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고요한 돈 강-혁명문학의 정수인 소설의 첫문단은 ‘詩로 흝은 풍수지리 ’로 시작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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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돈 강-혁명문학의 정수인 소설의 첫문단은 ‘詩로 흝은 풍수지리 ’로 시작된다.

지성인간 2023. 8. 11.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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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레호프네 집은 마을에서 꽤 떨어진 변두리에 있었다. 가축 울짱의 조그만 문은 북쪽 돈강으로 나 있었다. 초록빛 이끼가 낀 상앗빛 바위 사이를 따라 15~16미터가 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가면 바로 강기슭이었다. 진주처럼 반짝이는 조개껍질들이 어울려 속삭이고, 물결에 쓸려 동그렇게 된 잿빛 자갈들의 윤곽이 넘실거리는 저쪽엔 바람을 받아 검푸른 물결이 이는 돈강의 격류가 용솟음치고 있다. 동쪽으론 타작마당 회양목 울타리 너머로 게트만스키 한길이 바라보이고 하얀 쑥과 말발굽에 짓밟힌 강한 생명력을 지닌 갈색 들버들 수풀이 무성했으며, 갈림길에는 교회가 있었다. 그 앞에는 비단결처럼 나부끼는 연둣빛 광야가 끝없이 펼쳐졌다. 남쪽으로 백악암으로 된 산들이 다가서고, 서쪽은 마을 길이 광장을 지나서 강변 개간지 쪽으로 뻗어 나갔다.”(맹은빈 역, 동서문화사, 2016)

동서문화사가 2016년 낸 '고요한 돈강' 표지로 쓴 러시아 최고 화가로 꼽히는 일리야 레핀(Илья́ Ре́пин,1844~1930) 작품.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카자크'가 작품 제목이다. 오스만 제국 메흐메트 4세가 카자크 족에게 항복 권고 편지를 보내자 이에 대해 어마어마한 쌍욕이 담긴 답장을 보내서 복수했다는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이다. photo by wikipedia

1.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돈 강이 강한 생명력으로 흐르는 듯한 도입부다. 관찰자 시점에서 돈 강가의 주인공 가문의 집과 마을을 매우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풍수지리 설명을 읽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특히 대하소설의 첫 문단 답지 않게 섬세하고 감각적 운문체의 글이 이어져 산문시를 읽는 느낌이다.  돈 강의 격류, 말발굽, 광야가 격정의 소설 전개를 예고하고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읽는이를 사로잡는 소설이다.

2.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Тихий Дон, 1928~1940)’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精髓)로 꼽히는 명작이다. 러시아는 물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러시아 혁명 문학의 최고봉에 오른 걸작이다.
1928~1940년까지 12년에 걸쳐 쓴 대하소설로 작가 숄로호프를 세계적인 작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 시켰다. 총 4부로 1부가 나온 1928년에 작가 나이는 불과 23세에 불과했다. 2부는 1929년, 3부는 1933년, 4부는 1940년에 나왔다.
완성된 4부를 본 막심 고리키는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되는 대작”이라고 격찬했다. 소설은 나오면서부터 인기를 끌어 4부가 완성되기 전에 러시아에서만 수백만부가 팔렸다.
소설의 핵인 돈 강(Дон, Don River)은 중앙러시아 고원 (모스크바 남동쪽 193km)에 자리한 툴라에서 발원(發源),약 1950km(유역 면적 43만㎢)를 흘러 아조프해로 흘러든다.

