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대통령 각하-노벨문학상 작가가 비열하고 잔인한 권력의 속성을 파헤친 소설은 운문체로 시작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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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각하-노벨문학상 작가가 비열하고 잔인한 권력의 속성을 파헤친 소설은 운문체로 시작한다

지성인간 2024. 6. 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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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통령 각하' 시대 배경의 과테말라 대통령 에스트라다 카브레라(1857~1924,두번째)의 독재와 비인간성을 비판하는 그림. 과테말라역사박물관. www.alamyimages.fr

1부 4월 21, 22, 23일 
1.성당입구에서 "찬연한 빛을 내는 불을 밝혀 주소서! 부싯돌을 밝히는 종소리여! 종소리가 기도 소리에 아랑곳 않고 윙윙거리며 귓가를 울리듯이, 어둠 속의 빛과 빛 속의 어둠이 혼미하게 뒤엉켜 있도다.찬연한 빛을 내는 불을 밝혀 주소서! 부싯돌을 밝히는 종소리여! 빛을 밝혀 주소서! 불을 밝혀 주소서! 밝혀 주소서! 밝혀 주소서! 밝---혀---주소서! / 발을 질질 끄는 거지들이 시장의 식당가를 지나 얼어붙은 성당의 그림자속을 헤매며, 외롭고 황량한 도시의 바다처럼 드넓은 거리를 따라 아르마스 광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대통령 각하,미구엘 앙헬 아스투리아스 저, 을유문화사, 송상기 역, 2012)

소설 '대통령 각하' 스페인어 판본.스페인 화가 프란시스 고야(1746~1828)의 1808년5월3일의 처형을 패러디해 표지로 사용했다..www.google.com

1.첫 문단에 신에게 비는 듯한 경탄조의 어휘를 중복 사용하는 보기드문 도입부다. 산문에 시적인 표현이 과감하게 등장, 운문체 소설이라고 할 정도로 리드미컬하다.이는 구전 서사시에 흔히 쓰는 소원 갈구 형식의 문장이다. 도입부 주요 모티브로 쓴 빛과 불, 종,거지와 성당, 바다는 진부한 소재이지만 다양한 상징과 앞으로 전개될 서사의 단초를 제공한다. 이런 소재는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쓸때 은유로도 나온다. 도입부의 과감한 경탄조 문장은 내레이터가 독자의 호응을 유도하는 화법이자 첫 문단을 지배하는 요소다. 소원을 비는 어휘의 반복,  시적 두운법(頭韻法,alliteration, 첫 자음이 동일하개 반복되는 것) 등은 책을 읽는 독자의 주의를 끌기 위한 소설적 장치이기도 하다.

소설 '대통령각하' 최종 수정판 표지. 세 번째 스페인어 판으로 저자가 개정하고 수정했다. 195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로사다(Losada)편집실에서 출판됐다.http://pictures.abebooks.com

2.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El señor presidente,1946)'는 중남미 소설이 세계 문학의 지형을 바꾸는 데 물꼬를 튼 소설이다. 중남미 마술적 사실주의의 초기 작으로 나중에 나온 많은 작가들이 큰 영향을 받았다.  
저자의 자전적 삶이 녹아 있는 소설로 원제는 '토힐(Tohil)'이며, 1933년 7월 완성됐다. 하지만 과테말라 독재 정부의 엄격한 검열 정책으로13년 동안 출판이 금지됐다가 1946년 멕시코의 작은 출판사 코스타아믹(Costa-Amic, ISBN NA)에서 작가의 사비로 간행됐다. 첫 원고는 현재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첫 원고에는 에필로그도 없다.
소설은 1948년 아르헨티나 로사다(ISBN NA)에서 2판이 나오면서 평단의 눈길을 끌었다. 그렇치만 초판과 2판에는 수많은 인쇄상의 오류가 있었다. 이에따라 1952년 아르헨티나에서 나온 제3판에서 수정했다. 3판이 최종판이자 가장 중요한 판, 완전 판본인 셈이다.
영어로는 1963년 영국 빅터골란즈(Victor Gollancz,ISBN NA)에서 문고판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 로 번역, 출간됐다. 영어 첫 단행본은 1964년 미국 아테네움(Atheneum,ISBN NA)에서 제목을 스페인어(El Señor Presidente) 그대로 해서 나왔다. 한편 첫 번째 상은 1952년 프랑스의 최우수 외국도서상(Prix du meilleur livre étranger)이었다.이 상은  1948년에 창설됐으며, 매년 프랑스어로 번역된 작품이 대상이다.

