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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눈 먼 암살자-21세기 첫 위대한 소설의 첫 문단은 복잡한 전개를 예고한다 본문
“전쟁이 끝난 지 열흘째 되던 날, 내 동생 로라는 차를 몰던 중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 그 다리는 수리공사 중이었다. 로라는 위험 표지판을 그대로 지나쳐 간 것이다. 차는 새로 난 잎사귀가 깃털같이 덮여있는 나무 꼭대기를 강타하며 30미터 아래 협곡으로 추락했고, 이내 화염에 휩싸여서 골짜기 바닥의 얕은 샛강으로 곤두박질쳤다. 부서진 다리 한 부분이 차위로 떨어졌다. 불탄 파편 외에는 그녀의 자취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경찰관으로부터 사건에 대해 통보받았다-그차는 내 명의로 되어 있었고, 그들은 차 번호판을 조회했던 것이다. 경찰관의 목소리는 정중했다. 분명 그는 리처드의 이름을 알아보았을 것이다.”(눈먼 암살자 전 2권, 차은정 역, 민음사, 2017)
1.추락 사고를 쓴 도입부가 충격적인 뉴스를 전하듯이 서술됐다. 단어 하나하나가 실감나게 문장을 구성,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르는 느낌이다. 독자들의 시선을 추락 장소로 안내하다가 갑자스런 경찰의 통보를 활용해 화자인 ‘나’를 사건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읽기 쉬운 어휘와 평이한 문체를 쓰면서도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인 것(내 명의, 차 번호판 조회)은 복잡한 소설구조가 전개될 것으로 암시하는 장치다.현장 보고서 쓸때 활용해볼만 문장 구성이다.
2.마거릿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The Blind Assassin, 2000)’는 삼중 액자소설로 1930~40년대의 캐나다 역사는 물론 주변부 역사를 관통한다.
화자(話者)의 회고록 형식의 글과 그의 여동생이 쓴 소설, 그 소설 속 소설이라는 삼겹의 층위로 구성됐다. 소설 속 소설이자 ‘그 소설 속 소설’이라는 겹 액자구조 형식이다. 캐나다에서 2000년 출간 당시 영미권의 미디어와 평론가들은 ‘새로운 세기에 나온 첫 번째 위대한 소설’로 평가했다.
3.눈 먼 암살자는 출판된 해에 세계 3대 문학상 중의 하나로 영국에서 시상하는 부커 상(The Booker Prize for Fiction)을 받았다. 또 다음해에는 국제범죄작가협회 북미 지부(IACW/NA)에서 시상하는 해멧 상(Hammett Prize)을 받았다.해멧 상은 미국 작가 대시엘 해멧(Dashiell Hammett, 1894~1961)을 기리기 위해 1991년 제정됐다.
특히 새로 나온 소설임에도 유명 잡지 타임(1923년에서 2005년 발행 소설 중 선정)의 100대 소설(Time's List of the 100 Best Novels )에서 50위에 올랐다. 2019년 기준으로 영미권에서 50만 부 이상 팔렸다.
4.소설 속 소설 등 세 개의 이야기가 겹쳐 나온다. 첫번째는 1930~1940년대 세계사의 흐름을 거친 여성 아이리스의 삶이다. 두번째는 아이리스의 여동생 로라의 이름으로 사후 출간된 소설(이 소설 제목 역시 눈 먼 암살자). 세번째는 두번째 소설 속 남자가 여자에게 들려주는 공상 과학 소설 이다.
이 작품은 이런 세 이야기를 통해 페미니즘, 계급, 빈부 격차, 자본주의의 타락, 전쟁의 잔혹성 등을 다룬다. 제목만 보면 삼류 추리소설 같지만 묵직한 주제를 다룬 신역사주의 소설이라고 할수 있다.
