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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러브스토리-불치병 로맨스 드라마의 원조는 혼잣말과 쉬운 문체로 서두를 장식한다 본문
“스물다섯에 죽은 그녀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있을까?/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했다. 그녀는 모차르트와 바흐를 사랑했고, 그리고 비틀스를, 그리고 나를. 언젠가 한번은 그녀가 이런 음악가들과 나를 함께 묶어서 말하기에. 그 순서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방긋 웃으며, ‘알파벳 순서야’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나도 역시 웃어 넘기도 말았다. 하지만 이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녀가 나를 이름으로 명단에 올렸다면-그럴 경우 나는 모차르트 다음이 될 것이고-성(姓)으로 올렸다면 바흐와 비틀스 사이에 끼게 된다. 어느 경우든 간에 내가 첫 번째가 되지 못하는데, 그런 시시한 이유 때문에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나는 항상 내가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왔다. 우리 집안의 내력이라고 할까?”(에릭 시걸 저,황보석 역, 문예출판사, 2009)
1.보기 드물게 첫 문장에서 혼잣말로 여주인공의 죽음을 알리는 한편 물음표로 시작한다. 통속 대중소설답게 독백형 내레이션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모은 것이다. 물론 도입부 끝부분 물음표도 흥미 유발 물음표다. 짧은 문장들 속에 순수한 여주인공의 전공과 취향을 보여주는 한편 내레이터 자신은 고귀한 가문에서 성장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로맨스 소설 답게 쉬운 말과 문체로 가슴 시린 사랑과 죽음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죽은 미인, 클래식, 사랑에 대한 질투, 출신성분 등을 배치해 눈물샘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독자와 시류에 영합한 글쓰기로 이런 장치는 통속 로맨스 소설의 스테레오타입 구조다. 그렇치만 추억을 기록하는 수필이나 자서전,킬링타임용 로맨스 소설에 활용할만한 회상록 형식의 도입부다.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2)는 18세기 빈 고전주의 악파의 대표적인 음악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신성로마제국 바로크 시대(1600~1750) 작곡가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 *비틀스(The Beatles)는 1960년 영국 리버풀에서 존 레논(1940~1980), 폴 매카트니(1942~현재), 조지 해리슨(1943~2001), 링고 스타(1940~현재) 등 4인으로 결성된 록 밴드.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 집단으로 세계의 팝은 비틀스 전과 후로 나눌 정도다.
2.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Love Story,1970)’는 대중 로맨스 소설의 최고봉에 있는 작품이다. 상업성에서 가장 성공했으며, 통속 로맨스 소설의 교본으로 수많은 패리디 작품을 양산했다.
출판부터 상업적이었다.1969년 완성된 이 소설은 이듬해 2월14일 발렌타인 데이에 미국(Harper & Row 출판)과 영국(Hodder & Stoughton 출판)에서 발매됐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명문대생과 가난한 처녀의 사랑이야기를 발렌타인 데이에 맞춰서 간행한 것이다. 작가와 출판사의 의도는 적중해 나오자마자 날개 돋힌듯 팔렸다. 출판 직후부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 1위에 41주 동안 있었고,미국에서 50만 부가 팔렸다. 첫 21개월 동안 12번의 양장본 인쇄를 할 정도였다. 출판 몇 년 사이에 전 세계 33개 언어로 번역됐고, 세계에서 20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소설이 영미권에서 일순간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그해에 영화로 제작돼 12월에 개봉할 정도했다. 작가 나이 서른셋에 돈과 유명세를 함께 잡은 소설이다. 1977년 남주인공의 후일담을 다룬 속편 ‘Oliver's Story’도 출판됐다.
3.소설 러브 스토리는 당초 작가가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사에 제시했으나 되돌려 받아서(사실상 퇴짜) 소설화한 것이다. 당시 저명한 미국 여류 문학 에이젠시 로이스 월러스(Lois Kahn Wallace,1940~2014)가 시나리오를 소설로 바꿔 써볼 것을 권유, 이를 받아들여 소설로 완성했다고 한다.
다른 설도 있다. 너무 흔한 내용이어서 영화사 파라마운트가 퇴짜를 놓자, 파라마운트 소유 출판사 사이먼 앤드 슈스터의 에디터가 영화보다는 소설로 써서 내라고 권유한 것이다. 이에 작가가 소설로 썼는데 대박이 나자 파라마운트에서 곧바로 영화로 제작했다는 것이다.
