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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빅 슬립-펄프픽션을 문학의 경지로 이끈 소설의 첫 문단은 소재와 상징을 내세운 하드보일드로 시작한다 본문
"10월 중순 어느날 오전 열한시경, 태양은 보이지 않고 한결 뚜렷해진 언덕들이 폭우를 예고했다. 나는 담청색 양복에 암청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장식형 손수건을 꼽고, 발목에 암청색 수를 놓은 검은 색 모직 양말과 검은 색 단화를 신고 있었다. 이렇게 깨끗하고 단정한 차람새에 면도까지 한데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으니 누가 좀 알아줬으면 싶었다. 그야말로 말쑥한 사설 탐정의 모범 답안 아닌가. 사백만 달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스턴우드 저택의 정문 현관은 2층 높이였다. 인도코끼리 한 무리도 거뜬히 들어갈만한 대문 위에 널찍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있는데,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나무에 묶인 여인을 구출하는 장면이다. 여인은 아주 길어 편리한 머리카락 말고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레이먼드 챈들러 저,김진준 역, 문학동네 2020)
1.시제가 분명하고 날씨도 확실한 것은 독자에게 사실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이는 전형적인 추리소설 형식의 도입부 구성이라 할수 있다. 1인칭 화자에 대한 정말 면밀한 묘사도 읽는 이의 신뢰를 유도하는 것이다.예고된 폭우. 사설탐정, 사백만 달러, 저택과 높은 현관, 검은 갑옷, 알몸의 여인은 이야기 전개와 직간접 연관을 보여주는 어휘다.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주요 소재이자 상징인 셈이다. 특히 폭우는 크고 작은 희생을 예고하고, 스테인글라스 그림은 남성적 특성과 역설(아주 길어 편리한)을 암시한다. 1인칭 시점임에도 냉정할 정도로 차분한 감정 이입이 없는 하드보일러(hard-boiled, 감정을 억누른 간결한) 문체다. 다만 화자 스스로가 감탄하는 듯한 문장은 거슬린다.
2.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The Big Sleep,1939)'은 펄프픽션(pulp fiction,싸구려 혹은 저질 읽을거리)으로 취급 받던 추리 소설을 문학의 경지로 끌어 올린 걸작으로 꼽힌다. 어둠의 세계를 매혹적으로 묘사한 느와르(Noir,어두운 소재(악)를 냉혹하게 그린 이야기) 소설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특히 탐정소설의 원형이자 하드보일드(hard-boiled, 감정을 억누른 간결한) 범죄소설(hardboiled crime novel)의 대표작이다. 하드보일드는 1930년 전후 미국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스타일이다.
빅슬립은 미국 펄프(pulp, 평범하고 품질이 낮은, 싼 종이에서 유래)잡지 블랙 마스크(Black Mask,1920년 4월 창간,1951년 폐간)에 이미 게재한 이야기를 첨삭해 1939년 미국 뉴욕 알프레드 A. 노프 출판사에서 간행했다. 제목 '빅 슬립(깊은 잠)은 죽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다. 실제로 영면(永眠)으로도 번역된다.
소설은 1999년 프랑스 르 몽드가 '세기의 100권의 책(96위)'에 선정했고, 2005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에 의해 '100대 영문소설'에 올랐다. 또 뉴스위크가 '세계100대 명저'로도 뽑았다. 2019년 11월 5일에는 영국 BBC News가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100 권' 목록에 올렸다. 2014년에는 더 가디언이'100대 소설(62위)' 에 선정했다. 이밖에 영국의 전문 작가조직인 영국범죄작가협회 회원 투표에서 '100대 범죄 소설' 2위에 등극했다.
