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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눈의 여왕-동화의 황제가 쓴 베스트셀러의 첫 문단은 거울의 오묘함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본문
“첫번째 이야기-거울과 거울조각. 자, 그러면 시작해 봅시다. 이야기가 끝날 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될겁니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옛날 옛적에 사악한 요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요정 중에서 가장 짓궂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거울 속에 비춰지는 착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나쁘고 고약하게 보이게 하는 힘을 가진 마법의 거울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거울은 쓸모없는 것과 흉측한 것을 확대시키고 한층 더 추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마력의 거울 속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경치가 삶아 놓은 시금치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리 멋있고 착한 사람들도 무서운 괴물처럼 보이거나, 몸통 없이 머리를 대고 거꾸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너무나 일그러져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근깨 하나만 있어도 코와 입까지 다 퍼져 결국에는 주근깨투성이로 보였습니다. 악마는 정말로 재미있다며 즐거워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에 착한 생각이 스쳐 가면, 히죽거리는 모습으로 거울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악마는 자기의 똘똘한 발명품을 보며 배꼽 잡고 웃었습니다.”(안데르센 저, 임헌관 옮김, 더클래식, 2013)
1.문자 그대로 들어가는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를 표시하면서 첫 문단을 시작한다. 논문의 서문 같은 소설의 ‘들머리’다. 동화임에도 의외로 강력한 서사(敍事)구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첫 문단에 미추(美醜)와 선악(善惡)을 내세워 강한 이미지로 읽는 이들의 흥미를 유도한다.짓궂은 요정과 마법의 거울, 그 거울에 반사되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특히 요정과 악마, 거울은 앞으로 전개할 이야기를 예비하는 도입부라 할수있다. 거울을 소재로 사용한 것은 복선(伏線)을 깔아놓는 소재로도 제격이라고 할수 있다. 이미지 조작과 ‘쉽게 깨진다는 속성’ 등 두가지를 활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거울은 전체 소설 전개의 모티브로 장대한 서사의 단초이기도 하다. 어린이를 위한 글쓰기 연습과 환타지 소설의 도입부로 적극 활용해 볼만한 문장과 문체다.
2.안데르센의 ‘눈의 여왕(Snedronningen,1844)’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위대한 명작이자 대단한 고전(古典)이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동화(Fairy tale) 중 가장 차갑고 매혹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동화적 구조와 허구의 소설 요소를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1844년 12월에 ‘새로운 동화 (Nye Eventyr)-첫 번째 볼륨( Første Bind)-두 번째 컬렉션(Anden Samling)’에 나오는 두 편의 동화 중 한편으로 나왔다. 새로운 동화. 첫 번째 볼륨은 1843년, 두번째는 1844년,세 번째 볼륨은 1845년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출판사 레이첼(C. A. Reitzel)에서 나왔다.
책은 나오자마자 덴마크 비평가와 대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인기리에 판매됐다. 특히 주제인 '오직 순수한 사랑만이 악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제대로 재현해 기독교계의 호평을 받았다.
책이 인기를 얻자 작가 자신도 무척 고무됐다. 작가는 절친한 친구 헨리에트 불프(Henriette Wulff,1804~1858)에게 "(눈의 여왕)만장일치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내 책들 중 어느 것도 그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모든 신문이 칭찬하고, 수많은 이들이 읽는다. 나는 최고의 동화 이야기꾼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현대에 와서 이 동화는 세계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고, 200여개 국가에서 팔리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덴마크어로는 스니데로닝겐(Sneedronningen)이다.영어로는 ‘The Snow Queen’이다. 일본어는 ‘雪の女王’이다. 한문으로는 ‘白雪女皇(冰雪皇后)’이다.