5.눈 먼 암살자의 위대함은 회고록 형식을 빌린 소설을 통해 전쟁과 빈부격차 등을 공적 역사의 대안으로 끌어 올리는 듯한 교묘한 서술이다. 독자의 상상을 초월하는 탁월한 플롯 전개와 뛰어난 문장력이 소설 속에 나오는 내용을 실제처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를 헷갈리게 할 정도다.
소설이 나왔을 때 일부 평론가들이 “어두운 유머와 솜씨있는 손으로 스케치한 교활한 이야기”라고 평했을 정도로 작가 애트우드의 이야기 전개 솜씨를 높게 평가했다.
6.등장인물은 화자(話者)이자 주인공(The narrator and protagonist)인 아이리스 체이스 그리펜(Iris Chase Griffen), 여동생 로라(Laura) 체이스, 아이리스의 늙은 남편 리처드 E. 그리펜(Richard E. Griffen) 등이다.
또 교활한 시누이 위니프레드 그리펜 프라이어(Winifred Griffen Prior), 젊은 작가 알렉스 토마스(Alex Thomas), 아이리스와 로라의 아버지 노발 체이스(Norval Chase), 체이스의 가정부 리니(Reenie), 리니의 딸 마이라 스터지스(Myra Sturgess), 아이리스의 딸 에이미 아델리아 그리펜(Aimee Adelia Griffen), 아이리스의 손녀 사브리나 그리펜(Sabrina Griffen) 등이다.
7.소설은 격동의 20세기를 지나온 여인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담긴 회고록 형식을 취했다. 화려하고 잔혹한 역사에 가려진 자매의 비극적인 삶를 리얼하게 묘사했다.
주인공 아이리스 체이스는 불행한 결혼 생활과 유년과 청소년 시절, 중년기 등에 있었던 사건을 회상한다.
아이리스와 여동생 로라는 캐나다 온타리오의 명망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 없이 자란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업 위기로 아이리스는 18살에 토론토의 늙은 사업가 리처드 그리펜과 결혼한다.
여동생 로라는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언니 집에 들어가 살게 된다. 그러나 자매는 언니의 늙은 남편 리처드 집안의 지저분한 욕망과 권위 의식으로 멀어진다. 아이리스도 다른 모습으로 희생의 삶을 산다.
소설 속의 소설로 ‘눈먼 암살자’가 나오고, 공상과학 소설을 쓰는 급진주의 작가 알렉스 토마스에 관한 이야기도 겹쳐진다.
소설은 아이리스가 죽으면서 끝나는 것 같지만 이어진다. 그녀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손녀에게 남긴 ‘미공개 자서전(Unpublished Autobiography)’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Eleanor Atwood, 1939~현재)=캐나다를 대표하는 시인, 소설가, 문학 평론가. 환경 운동가이며, 발명가이기도 하다. 특히 캐나다 문학을 변방에서 영미 문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1.1939년 11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산림 곤충학자인 칼 에드먼드 애트우드(Carl Edmund Atwood)와 영양사인 마가렛 도로시(Margaret Dorothy(결혼 전 Killam)사이에서 태어났다,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매년 온타리오와 퀘벡의 황야에서 봄~가을 동안 살면서 12살까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울릴 친구가 없었고, 독서가 유일한 놀이였다고 한다.
10살 전후에 캐나다 소녀 가이드(Girl Guides)의 브라우니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토론토 리사이드에 있는 리사이드 고교(1957), 토론토 대학의 빅토리아 칼리지를 거쳐 토론토 대학교(영문학 학사, 프랑스어 부전공)를 졸업했다.
1961년 하버드 대학교 래드클리프 칼리지에서 ‘우드로 윌슨 펠로우십’ 대학원 과정을 시작해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다녔다.
2.대학원에 입학하던 스물 두살 때 첫 시집 ‘더블 페르세포네(Double Persephone)’를 자비(自費) 발행 형태로 출판했다. 이어 1966년 ‘서클 게임(The Circle Game )’을 출간,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캐나다 총리상을 받았다.