3.빅 슬립의 위대함은 당시까지만해도 대중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단순 읽을거리(킬링 타임용)'로 폄하하던 추리 소설을 '소설문학'의 반열에서 당당히 평가받게 했다는 데 있다. 단순한 오락 추리 이야기를 '문학'으로 인정 받게 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이름을 딴 챈들레스크(Chandleresque,최상급 서정적 문체, 챈들러 스타일)라는 단어까지 생겼다. 챈들레스크는 거의 모든 하드보일드 장르의 토대 문체가 됐다. 한편 이 소설을 면밀하게 읽고 분석해 보면 가족, 공동체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탐정의 의뢰인에 대한 헌신 등은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한, 우리(공동체)를 위한 무언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다만 도입부의 스테인 글라스 그림 표현 등에서 나오듯이 소설 곳곳의 남성중심주의 표현은 한계로 지적된다.
4.등장인물은 사립탐정 필립 말로(Philip Marlowe), 부유한 노인 스턴우드(Sternwoods) 장군과 큰 딸 비비안, 작은 딸 카르멘(Carmen), 서점 주인 아서 가이거(Geiger), 협박범 조 브로디(Brody), 가이거의 서점 직원 아그네스(Agnes), 카지노 주인 에디 마르스(Eddie Mars)와 아내 모나(Mona) 등이 나온다.
줄거리는 1930년대의 미국 핫 스팟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추리가 전개된다. 소설은 사설탐정 필립 말로가 협박 편지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는 스턴우드 장군의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필립 말로는 의뢰를 받은 협박 사건을 해결하려다 실종된 장군의 사위의 행방에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여러 건의 살인 사건과 부딪히게 된다. 소설은 협박 편지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는 의뢰를 받은 날부터 6일 동안, 사설탐정 필립 말로가 겪게 되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치밀하게 얽혀져 있다.
6.후대의 호평이 많았다. 소설 구성과 문체 등을 격찬, 추리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격찬이 이어졌다. 이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현재)는 '빅 슬립'에 대해 "경찰은 할 수 없고, 필립 말로는 할 수 있는 일을 쓴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루키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설이란, 도스토옙스키와 레이먼드 챈들러를 하나로 합친 것 같은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영국 첩보원 '007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소설가이자 은행가, 저널리스트였던 이안 플레밍(Ian Lancaster Fleming, 1908~1964)은 "오늘날 산문으로 쓰인 가장 훌륭한 대사 중 일부를 (챈들러가)제공했다"고 말했다. 법률 스릴러의 대가인 미국 작가 폴 레빈(Paul Levine, 1948~현재)은 "챈들러 글쓰기 스타일은 배에 가하는 빠른 펀치와 동등한 문학적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평론가 패트릭 앤더슨(Patrick Anderson)은 "좋을 때는 횡설수설이고 나쁠 때는 일관성이 없다"면서도 "아마도 주요 범죄 작가 중 가장 서정적인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7.영화로는 1946년과 1978년 두 번 나왔다. 1946년 작품은 ' 명탐정 필립'으로도 불린다. 하워드 혹스(Howard Hawks,1896~1977) 감독이 당대 톱스타 험프리 보가트(Humphrey DeForest Bogart, 1899~1957)와 유대계 미국 여배우 로렌 바콜(Lauren Bacall, 1924~2014)를 주연으로 내세워 만들었다. 이 영화는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상징적 고전이 된 걸작이다. 한편 로렌 바콜은 영화를 촬영하면서 25세 연상의 유부남 험프리 보가트와 사랑에 빠졌고,영화 촬영이 끝난(1월) 직후인 1945년 3월 결혼했다. 로렌 바콜은 보가트와 1957년 사별했다.
1978년 영화는 영국 영화감독 마이클 위너(Michael Winner, 1935~ 2013)가 당시 60세의 로버트 미첨(Robert Charles Durman Mitchum, 1917~1997)을 주연인 필립 말로 역으로 내세워 제작했다.1970년대 런던이 배경이지만 크게 히트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없이 비디오로 유통됐다.
텔리비전 드라마로는 1950년 처음 나왔다. 미국 방송국 NBC에서 앤솔로지 시리즈(1950년1월30일~1957년6월24일) '로버트 몽고메리의 에피소드(Robert Montgomery Presents)'의 하나로 60분 분량으로 만들어져 9월 25일 방송됐다.