소설 '대통령 각하' 영어판 표지.www.google.com

3.소설은 1898년부터 1920년까지 과테말라를 통치한 마누엘 에스트라다 카브레라(José Manuel Estrada Cabrera, 1857~1924) 독재 정권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한다. 독재가 차고넘쳤던 중남미 과테말라의 역사적 현실을 재치있게 그렸다. 특히 전통설화를 빗대 비꼰 마술적 사실주의(魔術的 寫實主義, magical realism)의 잘 그려진 소설이기도 하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20 세기 초  아방가르드(Avant-Garde,혁신이나 전위 예술을 추구하는 경향)의 일부로 등장해 문학 및 회화 운동에 영향을 미친 사조다.비현실적이거나 이상한 것을 일상적이고 흔한 것으로 보여주는 문체적 관심으로 정의한다. 독일의 미술 평론가이자 역사가 프란츠 로(Franz Roh,1890~1965) 가 변형된 현실을 보여주는 그림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고, 1925년 '마법의 현실주의(Revisista de Occident)' 라는 책으로 냈다.

소설 '대통령 각하'의 시대 배경인 과테말라 1910년 전후 대통령인 에스트라다 카브레라가 1907년 대통령궁에서 법령에 서명하는 모습.www.google.com

4.등장인물은 의외로 많다. 주인공 미겔 카라 데 앙헬은 '미카엘 천사의 얼굴' 이라는 뜻이다. 저자가 자신의 이름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를 투영했다. 저자의 분신과 같은 인물로 설정한 것이다. 소설 도입부에 나오는 거지 무리의 하나인 '얼간이' 펠렐레,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대령 호세 파랄레스 손리엔테(José Parrales Sonriente), 대통령의 반대편 퇴역 장군 에우세비오 카날레스(Eusebio Canales, 차마리타), 정적인 변호사 아벨 카르바할(Abel Carvajal)가 주요 인물로 나온다.
또 장군의 딸 카밀라(Camila)루이스 바레뇨 / 미겔 카라 데 앙헬(Miguel Cara de Ángel), 경찰관 루시오 바스케스(Lucio Vásquez) 와 친구 헤나로 로다스(Genaro Rodas),죽은 아기를 품에 안고 고문을 당하고 매음굴에 팔려가는 로도스의 페디나(Fedina of Rhodes),대통령을 섬기는 소령 하르판(Farfán), 대통령 칭찬 연설을 하는 여성 렝구나 데 바카(Lengua de vaca),부부 돈 벤하민(Doñ Venjamón)과 도나 벤하민(Doña Venjamón) 등도 나온다.

소설 '대통령 각하'의 시대 배경의 과테말라 대통령 마누엘 에스트라다 카브레라(Manuel Estrada Cabrera, 1857~1924)의 1916년 모습.1898~1920년 과테말라를 통치한 독재자다. https://archive.org

5.소설은 1부 4월 21, 22, 23일. 2부 4월 24, 25, 26, 27일, 3부 몇 주, 몇 달, 몇 년---,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다. 내용은 역사적 현실과 초현실적 실존을 넘나들면서 박진감있게 전개된다. 
대통령의 심복인 미겔 카라 데 앙헬은 대통령의 정적인 에우세비오 카날레스 장군을 지능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임무를 띠고 파견된다. 그러다 카날레스 장군의 딸인 카밀라에게 연정을 품고,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과 육체적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 대통령 심복으로서의 역할 수행에 대한 감정 뒤엉킨다. 대통령과 카밀라 사이에서 '권력이냐 사랑이냐'로 고뇌하는 것이다.
미겔 카마 데 앙헬은 현실의 약육강식의 생존 원리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대통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조금씩 열망하게 된다. 결국 미겔 카마 데 앙헬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고 카밀라와 결혼식을 올려 대통령의 분노를 산다. 이후 대통령은 그에게 워싱턴 특사 역할을 제안하는데, 그는 그것을 대통령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워싱턴 특사 제안은 대통령의 교활한 계략에 불과한 것임이 드러나고, 결국 미겔 카라 데 앙헬은 체포된다. 그는 감옥 속에서 카밀라가 대통령의 연인이 되었다는 거짓 정보(헛 소문)를 듣고 절망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 간다. 

2007년 베네수엘라 영화감독 로물로 구아르디아 그라니에르(Guardia Granier)가 만든 영화 '대통령 각하'스틸 컷.www.google.com

6.소설은 나온 이후 중남미 문학의 지평을 제시한 작품으로 호평 받았다. 미국 문학학자 잭 히멜블라우(Jack Himelblau, 샌안토니오 텍사스대 현대언어학과 교수)는 "스페인계 소설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아방가르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문학 평론가 제럴드 마틴(Gerald Martin)은 "최초의 진정한 독재소설( 라틴 아메리카 문학 의 특징적인 서사 하위 장르로 독재통치를 비판소설)"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송상기(고려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역사적 현실과 초현실적 실존을 넘나드는 희구와 절망의 광시곡"이라고 평가했다.

