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나사의 회전-치명적 복선과 충격적 反轉의 소설은 숨 막히는 모호함으로 시작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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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치명적 복선과 충격적 反轉의 소설은 숨 막히는 모호함으로 시작된다.

지성인간 2023. 6. 26.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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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는 난롯가에 앉아 있는 우리를 숨도 쉴 수 없으리 만치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고색창연한 집에서 오가는 괴이한 이야기가 으레 그렇듯이, 그것이 소름끼치는 이야기였다고 누군가 분명히 언급한 것 외에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이윽고 누군가 어린아이에게 그런 재앙이 일어난 경우는 처음 들어본다고 지나가듯이 말했다. 그 경우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우리가 지금 모여있는 집처럼 낡은 집에 유령이 나타난 사건이었다. 어머니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소년에게….”(정상준 역, 시공사, 2010)

시공사 판 '나사의 회전' 표지 그림(2010).

1.오싹한 도입부로 독자들의 주목을 끄는 서술 기법이다.  전체를 아우르는 작가 시점에서 독자들을 모호하게 하는 화자(話者)를 활용하겠다는 암시가 깔려 있다. 나사 돌리기 처럼 읽는 이에게 서서히 조여드는 긴장과 호기심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첫 문단만 보면  중세  르네상스를 연 작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틀속의 틀 형식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한다.

2.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The Turn of the Screw)’은 현대 소설의 원조다. 독자의 생각을 조정하는 서술 기법의 시작을 알리는 걸작 소설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공포를 즐기는 ‘낭만적 쾌감 공포소설(고딕 호러)’의 원형으로 꼽히기도 한다. 고딕 호러(Gothic horror)는 오래된 고딕 건축 양식(Gothic architecture)의 저택, 고성을 소재로  한 공포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폐가,귀신 나오는 집 이야기다.
이 소설은 수많은 복선(伏線), '의식의 흐름' 등이 모호(模糊)하게 얽혀 독자들은 농락한다. 독자는 화자에게 끌려다니다가 소설의 끝을 보게 된다. 전체 화자가 있고, 다시 1인칭 화자가 전개하는 액자 속의 액자이야기 형식이다. 한마디로 여러 겹의 이야기 틀로 전개된다.
번역 제목은 어렵다는 느낌이다. 단순하게 보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차라리 ‘나사 조이기’ 혹은 ‘나사 돌리기’ 등이 나을 듯하다.

3.이성을 가진 독자의 가치를 허무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겹겹의 화자(話者)를 활용해 모호한 사건을 모호하게 전개하기 때문이다. 여러 시점과 환경이 겹치면서 전개되지만 갑자기 의혹만 증폭한 채 소설은 끝난다. 결말에 대한 해석은 읽는 이들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이런 소설은 독창적인 플롯 구성과 등장 인물의 치밀한 관계 설정, 이를 끌고 나갈수 있는 문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독자를 정말 모호하게 하는 소설의 수작(秀作)인 셈이다.

민음사가 낸 '나사의 회전(2005)'1판1쇄 표지 그림.

4.개인적 생각으로 이 소설은 ‘과잉보호’의 문제점과 실재하지 않은 귀신에 빠지면 비극적 종말을 가져온다는 교훈을 강하게 주는 느낌이다.
등장 인물은 많지 않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1인칭 화자인 가정교사(the governess), 두 남매 마일즈(Miles, 10살 소년)와 플로라(Flora, 8살 소녀),  저택에 고용되었던 하인 피터 퀸트(Peter Quint), 죽은 전임 가정교사 제셀 양(Miss Jessel) 등이다.
이밖에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작가가 설정한 인물인 전체 화자이자 가정교사의 기록을 읽어주는 더글러스(Douglass)가 있다.

5.줄거리는 영국의 한 저택에서 가정교사가 유령(Ghost)에게서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내용이지만 충격적  반전(反轉)이 있다.
성탄절 전야 남녀 여러 명은 겨울밤에 어울리는 유령 이야기를 돌아가며 한다. 남자 더글러스는 영국 시골 저택에서 남매의 가정교사를 하는 어느 여인의 기록을 읽어 준다.
어린 남매는 양친이 없는데도 너무 착해 가정교사는 애틋하게 여겨 잘 보살피겠다는 책임감을 갖는다. 그런데 저택 주변이나 근처 호수, 오래된 탑 주위에서 외부인의 기척이 여러 번 목격된다. 산책길에, 집의 계단에, 주방의 창밖에, 호수 건너편에 누군가가 어른거린다. 이런 낯선 외부인을 목격하는  것은 가정교사뿐이다.
이에 가정교사는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저택에 유령이 나온다고 확신한다. 당연히 유령으로부터 남매 보호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여러 의문은 있으나 끝내 유령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가정교사 품에서 마일즈가 돌연 죽는다.