#.레이먼드 손턴 챈들러(Raymond Thornton Chandler,1888~1959)=미국의 대표적인 추리 작가이자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대가.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라고, 미국으로 돌아와 활동한 작가. 하드보일드 예술 의 토대를 구축한 선구자로 꼽힌다
1.1888년 7월 23일 미국 시카고에서 철도 기술자 모리스 벤자민 챈들러(Maurice Benjamin Chandler, 1859~?)와 아일랜드 출신 플로렌스 다트 손튼(Florence Dart Thornton, ?~1923)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출로 네브래스카주 플래츠머스에서 이모, 외사촌과 살았다. 어머니는 챈들러가 12살 무렵인 1900년에 아일랜드 워터포드(Waterford)의 성공적인 변호사 오빠와 부모가 있는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다. 현재의 런던 자치구인 크로이돈(Croydon)이다. 챈들러는 런던의 덜위치 칼리지를 다녔다.
1907년 영국 국적을 취득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 해군성에서 근무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6개월 만에 사직했다. 이후 런던의 데일리 익스프레스(the Daily Express) 등 몇몇 언론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와 수필을 발표했다. 하지만 1912년 미국으로 돌아와 이듬해 변호사이자 석유 사업가인 친구 워렌 로이드(Warren Lloyd)의 등의 격려로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2.챈들러가 작가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영국 시인이자 단편 '유령선' 등 유령 이야기로 유명한 리처드 바르함 미들턴(Richard Barham Middleton, 1882~19111)을 만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챈들러는 미들턴이 벨기에에서 자살한 후 "미들턴은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성공할 수 없다면 내가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고 애석해 했다.
챈들러는 1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7년 캐나다 빅토리아로 여행을 떠났고, 8월 캐나다 원정군 제50지원대대에 입대했다. 이후 프랑스전선에 배치돼 제7대대 CEF(브리티시 컬럼비아 연대)와 함께 프랑스군 참호에서 전투를 치렀다. 종전후 신생 영국 공군 (RAF) 에서 비행 훈련을 받았지만 곧 LA로 돌아왔다.
3.챈들러의 뮤즈는 18세 연상의 두번 결혼한 유부녀 펄 유제니아 세실리아 헐버트(Pearl Eugenia Hurlburt, 1870~1954)였다. 헐버트는 1897년 레온 브라운 포처(Leon Brown Porcher)와 결혼했다가 이혼한후 서인도 제도 출신 피아니스트로 아들이 있는 줄리안 파스칼(Julian Pascal)과 재혼했다. 이때부터 세실리아(시시) 파스칼로 불렸다. 1915년 전후 챈들러는 나중에 군 입대 동기인 고든 파스칼를 만났고, 그의 의붓어머니인 시시 파스칼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챈들러와 시시는 챈들러가 해외에서 복무하는 동안 서신을 주고 받았고, 전역 후 불륜 상태로 갔다. 결국 시시 파스칼은 1920년 남편과 이혼했다. 하지만 챈들러 어머니는 그들의 관계를 반대했고 결혼을 허가하지 않았다. 결혼은 1923년 9월 26일 어머니 플로렌스 챈들러가 사망한 후인 1924년 2월에 할 수 있었다. 챈들러 나이 36살, 시시의 나이 54살 때였다.
챈들러는 나중에 문학 에이전트 헬가 마리 그린(Helga Greene,1916~1985), 마지막 비서 장 프라카세( Jean Fracasse), 조지 오웰의 미망인 소니아 오웰(Sonia Orwell,1918~1980), 작가 스티븐 스펜서(Sir Stephen Harold Spender, 1909~1995) 의 아내 나타샤(Natasha Spender,1919~2010, 영국 피아니스티이자 작가) 등과도 애매한 관계를 맺었다.