1828년 12월 나온 '고요한 돈강' 초판본 표지.photo by wikipedia

3.고요한 돈강은 영어로 1934년 두권(1,2부)으로 나왔다. 스티븐 게리(Stephen Garry)가 영역한 ‘And Quiet Flows the Don’이다. 나머지 두권은 1941년 ‘The Don Flows Home to the Sea’로 나왔다.
스티븐 게리의 번역본은 1950년 로버트 대글리시(Robert Daglish)에 의해 개정 보강돼 출판됐다. 로버트는 1984년 다시 번역해 ‘Quiet Flows the Don’으로 내놓았다.
영역본은 번역자에 따라서 다양한 제목이 붙는다. ‘And Quiet Flows the Don’, ‘Quiet Flows The Don’, ‘The Quiet Don’ , ‘The Don Flows Home to the Sea’, ‘The Silent Don’ 등이다.
이 소설의 등장 민족인 카자크는 다양하게 발음된다. 우크라이나어는 Козаки(코자키), 러시아어는 Казаки(카자키), 폴란드어는 Kozacy(코자치), 체코와 슬로바키아어는 Kozáci(코자치), 벨라루스어는 Козакі(코자키). 영어로는 Cossack(코삭, 코사크)이라고 한다.

4.고요한 돈강은 제1차 세계대전, 내전, 볼세비키 혁명 등 역사의 폭풍 속에 말려든 한 인간의 운명과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 수작(秀作)이다.
러시아 내전과 혁명의 역사에 카자크(동슬라브계 집단과 그 계층)가 엮인 이야기 구조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제대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돈 카자크(돈강 주변에 사는 카자크 민족)의 혁명과 반혁명, 적군과 백군의 치열한 전쟁이자 동족상잔의 비극을 서사시적 웅대함으로 표현했다.
특히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인 불륜과 욕정, 탐욕, 비애, 어머니의 정과 그리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도 곳곳에 배치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그리고리 판텔레예비치 멜레호프(Grigory Melekhov,그리샤)는 베센스카야 출신 카자크인 파벨 나자로비치 쿠디노프(Pavel Nazarovich Kudinov)와 하를람피 바실리예비치 예르마코프(Kharlampii Vasilyevich Yermakov)의 이야기가 바탕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시리물로 나온 'And Quiet Flows the Don(고요한 돈강)' 스틸 컷.출처=IMDb

5.줄거리는 러시아 내전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다가 파멸하는 성실한 카자크 청년 이야기다. 돈 강에 인접한 마을의 전형적인 카자크 농민의 집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리샤는 열정적일 뿐만아니라 근면 성실하고 거짓이 없는 청년이다. 그는 남편 스테판이 군대에 들어가서 홀로 지내는 아크시냐와 불륜의 사랑을 한다.
두 사람은 마을을 나와 대지주 리스트니츠키 저택에 몸을 의지하다가 내전에 휘말리면서 그리샤가 카자크병으로 입대한다. 그는 군 생활에서 전우들이 저지르는 추악한 윤간을 목격하고, 자기가 죽인 병사의 환영에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군 생활의 시련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을 알게 된다.
그리샤는 싸우고 있는 적군(敵軍)은 진짜 적(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적은 통치자인 황제와 그 주변에 있는 귀족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부상당해 잠시 있는 병원에서 만난 러시아인으로부터 볼셰비키 사상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자신과 사랑했던 아크시냐가 지주의 아들 리스트니츠키 중위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서는 두 사람을 구타한다.
고향마을에도 혁명의 바람이 불어온다. 토지 개혁 등 볼세비키 바람(赤軍)은 거셌다. 그리샤는 고향을 지키기 위해, 카자크 자치국을 위해 반혁명의 진영(白軍)에 가담한다. 그런데 다시 운명의 장남으로 인민 해방군 편에서 서서 지주와 귀족을 상대로 싸운다.
내전에서 동족상잔의 유혈 싸움은 반복되고, 그라샤는 갈등한다. 그러다가 무기를 버리고 고향에 온다. 그런데 그를 맞이해 줄 생활의 터전도 사람도 없다. 그리샤는 하나 남은 아들을 안고 집으로 들어간다.