3.눈의 여왕은 일곱 개의 작은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중편 동화이지만 서사(敍事)는 장편 서사시처럼 장대하게 펼쳐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선과 악의 극명한 대비와 선의 승리를 통해 권선징악(勸善懲惡)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또 고통과 투쟁, 즐거움, 죄와 구원,악에 대한 선의 대항과 투쟁 등을 적나라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이 동화는 작가의 다른 작품 ‘나이팅게일’과 함께 1840년 만난 스웨덴의 오페라 가수인 소프라노 제니 린드(Johanna Maria Lind, 1820~1887)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4.등장인물은 주인공 게르다(Gerda)와 그녀의 친구이자 눈의 여왕에 붙잡힌 카이(Kai), 주인공이자 눈의 지대 지배자인 눈의 여왕(Snedronningen), 사악한 거울을 만드는 트롤(Trolden) 또는 악마(Djævlen), 게르다에게 눈의 여왕에 대한 전설을 들려주는 할머니(Bedstemoderen)가 나온다,
또 마법을 아는 노부인(den gamle Kone der kunne Trolddom), 까마귀(Kragen)와 짝인 길들인 까마귀 (den tamme Krage), 게르다에게 도움을 주는 공주(Prinsessen), 왕자(Prinsen), 게르다를 붙잡는 늙은 강도 여인(den gamle Røverkælling), 강도의 딸 작은 도둑 소녀 (den lille Røverpige), 게르다를 눈의 여왕의 궁전으로 데려가는 순록 배(Bæ) 등이 나온다.
5.줄거리는 사이좋은 친구인 소년 카이(Kai)와 소녀 게르다(Gerda)의 모험 이야기다. 어느 날 사악한 악마 트롤이 거울을 깨트리는 바람에 파편이 카이의 눈과 심장에 박히면서 상냥했던 카이는 못된 아이로 변한다. 카이는 돋보기로 눈송이를 보는 순간에만 기쁨을 느낀다.
어느 날 카이에게 눈의 여왕이 나타나 홀려서 데려간다. 이를 모르는 게르다는 매일 카이를 기다렸으나 계절이 바뀌어도 카이는 오지 않는다.
봄이 되자 게르다는 카이를 찾아 나서지만 온갖 풍파와 간난신고의 시간을 겪으며 겨우 목숨을 건지고, 카이가 북쪽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카이를 찾으러 북쪽으로 가서 얼음 궁전 앞 꽁꽁 언 강에 도착한다.
게르다의 앞을 눈 군단이 가로막지만 방해를 뚫고 카이를 발견한다. 그런데 카이는 눈의 여왕의 명령으로 '영원'이라는 단어를 얼음 조각으로 만들고 있었다. 얼어붙은 강에서 카이를 본 게르다는 카이를 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러자 카이의 심장에 박힌 거울 파편이 녹고, 몸에서 빠져나간다. 카이는 상냥함을 되찾았고, 두 사람은 기쁨의 춤을 추며 얼음 조각을 맞춰낸 뒤 스케이트 한 켤레를 받아 게르다의 여정을 되짚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둘은 돌아오자마자 성년이 된다.
6.후대의 수많은 작가와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구소련 작가 에브게니 슈바츠(Evgeny Shvarts,1896~1958)의 ‘눈의 여왕(1937)’은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희곡이다.
영국 작가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의 소설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1950)’은 하얀 마녀가 나니아를 눈 덮인 땅으로 바꾸는 내용 등이 ‘눈의 여왕’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해석이다.
미국 공상소설 작가 조안 D. 빙게(Joan D. Vinge, 1948~현재)의 ‘눈의 여왕(The Snow Queen, 1980)’은 안데르센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공상과학 소설이다.
미국 평론가 마리린 해커(Marilyn Hacker, 1942~현재)의 시(詩) ‘가정(假定, Assumptions,1985)’은 게르다, 강도 소녀, 핀란드 여성에 대한 여덟 편의 시가 ‘눈의 여왕’ 영향을 받았다. 캐서린 O. 갤브레이스(Kathryn O. Galbraith)의 ‘겨울의 아이들(2009)’는 눈의 여왕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청소년 소설이다. T. 킹피셔(T. Kingfisher, 우르술라 버논(Ursula Vernon)의 필명, 1977~현재)의 ‘레이븐과 순록( The Raven & The Reindeer ,2016)’은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개작한 것이다.
캐나다 작가 로렌 B. 데이비스(Lauren B. Davis, 1955~현재)의 ‘켄싱턴 시장(市場)의 그리모어, The Grimoire of Kensington Market,2018)’는 눈의 여왕(The Snow Queen)에서 영감을 받아 전염병과 중독이 가족과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소설이다.