4.챈들러는 1922년돈베이 오일 신디케이트(Dabney Oil Syndicate)에 입사,1931년의 고액 연봉을 받는 부사장이 됐다. 그런데 고질적인 알코올 중독, 결근, 여성 직원들과 음란한 관계, 자살설 등이 겹치며 1년 후 해고됐다. 이후 소설 집필에 몰두, 1933년 대중 잡지 '블랙 마스크'에 첫 단편소설 '협박범은 쏘지 않는다'를 발표했다. 또 여러 잡지에 단편소설들을 기고했다.
이후 1939년 첫 장편소설 '빅 슬립'을 출간,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40년 '안녕 내 사랑', 1942년 '하이 윈도', 1943년 '호수의 여인', 1949년 '리틀 시스터'를 이어서 출간했다. 미국 영화 산업 성장과 함께 챈들러 추리소설은 대부분 영화화됐다. 1953년 대표작 '기나긴 이별'을 출간했다. 이 소설은 1955년 미국 추리작가협회의 최우수 작품상(에드거상)을 받았다.
7.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돈과 명성을 얻은 챈들러 부부는 1946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부유한 해안 지역 라호야로 이사했다. 하지마 행복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1954년 18세 연상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때부터 챈들러는 깊은 상실감에 더 많은 알코올 마셨고, 중독자가 됐다. 챈들러는 화장한 아내의 유해를 매장하지 않았고, 1955년에 자살까지 시도했다. 이 때문에 아내 시시의 유골은 57년 동안 미국 샌디에고 사이프러스 뷰 영묘, 영안실 및 화장터(Cypress View Mausoleum) 지하의 보관함에 남았다.
챈들러는 1958년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 회장으로 선출됐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1959년 70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스크립스 기념 병원에서 폐렴성 말초 혈관 쇼크와 신부전 요독증(사망 증명서)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 있는 시립 마운트 호프 묘지(Mount Hope Cemetery)에 묻혔다.
그런데 챈들러 팬인 로렌 라트커가 두 사람의 사랑을 사후에라도 이어주기 위한 노력끝에 2011년 2월 14일 시시의 유해는 채들러 무덤 바로 위로 이장했다.
자식이 없었던 챈들러 사후 유산은 소송에서 승소한 문학 에이전트 헬가 그린(Helga Greene)이 6만 달러 재산을 물려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빅 슬립 (1939), 안녕, 내 사랑아 (1940), 하이 윈도우 (1942), 호수의 여인 (1943), 리틀 시스터 1949),기나 긴 이별 (1953), 재생 (1958) 등이 있다. 영면 직전까지 쓰던 미완성 소설은 미국 탐정작가 로버트 B. 파커(Robert B. Parker,1932~2010) 가 완성, 1989년에 '푸들 스프링(Poodle Springs)'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8.챈들러는 대단한 독설가였다. 동료 작가들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탐정 소설 마이크 해머 시리즈의 미키 스필레인(프랭크 모리슨 스필레인, Frank Morrison Spillane, 1918~2006)은 하드 보일드(소설)를 쓰레기로 만들었다며 맹비난했다. 또 영국 추리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티(Dame Agatha Christie,1890~1976) 등에 대해서는 "바보나 할 추리를 한다"고 폄하했다.
가장 큰 욕은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작가 제임스 케인이 먹었다. 챈들러는 그에 대해 "문학계의 쓰레기"라고 혹평했다. 또 '루 아처 시리즈'의 미국계 캐나다인 범죄소설 작가 로스 맥도날드(Ross MacDonald, 본명 Kenneth Milla, 1915~1944)에 대해서도 "문장에 기교나 부릴 줄 아는 '문학적 내시 같은 놈' "이라고 비난했다. 나중에 노벨문학상(1954)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에 대해서도" '노인과 바다' 외에는 자기복제나 한 별 볼 일 없는 작가"라고 쏘아붙였다.
유명 영화 감독으로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로 칭송받는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에 대해서도 "세트 효과나 전체적인 분위기, 배경 등을 설정하는 데는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사건의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는 감각은 별로 없다. 그가 만든 영화 중 상당수가 논리적 구성을 벗어났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며 비판했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