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영문학사 첫 산문 픽션으로 근대 소설의 태동을 알린 '톰 존스의 모험' 첫 문단은 낯설고 불편한 해설체로 시작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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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사 첫 산문 픽션으로 근대 소설의 태동을 알린 '톰 존스의 모험' 첫 문단은 낯설고 불편한 해설체로 시작한다.

지성인간 2024. 12. 2.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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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톰 존스'의 배경 가톨릭 왕위 부흥 운동-스위스 태생의 영국 화가 데이비드 모리어(David Morier,1705?~1770)가 그린 가톨릭 왕가였던 스튜어트 가문을 영국 왕좌로 복귀시키려는 재커바이트 봉기(Jacobite rising)에 합류한 민병대와 왕당파 정규군 전투.왕립연대-랭카스터(King 's Own Royal Regiment-Lancaster) 4보병대 소속 군인들이 재커바이트군을 무찌르는 모습이다.영국 왕실 로얄 컬렉션(Royal Collection Trust) 소장. https://balkandave.blogspot.com

제1권 이 이야기 첫머리에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주인공의 출생에 관한 모든 것
1.작품 소개 또는 식사 메뉴 "작가를 몇몇 손님을 불러다놓고 공짜로 음식을 대접하는 신사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작가란 요컨대 돈만 지불하면 누구든 환영하는 음식점 경영자이다. 잘 알다시피 앞의 경우는 무얼 대접하든 주인 마음이고, 그 음식이 아무리 맛이 없고 손님 입맛에 안맞고 거슬린다해도 손님들은 불평 한마디 하지 못한다. 오히려 앞에 차려진 음식이 맛있다고 예의상 드러내놓고 칭찬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음식점 주인 경우에는 이와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돈을 내고 먹는 손님들은 제 입맛이 아무리 까다롭고 변덕스럽더라고 그 입맛이 만족하기를 고집한다. 따라서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사정없이 음식 맛을 비난하고 욕하고 저주를 퍼붓는 것이 마땅한 권리라 주장한다. 이 때문에 손님들이 실망하고 기분상하는 걸 막기 위해 착하고 성실한 주인은 ---." (헨리 필딩 저, 최홍규 옮김, 동서문화사, 2012) 

소설 '톰 존스' 배경 재커바이트 봉기-영국 화가이자 조각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가 그린 '핀클리에 방어를 위한 행진(The March of the Guards to Finchley)'. 가톨릭 왕가였던 스튜어트 가문을 영국 왕위로 복귀시키려는 재커바이트(Jacobite) 세력에 맞서 런던 방어를 위해 모인 왕당파 가족과 군인 모습이다. 런던 찰스디킨스박물관 옆 파운딩박물관(The-Foundling-Museum) 소장. https://foundlingmuseum.org.uk

1.장황한 해설체의 낯설고 불편한 도입부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전(口傳) 이야기를 수많은 청중을 위해 사전 설명하는 듯 하다. 구어체에서 문어체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계몽소설의 특징이라고 할수 있겠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작가를 음식점 사장에 빗대고 있다. 음식 맛에 은유적으로 글맛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이자 내레이터가 직접 상황을 언급해 독자의 신뢰를 높이는 첫 문단이다. 이야기를 중계방송하고, 중간중간 해설하는 근대 소설의 또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화자가 독자를 설득하는 듯한 문장이 이어지는 상당히 독창적인 도입부라 하겠다.

영국 런던 출판사 앤드루 밀러(Andrew Millar)에서 1749년 나온 소설 '톰 존스' 초판본 첫 장 페이지.https://en.wikipedia.org