미국에서 많이 팔린 잡지 콜리어스 위클리(Collier's Weekly) 1898년1월27일에 연재한 나사의 회전(12부작) 첫 페이지. 미국 화가 존 러 파지(John La Farge,1835~1910)의 삽화.photo by wikipedia

6.소설 ‘나사의 회전’에 대해 동료 후대 작가들은 격찬했다.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는 “가장 놀랍고, 소름끼치는 작은 이야기”, 미국 소설가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1862~1937)은 “공포의 효율적 사용이 극도로 실현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1882~1941)는 “이 이야기의 공포는 우리가 그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지배력으로부터 온다”고 말했다.

7.미국 브로드웨이에서 1950년 초연된 윌리엄 아치볼드(William Archibald,1917~1970)의 연극 ‘디 이노센츠’의 원작이다.
영국 영화감독 겸 제작자 잭 클레이튼(Jack Clayton, 1921~1995)이 1961년 동명으로 영화화했다. 국내 개봉 제목은 다소 황당할 정도인 ‘공포의 대저택’이다.
이탈리아 출신 영화감독 겸 사진작가 플로리아 시지스몬디(Floria Sigismondi,1965~현재)가 2020년 ‘더 터닝’으로 연출, 개봉했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 Junior, 1843~1916)=영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구세계 유럽과 신세계 미국을 왕복하며 산 작가(American-British author). 현대 심리 소설의 선구자이자 ‘의식의 흐름’ 기법을 소설에 처음 도입했다.

1.미국 뉴욕 워싱턴플레이스(Washington Place)에서 아일랜드 계 아버지 헨리 제임스 시니어와 스코틀랜드 계 어머니 메리 월시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법률가이자 은행가(투자자)였다.
파리, 제네바, 런던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소년기인 1861년 화재 현장에서 척추 부상을 당했는데 그 직후에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이 발발했다.
당연히 징집은 되지 않았고, 이듬해 하버드 법과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1년 만에 자퇴했다.

포토저널리스트 매튜 브래디(Mathew B. Brady, 1824?~1896)가 1854년 찍은 헨리 제임스와 아버지 헨리 제임스 시니어. photo by wikipedia

2.스물 한 살 때 최초의 단편 ‘실수의 비극(A Tragedy of Error, 1864)’을 발표한 데 이어 1871년 첫 장편소설 ‘파수꾼’을 발표해 문단에서 인정받는다. 1876년에는 영국으로 이주했다.
제임스는 나중에 그의 문학이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와 미국 소설가 나다니얼 호돈(Nathaniel Hawthorne,1804~1864)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했다.
제임스의 수작으로 후대 작가에 많은 영향을 미친 ‘나사의 회전’은 영국 서섹스에 거주(1897~1898)하면서 썼다.

3.모국어보다 프랑스어를 잘한 소설가였다. 제임스는 영어로 얘기할 때는 말더듬이(stutter)였으나 프랑스어는 유창하게 잘했다고 한다.
독신으로 살아서 성 정체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었다. 제임스는 사촌인 메리  템플(Mary(Minnie) Temple)과 사랑에 빠졌지만 성에 대한 신경증적인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포기했다는 설이 있다. 사후 남자들에게 보낸  에로틱한 편지가 있어서 동성애자라는 설도 있다.

4.사망 직전인 1915년 영국으로 귀화했다.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미국은 2년 후 개입)을 촉구했으나 미루고 있자 영국 귀화를 실행했다고 한다.
이듬해 대영제국 국왕 조지 5세(George Ⅴ,1865~1936, 영 연방국의 왕 겸 인도 황제)로부터 명예훈장(Order of Merit)을 받았다.

5.1916년 2월 영국 런던의 첼시에서 영면, 런던 핀칠리 로드(Finchley Road) 인근 골더스 그린 화장장(Golders Green Crematorium)에서 화장됐다. 첼시 교회(Chelsea Old Church)에서 장례식을 하고, 교회 내에 기념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화장한 유골은 미국에 안장됐다. 당시 법상으로 유골  반입이 금지돼 있었으나 형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의 아내가 배로 밀반입,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Cambridge Cemetery) 가족 묘지에 안장했다.이는 나중에 밝혀졌다.

6.주요 작품은 ‘미국인(The American,1877)’, ‘워싱턴 광장(Washington Square,1880)’,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1881)’, ‘메이지가 아는 것(What Maisie Knew,1897)’, ‘비둘기 날개(The Wings of the Dove,1902)’, ‘대사들(The Ambassadors,1896)’ 등이 있다.
제임스가 쓴 작품 해설집 ‘소설의 기교(The Art of the Novel)’는 사후인 1934년에 출판됐는데 소설 이론의 명저(名著)로 꼽히고 있다

'나사의 회전'을 바탕으로 제작해 2020년 개봉한 '더 터닝' 스틸컷. photo by www.naver.com

7.영화로 만든 작품도 많다.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 1949, 미국)’, ‘공포의 대저택((The Innocents, 1961, 영국)’, ‘악몽의 별장(The Nightcomers, 1971, 영국)’, ‘녹색 방( (La Chambre verte, 1978, 프랑스)’,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 1996, 미국)’, ‘도브(The Wings of the Dove, 1997, 미국)’, ‘러브 템테이션(The Golden Bowl, 2000, 미국·영국·프랑스 합작)’ 등이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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