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팬데믹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이야기하듯 첫 문단 쓰다

“정숙하신 숙녀 여러분, 인정 많은 성품을 타고난 여러분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는 마음을 무겁고도 고통스럽게 만들 첫머리가 되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지나간, 죽음에 이르는 페스트의 가슴 아픈 기억은, 그 무서움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 슬픔이었는지를!….”(한형곤 옮김,동서문화사,2007)

동서문화사 2007년 낸 '데카메론' 표지 그림.

1.모여 있는 군중을 대상으로 화자(話者)가 내레이션 하듯이 글을 써 내려 가는 첫 문단이다.
화자인 작가가 스스럼없이 이야기속에 나오는 방식(이야기 속에서 이야기하는)으로 글의 신뢰감을 주는 서술기법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판소리 형식이다.
과거를 이야기 하면서 현재를 이야기하는 방식도 듣는이(읽는 이)의 주목을 받기 위한 장치다. 어떤 글의 도입부를 쓸 때 취할 만 하다.

2.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1349~1351)’은 르네상의 문을 연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데카메론은 라틴어(그리스어)로 deka(10)+hemera(날)이다. 10일간의 이야기란 뜻이다.
피렌체의 청년 3명과 숙녀 7명이 페스트(Yersinia Pestis,흑사병, 1347~1351년 사이 유행한 감염병)를 피해 별장에 지내면서 10일에 걸쳐 이야기 한 형식으로 쓴 100개의 화집(話集,이야기 모음)이다.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 사회와 문화를 뛰어나게 묘사한 베스트셀러다. 영어로는 'The Decameron'이다.

3.당시의 지식인들은 기록물을 라틴어로 썼다. 이에따라 수준 높은 문학 작품 대부분이 라틴어로 쓰였다. 언문불일치, 대화할때 나오는 말과 글이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보카치오는 당대 백성의 말과 기록문자로 데카메론을 썼다. 언문일치를 이루었던 셈이다.
그래서 당대 어느 작품보다 생생한 묘사(비속어, 속어, 외설 내용 등)와 관용어 표현 등으로 생동감과 재미를 준다.

플랑드르 필사본 데카메론(프랑스어 판)에 그려진 ‘전염병을 피하는 보카치오와 사람들’일러스트. 1485년 경. photo by wikipedia

4.독특한 이야기체인 데카메론은 당시 뱃사람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래된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많은 연구가들이 이를 인정한다.
작가가 내레이션 하듯이 쓴 중층적 대화 구조의 데카메론은 후대 문학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영국 작가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1343~1400)의 ‘캔터베리 이야기’ 등이 영향을 많이 받았다.

5.중세 르네상스 서사 문학의 대표로 당대 유명작가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걸작인  '신곡(Divina Commedia)'에 빗대 '인곡(Umana Commedia)'이라고도 한다.
보카치오는 멘토이자 롤모델로 10여 년 연상인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르네상스를 연 인문주의자),  그리고 단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페트라르카 사망시 보카치오가 실의에 빠졌다는 기록도 있다.
데카메론의 여러 이야기 중 수녀원 이야기가 '더 리틀 아워즈'(2017)로 영화화됐다.
 

이탈리아 조각가 라파엘로 모겐(Raffaello Sanzio Morghen,1758~1833)이 그린 보카치오 초상화(1822)photo by wikipedia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1313~1375)=중세 이탈리아의 대표 작가. 인문주의자.

1.피렌체의 부잣집(상인이자 환전상)에서 출생했다. 어머니는 프랑스계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 견습사원, 나폴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프랑스에서 라틴 고전과 프로방스 문학도 배웠다.
중장년 때는 피렌체 외교관과 시의원, 롬바르디아 대사도 지냈다.

2.1349년 아버지가 흑사병으로 사망하자 생업을 위해 피렌체시 공무원이 됐다. 이때 페스트 유행으로 대책없이 죽어가는 이들을 무수히 본 것이 데카메론을 쓴 계기가 됐다.
1350년을 전후해 인생의 롤 모델이자 멘토를 만난다. 당시 운문(시)문학의 대가로 유명한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1304~1374, 르네상스를 연 대표 작가)를 만난 것이다.
보카치오는 아홉살 연상의 페트라르카를 만난 후 고전 공부를 더 했고, 창작 열기를 불태웠다.

로마 태생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1849~1917)가 1916년 그린 '데카메론 이야기'.photo by wikipedia

3.보카치오는 페트라르카가 사망(1374)하자 큰 충격을 받고 피렌체 인근 체르탈도(피렌체 남서쪽 마을)에  은거한다.
하지만 1년 뒤  영면,인근 산티 미켈레에자코포 교회에 묻혔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과 앞에 조각상이, 체르탈도 중심 광장에 동상이 서 있다.

4.작품으로는 ‘필로스트라토(1335)’, ‘피에솔레의 요정(1346)’, ‘코르바치오(1365)’, ‘이교 신들의 계보(1350~1375)’ 등이 있다. 보카치오의 여러 작품은 피렌체 산토 스피리토 수도원에 남아 있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