2.헨리 필딩의 '톰 존스의 모험(Tom Jones,1749)'은 초기 영문학의 대표작이자 영국 소설 사상 보기드문 역작 중 하나다. 특히 근대소설의 새로운 태동을 알리는 명작으로 근대에서 현대로 가는 시기 소설의 형식을 확립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특히 서사시적 희극 소설의 원조로 꼽힌다. 저자 스스로  새로운 허구 소설 장르인 산문 픽션, 즉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라고 당당하게 밝힌 걸작이다. 영문학사에서 성장 문학 소설의 으뜸으로 꼽히면서 영미권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분류된다.
원문은 모두 34만6747자로, 18개 작은 단위로 나뉘어 있다. 1749년 2월28일 런던 출판업자 앤드류 밀러(Andrew Millar, 1705~1768)가 세운 앤드류 밀러 출판사에서 나왔다. 글을 해독하지 못하는 문맹자가 많은 당시에 보기 드물게 첫 해에만 4판이나 찍은 베스트셀러였다.
원제는 'The History of Tom Jones, a Foundling'으로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 혹은 '기아(棄兒) 톰 존스의 이야기'로 번역된다. 약칭은 톰 존스. 20세기 중반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윌리엄 서머싯 몸(W. Somerset Maugham,1874~1965)이 1954년 저서 '위대한 소설가와 그들의 소설'에서 '세계 최고의 소설 10권' 중 하나로 언급했다.

소설의 시작, 업둥이 톰 존스 발견-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1791년 출판된 소설 '톰 존스'에 그려진 삽화 '올워디 씨의 침대에서 발견된 유아 톰 존스'이다. 작가 미상. www.google.com

3.소설 '톰 존스'는 '계몽, 교육 소설' 이다. 주인공이 여러가지 결점에도 불구, 도덕, 심리적으로 발전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성장소설 요소가 강하기 때문이다. 소설 구조는 피카레스크(picaresque, 악인 아닌 악인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설, 스페인 소설에서 첫 등장) 타입이다. 독일어로 빌둥스로만(bildungsroman,주인공의 정신·정서적 성장을 다룬 것)이라 한다. '교육'을 뜻하는 Bildung 과 '소설(Roman)' 을 합친 말에서 유래했다. 빌둥스로만은 독일  문학에서 많이 나왔으며, 교양소설을  통칭한다.
소설은 18세기 영국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직업의 인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많은 인물  묘사는 필력의 대단함을 느끼게 한다.  이 소설은 출판 초기부터 일상적인 대화체, 유머와 로맨스의 교묘한 교차, 속도감있는 전개 등이 치밀한 문학적 구성과 함께 독자를 사로잡았다.
'톰 존스'는 실제 이야기에서도 많이 따왔다. 특히 소설 속 레이디 벨라스톤(Lady Bellaston)은 영국 사교계의 명사였던 오드리 에델드레다 타운센드(Audrey Etheldreda Townshend, 1708~1788,타운센드 자작부인,Viscountess Townshend)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 소설 속에서 18세기 영국 성공회(개신교) 내의 감리교(Methodism)에 대한 강력한 반대를 내비친다.

영국 풍자화가 토머스 로랜드슨 (Thomas Rowlandson , 1757~1827)이 1792년 그린 '톰 존스' 소설 속 '노서튼의 폭력으로부터 워터스 부인을 구하는 톰 존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1792년 출판 소설 '톰 존스' 삽화다. 폭력에 휘말린 여성의 취약성과 긴장감을 그린 작품.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소장. photo by wikipedia

4.소설의 배경은 1745년 8월 일어난 가톨릭 교도 중심의 '재커바이트 봉기(Jacobite rising of 1745)'다. 재커바이트 봉기는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Charles Edward Stuart, , 1720~1788)가 가톨릭 왕가였던 스튜어트 가문을 영국 왕위로 복귀시키려고 스코틀랜드 가톨릭 교도들과 함께 한 반란이다. 재커바이트는 1688년 영국 명예혁명(名譽革命,Glorious Revolution)으로 왕위에서 축출된 가톨릭 지지자 스튜어트 왕가의 제임스(James ,라틴어 Jacobus) 2세(1633~1701) 및 그 후손의 추종자로 재커바이트주의(Jacobitism)라 한다. 
제임스2세의 손자로 망명지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Charles Edward Stuart, the Young Pretender, 1720~1788)는 영국 왕위를 되찾기 위해 1745년 7월 영국에 상륙, 두달후 스코틀랜드 글렌피넌에서 반란을 일으켜 초기에 에든버러를 점령하는 등 선전한다. 하지만 민병대 중심의 반란군이 그렇듯이 시간이 갈수록 오합지졸이 되면서 1746년 4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고지대) 지역도시 인버 네스 컬로든에서 영국군(왕당파)에 패배한다.이를 계기로 영국에서 가톨릭 왕가 회복 운동은 사실상 종식됐다.당시 영국 왕당파가 고전한 것은 정규군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War of the Austrian Succession, 1740~1748)에 참전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1717~1780)의 오스트리아 제위 계승에 반대하는 프로이센,프랑스 등과 이를 지지하는 바이에른 선제후,스페인,영국 등이 얽힌 전쟁이다.한편 선제후(選帝侯,Princeps Elector)는 황제를 뽑는 권한을 가진 제후라는 뜻이다. 선제후에서 선은 뽑을 선이다.

