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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레베카-뮤지컬과 영화로 더 유명한 소설은 압도적인 정밀 묘사로 시작한다 본문
“지난밤 다시 맨덜리로 가는 꿈을 꾸었다. 저택으로 이어지는 길 입구의 철문 앞에 섰지만 굳게 닫힌 탓에 들어갈 수 없었다. 철문에는 쇠사슬이 가로 걸리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문지기를 소리쳐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녹슨 철문 틈새로 들여다보니 문지기 집을 오랫동안 버려졌던 듯한 모습이었다. 굴뚝에서 연기도 나오지 않았고, 작은 격자창은 깨어져 쓸쓸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순간, 꿈속에서 흔히 그렇듯 신비로운 힘을 발휘해 철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길은 본래 그랬듯 구불거리며 내 앞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면서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는 그 길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낮게 뻗어내린 나뭇가지를 피해 고개를 숙였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자연이 서서히 자기 자리로 돌아온 것이었다.”(대프니 듀 모리에 저, 이상원 역, 현대문학, 2018)
1.문장이 깜짝 놀랄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되면서 부드럽게 전개되고 있다. 꿈속의 일을 마치 현실처럼 묘사했는데 마치 잘 써진 운률(韻律)의 시를 읽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문장과 문장의 이음, 아름답고 쉬운 말로 더 큰 상징을 보여주는 문체가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나다. 첫 문단에 소설의 핵심 키워드인 ‘꿈’과 ‘녹쓴 철문’, ‘쇠사슬’, ‘깨어진 격자창’, ‘제자리로 돌아 온 자연’을 문장든ㆍ 속에 녹아들게 서술했다. 1인칭 시점에서 영상 카메라를 들고 바로 옆에서 찍는 듯, 찍는 것을 훔쳐보는 듯할 정도로 정밀한 묘사가 압권이다. 등장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지배하는 여인이 주인공인 회상형 소설로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이 연결된 듯한 느낌을 준다. 굳이 흠을 잡자면 도입부가 길어 지루하다는 느낌도 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현대 영문학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 중 하나다.
2.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Rebecca,1938)’는 고딕(Gothic)소설 같지만 리얼리티를 갖춘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古典)이다. 출간 이후 100년이 넘도록 한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인기있는 걸작(傑作)이다. 고딕 소설(Gothic novel)은 개연성은 덜 하지만 신비감(판타지)과 서스펜스로 음산한 중세 분위기를 풍기는 낭만주의 소설을 말한다.
이 소설은 책이 나오자마자 초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여인이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고 제목까지 차지한 독특한 구조로 독자의 몰입감을 배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고딕적 요소에 로맨스, 스릴러, 동화같은 이야기, 독자를 끌고 가는 내레이터(화자, 話者) 등이 어우러지는 매력으로 출간 이후 수많은 모방작과 패러디, 오마쥬 작품이 나왔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패러디 되고 있는 서스펜스 로맨스 소설의 으뜸이다.
2003년 BBC 설문 조사에서 ‘영국인이 가장 사랑한 책’ 14위에 올랐고, 2017년 영국의 대형 서점 체인 WH 스미스의 조사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조지 오웰의 ‘1984’,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제치고 ‘지난 225년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다.
3.이 소설은 저자가 출판사와 ‘계약을 지키기 위해 급하게’ 썼다고 한다. 1937년 12월까지 출판 에이젠시 빅토르 골란츠(Victor Gollancz,1893~1967,영국 유명 출판인)와 3권의 책 원고 계약을 체결했는데 1936년 무렵 군인인 남편의 이집트 발령으로 동반 출국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작가는 1937년 12월 크리스마스 무렵 영국으로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 4개월 만에 완성했다. 1938년 8월 영국 런던 빅토르 골란츠출판사(Victor Gollancz Ltd) 에서 나왔다.당시 편집자 노만 콜린스(Norman Collins) 와 사장 골란츠는 원고를 읽은 후 성공을 확신, 당시로서는 도박과 같은 초판 2만 부를 찍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동나서 재판 1만부, 3판 1만5000부, 4판 1만5000부 등 한달 만에 6만 부가 팔렸다. 특히 발행 4년간 영국에서만 28쇄를 찍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미국 초판은 같은 해 9월 뉴욕 더블데이 도란 출판사(Doubleday Doran and Company, Inc.)에서 나왔는데 그해에 9판까지 찍을 정도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해 미국서점협회가 수여하는 전미도서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1939년에 일제히 번역 출판됐다.