소설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소동도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당시 유명한 쇼인 NBC ‘투데이 쇼(Today Show)’의 인터뷰에 작가가 출연하자 앵커 바바라 월터스(Barbara Jill Walters,1929~2022)가 “이 젊은이(당시 33세)가 굉장한 소설을 썼습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사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날 미국에서 ‘러브 스토리’ 책을 살려는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저녁 12시도 안돼 미국 전역에서 한 권도 남김없이 다 팔려 버렸다. 책이 품절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1972년 선경도서에서 김우종 번역으로 나왔다.
4.사실 러브스토리는 흔하고 진부한 사랑을 담은 신파적(新派的,통속적인)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요즘 말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러브 클리셰(cliché, 인쇄 연판,鉛版,stereotype, 활자 복제판이라는 프랑스어)’다.
틀에 박힌, 어디선가 본듯한 정형화된 방식의 이 소설 히트 이후 청춘남녀가 사랑하다가 갑자기 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려 죽는 수많은 ‘비극 로맨스’가 전 세계에서 유행했다.지금도 남녀가 ‘꽁냥꽁냥’ 사랑하다가 주인공이 뜬금없이 죽는 소설과 드라마, 영화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주요 등장 인물은 여주인공으로 요절하는 제니-제니퍼 카빌레리(Jennifer(Jenny) Cavilleri)와 아버지 필(Phil Cavilleri), 제니의 연인이자 남주인공 올리버 바렛 4세(Oliver Barrett IV)와 그의 아버지 올리버 바렛3세(Oliver Barrett III), 어머니 바렛부인(Mrs. Barrett) 등이다.
5.줄거리는 부유한 하버드 대학생 올리버와 래드클리프 칼리지(음악대학, 현 하버드대학 학부)의 고학생 제니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명문가의 상속자인 하버드대 학부생 올리버는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 출신인 래드클리프 칼리지 학생 제니와 도서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올리버 아버지의 반대에도 사랑을 지속해 결혼에 이른다. 이에 올리버 아버지는 의절(義絶, 인연을 끊는 것)을 선언하고 지원금을 끊어 버린다. 올리버는 자비로 공부해 어렵게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고, 제니는 사립학교 교사로 취직해 신혼생활을 한다.
둘의 힘든 생활 속에 올리버가 로스쿨을 전교 3등으로 졸업하고 뉴욕의 유명 로펌에 취직, 이제 행복이 찾아온다. 하지만 제니는 백혈병 말기를 판정받고, 25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6.소설은 실제 이야기와 픽션을 결합했다. 나중에 미국 부통령(1993~2001)이 되는 하버드생 앨 고어(Albert Arnold Gore Jr.1948~현재)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바탕이 됐다. 부잣집 명문가 출신의 하버드생 앨고어는 가난한 집 출신 지역신문 사진기자 마리 엘리자베스 티퍼(Mary Elizabeth Tipper,1948~현재)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고어는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러브스토리가 우리 부부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절절한 사랑’의 주인공 앨 고어 부부도 40년 살다가 2010년 10월 이혼했다.
또 주변 인물로 나오는 이는 고어의 하버드 대학 룸메이트인 영화배우 토미 리 존스(Tommy Lee Jones, 1946~현재)다. 존스는 실제 러브스토리가 영화 데뷔작이다. 작가는 1968년 예일대 교수 안식년을 모교인 하버드대에서 보내면서 두 사람을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알고 지냈다.
이와 함께 소설에서 하키팀 주장으로 나오는 데이비(Davey)는 나중에 제 28대 캐나다 총독이 되는 데이비드 존스턴(David Lloyd Johnston, 1941~현재)이다. 존스턴은 하버드대학 때 작가의 친구로 조깅 파트너였다.
7.소설이 독자의 입맛에 맞추고, 시대(時流)에 영합하는 대중성으로 세기적인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정통 문학계는 아예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했다. 예일대 고전 문헌학 부교수였던 작가는 소설 히트 이후
돈과 명예,유명세를 얻자 과도한 자만심 등으로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수난도 겪었다.
1968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법학자인 윌리엄 스타이런(William Styron,1925~2006)은 "러브스토리는 단순히 문학으로서 자격이 없는 진부한 책"이라고 힐난했다.