1957년 소련 세르게이 게라시모프 감독이 만든 '고요한 돈강' 포스터 원본. photo by movie.daum.net

6.고요한 돈강은 작가 생전 표절 의혹에 시달렸다. 러시아 내전 중 죽은 백군 장교의 원고를 수집, 소설화 했다는 것이다. 1928년 책이 나오자마자 제기됐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표절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1960년 들어 후배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18~2008)이 ‘숄로호프와 고요한 돈강의 수수께끼’ 라는 글을 통해 다시 제기했다.
숄로호프가 솔젠니치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비판하자 발끈해 표절 의혹을 다시 제기한 것이다. 솔제니친은 숄로호프가 러시아 내전 때 백군장교로 참전해 사망한 반 볼세비키 표도르 크루코프(Fyodor Kryukov, 187~1920)의 원고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르웨이 슬라브 학자이자 수학자 게이르 키에사(Geir Kjetsaa, 1937~2008)는 1984년 한 논문에서 통계적 분석을 통해 미하일 숄로호프(Mikhail Sholokhov)가 저자라고 밝혔다.
어쨌든 논란이 일었지만 러시아 아카데미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숄로호프가 죽고, 솔제니친은 서방세계로 망명하고,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한 참 후인 1999년 ‘표절이 아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2000년대 드어와서도 러시아-이스라엘 언어학자인 지프 바 셀라(Zeev Bar-Sella)도 “고요한 돈강은 숄로호프가 진정한 저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1950년대 말 독일에서 개봉한 '고요한 돈강' 포스터. photo by movie.daum.net

7.고요한 돈강은 서사적 구조와 흥미로운 내용답게 연극, 영화, 오페라 등 다양한 문학장르로 재탄생했다.
러시아에서 1930년(감독 이반 프라포프, Ivan Pravov,1899~1971)가 영화로 만들었고, 1958년에는 세르게이 제라시모프(Sergei Appolinarievich Gerasimov,1906~1985)에 의해 다시 영화화 됐다.
1991~1992년에도 영화로 만들어졌고, 2015년에는 세르게이 블라디미로비치 우르술랴크(SergeyUrsulyak,1958~현재) 감독의 14부작 TV 시리즈로 제작, 방영됐다.
1930년대에 오페라가 만들어졌다. 이반 제르진스키(Ivan Dzerzhinsky)가 만든 오페라는 1935년 10월 초연을 한 이후 스탈린도 관람해 호평을 하면서 인기리에 공연됐다.

8.한국에서는 시인 백석(1912~1996)이 1949년 번역한 ‘고요한 돈강’이 유명했다. 전체중 3분의 2 정도까지만 번역한 미완성이다. 백석의 번역본은 1992년 중국 베이징도서관에서 발견돼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백석은 해방이후 북한에서 고당 조만식 선생 러시아어 통역비서를 하다가 김일성정권이 수립되자 러시아 소설 번역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1985년 장문평 외 3인 번역 본(일월서각)이 있고, 정성화 번역의 빛샘 본(전 8권)도 있다. 이 번역본은 문학예술사에서 7권으로 나오기도 했다.
러시아 소설은 1980년대 와서야 대거 유통됐다. 고요한 돈강은 1980년대 한국 대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소설 중의 하나였다.

말년의 숄로호프 모습.photo by wikipedia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숄로호프(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Шолохов, 1905~1984)=러시아 문호. 러시아 국적 노벨 문학상(1965) 수상자. 소련 최고회의 의원(1937).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1961). 영어로는 Mikhail Aleksandrovich Sholokhov로 쓴다.

1.러시아 제국 돈 카자크 지역 뵤셴스카야(stanitsa Vyoshenskaya, 돈 강 중류)의 작은 마을 쿠루치린(Kruzhilin)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알렉산드르 숄로호프(Aleksander Mikhailovich Sholokhov, 1865-1925),어머니는 아나스타샤 체르니코바(Anastasia Danilovna Chernikova ,1871~1942)다. 어머니는 러시안 슬라브계의 카자크 혼혈인이다.
전형적인 농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중등학교 4학년까지 정규 교육을 받았다. 러시아 적백(赤白) 내전(옛 러시아 제국에서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벌어진 직후 발생한 여러 당파 간의 전쟁, 레닌의 볼세비키 승)이 발발하자 숄로호프는 15세에 적군 파르티잔(게릴라 부대)에 입대했다.