4.등장 인물 중 주요 캐릭터는 내레이터인 주인공 '나'(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두 번째 부인 드윈터)와 남편 맥시밀란 맥심 드 윈터(Maximilian Maxim de Winter), 소설에서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지배하는 강렬한 캐릭터 레베카(Rebecca)다.
또 소설 무대인 맨더리 저택의 집사 댄버스 부인,성실하고 근면한 프랭크 크롤리(Frank Crawley), 맥심 드 윈터의 여동생 베아트리체 레이시(Beatrice Lacey)와 남편 자일스 레이시(Giles Lacey), 맨덜리의 헌신적인 집사 플스(Frith), 젊지만 가난한 남자 로버트(Robert), 내레이터의 미국인 고용주 반 호퍼부인(Mrs Van Hopper), 드윈터 부인의 하녀 클라리스(Clarice), 죽은 레베카 드 윈터의 사촌이자 연인 잭 파벨(Jack Favell), 치안 판사 줄리얀(Colonel Julyan), 산부인과 전문의 베이커 박사(Dr Baker) 등도 나온다.
5.줄거리는 영국의 저택을 배경으로 두 여자와 한 남자 사이의 사랑과 갈등, 죽음 뒤에 감추어진 비밀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전처의 의문사 때문에 겪는 현재 여인의 공포와 사랑의 심리소설이다.
노부인의 말동무를 하고 시중을 들어주는 친구이자 하녀같은 생활을 하던 ‘나’는 몬테카를로의 한 호텔에서 사별(死別)한 중년(41) 귀족 맥심을 만난다. 함께 시간을 보내다 가까워진 둘은 결혼하기로 하고 아름답다고 소문난 맨덜리 저택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새 삶을 시작한 맨덜리 저택에는 전 부인 레베카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진 매우 음산한 곳이다. 남편 맥심은 ‘나’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레베카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더구나 저택 관리자이자 하녀들의 으뜸 댄버스 부인은 매우 적대적이다. 모든 일에서 ‘나’의 행위를 레베카와 비교한다. 실제의 ‘나’ 역시 사교성도 없고, 어린 데다 어리숙한 존재다.
화려하지만 기묘하고 음산한 대저택 맨덜리는 ‘레베카는 없지만 레베카가 있는 세상’이다. ‘나’는 열등감과 근거없는 막연한 공포를 느낀다.
그런데 안개가 자욱한 어느날 저택 인근의 바다에서 시신이 물 위로 떠오른다. 전 여주인 레베카다. 서서히 ‘나’는 레베카의 죽음 뒤에 감추어졌던 엄청난 비밀을 마주한다.
남편 맥심은 임신한 레베카를 증오해 죽인 것으로 오해 받지만 결국 레베카가 말기 암 때문에 자살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이에 하녀 대장 댄버스 부인은 발작을 하고, 맨덜리 저택에 불을 지른 후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간다. '나'와 맥심은 불타는 맨덜리 저택을 저택을 쳐다보며 감회에 젖는다.
6.소설 제목 ‘레베카(성경 이름, 히브리어로 리브가, Rivkah)’는 구약성서 창세기 24장부터 나오는 여인 이름이다. 구약성서에 나온 이후 유럽에서는 수많은 여성 이름으로 사용됐다. 베키(Becky), 베카(Becca), 레바(Reba), 레비(Revy) 등이 레베카를 줄여 부른 것이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아브라함(Abraham, BC 2000년 전후, 존귀한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들 이삭(Issac, 히브리어 이츠하크,Yitskhak, 가톨릭 표기 이사악, 영어 아이작,BC 2066?~BC 1886?)의 아내다.