1970년 미국의 도서상(전미도서상)인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Awards)’의 소설상 후보에 올랐지만 소설 심사위원단이 사임하겠다고 위협, ‘러브 스토리’가 후보 명단에서 빠지는 수모도 겪었다. 그해 내셔널 북 어워드 소설 분야는 솔 벨로(Saul Bellow, 1915~2005)의 ‘새믈러 씨의 행성(Mr. Sammler's Planet,1970)’ 이 받았다.
미국 여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 노라 에프론(Nora Ephron, 1941~2012, 영화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 감독)은 잡지 에스콰이어(Esquire)에 기고한 글에서 “러브스토리의 압도적인 인기는 미스터리 한 것”이라고 말했다.
8.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해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 공전의 히트를 쳤다. 1970년 12월16일 뉴욕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에 있는 로우스 스테이트 시어터(Loew's State Theatre)에서 개봉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제작비가 220만 달러 밖에 안 들었는데 미국 흥행수익금은 제작비의 50배인 1억 3640만 달러에 달했다. 경영위기에 처한 파라마운트 영화사를 구했을 정도였다. 미국영화연구소(AFI, American Film Institute)의 ‘미국 영화 100대 사랑 이야기’ 9위에 올라 있다.
영화는 캐나다 감독 아서 힐러(Arthur Hiller, 1923~2016)가 여주인공 제니역에 알리 맥그로(Ali MacGraw, 1939~현재), 올리버 역에 라이언 오닐(Charles Patrick Ryan O'Neal Jr. 1941~현재)을 주역으로 내세워 만들었다. 당시 제작비를 절약하기 위해 무명의 두 사람을 내세웠는데 오히려 순수한 사랑 표현에 들어맞아 대박 흥행의 바탕이 됐다고 한다.
영화 속 올리버의 대사인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라는 말은 유행어가 됐다. 2002년 미국 연예 주간지인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뽑은 ‘사랑의 명대사 11선’에 뽑혔다.
여주인공 제니가 올리버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는 마지막 장면도 영국의 극장 체인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러브신’으로 기록됐다.
남녀 주인공이 눈이 쌓인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에서 뒹굴 때 흘러나오는 배경음악 ‘스노 플로릭(snow floric, 즐겁게 뛰놀다. 장난 뜻)’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음악은 1971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2016년에는 영화가 나온 지 46년 만에 남녀 주인공 배우가 하버드 대학을 찾아 예전 영화 장면을 재현하는 이벤트를 가졌다. 2021년에는 두 주연 배우가 LA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다. 한국에서는 영화가 나온지 1년 후인 1971년 12월 15일 서울 광화문 국제극장(현 감리교본부회관)에서 개봉했다. 개봉관 관객만 24만 명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9.TV드라마로는 1972년 10월 1일 ABC 텔레비전에서 처음 방송했다. 당시 2700만 가구(시청률 62%)가 시청, 역대 1위인 벤허(1959년 방영)를 능가했다.
하버드대학 스크리닝(screenings)학생회인 The Crimson Key Society는 1970년대 후반부터 신입생들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동안 영화 러브 스토리 (Love Story)의 상영을 후원했다.
러브스토리 테마음악은 2020년 사망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장군 카셈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1957~2020)의 장례 행렬 중에 연주돼 눈길을 끌었다.
9.영국으로 이주해 살던 작가는 2000년대 초 더 타임스(The Times)와 인터뷰에서 “(러브 스토리가)나를 상자 밖으로 쐈다. 나를 완전히 망쳐 놓았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라고 말했다. 소설 히트 후 예일대 교수 재임용 탈락 등을 빗대서 하는 말이었다.
작가의 병환(파킨스씨 병)으로 인터뷰가 불가능했던 2008년 딸 프란체스카는 한 잡지와 만나 “러브 스토리는 아버지의 실제 경험에 상상력이 보태져 쓰였다”고 말했다.
프란체스카는 “당시 아버지 주변 사람들은 그동안 쌓아온 명성에 누가 된다는 이유로 러브스토리 같은 소설(대중영합 소설)을 쓰는 것을 말렸지만 아버지는 고집했다”며 “결국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됐다”고 말했다.
#.에릭 시걸(Erich Wolf Segal,1937~2010)=미국의 고전 문헌 학자이자 교육가. 대중소설 작가. 작품성보다 대중성을 중시하는 소설가다. 보스턴 마라톤에 12번 이상 참가한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 마라톤 해설가로도 유명했다.