가톨릭 왕위 부흥 세력 색출-빅토리아 시대 영국 화가 존 시모어 루카스(John Seymour Lucas, 1849~1923)의 '컬로든 전투 이후 반군 사냥(1884)'-정부군이 컬로든 전투 승리 이후 스코틀랜드 일대 재커바이트(Jacobite,가톨릭 파)들을 엄중히 색출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www.google.com

5.등장인물은 주인공으로 사생아 올워디(Allworthy)의 보호자 토마스(톰) 존스, 부유한 영주이자 사냥꾼 스콰이어 웨스턴(Squire Western)과 외동딸 소피아(Sophia, 소피) 웨스턴, 위선자이자 톰 존스의 라이벌 윌리엄 블리필 선장과 딸 브리짓 올워디(Bridget Allworthy, 나중에 블리필 부인), 톰의 연인이자 런던 상류사회의 주요 인물 레이디 벨라스톤(Lady Bellaston, 사교계 명사) 등이 나온다.
또 부유한 지주 스콰이어 올워디(Squire Allworthy),  브리짓 올워디 남편 존 블리필 (John Blifil)선장과 이복동생 블리필 박사 , 브리짓의 하인 데보라 윌킨스 부인, 귀족이자 사교계 명사인 펠라마 경, 소피아의 하인인 블랙모어 부인, 파트리지 가문의 하인 제니 존스 양(후에 워터스 부인), 낸시와 베티 밀러와 어머니 밀러 부인, 교사이자 이발사(외과의사)인 벤자민(리틀 벤자민) 파트리지 씨와 첫 부인, 톰과 블리필 마스터의 가정교사인 목사 로저 트와컴, 웨스턴 경의 미혼 여동생 미스 웨스턴(Miss Western) 등도 나온다. 

소설 톰 존스에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레이디 벨라스톤의 실제 인물 에델드레다 타운센드(Etheldreda Townshend,1708~2788) 초상화. 프랑스화가로 런던에서 활동한 장바티스트 반 루(Jean -Baptiste van Loo,1684~1745)의 1738년 작품. photo by wikipedia

6.줄거리는 부유한 지주 스콰이어 올워디와 그의 여동생 브리짓은 서머싯에 있는 그들의 영지에 간다. 올워디는 오랜 출장을 마치고 런던에서 돌아왔는데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기를 발견한다. 버려진 아기였다.그들은 아이 이름을 톰 존스로 붙였다. 기아(棄兒)로서 대지주의 저택에서 양육되는 톰은 명랑하고 분방한 청년으로 성장하지만  경솔한 행동과 주위의 모략으로 온후한 양부모(지주 올워디)의 보호를  잃고 방황한다. 사랑하는 소피아 웨스턴과도 헤어진다.
그런 사이 업둥이 톰 존스의 출생의 비밀도 하나하나 드러난다.  톰 존스의 어머니는 지주 올워디의 동생 브리짓이었다. 올워디의 조카인 것이다. 그런데 올워디에게는 이복 형제인 블리필이 있었고, 지주 올워디의 재산을 탐낸  브리필의 음모에 의해 톰 존스가 쫓겨났다는 것도 드러난다.  톰 존스가 조카로 확인되자 올워디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톰에게 주기로 결심한다. 톰의 진짜 부모가 밝혀진 후 스콰이어 웨스턴은 딸 소피아와 톰의 결혼을 허락한다. 둘은 아들과 딸을 낳고, 스콰이어 웨스턴과 스콰이어 올워디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산다.