레베카의 아버지는 브투엘이고 오빠는 라반이다. 우연히 우물가에서 물을 긷다가 아브라함의 미션(이삭의 배우자 후보를 데려오라는 것)을 받은 종 엘리에젤이 레베카를 이삭의 아내로 점찍고, 선물과 지참금 등을 내고 데려온다. 이삭과 레베카는 두명의 아들, 에서(Esau, BC 1891~1744, 에사오로도 불림)와 야곱(Jacob,BC 1891~1744)을 낳았다.
야곱은 고대 히브리어로 '뒤를 쫓는 자',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이다. 나중에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Israel, 하느님과 겨루어 이김, 하느님의 전사 라는 뜻)로 바꾼다.
8.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만난 우물은 수많은 화가의 그림 소재로 쓰였다. 이탈리아 베로나 출신 베네치아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1528~1588)의 ‘우물가의 레베카(1580,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피에체타(Giovanni Battista Piazzetta, 1628~1754)의 ‘우물가의 레베카(1740, 브레라미술관)’,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우물가의 레베카(1648,파리 루브르박물관)’,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1600~1682)의 ‘이삭과 레베카의 결혼이 있는 풍경(1648, 런던 내셔널 갤러리)’, 스페인 화가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1617~1685)의 ‘우물가의 레베카(17세기,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등이다.
7.이 소설은 표절 논란이 일었다. 레베카가 브라질에서 번역 출판되자 평론가 알바로 린스(Álvaro de Barros Lins, 1912~1970)와 브라질 독자들이 표절 문제를 제기했다. 브라질 작가 카롤리나 나부코(Carolina Nabuco, 1890~1981)의 1934년 작품 ‘썩세소라(성공한 자,A Sucessora)’와 닮았다고 지적했다.
나부코는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파리에 있는 출판사에 보냈는데, 레베카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후에야 그 출판사도 듀 모리에의 출판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소설은 동일한 줄거리와 심지어 동일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표절 소송은 걸지 않았다.
미국 작가 에드위나 맥도널드(Edwina Macdonald)는 자신의 저서 ‘블라인드 윈도우(Blind Windows, 1927)’라는 책을 베꼈다고 주장했다. 소송을 했으나 주장이 입증되지 않았다.
한편 작가 프랭크 베이커(Frank Baker, 1908~1983)는 자신의 단편 소설 ‘새들(The Birds,1936)’이 모리에의 소설 ‘새들(The Birds,1952)’에 표절됐다고 믿었다고 한다.
8.작가 생전에 비평가들은 냉담했다, 미스터리 공포소설이나 통속 대중소설로 인식,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찬사가 잇달았다.
미국 현재 대표 소설가 스티븐 킹(Stephen Edwin King, 1947~현재)은 저서 ‘유혹의 글쓰기’에서 “대담한 전개와 이야기를 제어하는 솜씨만 보더라도 대중을 사로잡고 싶은 작가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며 “머릿속에 완벽한 그림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이런 작품을 쓰기란 불가능한데, 듀 모리에는 그것을 해냈다”고 부러워했다.
영국 소설가 세라 워터스(Sarah Waters, 1966~현재)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가운데 하나”라며 “영국 문화라는 직물 위에 아름다운 환상과 불안으로 가득한 꿈을 교차시켜 독특한 무늬를 수놓았다. 놀라우리만큼 매혹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작가이자 평론가 에이브릴 호너(Avril Horner,1847~현재, 킹스턴 대 영문학과 명예교수)와 수 즐로스닉(Sue Zlosnik, 1949~현재,영국 맨체스터대학 명예교수)은 공동저서 ‘The Daphne du Maurier Companion, (1998)’에서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이 섬뜩하고 사악한 것에 대한 매혹, 비이성적인 것에 대한 파열, 익숙한 것 안에 낯선 것의 냉담함을 제시하는 재주가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미디어 인디펜던트는 “중독성 강한 이야기와 숨 막히는 전개, 멜로 드라마와 미스터리를 절묘하게 결합시켰다”고 평했다.