7.작품에 기독교 가치가 진하게 녹아 있음에도 공산주의 소련과 러시아에서 2편(처음은 1957년, 두 번째는 2012년 첫 3D로 제작)의 애니메이션 영화와 1편의 실사 영화가 나왔다. 평민(프롤레타리아=게르다와 카이)계급이 절대권력(러시아 짜르=눈의 여왕)에 항거해 승리한 러시아 혁명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구소련에서 애니메이션은 1957년 레프 아마타노프(1905~1981)감독이 처음으로 ‘Snezhnaya Koroleva’로 제작했다. ‘눈의 여왕’을 최초로 영상화한 것으로 세계 애니메이션사에 길이 남는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1959년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스(Universal Studios)에서 영어로 더빙해 방영됐고, 1990년대에 한국 SBS에서 더빙 방영했다.
2012년에 동명의 첫 3D 애니메이션도 나왔다. 블라들렌 바르베(Vladlen Barbe,1960~현재), 막심 스베쉬니코브(Maksim Sveshnikov)가 공동 작업했다. 700만 달러를 들여 만들었는데 러시아에서만 1400만 달러, 해외까지 3000만 달러라는 짭짤한 흥행을 기록했다. 러시아 판 눈의 여왕은 5편까지 제작 상영됐다. 한국에서 '눈의 여왕4'가 2019년 성탄절 이브에 개봉했다.
8.영국,일본,미국에서도 나왔다. 영국에서는 애니메이션 감독 마틴 게이츠(Martin Gates, 1950~현재)의 동명 작품이 1995년 나왔고, 이듬해에는 '돌아온 눈의 여왕'도 나왔다.
일본에서도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2005년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TMS 엔터테인먼트에서 작화(作話), 대자키 오사무(出崎統, 1943~2011) 감독을 내세워 NHK에서 제작했다. 미국에서는 2013년 월트 디즈니 픽처스에서 이 동화를 모티브로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으로 제작, 거의 모든 나라에서 개봉, 엄청난 흥행을 했다.
9.영화도 잇따라 많이 나왔다. 가장 최근에는 2021년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한 영화 '블라인드'(감독 타마르 반 덴 도프)가 나왔다.
첫 영화는 1966년 구 소련의 겐나디 카잔스키(Gennadi Kazansky,1910~1983)감독이 ‘Snezhnaya koroleva’로 만들어 내놓았다. 1986년에는 핀란드의 패이비 하르첼(Päivi Hartzell) 감독에 의해 ‘루미쿠닝가타르(Lumikuningatar)’라는 제목의 판타지 영화로 나왔다.
2000년 제이콥 요르겐센(Jacob Jørgensen, 1951~현재)과 크리스토프 쿤체비치(Kristof Kuncewicz)가 덴마크 버전의 영화로 제작, 방영됐다. 한편 발레도 나왔다. 1986년 브럼웰 토비(Bramwell Tovey)의 음악에 데이비드 빈틀리(David Bintley)가 안무를 맡았다.
10.오페라는 지금까지 몇 편 나오지 않았다. 영국의 그레이 카펜터(Gray Carpenter)라는 사람이 작곡한 것이다. 1982년 1월 런던 옥스포드셔 블루베리(Blewbury)의 성 마이클 교회에서 처음 공연됐다. 마을 사람들도 출연한 아마추어 오페라 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도 영국에서 나왔다. 영국의 중견 작곡가인 매튜 킹(Matthew King, 1967~현재)이 작곡, 영국이 낳은 위대한 소프라노 제인 마닝(Jane Manning)이 이끄는 그룹 ‘제인의 민스트렐(Jane's Minstrels)’을 위해 작곡했다. 대본은 앤드류 매키논(Andrew McKinnon) 썼고, 1994년 런던 엘리자베스여왕홀에서 초연됐다.
어린이들이 볼수 있도록 만든 오페라로는 이탈리아 비첸자 출신인 피에란젤로 발티노니(PierangeloValtinoni,1959~현재)가 작곡, 2010년 독일 베를린의 코미세 오퍼에서 처음 공연했다.
10.한국에서는 KBS에서 2006년 ‘눈의 여왕(현빈 성유리 주연)’으로 제작, KBS 2TV에서 월화 미니시리즈로 방영했다. 판타지 멜로 드라마로 16부작이다.