7.세 편의 스페인어 영화와 한 편의 연극으로 각색됐다. 1974년 극작가 휴고 카릴로(Hugo Carrillo)는 연극으로 각색했다. 이 극본은 1974년 제12회 과테말라 연극제에서 루벤 모랄레스(Rubén Morales) 가 감독한 인기 대학 드라마 예술단(Dramatic Art Company of the Popular University) 의 작품으로 첫 상연됐다. 이 작품은 대중적 성공을 거둬 200회 이상 공연됐고, 과테말라 외에도 8개국 이상에서 5만 명 이상의 관객이 공연을 관람했다.
영화는 1969년 아르헨티나 감독 마르코스 마다네스가 제작, 1970년 베니스 영화제 에서 초연됐다.두 번째 영화는 1983년에 쿠바 영화감독 마누엘 옥타비오 고메스(Manuel Octavio Gómez,1933~1988) 가 감독했다.
가장 최근 영화는 2007년 베네수엘라 영화감독 로물로 구아르디아(Rómulo Guardia Granier)가 만들었다. 베네수엘라의 케이블 텔레비전 네트워크 RCTV (Radio Caracas Televisión Internacional)가 1991년 이후 20여년 만에 제작한 첫 번째 영화였다.

8.한국에서는 1981년 영어 출판본을 중역한 책이 도서출판 풀빛에서 나왔다. 공식적으로는 2012년 을유세계문학전집(통권 50권)에 실려 출판된 것이 처음이다.

중남미 출신으로 소설 부문 노벨 문학상(1967)을 최초로 수상한 과테말라 작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https://es.wikipedia.org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Miguel Ángel Asturias Rosales,1899~1974)=과테말라 최고의 문장가. 중남미 출신으로 소설 부문 노벨 문학상을 최초로 수상한 작가(1967). 중남미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를 처음 시도했다.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외교관,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1.과테말라시티의 중산층 가정에서 판사인 아버지 에르네스토 아스투리아스 히론(Ernesto Asturias Girón)과 어머니 마리아 로잘레스(María Rosales de Asturias)사이에서 태어났다.6살 때인 1905년 아버지는 판사직을 그만두자 조부모의 농장이 있는 바하 베 라파즈(Baja Verapaz) 의 행정 중심지인 살 라마(Salamá ) 마을에서 살았다.이후 1908년 가족은 다시 과테말라 시티 파로키아 비에하(Parroquia Vieja) 교외 지역으로 이사했다. 아스투리아스 유년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이는 원주민으로 유모인 롤라 레예스(Lola Reyes)였다. 그녀는 아스투리아스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칠 신화와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이였다. 아스투리아스는 과테말라시티 외곽에서 솔리스 신부의 학교(Colegio del Padre Solís)와 고교과정인 국립 소년 연구소(El Instituto Nacional de Varones)를 다녔다.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왼쪽)와 첫번째 아내 클레멘시아 아마도(Clemencia Amado,1915~1979, 오른쪽).둘은 1939년 결혼, 두아들을 낳고 1947년 이혼했다.https://es.wikipedia.org

2.아스투리아스는 고교 재학 때인 1920년  당시 집권자 에스트라다 카브레라(Manuel Estrada Cabrera,1857~1924, 대통령 재임 1898~1920) 정권 타도 학생 운동을 활발히 했다. 그해 아스투리아스은 과테말라 최고 명문대학 유일한 대학 유니베르시다드 데 산 카를로스 데 과테말라(Universidad de San Carlos de Guatemala,USAC)에 진학, 의학을 공부하다가 법과로 전과했다. 1922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민중대학(Popular University)을 설립, 저소득층 지식 나눔 운동을 벌였다. 또 과테말라 대학생 총연합회(Asociación General de Estudiantes Universitarios)의 대표로도 활동했다.
1923년 논문 '인디언의 사회 문제'를 냈고, 그해 법학사 학위를 취득 한후 파리 소르본대학으로 가서 인류학을 공부했다.이 때 프랑스 시인이자 문학 이론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1896~1966의 영향으로 초현실주의자가 됐다.

1959년 쿠바 하바나의 프렌사 라티나 사무실을 방문한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모습.https://es.wikipedia.org

2.프랑스 파리 유학 중에는 특히 과테말라의 선조들인 마야 문화에 심취,1925년에 마야의 신성한 텍스트인 포폴부(Popol Vuh,과테말라의 키체족 신화와 역사를 기술한 텍스트)를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1930년 고대 마야 설화들을 각색한 첫 소설 '과테말라의 전설(Leyendas de Guatemala)'을 출간했다.이 소설은 당시 프랑스의 지성 폴 발레리(Paul Valery, Ambroise Paul Toussaint Jules Valery, 1871~1945)의 극찬을 받았다.
1933년 10년간의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 언론인 활동을 했다. 라디오 잡지인 '디아리오 델 아이레(El diario del aire)'를 창간하고 편집에 참여했다. 1936년 시집 '소네트(Sonetos)'도 출간했다. 이후 독재를 비판하는 소설 '대통령 각하'를 1932년 탈고했으나 출간을 못하다가 과테말라 혁명(1944)이후인 1946년에야 멕시코에서 자비 출판했다.