가디언은 “첫 문장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한순간도 놓아주지 않는다”며 “작가는 수많은 거장들이 시도해보지 못한 과감한 도전들을 성공시켰는데, ‘레베카’는 그녀가 이룬 것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썼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으스스하고 스릴 넘치는 이 소설은 새 시대의 독자들에게도 처음 쓰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새롭고 흥미로운 작품이 되어줄 것”이라고 평했다.
9.수많은 영화, 연극, 라디오와 TV 드라마로 각색됐다. 연극으로는 동명 제목으로 1939년에 각색돼 공연됐다.영화로는 1940년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80~1980) 감독에 의해 만들어져 제13회 아카데미 작품상과 촬영상을 받았다.
당대 최고의 배우인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1907~1989,맥심 드 윈터 역), 할리우드 인기 여배우 조안 폰테인(Joan Fontaine,1917~2013, 드 윈터 부인 역), 주디스 앤더슨(Judith Anderson,1897~1992, 댄버스 부인역) 등이 출연했다.
조안 폰테인은 나중에 자서전을 써서 영국 킬마스에 거주 중인 작가를 찾아가 “레베카로 인생을 바꿔준 것에 감사하다”며 사인이 든 책을 헌정했다. 한편 히치콕 감독은 모리에의 작품을 50차례 이상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만들었다.
1966년에는 튀르키예에서 영화로 만들어 졌다. 2008년에는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에서 드라마로, 2009년에는 파키스탄에서 핫삼 후세인 감독이 제작, 드라마 TV 시리즈로 방영됐다.
2020년 10월 네플릭스 영화로 만들어서 영국에서 극장 개봉 후 네플릭스에 공개됐다. 영미 합작 영화로 벤 휘틀리(Ben Wheatley, 1972~현재) 감독이 영국 여배우 릴리 제임스(Lily James, 1989~현재, 드 윈터 부인 역), 아미 해머(Armie Hammer,1986~현재, 맥심 드 윈터 역),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Kristin Scott Thomas, 1960~현재, 댄버스 부인 역) 등을 내세워 만들었다.
10.뮤지컬은 예상외로 늦게 나왔다. 2006년 독일 극작가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 1943~현재)가 각본과 작사를 하고, 헝가리 출신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1945~현재)가 곡을 만들어 뮤지컬 ‘레베카’로 나왔다.
당시 오스트리아 비엔나 레이문드(Raimund) 극장에서 초연됐는 데 성황을 이뤘다.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세계 12개국 10개 언어로 번역, 공연됐다.
한국에서 뮤지컬은 2013년 초연 이후 10년 동안 공연되고 있다. 한국에서 만든 레베카는 다른나라 버전보다 훨씬 뛰어나 원작자 마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로부터 "한국 무대가 세계 최고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2023년 8월19일 10주년 기념작품(EMK뮤지컬컴퍼니 제작)으로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개막했는데 올해 누적 관객 100만명,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2023년 12월14일부터 내년 2월24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의 LG 시그니처홀에서 앙코르 공연도 한다. 한편 오페라는 1983년 10월 영국 리즈에서 윌프레드 조셉스의 음악으로 나와 오페라 노스에서 초연됐다.
11.책으로 한국에서는 2003년 동서문화사에서 김유경 옮김으로 나왔고, 2010년 생각의나무에서 이상원 역으로 출간됐다. 이후 2013년 현대문학에서 판권을 인수해 이상원 역으로 나온 데 이어 2018년 ‘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으로 재출간했다.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는 노래 ‘Tolerate It’이 레베카(Rebecca)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더 퀄리티 하우스 디스틸러즈(The Quality House Distillers)회사에서 위스키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2차세계대전 직전 영국 총리(60대 수상) 아서 네빌 체임벌린(Arthur Neville Chamberlain, 1869~1940)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가 ‘뮌헨 협정’에 서명하도록 이끈 비행기 여행에서 레베카를 읽었다고 한다. 뮌헨 협정은 1938년 9월 30일 독일 뮌헨에서 영국, 프랑스 제3공화국,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에 의해 체결됐다. 협정 6개월 후 히틀러의 배신으로 2차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 1907~)=영국 최고의 이야기꾼. 로맨틱 서스펜스의 여제. ‘20세기의 제인 에어’라는 이칭도 있다. 작품 대부분이 치명적 이지만 우아한 서스펜스 소설이다. 남편의 성을 따서 레이디 브라우닝(Lady Browning)으로도 불린다.
