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고리오 영감-자녀에 올인한 벼락부자의 씁쓸한 말로를 쓴 소설은 장황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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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자녀에 올인한 벼락부자의 씁쓸한 말로를 쓴 소설은 장황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지성인간 2023. 6.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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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케르 부인은 콩플랑 집안에서 태어난 늙은 여자다. 그녀는 파리의 생마르소 성 밖 지역과 라탱 구역 사이에 있는 뇌브생트 주느비에브 거리에서 40년 전부터 하숙집을 경영해 왔다. 남녀노소 누구든지 ‘보케르의 집’으로 알려진 이 하숙집에서 숙식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존경할 만한 하숙집의 풍속에 대해 결코 험담하지 않는다. 젊은이가 이곳에 하숙하려면 그의 가족은 쥐꼬리만한 한 하숙비를 그에게 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30년 전부터 이곳에서는 젊은 사람을 한 명도 볼 수 없다. 그런데….”(박영근 옮김, 민음사,2000)
1.현미경을 들이대듯이 거리낌없이 쑥 들어온 듯한 첫 문단이다. 싸구려 하숙집을 사실주의에 기초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서술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 소설로 작가(발자크) 특유의 호흡이 긴 문장이 도입부터 엿보인다. 글쓰기 연습을 통해 세세한 설명을 필요한 글에 도입해 볼만하다.

민음사가 2000년 발행한 고리오영감 표지에 쓴 화가 귀스타프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1848~1894)의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Paris Street, Rainy Day,1877).

2.발자크의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1835)’은 1834년12월~1835년 2월에 잡지에 연재한 소설로 그해에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비판적 사실주의 소설의 교과서다.
정복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의 부상과 몰락, 부르봉 왕가의 귀환인 왕정복고(王政復古, 1814∼1830) 등 혁명의 바람이 휩쓸고 간 우울한 파리(1819년)의 현실이 잘 드러나 있는 소설이다.
또 결혼을 권력의 도구, 돈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묘사, 자본주의의 잔혹과 물질만능주의 등장을 반영했다.
연재할 때부터 인기를 끌어 책이 출판된 그해에 연극 무대에 두 번이나 올랐다. 영어로는 ‘Father Goriot’, ‘Old Goriot’로 번역된다.

3.등장 인물은 제면업(밀가루 장사)으로 벼락부자가 된 상인 고리오 영감, 하숙집 청년 라스티냐크, 하숙집 주인 보케르 부인, 큰 딸 아나스타지(레스토 백작 부인), 작은 딸 뉘싱겐 남작부인, 사기꾼 보트랭 등이다.
보트랭은 발자크가 실제 만난 외젠 프랑수아 비도크(Eugène François Vidocq)가 모델이었다고 한다.

4.소설은 두 딸에게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버림받는 상인인 고리오 영감 이야기이자 시골 청년 라스티냐크의 파리 도전기가 줄거리다.
시골 귀족의 아들 외젠 드 라스티냐크는 파리의 주류로 들어가려는 욕망을 지닌 청년이지만 출세를 위해서는 사교계가 빠르다는 것을 안다. 이 때 하숙집에서 만난 사람이 고리오 영감이다.
고리오 영감은 밀가루 장사로 큰 돈을 벌어 두 딸에게 ‘올인’한다. 이에 지참금을 듬뿍 태워 큰 딸은 백작 부인, 작은 딸은 은행가와 결혼시킨다. 하지만 딸들은 그런 아버지를 외면하고, 장례식에도 오지 않는다. 결국 장례는 라스티냐크 등 2~3명이 치른다.

고리오 영감 초판본 표지. 1835. 프랑스. 출처=위키피디아 영문판

5.고리오 영감은 나중에 등장인물만 2000명이 넘는 ‘인간희극(人間喜劇, La Comédie Humaine)’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희극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직후부터 1848년 2월 혁명 직전까지 프랑스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작가의 소설을 망라해 엮은 연쇄 소설이다. 피라미드 형태로 한데 묶은 총서(叢書)인 셈이다.
인간희극은 제1공화정(1792∼1804), 나폴레옹 제정(1804∼1814), 왕정복고(1814∼1830), 7월 왕정(1830∼1848) 시기의 ‘프랑스 역사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총서에는 ‘시골의사(Le Médecin de campagne)’, ‘외제니 그랑데(Eugénie Grandet)’,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 ‘서른살 여인(La Femme de trente ans)’, ‘사촌 베트’, ‘골짜기의 백합’, ‘마법 가죽’, ‘루이 랑베르’, ‘사라진 환상’, ‘세라피타’, ‘미지의 걸작’ 등이 실려 있다.
인간희극은 문학사 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작업으로 평가한다. ‘인물 재등장 기법’을 활용해 기존 소설 등장 인물이 다시 다른 작품에 나오는 보기드문 변화를 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자크를 프랑스 소설사의 혁신아, 현대 연속극의 개척자라 부르기도 한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George Barrie &Son에서 1897년 낸 '고리오 영감' 책 속 그림.무명화가 작품. 출처=위키피디아 영문판.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프랑스 대문호.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 비평가이자 출판인.