1990년대 순정만화가로 유명했던 이미라(李美娜)가 이 동화를 소재로 삼아 단편집 ‘겔다(게르다)를 찾아서’를 냈다. 김순정발레단(예술감독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은 2018년 8월24일 서울 서초문화예술회관 아트홀에서 ‘아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발레-안데르센 ‘눈의 여왕’을 공연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1805~1875)=세계 어린이 문학의 아버지. 창작 동화의 개척자. 19세기 덴마크의 동화 작가.
창작 동화의 규격과 틀, 이야기 구조, 문체 등과 같은 기본적 요소들은 전부 안데르센의 창작 동화에서 시작됐다.덴마크 작가 중 최고의 흙수저 출신 셀럽작가.덴마크어 발음은 핸스 크라이스티안 아너슨
이름 안데르센이다.
1.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오덴세(Odense, 현 덴마크 퓐 섬 오덴세)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오덴세는 코펜하겐에서 서쪽으로 164km 떨어진 곳이다.
아버지 한스는 나폴레옹 군에 복무했던 구두 수선공이었고, 아버지보다 열 살이 많은 어머니 안네 마리 안데르스다터는 딸이 하나 있는 과부로 빨래나 허드렛일을 하는 세탁부였다. 이부(異父) 누나는 카렌 마리 다니엘스다테르 로센빈(Karen Marie Danielsdatter Rosenvinge)이었다. 안데르센 이라는 이름은 어릴 때 루터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 대부모가 지어준 이름이다.
문학과 연극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아라비안 나이트’나 덴마크 극작가 루드비그 홀베르그(Ludvig Holberg,1684~1754)의 희곡 등을 읽어 줬다고 한다.
2.가난한 집안 형편이어서 빈민층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 다녔으나, 11세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13년 연하의 구두 수선공과 1818년 재혼,안데르센은 단칸 방에서 젊은 남자와 함께 살아야 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공장에 들어갔고, 여성에 대한 편견이 생겨서 평생 홀로 지냈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아버지 한스는 아들과 아내를 두고 나폴레옹 전쟁(당시 덴마크는 프랑스 동맹국)에 참전했다가 1816년 쯤에 사망했는데 문맹(文盲, 글을 모르는 것)인 엄마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설명하기 어렵자 ‘눈의 요정이 데려갔다’고 했다고 한다. 어린 안데르센의 마음에 이 말이 머릿속에 남아 나중에 ‘눈의 여왕’ 창작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3.초등교육도 제대로 못받았던 안데르센은 14세 때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갔고, 각고의 노력 끝에 덴마크 왕립극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변성기로 제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연극 대본 쓰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맞춤법, 철자법이 엉망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에 극장 감독이던 요나스 콜린이 문법학교에 보내 주었고, 안데르센은 이후 헬싱괴르 문법학교를 거쳐 코펜하겐 대학까지 진학했다.
안데르센은 스무살 무렵부터 시를 쓰다가 비평가들의 혹평을 들은 뒤 1829년 ‘홀름 운하에서 아마크 동쪽 끝까지 도보 여행기’라는 글을 써서 좋은 평을 들었다.이 때부터 작가로 이름을 알린 뒤 서른살인 1835년 무렵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안데르센이 문단에서 도약한 것은 1833년 국왕 후원금으로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를 여행한 후 첫 소설 ‘즉흥시인’을 내놓은 뒤다. 이 소설이 나오자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즉흥시인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과 서민 일상, 젊은 시인의 사랑과 모험을 묘사한 작품이다.
4.즉흥시인으로 인기 작가로 올라 선 안데르센은 첫 번째 동화집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냈지만 지식인들과 평론가의 혹평을 들었다. 그럼에도 글을 아는 서민들을 생각, 해마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동화집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 당시는 동화가 민담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교훈을 전달하는 이야기였는데 안데르센은 기존 이야기를 희석해 쓴 ‘교훈적 동화’보다는 새롭게 창작한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다. 평단에서 안데르센 동화집을 ‘허황된 이야기’라고 혹평한 이유다.