1.영국 런던 리젠트 파크(Regent's Park) 컴벌랜드 테라스에서 배우 겸 연출가 제럴드 듀 모리에(Gerald du Maurier, 1873~1933)와 배우인 어머니 뮤리엘 보몽(Muriel Beaumont,1876~1957)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매우 유복한 집안이어서 런던 거주지인 햄스터드(Hampstead)의 캐논 홀(cannon Hall)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PD겸 배우 아버지의 끊임없는 여성 편력에 지친 어머니가 딸들에게 정을 안 줘 유년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10대 초에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극단을 자주 갔는데 거기서 본 캐롤 리드(Carol Reed)를 좋아하기도 했다. 이후 부모가 1920년대에 영국 남부 콘월(Cornwall)에 별장을 샀고, 그 집 페리사이드(Ferryside at Bodinnick)는 작가가 가장 좋아한 곳이 됐다.
한편 작가의 조상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망명 귀족이었다. 할아버지는 작가이자 화가인 조지 듀 모리에(George du Maurier,1834~1896)이고, 언니는 나중에 배우이자 소설가로 활동한 안젤라 부송 뒤 모리에 (Angela Busson du Maurier, 1년 1904~2002)다. 또 화가로 활동한 잔느 듀 모리에( Jeanne du Maurier, 1911~1997)는 여동생이다.
2.주로 집에서 정부 관료들에 의해 사교육(집중 교육)을 받았다. 그 중 한 명이 여성 모드 와델(Maud Waddell)이다. 토드라고 불린 와델은 작가에게 독서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고 초기 글쓰기를 장려했다.
작가는 1938년 레베카의 초판본에 ‘토드, 다프네의 사랑으로, 1938년 7월’이라는 글과 사인읗 해서 헌정했다. 와델은 나중에 작가의 아이들 가정교사 역할도 했다.
이후 청소년기인 1925년 초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근교의 뫼동 근처 마을인 캄포세나(Camposena)에 있는 학교에서 세 학기를 보냈다. 당시 당시 마드무아젤 이본 페르난드 (Madamoiselle Yvon Fernande)와 낭만적인 관계를 갖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열렬한 독서가였던 작가는 특히 영국의 역사소설가이자 시인 월터 스콧(Walter Scott, 1771~1832), 소설가 W.M. 새커리(William Makepeace Thackeray 1811~1863, 소설 허영의 시장 저자), ‘제인 에어(Jane Eyre, 1847)’의 작가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1816~1855),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1847)’ 작가 에밀리 브론테 Emily Brontë(1818~1848), 앤 브론테(Anne Brontë(1820~1849) 자매 등의 작품을 좋아했다.
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 ‘보물섬(Treasure Island,1881)’과 ‘지킬박사와 하이드(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1886)’의 작가 R.L. 스티븐슨(Robert Louis Balfour Stevenson,1850~1894), 뉴질랜드 출신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가든 파티(The Garden Party,1922)’를 쓴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 1888~1923), ‘비계덩어링(Boule de Suif, 1880)’의 작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1915)’,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1919)’ 작가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 등이 있다.
3.작가는 1928년부터 단편과 산문을 쓰는 등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했다. 이후 1931년 첫 장편소설 ‘사랑하는 정신(The Loving Spirit)’을 출간했다.
이후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1932)’, ‘줄리어스의 발전(1933)’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위치를 굳혔다. 또 아버지 제럴드 듀 모리에의 자서전 ‘제럴드(Gerald-A Portrait, 1934)’, ‘자마이카 여관(Jamaica Inn, 1936)’, ‘뒤 모리에 집안(1937)’ 등도 내놓았다.