1.미국 뉴욕 주 브루클린 태생의 유대인이다. 유대교 율법학자로 랍비(Rabbi, 나의 선생님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인 아버지 새뮤얼 마이클 시걸, 할레비(Samuel Michael Segal, Halevi, 1907~1961)와 주부인 어머니 신시아 글래디스 지거 샤피로(Cynthia Gladys Zeger Shapiro, 1912~2019)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브루클린에 있는 미드우드 고등학교(Midwood High School)에 입학, 단거리 선수로 활약하면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어 하버드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진학, 정통으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그리스-라틴어의 고전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일대학에서 부교수를 지내고 있었는데 1970년 소설 ‘러브 스토리’ 히트 영향으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이후 프린스턴대학 등 미국의 명문대에서 ‘고대 희곡’을 전공으로 교수와 펠로 직을 역임했다.
2.예일대에 몸담고 있던 1967년부터 연구 생활 틈틈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 하버드 대학생들 간의 연애담(앨 고어의 연애이약기, 하버드생 뒷바라지 여인의 죽음 등)을 다룬 ‘러브 스토리’의 원형이 되는 희곡을 썼으나 무대에 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 1969년 ‘러브 스토리’ 시나리오를 완성, 파라마운트 영화사로 보냈는데 소설로 개작할 것을 권유해 이듬해 2월14일 출판했다. 영화 ‘러브 스토리’가 히트한 후 1971년 제2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3.러브스토리로 유명해진 시걸은 예일대 교수와 방송, 작가 활동을 병행했다. 조니 카슨의 ‘투나잇 쇼’에 4주 동안 네 번 출연할 정도였다. 하지만 돈과 유명세를 잡은 시걸의 ‘과대망상증에 가까운 이기주의(egotism bordering on megalomania, 대학 측 주장)’로 결국은 예일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4.아마추어 마라톤 선수였던 시걸은 1972년과 1976년 하계 올림픽 텔레비전 중계 방송에서 올림픽 마라톤의 해설자로 활동했다. 1988년에는 프랑스에서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5.시걸의 뮤즈는 자신의 사사로운 일을 도와주던 영어 책 편집자인 카렌 마리안느 제임스(Karen James,?~2010)였다. 둘은 1975년 결혼, 미란다(Miranda)와 프란체스카 시걸(1980~)이라는 두 딸을 뒀다.그 중 1980년 생인 프란체스카는 현재 영국에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문학 평론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시걸은 영국으로 이주해 살면서 프린스턴 대학, 뮌헨 대학 및 다트머스 대학의 객원 교수로 재직했다. 말년에 옥스포드 대학(Oxford University) 울프슨 칼리지(Wolfson College)의 명예 교수를 지냈다.
6.오랫동안 앓아오던(약 30년) 파킨슨씨 병이 원인이 돼서 2010년 1월 17일 영국 런던에서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향년 72세. 영국 그레이터 런던(Greater London)의 바넷 자치구 골더스 그린 유대인 묘지에 안장됐다.
딸 프란체스카 시걸은 장례식 추도사에서 "아버지는 그 어느 누구보다 집요한 사람이었다"며 "약 30년간 파킨스병으로 고통을 받아왔지만 순간마다 엄청난 고집으로 싸워왔다. 아버지는 가르치고, 글을 쓰기 위해 맹목적인 강박을 보여 왔다"고 말했다.
7.주요작품으로 ‘올리버 이야기 Oliver's Story, 1977)’,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Man, Woman, and Child, 1980)’. ‘하버드 천재들(The Class, 1985)’, ‘닥터스(Doctors,1988)’, ‘오직 하나의 사랑(Only Love,1997)’ 등이 있다.
8.에릭 시걸은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쓸 때 플롯이나 구조, 개연성 등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로맨스 환상 소설에 집중했다.
작품성 필요없고, 흥행에만 집중하는 대중 통속 소설을 쓴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과 시나리오에서 등장인물은 너무 전형적이다. 예를들어 하버드생(학벌)과 미남미녀(외모를 갖춘)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미국의 문학 교수들이 수업시간에 "에릭 시걸의 작품을 읽는 건 시간낭비"라고 비판할 정도로 대중 영합의 흥미 위주로 글을 썼다.그럼에도 이후 나온 수많은 로맨스 소설이 러브스토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