소설 톰 존스의 여주인공-영국 화가 아담 벅(Adam Buck)이 그린 원작을 바탕으로 조셉 콘스탄틴 슈타들러(Joseph Constantine Stadler,1755~1828)가 다시 그린 소피아 웨스턴. www.google.com

6.파격적인 소설 기법과 묘사, 다양한 인물 군상에 대한 탁월한 캐릭터 부여 등으로 후대의 호평이 이어졌다. 영국 낭만주의 시대 최고의 비평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완벽한 플롯구조"라고 격찬했다.  영국 소설가이자 비평가로 '멋진 신세계'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 1894~1963)는 “수많은 소설가 중에서 인생의 전면적인 진실을 그린 사람은 호머와 필딩뿐이다.”고 호평했다,
20세기 영국 최고의 작가로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를 쓴  윌리암 서머셋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필딩의 문체는 딱딱한 데가 없고 자연스럽다, 마치 포도주라도 마시면서 친구 몇 명에게 얘기하듯 이야기를 들려준다"며 "어느 사건이나 교묘하게 꾸며져 있으며, 등장인물은 원색적으로 대담하게 그려져 있는데, 세밀한 맛은 좀 모자라지만 발랄한 생기가 이를 보충하고 남는다"고 격찬했다.
체코 출신 작가로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는 “소설가에게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필딩처럼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플로베르처럼 이야기를 ‘묘사’하거나, 로베르트 무질처럼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Nes nesitelná lehkost byti, 1984)'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다.

영국 화가 존 호프너(1758-1810)가 그린 여주인공 소피아 웨스턴(Sophia Western). photo by wikipedia

7.프랑스 오페라 작곡가이자 체스선수인프랑수아-앙드레 필리도르(François-André Philidor, 1726~1795)가  1765년 오페라 '톰 존스(Tom Jones)'로 만들었으나 실패했다. 1766년 개정된 대본이 인기를 얻었다. 1907년에 영국 대중 가극(輕歌劇,노래와 대사, 춤이 어우러진 대중 오페라) 작곡가 에드워드 저먼(SEdward German, 1862~1936)이 또 다른 코믹 오페라를 제작했고, 1975년에는 미국 배우이자 제작자 스티븐 올리버(Stephen Oliver, 1941~2008)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영화는 소설 '톰 존스'를 바탕으로 1963년 영국에서 코미디 영화 '톰 존스(Tom Jones)'로 나왔다. 영국 유명 감독 토니 리처드슨(Tony Richardson,1928~1991)이 감독을 맡았고, '유명한 희곡 '성남 얼굴로 돌아보라(1956)'의 저자 '존 오스본(John James Osborne, 1929~1994)이 극작을 맡았다. 호색한 톰 존스의 이야기로 각색, 인기를 끌면서 아카데미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오리지널 스코어 음악상 등 4개 부문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제목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Tom Jones)'은 일본어 'トム・ジョーンズの華麗な冒険'을 제목 그대로 베낀 것이다. 
1976년 영국에서 영화 및 TV 감독 클리프 오웬(Cliff Owen , 1919 ~1993)이 뮤지컬 영화 '톰 존스의 음탕한 모험(The Bawdy Adventures of Tom Jones)'을 냈다.1997년에는 5부작 TV 시리즈 '톰 존스의 역사 - 버려진 아이' BBC 드라마로 제작, 방영됐다. 영국 배우 맥슨 비즐리(Maxton Gig Beesley Jr., 1971~현재)가 주연을 맡았다. 한편 한국에서는 2007년 1월 처음 완역(류경희 옮김, 삼우반 펴냄, 전 2권), 출판됐다. 

1743년 조나단 윌드(Jonathan Wild)가 에칭한 헨리 필딩 초상화.photo by wikipedia

#.헨리 필딩(Henry Fielding, 1707~1754)=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현대 소설의 기초를 확립한 작가.  풍부하고 소박한 유머와 풍자적 재치로 유명한 작가다. 18세기의 가장 중요한 소설가이며 영국 소설의 전통에 하나의 흐름을 창시한 위대한 작가.  웨스트민스터의 수석 판사. 판사 권한을 사용해 과 이복동생 존 필딩(John Fielding,1721~1780, 영국 치안 판사이자 사회 개혁가)과 함께 런던 최초의 전문 경찰 조직(수사기관)인 '보우가의 주자(Bow Street Runners, 현대 영국 경찰의 전신)'를 설립, 영국 법 집행 역사의 신기원을 마련했다.

헨리 필딩 숭배 아티스트였던 영국화가 윌리암 호가스가 헨리 필딩 사망 6년후에 그린 추모화.