1967년 12월 10일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가 노벨문학상을 받고 있다.www.ojoconmipisto.com

3.아스투리아스는 1944년 과테말라 혁명으로 호르헤 우비코(Jorge Ubico Castañeda, 1878~1946, 집권 1931~1944) 군사독재 정권 붕괴이후 민주 정부가 들어서자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정계에 뛰어들었다. 당시 농민들을 위한 토지 개혁에 앞장서는 등 사회주의적 개혁을 시행한 후안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스(Juan Jacobo Árbenz Guzmán,1913~1971,대통령 재임 1951~1954) 정권을 후원에 집중했다. 
그런데 1954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을 받아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1914~1957, 대통령 재임 1954~1957)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자 이에 항의하다가 과테말라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어쩔수 없이 아르헨티나와 칠레 등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한편 1949년에는 걸작으로 꼽히는 '옥수수의 인간들(Hombres de maíz)'을 써서 호평받았고, 과테말라에 있는 미국 기업들을 모티브로 1950, 1954, 1960년 3번에 걸쳐 '바나나 3부작'를 쓰기도 했다.

아르헤티나 조각가 가브리엘 소지(Gabriel Sozzi)의 2015년 작품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팔레르모 인근 전통 공원인 장미 정원에 있는 동상. https://en.wikipedia.org

4.망명 생활 중에도 창작 활동을 지속, 196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소설 '물라타(Mulata de Tal)'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프랑스 문단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유럽 전역에 번역됐다. 1966년 소련의 레닌 평화상, 1967년 문학성을 인정한 스웨덴 한림원은 '라틴아메리카 인디오의 전통과 과테말라의 특성에 뿌리박은 작품'이라는 평을 내며 노벨 문학상에 선정했다.
아스투리아스는 1966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훌리오 세자르 멘데스 몬테네그로 대통령 취임 직후 과테말라 시민권을 되찾았고, 프랑스 주재 과테말라 대사로 임명됐다.1967년에 '물라타(Mulata de Tal)'의 영어 번역본이 미국 보스턴에서 출판됐다.

1968년 무렵 미구엘 앙헬 아스투리아스와 두번째 아내 블랑카(앞줄 가운데).photo by wikipedia

5.아스투리아스는 두번 결혼했다. 만 40살이 되던 해인 1939년 클레멘시아 아마도(Clemencia Amado,1915-1979)와 결혼, 두 아들 미구엘(Miguel)과 로드리고 앙헬(Rodrigo Ángel)을 두었다. 하지만 1947년 부부는 이혼했다. 첫 결혼에서 낳은 아들인 로드리고 앙헬 아스투리아스 아마도(Rodrigo Asturias Amado , 1939~2005)는 반군단체 Unidad Revolucionaria Nacional Guatemalteca(URNG) 지도자로 활동했다.
이후 두번째로 아르헨티아 부에노느 아이레스 망명생활 중 현지 여성 블랑카 모라 이 아라우호(Blanca Mora y Araujo, 1904~2000)와 결혼했다.1956년 출판된 소설 '과테말라에서의 주말(Week-end en Guatemala)'은 아내 블랑카(Blanca)에게 헌정했다.

프랑스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원에 있는 미겔 앙헬 아스투리우스의 무덤. 묘비에 고전 시대 마야 문명 의 고고학 유적 세이발(Ceibal) 문양이 새겨져 있다.https://es.wikipedia.org

6.1970년 파리 주재 과테말라 대사를 그만 둔 후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원고를 파리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이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974년 영면했다.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사후 과테말라 케찰테낭고(Quetzaltenango)에 본사를 둔 공인된 독립 비영리 학교 이름 '미구엘 앙헬 아스투리아스  아카데미(Miguel Angel Asturias Academy)'로 명명됐다. 과테말라시티에 있는 국립극장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문화 센터(Centro Cultural Miguel Ángel Asturias)로 명명됐다. 과테말라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미구엘 앙헬 아스투리아스 국가문학상'에도 명명됐다. 
2024년 6월 9일 과테말라 정부와 유족은 아스투리아스의 유해를 조국으로 송환하기로 결정했다. 과테말라 정부는 또 탄생 125주년과 사망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해'로 선포했다.(콘텐츠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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