삽화로 나타났다. 1830년대 중반부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저널리즘 종사자로 전향했다. 주로 프레이저 매거진(Fraser's Magazine), 타임즈(The Times) ,펀치(Punch) 등 에서 일했다. 
1836년 8월 파리에서 만난 아일랜드 출신의 이사벨라 게틴 쇼웨(Isabella Gethin Shawe,1816 – 1894)와 결혼했다. 이듬해인 1837년 런던으로 돌아와 직업 기자로 활동했다. 그런데 아내 이사벨라는 1840년 세 번째 아이를 낳은 후 우울증에 걸렸다. 아내 상태가 심각해 그해 9월 아일랜드로 여행을 떠났는데 아내가 배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등 병세가 악화했다. 둘은 3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앤 새커리 리치(Anne Thackeray Ritchie,1837–1919)와 해리엇 마리안 새커리(Harriet Marian,Minny,1840–1875)만 성년까지 생존했다.

새커리의 아내 이사벨라 게틴 쇼웨(Isabella Gethin Shawe,1816~1894) 모습. 새커리가 직접 그렸다.https://en.wikipedia.org

아내는 아일랜드 처가에서 용양하면서 좋아졌으나 1844년 쯤 다시 우울증에 빠졌고, 1845년 파리로 건너가 정신병원에 머물렀습니다. 이후 1950년대 새커리는 부인을 영국으로 데려와 가족의 지인으로 캠버웰에 있는 베이크웰 부인과 함께 살게 했다. 이사벨라는 건강이 서서히 회복돼 새커리 사망 후에도 사우스엔드 리온시의 톰슨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30년을 더 살다가 1894년 사망했다.
새커리는 제인 올리비아 브룩필드 부인(Jane Octavia Brookfield , 1821~1896,영국 소설가)과 플라터닉 러브를 하고, 또다른 여인 샐리 벡스터(Baxter)등과도 교유했으나 연인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제인 올리비아는 1851년 서신마저 중단됐고, 벡스터는 1855년에 미국의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새커리가 1840년대 초에 그린 아내와 아들 모습.https://en.wikipedia.org

4.새커리가 런던 문단과 오피니언 그룹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1846년이다. 이 해에 발표한 '속물열전'이 인기를 끌면서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위치를 만들었다.  소설 '배니티 페어'를 발표한 잡지 '펀치'하고는 1843년부터 1854년까지 일했다. 새커리는 1848년 발표한 '베니티 페어'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명성을 가져다 주자 1857년 옥스퍼드시에서 자유당 의원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1860년에는 새로 창간한 문예저널 '콘힐 매거진(Cornhill Magazine,1860~1975, 콘힐은 런던 거리 이름)'의 편집자가 됐다. 새커리가 편집장을 할 때는 11만부가 발행됐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새커리의 건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정신병 아내 돌보기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과식과 과음을 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

'새커리의 뮤즈'. 독일 작센주 치타우 출신 영국 화가 찰스 앨버트 루도비치 시니어(Charles Albert Ludovici,1820-1894)가 1859년 그린 새커리 연인 제인 옥타비아 엘튼(Jane Octavia Elton,1821-1896, 윌리엄 브룩필드 부인). 내셔널 트러스트(영국 , 웨일스 , 북아일랜드의 문화유산 및 자연 보호 자선 단체이자 회원 조직) 소장,http://artuk.org


5.모든 죽음이 그렇듯이 새커리의 죽음도 갑자기 왔다. 1863년 크리스마스 이브 갑자기 쓰러졌다. 뇌졸중이었다.가족과 독자들은 큰 충격 속에 결국 사망했다. 향년 52세. 장례식은 켄싱턴 궁전의 프라이빗 정원인 , 7,000명이 켄싱턴 가든( 현재는 개방하고 있음) 에서 열렸고, 12월 29일 런던의 켄싱턴 첼시 왕립 자치구 노스 켄싱턴 켄살 그린 묘지에 묻혔다. 옆에는 새커리를 존경한 아일랜드 문필가이자 친구 로버트 벨 (Robert Bell, 1800~1867)도 나중에 묻혔다. 
나중에 이탈리아 토리노 출신의 프랑스 조각가 피에트로 카를로 조반니 바티스타 마로케티 남작(Carlo Marochetti, 1805~1867)이 조각한 추모 흉상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설치됐다. 주요 작품으로는 '펜더니스 이야기(The History of Pendennis,1850)', '뉴컴가(The Newcomes,1855)',  '헨리 에스먼드의 역사(The History of Henry Esmond,1852) 등이 있다. 

런던 켄살 그린 묘지에 있는 새커리의 무덤과 묘비명. https://en.wikipedia.org

6. 새커리는 인도에서 1817년 어머니와 생이별한 후 기숙형 교육기관 차터하우스(Charterhouse School)로 보내졌다. 그래서 차터하우스를 대단히 싫어했다. 그는 한 소설에서 차터하우스를 '도살장'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사후 차터하우스 교회(Charterhouse Chapel)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1887년 영국왕립예술협회는 1860년 초 지어진 런던 팰리스 그린 2번지의 새커리 집(현 이스라엘 대사관)에 블루 프라그(파란색 명판,유명인 출생지  등 흔적이 있는 곳에 공공이 설치)를 설치했다. 한편 켄트주 턴브리지웰스에 있는 새커리가 살았던 집은 현재 저자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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