2.숄로호프는 1922년12월30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USSR)이 건립되자 모스크바에서 1924년까지 하역인(荷役人), 석공(石工),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1924년 단편 ‘검은 사마귀점(Rodinka, The mole)’으로 등단했다. 이후 1925년 고향 마을에 정착해 소설쓰기를 한다.

3.1926년 ‘돈 강 이야기(Donskie rasskazy)’ 출판을 기점으로 ‘고요한 돈 강’을 집필했다. 1928년 제1부가 발표되자 주인공이 백군인 것을 두고 논란이 빚어졌다.
이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아버지이자 혁명문학 창시자 막심 고리키(Maxim Gorky, 1868~1936)가 숄로호프의 소설 작품성을 보증하기도 했다.
1932년에는 고요한 돈강 2부 외에 장편소설 ‘열려진 처녀지, Podnyataya tselina(Virgin Soil Upturned)를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2부는 뒤늦게 1959년에 완결했다. 1937년 소련 최고회의 대의원, 1939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보도원으로 참전했다.

숄로호프와 카자크 계 아내 페트로브나 그로모슬라브스카야.1924년 결혼 즈음 모습.photo by wikipedia

4.1924년 카자크 지도자(ataman)의 딸인 페트로브나 그로모슬라브스카야( Maria Petrovna Gromoslavskaia, 1901~1992)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는 딸 2명과 아들 2명이 있다.
숄로호프에게는 흑역사도 전한다. 1938년 모스크바를 방문할 당시 내무부 인민위원회(NKVD)수장인 니콜라이 예조프(Nikolai Yezhov, 1895~1940)의 젊은 아내(예조프 재혼녀)이자 잡지 편집장 예브게니아 페이겐부르크(Yevgenia Yezhova)를 만나 호텔에 들어갔다가 예조프의 습격을 받았다. NKVD가 도청한 줄도 모르고 그녀와 함께 호텔 방에 체크인했던 것이다.

5.숄로호프는 1939년 레닌상(Lenin Prize)과 1941년 스탈린상(State Stalin Prize)을 받았다. 특히 레닌상 6회(1939, 1955, 1965, 1967, 1975, 1980)나 받았다.
또 소련 ‘사회주의 노동의 영웅(Hero of Socialist Labor)’이라는 칭호도 두 번(1967,1980) 이나 받았다. 나중에 소비에트 작가 연합 부회장도 맡았다.1961년 제22회 소련공산당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됐다.

6.1965년 생에 최고의 상인 노벨문학상(Nobel Prize)을 받았다. 하지만 숄로호프는 1969년 이후 글쓰기를 사실상 중단했다. 그리고 레닌상 상금과 노벨상 상금 등을 바탕으로 고향지역 학교 교육에 나서는 가 하면 유럽과 일본 등을 여행했다.
1985년 고향인 로스토프 주 뵤셴스카야( Vyoshenskaya stanitsa)에서 후두암으로 영면했다. 1992년 사망한 아내와 집 옆 묘지에 묻혔다.

숄로호프가 1925년부터 살았던 돈강 유역의 집. 나중에 국립숄로호프 박물관으로 개관했다.photo by wikipedia

7.숄로호프의 집은 나중에 ‘National Sholokhov Museum-Reserve’로 개관했다. 국제 천문 연맹에 의해 우주 주 소행성 벨트인 메인 벨트(main-belt,)에 있는 소행성은 ‘2448 Sholokhov’로 이름 지어졌다.
모스크바의‘ Sholokhov Moscow State University for Humanities’는 숄로호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모스크바 방위군(The Moscow National Guard) 대통령 생도 학교는 나중에 숄로호프의 이름을 따서 ‘ Moscow National Guard Presidential Cadets School’로 명명됐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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