1.프랑스 제1공화국 앵드르에루아르(Indre-et-Loire)의 투르(Tours)에서 아버지 베르나르 프랑수아와 파리의 상인 집안 출신 어머니 안 샤를로트 로르 살랑비에 사이에서 태어났다.
32살 나이 차가 나는 늙은 남편이 싫었던 어머니는 발자크를 유모가 키우게 하고, 8살 때 방돔(Vendôme)의 오라토리오 수도회 중학교(기숙학교,1807~1813)에 보내버린다.
1814년 9월에 투르 중등학교에 다니다가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가서 리세 샤를마뉴에서 중등교육을 마친다. 이후 소르본대학교 법학과를 중퇴하고 변호사 사무소 등에서 일한다.

2.데뷔작은 소설 ‘올빼미 당원 (Les Chouans,1829)’이다. 다음해 ‘마법의 가죽(La Peau de chagrin(1830)’을 발표,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인쇄업 등 여러 사업에 손대 실패를 거듭해 빚만 늘어난다.
빚쟁이들한테 쫓기는 신세여서 돈을 갚기 위해 하루에 50잔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다고 한다.

3.발자크의 삶에는 많은 연상의 여인이 등장한다. 동료 작가인 마리아 뒤 프레즈네(Maria Du Fresnay)와 연애, 딸 마리 카롤린 뒤 프레즈네를 낳는다.
또 스물 세살때 22살 연상의 로르 드 베르니 부인(1836년 사망)과 연애하고, 로르 쥐노 다브랑테스 공작 부인, 하녀 아줌마 브리뇰 부인과도 염문을 뿌린다.
공식 배우자는 폴란드 귀족이자 오랜 연인인 에웰리나 한스카(Ewelina Hańska)다. 이 여인은 폴란드 지주 바츠와프 마샬 한스키(Marshal Wacław Hańsk,1841 사망)의 부인이다. 발자크가 죽기 5개월 전에 혼인했다.

4.발자크는 도박을 좋아했고, 커피 중독자였다. 1850년 8월 며칠을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영면, 파리 페르 라세즈 묘지(Père Lachaise Cemetery)에 묻혔다.
유언으로 “비앙숑을 불러줘! 그만이 나를 치료할 수 있어…!”라고 했다고 한다. 비앙숑은 인간희극에 나오는 의대생이다.

5.프랑스 상트르 주 앵드르에루아르의 고성(Château de Saché)에 발자크 박물관이 있다. 파리 발자크의 집(Maison du Balzac)도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다.
파리7구 로댕 미술관에 오귀스트 로댕(Francois Auguste Rene Rodin,1840~1917)의 발자크 기념비가 서 있고,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 로댕 작품 발자크 흉상(1892 작)이 있다.

6.발자크는 젊은 시절 당시의 영웅 나폴레옹 동상에 “이 사람이 칼로 이룬 걸 나는 펜으로 이루겠다”고 낙서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동료작가와 후대의 작가들은 발자크를 격찬했다.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1840~1902)는 “발자크는 자연주의 소설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 1902~1885)는 “발자크는 가장 위대한 인물 중에서도 으뜸이었고, 최고 중의 최고”라고 했다.
철학자로 ‘자본론’의 저자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1818~1883)는 “유쾌한 역설로 가득한 소설”,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1820~1895)는 “나는 모든 역사학자, 경제학자, 통계학자를 합친 것보다 발자크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1821~1880)는“발자크는 강력한 인간이었으며,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를 철저하게 이해한 인간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1843~1916)는 “발자크는 방대한 세계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고 했다.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19세기란 발자크의 거대한 발명품”이라고 격찬했다.
헝가리 출신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Lukács György,1885~1971)는 “발자크는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가다”고 말했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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