4.1931년 저서 ‘사랑하는 정신’을 읽은 잘 생긴 군인 프레더릭 브라우닝(Frederick Arthur Montague Boy Browning, 1896~1965) 소령(당시 계급)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여성편력애 진저리가 난 작가는 ‘결혼 제도’를 믿지 않아서 결혼을 거부했다. 이에 브라우님의 요청으로 자연스럽게 동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은 브라우닝의 경력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를 듣고 작가가 청혼했다. 둘은 1932년 잉글랜드 남부 콘원의 롱테글로로스 비 푸위(Lanteglos-by-Fowey)의 세인트 윌로우(St Willow) 교회에서 결혼했다.
남편 브라우닝은 1930년대 말부터 홀로 임지에서 지냈지만 군에서 승승장구, 중장까지 진급했다. 초대 제1공수여단 사단장(1941)으로 ‘영국 공수부대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자 엘리자베스 공주 측근으로 활약(감사관 겸 재무장관)했다.
듀리에는 공적 인물로 활동적인 남편과 달리 해외 거주나 도회지의 연회, 공식 모임을 싫어했다. 결혼 후 1937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갔으나 셋집에서 타자기 앞에만 있었다. 그녀는 곧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 남부 포위 외곽에 있는 저택인 메나빌리에서 약 25년 동안 살았다.
5.작가는 결혼 이후 남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남편의 전 약혼자 인 얀 리카르도 (Jan Ricardo)에 대한 질투가 있었고, 결혼 초 이집트로 파견됐을 때는 전형적이지 않은 군인 아내였다. 군인 아내로서 사교적이지 못했고, 이집트를 혐오했다. 깊은 향수병에 걸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1937년 12월 영국으로 돌아 왔다.
2차세계대전 후에는 작가는 아이들과 콘월의 메나빌리에 살았고, 남편은 직장 문제로 런던에 살았다. 부부는 주말만 공유했다. 하지만 군인 ‘기러기 아빠’는 런던에서 다른 여자와 애정행각을 벌였다. 남편은 퇴임 후인 1957년 두 번의 불륜을 저질렀다고 공식 인정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배가 시킨 것은 1965년 남편의 죽음과 1969년 이사(移徙)였다. 30여년을 살았던 메나빌리에 대한 임대 계약이 만료되면서 어쩔수 없이 킬마스(Kilmarth)의 고택(1327년에 지은 집)로 이사했다.
6.작가는 1962년 영광이지만 당혹스런 일을 겪었다. 1952년 엘리자베스 여왕 대관식에 참석한 이후 여왕이 직접 작가의 거처를 방문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 공이 작가와 남편 프레드릭 브라우닝(Frederick Browning, 일명 토미)를 만나기 위해 임대주택 메나 빌리 (Menabilly)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여왕은 이 곳에서 차를 마시는 일정은 보냈다. 여왕은 작가의 집에 한참을 머무르고 인근 포위 항구(Fowey Harbour)에서 로열 요트 브리타니아(Royal Yacht Britannia)에 승선, 떠났다.했다.
1969년에는 영국 왕실에서 여성에게 수여하는 데임 작위(Dame Commander,대영 제국 훈장 2등급,DBE)를 받았다. 1977년에는 미국 미스터리 작가협회로부터 그랜드 마스터 상을 받기도 했다. 그해 자서전인 ‘성장통(Growing Pains)’를 출판했다.
7.남편 사후 이렇다할 작품을 쓰지 않았던 작가는 1981년 신경 쇠약에 걸렸고, 그 후 관상 동맥 질환 등을 앓았다. 1989년 자택에서 잠을 자다가 심부전으로 영면했다. 향년 81세.
작가의 유지(遺志)에 추도식없이 시신은 비공개로 화장됐다. 유골(재)은 작가가 살았던 콘월의 킬마스와 메나빌리 주변의 해안 절벽에 뿌려졌다.