5.그런데 1839년에 안데르센의 동화가 독일어 번역본으로 출간되기 시작했고, 1840년 발표한 ‘그림 없는 그림책’과 1843년 낸 ‘미운 오리 새끼’가 수록된 동화집이 독일과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유럽의 문학 스타’로 떠올랐다.
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덴마크 국내에서도 드디어 비평가들의 호평이 이어졌고, 국민 작가로 발돋움했다. 1846년에는 덴마크 국왕이 선사하는 ‘단네브로 훈장’까지 받았다.
독일어, 프랑스어로 출간되던 동화는 1846년부터 네덜란드어와 영어로 출간됐고, 다른 영어 번역본이 잇달아 나왔다.
안데르센 동화가 영국에서 잘 팔리자 당대 최고의 인기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1812~1870)가 그의 작품을 좋아해 영국으로 초청했다. 이에 안데르센은 영국을 방문, 디킨스 집에 일주일 이상 머물기도 했다.
6.여러 번 사랑에 빠졌지만 짝을 찾지 못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다. 청춘기에 짝사랑했던 리보르그 보이트(Riborg Voigt)라는 여인이 너무 큰 키(키 185cm로 당대 엄청난 장신)에 못생긴 외모의 안데르센의 사랑을 거절한 것이 충격을 줬다는 설이 있다.
이후 소피 외르스테드(Sophie Ørsted), 후원자인 요나스 콜린의 딸인 루이스 콜린(Louise Collin), 스페인 유명 소프라노 제니 린드(Jenny Lind), 덴마크 무용수 하랄트 샤프(Harald Scharff) 등을 사랑했으나 거절당했다. 역시 짝사랑에 실패한 것이다.
한편 유명한 동화 인어공주는 후원자 요나스 콜린의 아들 에드워드 콜린(Edvard collin)과 관계가 반영됐다는 설이 있다. 왕자는 콜린,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이라는 것이다. 친구이지만 연정을 품은 안데르센은 콜린에게 절절한 편지를 보냈지만 이성애자 콜린은 거절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나중에 콜린은 회고록에서 “안데르센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잘 몰랐다”며 “안데르센이 큰 상처를 입었던 것 같다”고 썼다. 이밖에 덴마크의 남자 댄서 해럴드 샤르프(Harald Scharff), 작센 바이마르 아이제나흐 대공 카를 알렉산더 등에게 보낸 짝사랑 편지들이 남아 있다.
7.안데르센은 흙수저로 태어나 청년기까지 고생했지만 서른 이후로는 작가로서 위치를 굳혀 당대의 지식인, 작가, 예술가, 귀족들과 어울리며 풍족하게 살았다.
특히 동화작가로 위치를 확고히 굳힌 이후에는 돈과 명성을 동시에 얻었고, 왕실과 귀족들에게서도 우대를 받은 삶을 살았다.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로 아동 문학의 최고로 꼽히는 수많은 동화
어린이문학의 꽃을 피우게 한 ‘동화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진다. 안데르센은 1835년부터 본격적인 동화 창작에 들어가 1872년까지 총 160여 편의 동화를 썼다.
그럼에도 안데르센은 동화 작가 명성보다는 일반 문학 작가로서 이름을 얻기 위해 시와 소설, 기행문, 희곡 등을 쓰는데도 몰두했다.
8.살아 생전에 기념 우표가 발행되고, 정부가 특별 연금을 주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유명 인사로 다른 나라를 여러차례 초청, 방문하기도 했다. 1866~1868년 안데르센은 마지막 여행기 ‘포르투갈의 노래(Et Besøg i Portugal, 1868, 영어; 번역본 A Visit to Portugal 1866, 1972)를 냈다.
안데르센은 돈과 명성을 다 얻었지만 말년은 가족이 없어서 쓸쓸했다. 1870년 경부터는 건강도 나빠져서 코펜하겐 외스테르브로 자택이나 친구인 멜히오르가(家)의 별장 등에서 지냈다. 그런데 1872년에는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다리를 다친 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누워지냈다. 이때부터 여러 가지 합병증에 시달렸다.
9.1875년 8월4일 코펜하겐 자택 인근 외스테르브로에 있는 유대인 상인 모리츠 멜리오르가(Moritz G. Melchior,1816~1884)와 아내 도로테아 멜키오르(Dorothea Melchior)의 별장 롤리헤드(Rolighed)에서 죽음을 맞았다. 향년 70세.
