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에마(엠마)-'오만과 편견'에 버금가는 왕세자 헌정 소설도 수필 쓰듯이 시작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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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엠마)-'오만과 편견'에 버금가는 왕세자 헌정 소설도 수필 쓰듯이 시작된다.

지성인간 2023. 5. 1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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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총명하며 밝은 성품에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에마 우드하우스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대부분의 축복을 받은 듯 보였다. 사실 스물 두 해를 살아오면서 그녀에게는 걱정거리나 힘들었던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자식을 끔찍이 위하는 너그러운 아버지 밑에서 두딸 중 둘째로 태어났고, 언니가 시집을 가는 바람에 아주 어린 나이부터 집의 여주인 노릇을 해왔다.”(김재연 옮김, 대교베텔스만, 2007)

대교베텔스만이 2007년에 낸 '에마' 표지 그림.

1.제3자가 내레이션하는 것을 듣는 듯하는 첫 문단이다. 담담한 문체에 자연스런 전개가 수필처럼 읽힌다. 은유나 풍자없이 평범하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젠트리(귀족 지위가 없는 유산자 계층, 부농, 상공업자, 전문직 등) 계층의 삶을 묘사한 소설답게 첫 문단만 봐서는 이렇다 할 반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2. 제인 오스틴의 ‘에마(엠마, Emma, 1815, 런던)’는 작가 생활의 절정기에 쓴 로맨스 소설이다. 흥미로운 소재인 짝짓기로 독자들의 몰입력을 배가시킨 작품이다.
사랑의 연금술사로서 에마(엠마)와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후대 문학 평론가 중에서 오스틴의 가장 위대한 소설로 보는 사람도 많다.

3.오스틴의 소설은 섬세하고 정교하다. 또 반어나 풍자 수법, 재기 넘치는 문체에 탁월했다.
직접 대화를 대화체로 쓰지 않고 ‘묘출(描出)화법(Represented speech, 직접화법 문장구조를 간접화법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많이 쓴 작가다.
이는 남녀간의 짝짓기라는 통속적이고 진부한 소재를 뛰어난 소설로 승화하는 데 일조했다.

제인 오스틴이 자주 방문했던 켄트의 고드머샴 파크(Godmersham Park)에 있는 오빠의 집.photo by wikipedia

4.오스틴은 당대에는 익명으로 출판한 경우도 있어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았다.
런던 상류층에서 약간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당시 영국 섭정 조지 4세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에마(엠마)는 1815년 출판 시 왕세자에게 헌정된다.

5.1869년 조카 제임스 에드워드 오스틴 레이(James Edward Austen-Leigh)가 ‘제인 오스틴 자서전’을 펴내면서 명성이 시작됐다.
이후 영문학의 위대한 작가 대열에 오른 것은 1940년대였다.
1948년 문학평론가 F. R 레비스는 저서 ‘위대한 전통(The Great Tradition)’의 서두에서 “오스틴은 영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4명의 소설가 중 1명”이라고 쓴 것이 재평가에 큰 기여를 했다.
 

언니 카산드라 오스틴(Cassandra Austen)이 스케치한 1810년 쯤의 제인 오스틴 초상. photo by wikipedia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영국의 대표 소설가. 서양 문학사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여류 작가.

1. 영국(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햄프셔 주 스티븐슨에서 태어났다.
8남매 중 일곱째 딸이다. 리딩 수도원 여자기숙학교를 다녔다.
1795~1796년 소설 ‘첫인상’을 런던의 한 출판사에 가져갔으나 간행되지 못했다.
26세 때 청혼을 받고 수락했지만 다음 날 취소해 버렸다.
1809년 오빠 에드워드가 마련해 준 햄프셔 주 초튼(Chawton)으로 이사, 그곳에서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1811)’,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1813)’을 썼다.

2.오스틴은 로맨스 소설의 대가(大家)였지만, 끝내 미혼으로 생을 마감했다.하지만 두 번의 아픔을 겪었다.

스무살 때인 1796)에 토마스 리프로이(Thomas Langlois Lefroy)라는 아일랜드 출신 남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 직전 무산됐다. 부자인 리프로이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제인은 이 만남 무산 이후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의 바탕이 되는 첫인상(First Impressions)’을 썼다.

스물여설살 때인 1802년에는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명망 있는 집 아들이지만 6살이나 어린 해리스 비그위더(Harris Bigg-Wither)의 청혼을 받고 수락했지만 다음날 마음이 변했다. 스스로 파혼을 결정했다.

3.1817년 ‘샌디턴’ 집필에 들어갔으나 병으로 윈체스터에서 요절했다. 묘지는 그녀의 고향인 햄프셔 주 윈체스터 대성당에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 ‘맨스필드 파크’ , ‘에마(엠마)’, ‘노댕거 사원’ , ‘설득’) 등이 있다. 소설 6편은 모두 영화, 드라마로 제작됐다.

4.오스틴 기념관과 제인오스틴센터는 각각 영국 햄프셔주 초튼(Chawton)과 잉글랜드 서머싯 주  바스(Bath)의 가이(Gay) 스트리트 40번지에 있다.
2007년 사망 200주기를 맞아 영국은행 10파운드 지폐 도안 인물(아래 사진)로 선정됐다

 

5.현대에 와서 다소 황당한 발표도 있었다. 2007년 영국 국립도서관(The British Library)이 내놓은 오스틴 사망 원인은 ‘비소 중독(arsenic poisoning)’이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에 오스틴 전문가인 재닌 바차스(미국 텍사스 대학 박사)는 ‘엄청난 비약’이라고 비판했다.
1967년에는 문학적 업적을 기려 웨스트민스터 사원 남쪽 통로에 이름이 등재됐다. 영국 바스에서는 2001년부터 제인 오스틴 축제가 열린다. 광팬들을 제인오스틴 추종자라는 뜻의 'Janeite(제인아이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6. 제인 오스틴은 현대에 들어와서 최고의 명성을 얻은 작가다. 영국 리얼리즘 문학의 시조로 불린다. 1999년 말 BBC 설문조사에서 영국인들이 ‘지난 1000년간 최고의 문학가’ 2위로 뽑았다. 1위는 셰익스피어.
후대 작가들의 높은 평가가 이어졌다. ‘달과 6펜스’의 저자 서머셋 몸(William Somerset Maugham,1874~1965)이 뽑은 ‘가장 위대한 작가’ 10명에 들었고, 2007년 유명작가 126명이 가장 좋아하는 책에 소설 5개가 뽑혔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코너 벽(wall of Poets' Corner)’에 걸린 오스틴 기념비.photo by wikipedia

7.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1942)는 “순전히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자신이 본 그대로의 사물을 고집하는 일은 대단한 재능과 성실성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근현대 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 소설 ‘도련님’, ‘마음’ 등의 작가)는 1907년 ‘문학론’에서 “오스틴을 감상할 수 없는 사람은 그 누구도 리얼리즘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해리포터’ 저자 J. K. 롤링(1965~현재)은 “제인 오스틴은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별과 같은 존재다.”고 격찬했다.
작가이자 기자인 안나 퀸들렌 (1992년 퓰리쳐상 수상) 은 “제인 오스틴은 문학의 '로제타 스톤'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로제타 스톤은 1799년 이집트 나일 강 삼각주 북서부 도시 로제타에서 발견된 상형문자가 쓰여진 돌이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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