1.영국 잉글랜드 서머싯 멘딥 지구의 스트리트와 글래스턴 베리 근처 서머싯 레벨에 있는  샤프햄(Sharpham)마을에서 1707년 4월 22일 출생했다. 아버지는 중장 에드먼드 필딩(Edmund Fielding , 1676~1741)이었고, 어머니는 판사 헨리 굴드(Henry Gould, 1644~1710) 경의 딸인 사라 굴드(Sarah Gould, 1682?~1718)로 두 가계 모두 명문가였다. 여동생은 나중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영어 소설 '가정교사, 또는 작은 여성 학원( The Governess, or The Little Female Academy)'을 쓴 사라 필딩 (Sarah Fielding, 1708 또는 1710~1768)이었다.
두살 무렵 서머싯에서 도싯(Dorset)의 이스트 스타우어(East Stour)로 이사갔으나 어머니가 11살때 사망,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가 곧 재혼해 할머니 손에서 이튼 칼리지를 다녔다. 할머니는 무책임한 아버지 에드먼드 필딩 중장을 상대로 양육권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헨리 필딩의 풋사랑 사라 앤드류(Sarah Andrew). 필딩은 청소년기에 사촌인 사라를 사랑한 나머지 납치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후 기소 위기에 처하자 런던으로 도망갔다가 네덜란드로 갔다. www.wikipedia.com

2.필딩은 18살 무렵인 1725년 자신이 짝사랑하던 사촌 사라 앤드류스(Sarah Andrew)를 교회로 가던 길에 납치하려는 수작을 꾸몄다. 필딩은 이 일로 결국 기소될 위기에 처했고, 도망쳤다. 1728년 필딩은 대학에서 고전과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가서 라이덴(Leiden)시에 있는 라이덴대학교에 입학, 문학(고전과 희곡 등)을 공부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학비를 끊자 런던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지원이 없자 궁핍해진 필딩은 런던에서 희곡쓰기에 몰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당시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극을 무대에 올리고, 토리당 정기 간행물 'The Craftsman'에 휘그당 출신 총리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1st earl of Orford, 1676~1745, 영국 초대 총리)의 독선(모든 관직임명권 독식)을 비난한 글을 연거푸 썼다. 이에 집권당과 정부는 연극검열법(1937년 허가법)을 시행해 연극계가 고사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때 필딩은 법학공부를 시작, 1740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헨리 필딩과 사라 필딩 남매의 어려운 시기에 큰 도움을 준 자선사업가 '랄프 앨런(Ralph Allen, 1693~1764)'전신 초상화. 영국 초상화가이자 판화 제작자 윌리엄 호어(William Hoare, 1707~1792) 작품. https://artuk.org

3.필딩은 27세 무렵인 1734년 4년의 구혼 끝에 배스 바로 북쪽에 있는 시민 교구 이자 작은 마을 인 찰콤(Charlcombe)에 있는 세인트 메리 교 에서 샬럿 크래덕(Charlotte Craddock, ?~1744)과 결혼했다. 둘은 아이 5명을 낳아지만 딸 헨리에타 몬트레서(Henrietta Montresor,1743~1766)만 성년까지 살았다. 필딩은 가족 부양을 위해 1737년 변호사 공부를 해 1740년 법조계에 들어갔다. 그런데 결혼한지 10년만에 아내가 사망, 충격을 받는다. 필딩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온천으로 잘 알려진 바스로 데려갔으나 끝내 사망했다. 아내 샬럿은 나중에 소설 '톰 존스'와 '아멜리아'에 등장한다.
필딩은 아내가 죽자 딸과 여동생 세어러, 아내의 시녀이자 요리담당 하녀 메리 다니엘(Mary  Daniel, 1726?~1802)과 살았다. 그런데 3년 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신 중이었던 메리 대니얼과 런던 미들섹스( Middlesex)에서 결혼했다. 둘은 다섯명의  아이를 둘었으나 성년까지 성장한 자녀는 두아들, 윌리엄((William Fielding, 1748~1820)과 앨런(Allen Fielding, 1753~1823, 나중에 목사)이었다.