1969년 첫 장편 소설 ‘먹이로서의 여자(The Edible Woman)’을 출간했다. 이 책의 국내 번역 본 제목은 ‘먹을 수 있는 여자(이은선 역, 은행나무, 2020)’이다. '식용 여자'로 번역하는 이들도 있다.
첫 단편 소설집인 ‘댄싱 걸스(Dancing Girls,1977)’는 세인트 로렌스 소설상과 단편 소설 부문 캐나다 정기 간행물 배급사 상을 받았다.
3.미국 작가 짐 포크(Jim Polk)와 1968년 결혼했다가 1973년 이혼했다. 이후 동료 소설가 그레엄 깁슨(Graeme Gibson, 1934~2019)과 동거 생활을 한다.
두 사람은 온타리오주 앨리스턴 근처의 농장으로 이사해 살았는데 1976년 딸 엘리너 제스 앳우드 깁슨(Eleanor Jess Atwood Gibson)이 태어났다. 이들은 다시 1980년 토론토로 돌아왔다. 파트너 깁슨은 2019년 치매(dementia)를 앓다가 사망했다.
4.애트우드는 1980년대 들어 문학적 명성이 높아졌다. 바딜리 함(Bodily Harm, 1981)의 출판으로 작가로서 위치와 명성을 배가한 것이다. 이후 ‘강도의 신부(1993)’, ‘앨리어스 그레이스(1996)’ 등을 내놓았다. 2005년 내놓은 소설 ‘The Penelopiad’는 연극으로 공연됐다.
애트우드는 2001년 캐나다 명예의 거리(Walk of Fame)에 헌액됐다. 2000년대 들어 프랑스 소르본 대학, 영국 옥스퍼드, 캠브리지 등의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5.애트우드는 민족성, 성(젠더), 정치와 같은 주제와 사회적 관계 등을 탐구했다. 또 환경, 인권, 과학 등도 많이 다뤘다.
특히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그녀를 뛰어난 페미니즘 작가로 평가받게 했다. 다만 애트우드는 자신을 페미니즘 작가로 평가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고 한다.
6.애트우드는 캐나다 문학에 큰 공헌을 한 작가다. 캐나다의 글쓰기 공동체를 장려하려는 비영리 문학 단체인 ‘Writers 'Trust of Canada’의 창립자다. 캐나다 사업가 스콧 그리핀(Scott Griffin, 1938~현재)이 만든 ‘그리핀 시(詩) 상(Griffin Poetry Prize)’의 창립 수탁자이다.
7.2000년 부커 상을 비롯, 토론토 예술상, 아서 클라크 상, 미국 PEN협회 평생공로상, 독일도서전 평화상, 프란츠 카프카 상(2017) 등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시녀 이야기(1985)’, ‘고양이 눈, 1988)’, ‘도둑 신부(1993)’, ‘그레이스(1996)’,‘인간 종말 리포트(2003)’, ‘홍수(2009)’, ‘미친 아담(2013)’ 등이 있다.
8.애트우드의 많은 작품은 영화와 연극 등으로 만들어졌다. 소설 ‘Surfacing(1972)’은 캐나다 영화감독 클로드 유트라(Claude Jutra, 1930~1986)에 의해 1981년 영화화됐다.
소설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 1985)’는 독일 영화감독 폴커 슐뢴도르프(Volker Schlöndorff, 1939~현재)가 1990년 영화로 만들었다. 이 소설은 2000년 오페라로 탄생했다. 2000년 덴마크 왕립 오페라 하우스(The Royal Danish Opera)에서 초연됐고, 2003년 런던과 미국 미네소타 등에서 공연됐다.
‘시녀 이야기’는 미국 훌루(Hulu, OTT 서비스 제공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만든 작품이 2019년 에미상 작품상을 받았다.
9.애트우드는 발명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04년 초 나중에 ‘롱펜(LongPen)’으로 알려지는 원격 로봇 글쓰기 기술의 개념을 고안, 태블릿 PC와 인터넷을 통해 세계 어느 곳에서나 원격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