영국 작가 마거릿 포스터(Margaret Forster)는 사망 직후 헌사(獻辭)를 통해 “대중소설을 쓰는 그 어떤 작가도 그녀만큼 멋지게 정형화된 틀을 벗어던지지는 못했다”며 “회의적 시각으로 비춰지곤 했던 대중소설의 모든 요건을 충족해내면서 동시에 ‘진정한 문학’의 요건에도 정확히 부합하는 작품을 써냈다”고 격찬했다.
8.사후 양성애자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호사가들은 절친이자 여배우 거트루드 로렌스(Gertrude Lawrence, 1898~1952)가 작가와 관계를 의심했지만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또 작가의 미국 출판사 대표 넬슨 더블데이의 아내인 엘렌 맥카터(1899-1978)와 관계도 의심했지만 이 역시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로 ‘줄리어스(The Progress of Julius, 1933)’, ‘자메이카 여관(Jamaica Inn,1936)’, ‘프렌치맨스 크릭(Frenchman's Creek, 1941)’, ‘사촌 레이첼(My Cousin Rachel,1951)’ 등이 있다. 또 ‘비치 하우스(Beach House, 1969)’, ‘브리타니아 통치(1972)’ 등이 있다.
단편소설로는 ‘새’,‘사과나무’,‘몬테 베리타’ 등과 희곡 ‘9월의 조수’, 전기 ‘브란웰 브론테의 지옥’, ‘나선형 계단-프랜시스 베이컨, 인생의 굴곡’ 등이 있다. 이밖에 2006년 1920년대 후반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미발표 작품 ‘And His Letters Grew Colder’가 발견됐다.
9.작가의 많은 장편소설은 공포와 서스펜스가 절묘하게 결합돼 수많은 독자들이 심금(心琴) 울렸다 단편들도 뛰어난 캐릭터 구축과 암시, 상상력, 은유, 상황 설정 등에서 돋보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는 생전에 많은 부와 명예를 얻었음에도 죽을 때까지 세를 살았다. 집을 소유하지 않은 것이다. 작가의 자료들은 엑서터 대학교의 다프네 듀 모리에 특별 컬렉션으로 보존되고 있다.
작가 40년 이상을 보낸 콘월에는 박물관이 있다. 저서 자메이카 여관(Jamaica inn) 이름으로 된 박물관에는 다양한 유품이 전시돼 있다. 콘월일대에서는 또 듀 모리에 소사이어티(The du Maurier Society)가 주최하는 ‘포이 페스티벌(Fowey Festival)’이 열린다.
1996년 영국 우표 인물로 선정됐다. 2013년에는 손자인 네드 브라우닝(Ned Browning)이 소설 '레베카(Rebecca)'의 등장인물을 기반으로 한 남성 및 여성용 시계 컬렉션을 ‘듀 모리에 워치(du Maurier Watches)’라는 브랜드로 출시했다.
10.작가의 자녀와 손자들도 영국의 셀럽으로 살고 있다. 맏딸인 테사 듀리에(Tessa, 1933~)는 첫 결혼에는 실패했지만 두 번째 남편은 육군 원수 버나드 몽고메리(Bernard Law Montgomery, 1887~1976)의 아들 데이비드 몽고메리(David Bernard Montgomery, 1928~2020) 자작과 재혼했다.
둘째 딸 플라비아(1937~)는 첫 결혼에 실패하고 피터 존 홀 렝(Peter John Hall Leng, 1925~2009) 장군과 재혼했다. 피터렝은 북아일랜드 병기 총사령관이자 대 테러 전문가로 활동했다.
아들 크리스티안(1940~현재, 혹은 키트 브라우닝)은 사진작가 겸 영화 제작자로 올리브 화이트(1961 미스 아일랜드)와 결혼했다. 자녀들의 이름은 모두 문학작품에서 따왔다.
테사는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의 ‘테스 오브 더 더버 빌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1891)’에서, 플라비아는 앤서니 호프(Anthony Hope Hawkins, 1863~1933)의 ‘젠다의 죄수(The Prisoner of Zenda, 1894)’에서, 크리스티안은 존 밀턴(John Milton,1608~1674)의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 1667)’에서)에서 따왔다. (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