1957년 소련에서 발간된 헨리 필딩 기념 우표. 필딩 탄생 250주년을 맞아 발간했다. www.google.com

4.필딩은 1748년 런던  웨스트민스터와 미들섹스 지구를 담당하는 치안판사(행정장관)로 임명됐다. 하지만 생활을 나아지지 않았다. 판사직이 무급(無給)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판사들은 재판 수수료나 뇌물로 급여를 충당했다. 그런데 필딩은 기존 판사들의 행태를 거절, 무보수 명예직으로서 최선을 다해 런던의 사법 관행을 바로잡았다. 이에따라 18세기 런던의 가장 우수한 2명의 치안판사는 필딩과 그의 이복동생 존 필딩이었다.
정직한 판사 필딩의 궁핍을 알려지자 부유한 후원자 랄프 앨런(Ralph Allen, 1693~1764)이 등장했다. 랄프 앨런은 상인가문 출신의 부자로 영국 우편제도를 혁신한 우편국장을 지낸 자선가였다. 앨런은 1742년 로마인이 지은 목욕탕으로 유명한 서머싯의 도시 바스( Bath) 시장도 지냈다. 앨런은 필딩 사망후 그의 자녀들의 교육과 생활비도 지원했다.

헨리 필딩의 소설 '톰 존스의 모험' 역사적 배경은 가톨릭 세력의 왕위 부흥운동인 재커바이트 봉기다.1746년 4월 봉기실패 후 스코트랜드 일대를 도망다니다가 9월에 프랑스군 등의 도움으로 야반도주 하는 스튜어트 가문의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Charles Edward Stuart, , 1720~1788)와 추종자들의 이별장면.https://gonewhappylife.com

5.필딩의 필력이 급상승한 것은 1740년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 1689~1761)이 쓴 '파멜라, 또는 보상받은 덕'이 계기였다. 파멜라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이를 패러디해 익명으로 '샤멜라 앤드류스 부인의 삶에 대한 변명(An Apology for the Life of Mrs. Shamela Andrews , 1741)'를 썼다.이 소설이 인기를 끌자 본격적인 풍자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익명으로 '조셉 앤드류스(Joseph Andrews, 1742), '조나단 와일드 대왕(The History of the Life of Mr. Jonathan, 1743)' 등을 썼다. 조셉 앤드류스는 영국 최초 근대 소설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필딩은 1740년대 초 많은 작품을 썼지만 가족도 잃는 슬픔에 잠긴다. 아버지는 1741년, 딸 중 한 명은 그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또 사랑하던 아내마저 1744년 잃는다. 다행히 1740년대 후반들어 아내의 하녀와 결혼해 안정을 찾았고,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치안판사, 미들섹스의 치안판사로도 임명받는다. 이때인 1749년 톰존스(The History of Tom Jones, a Foundling)을 발표했다. 
1750년대 필딩은 정의에 집중했다. 한달동안 납치, 실종(1753년 1월1~1월29일)됐던 런던의 하녀 엘리자베스 캐닝(Elizabeth Canning, 1734~1773)에 대해 집중 변론했다. 이 결과 납치 범죄자들이 기소됐다.하지만 캐닝은 필딩 사망 후 재기소돼 유죄를 받았다. 이 사건은 18세기 영국 법에서 가장 악명 높은 범죄 미스터리 중 하나로 지목됐다.

포르투갈 리브본 성 조지 교회 묘지(영국 묘원, Cemitério Inglês )에 있는 헨리 필딩의 묘비. www.google.com

6.캐닝 변론때부터 건강이 더 악화하던 필딩은 통풍 , 천식 , 간경변 등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1754년 치료를 위해 아내와 딸과 함께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갔다. 하지만 두 달 후 리스본에서 영면했다. 향년 47세의 요절이었다. 유해는 리스본의 성 조지 교회 묘지(영국 묘지, Cemitério Inglês) 에 안장됐다. 
필딩의 마지막 작품은 여행과 바다 고난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한 '리스본 항해 일지(The Journal of a Voyage to Lisbon,사후인 1755년 출판)'였다. 사후 스코틀랜드의 시인, 소설가 월터 스콧(Walter Scott,1771~1832)은 "헨리 필딩은 영국 소설의 아버지"라고 말했다.(콘텐츠 프로듀서)

영국 바스에 있는 헨리 필딩과 동생 사라 필딩 남매 기념 표식. www.wikip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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