안데르센은 죽기 직전 곁에 있던 작곡가에게 "내 뒤를 이어 걸을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들일 테니 작은 발걸음에 맞는 박자로 맞추라"고 했다고 한다.
8월11일 코펜하겐의 성모 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은 덴마크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국장에는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9세(Christian IX, 1818~1906, 글뤽스부르크 왕조 첫 왕)와 헤센카셀의 루이제(Louise von Hessen-Kassel, 1817~1898) 왕비까지 참석했다.
시신은 코펜하겐 노르레브로(Nørrebro) 어시스트 묘원(Assistens Cemetery)에 있는 요나스 콜린 가족묘의 에드바르 콜린과 아내 앙리에트 콜린 곁에 안장됐다. 안데르센 사후 콜린 가족이 안데르센을 대했던 방식에 대해 공개 토론이 벌어졌고, 콜린스 가문 후손은 가문 묘원을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다고 한다.
10.후대의 평가는 후했고, 많은 작가들이 영향을 받았다. 영국 출신 전기 작가이자 안데르센 연구가 재키 울슐라거(Jackie Wullschlager, 파이낸셜 타임즈의 수석 평론가)의 평가가 많은 평가를 합쳐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데르센은 성공한 ‘미운 오리새끼’이며, 고결한 ‘인어공주’이다. ‘꿋꿋한 양철 병정’이자, 왕의 사랑을 받는 ‘나이팅게일’이며, 악마 같은 ‘그림자’이다. 우울한 ‘전나무'이기도 하고,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이기도 하다.”
영국 동화작가 케네스 그레이엄(Kenneth Grahame, 1859~1932)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The Wind in the Willows)’과 영국 소설가 A.A. 밀른(A.A. Milne,1882~1956)의 ‘곰돌이 푸(Winnie the Pooh)’와 같은 다른 어린이 고전 작품의 토대가 됐다
11.4월2일 세계 아동 도서의 날은 안데르센의 생일을 기념했다. 코펜하겐의 주요 도로인 안데르센 대로(HC Andersens Boulevard)는 1955년 작가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명명됐다. 이 도로에 있는 코펜하겐 시청사 광장에는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를 기리기 위한 동상이 있다. 덴마크 조각가 헨리 룩코브 닐센(Henry Luckow-Nielsen, 1902~1992)의 작품으로 1961년에 세워졌다.
1956년에 제정된 안데르센 상((Hans Christian Andersen Awards))은 아동 문학의 뛰어난 작가와 삽화가에게 격년으로 주어지는 권위 있는 국제 문학상이다. 아동 문학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며, 국제청소년도서위원회(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에서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시상한다.
12.안데르센의 고향인 덴마크 오덴세(Odense)에 기념관이 있다. 오덴세 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오덴세의 공항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공항(Hans Christian Andersen Airport)으로 불린다.
미국 캘리포니아 솔뱅에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공원이 있다. 일본 혼슈 지바 현 서부 후나바시(船橋, 오덴세 자매도시)에는 안데르센의 이름을 딴 어린이 테마파크가 있다. 호주 시드니 하버브릿지 인근에는 안데르센 공원과 흉상이 있다.
부산 기장군에서 덴마크 오덴세의 안데르센 박물관과 MOU 체결, 안데르센 테마파크를 조성 중이다.현재는 안데르센 극장과 테마 숲 등이 만들어져 있다.
13.안데르센은 찰스 디킨스와 일화로도 유명하다. 원래부터 디킨스의 팬이었는데 안데르센 동화를 읽은 디킨스가 ’혹시 잉글랜드에 오게 되면 방문하라‘는 답장을 보내왔다고 한다.
이에 용기를 얻은 안데르센은 영국의 디킨스를 방문, 2주일이나 머물렀다고 한다. 그런데 디킨스 집에 있는 많은 기행(奇行)을 저지르고 갔다고 한다.한편 1952년에는 안데르센의 삶을 다룬 뮤지컬 전기 영화가 나왔다. 대니 케이(Danny Kaye)가 안데르센 역을 맡았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