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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어느 인생(여자의 일생)-허망한 혁명과 두 남자의 배신이 녹아 있는 소설의 첫 문단은 수채화처럼 흐른다. 본문
“잔느는 짐을 다 꾸리고 창가로 다가가 보았으나 비는 그치지 않고 있었다. 밤새 폭우가 유리창과 지붕을 두드렸다. 물을 잔뜩 머금고 낮게 내려앉은 하늘은 구멍이라도 난 듯 땅 위로 물을 게워내고 흙을 설탕처럼 녹여 걸쭉하게 만들었다. 무거운 열기를 가득 품은 돌풍이 불고 있었다. 불어난 시냇물의 요란한 소리가 인적없는 거리를 채웠고, 스펀지처럼 습기를 빨아들인 집집마다 지하실부터 다락까지 온 벽이 땀을 흘렸다. 어제 수녀원에서 나와 마침내 영영 자유로워져 오래전부터 꿈꿔온 인생의 온갖 행복을 거머쥘 준비가 된 잔느는 날이 개지 않으면 아버지가 떠나기를 망설일까 걱정되어 아침부터 백번쯤 지평선을 살폈다. 그러다 깜빡 잊고 여행 가방에 달력을 챙겨 넣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벽에서 작은 달력을 떼어냈다. 월별로 나뉘져 있고, 그림 한가운데 금색 숫자로 1819년 월일이 적힌 빳빳한 종이 달력이었다. 그녀는 수녀원을 나온 날인 5월2일까지 각 성인의 이름에 줄을 그어 앞쪽 네 달의 칸을 지웠다.”(어느 인생-초라한 진실, 기 드 모파상 저, 백선희 역, 새움, 2019)
1.3인칭 화자를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듯한 섬세한 묘사가 일품인 도입부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내는 사실주의가 서정적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폭우’와 ‘돌풍’이 거대 메타포(metaphor, 은유)로 한 여인의 굴곡 있는 삶의 전개를 예고하고 있다. 소녀가 수녀원을 나서는 1819년은 패전(1815년 나폴레옹 프랑스군의 패배와 왕정복고)의 그늘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여서인지 문단 전체에서 음울한 수채화 같은 느낌이 묻어난다. 사족을 달자면 문장 하나하나의 번역문이 길다. 이는 번역 문체가 어색한 느낌을 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간결한 번역이 아쉽다고 하겠다.
2.모파상의 ‘어느 인생-초라한 진실(Une Vie-L'Humble Vérité, 1883)’은 우리나라에서 ‘여자의 일생’으로 더 잘 알려진 수작(秀作)이다. 프랑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넘어 사실주의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자연주의 문학의 바탕을 이루는 소설이다.
저자가 6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 소설로 1883년 문예지 ‘길 블라스(Gil Blas, 1879년 창간, 1938년 폐간)’에 연재된 후 같은 해 책 형태로 파리 출판사 빅토르 하바드(Victor Havard)에서 나왔다.
발간 당시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6개월 사이에 3만 부 가까이 팔릴 정도로 대중에게도 인기를 끈 베스트 셀러였다. 당시 부르조아 남자들에게 희생당하는 여자의 일생을 염세주의적 필치로 그린 데다 노르망디의 풍습을 놀랍도록 뛰어나게 묘사해 격찬이 이어졌다.
10년 후인 1893년 새로운 개정판이 파리 바울 올렌도프(Paul Ollendorff)에서 나왔다. 영어로는‘The Story of a Life’, ‘A woman’s life’로 번역됐다. 영역 ‘A woman’s life’ 를 두고 프랑스 문단에서는 “성별의 불필요한 추가는 이야기의 본질적인 품질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3.저자는 이 소설의 제목 'Une Vie'를 통해 삶을, 인생을 얘기하려 했다. 한 여성의 이야기이지만 여인의 인생이 아닌 '어느 한 일생'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제목도 'Une Vie'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인생은 생각만큼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영미권에 번역, 소개되면서 제목에 ‘woman’s(여성)’가 붙었다. 두낭자, 남편과 아들의 욕망과 잔학(殘虐)에 희생된 여성 이야기여서 그렇게 붙였는지 모른다. 가장 사랑했던 두 남자, 남편과 아들의 위선 때문에 환멸의 인생을 떠안고 사는 여인의 불행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절 처음 소개할 때 영어판(A woman’s life, 여자의 일생)을 번역한 일어판(女の一生, 히로쓰 가즈오 역, 1916)을 다시 번역(삼중역, 三重譯)하는 바람에 ‘녀자의 일생(1926, 김기진 역, 박문서관)’으로 나왔다.
4.등장인물은 주인공 잔느(Jeanne Le Perthuis des), 잔느의 아버지 시몽 자크 르 페르튀 데 보 남작(Baron Simon-Jacques Le Perthuis des Vauds), 어머니 남작 부인 아델라이드(Adélaïde), 잔느의 남편 줄리앙 드 라마르 자작, 잔느의 아들 폴 드 라마르(Paul) 등이다.
또 이모 장 리좀(Jeanne, Lison), 잔느의 수양 여동생 로잘리, 로잘리의 아들 드니 르콕(Denis Lecoq), 줄리앙 드 라마레(Julien de Lamare), 요리사 뤼디빈, 마부 시몽 영감 등도 나온다.
5.줄거리는 귀족 집안의 꿈 많던 외동딸이 겪는 인생의 명암-남편의 간통과 때이른 죽음, 아들의 방탕, 가문의 몰락, 자신을 감싸주지 않는 교회와 이웃에 대한 환멸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야기다.
1819년 루앙의 귀족 딸 잔느는 수녀원을 벗어나 자유와 사랑과 행복을 꿈꾸며 줄리앙 드 라마르 자작과 결혼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그녀의 소중한 기대는 빗나간다. 첫날 밤 굶주린 사람처럼 자신을 안는 남편의 난폭함과 짓후 입을 반쯤 벌린 채 평온하게 잠든 얼굴에 화가 난다. 능욕당한 기분, 하찮은 여자 취급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더구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줄리앙은 잔느를 속이고 잔느와 함께 성장한 하녀 로잘리와 바람을 피우고 아이까지 낳게 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남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행복이 깨진 환멸) 앞에 잔느는 절망한다.
잔느는 첫 아이인 폴(바울,Paul)을 조산했는데, 바울은 건강까지 좋지 않았다. 두 번째 아이는 사산했다. 이후 폴은 학업을 위해 떠나고 잔느는 어머니와 이모까지 죽으면서 혼자가 된다. 우울증에 빠진 잔느는 남편의 아이를 낳은 옛 하인 로잘리와 재회한다.
그런데 아들의 과도한 지출로 인해 계속 빚을 늘고 빠르게 늙어간다. 어느 날 아들 폴은 출산 중 사망한 방탕한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잔느는 서서히 삶에 대한 감각을 되찾고 로잘리와 화해한다.
6.러시아 유명 소설가 레흐 톨스토이(Leo Tolstoy,1828~1910)는 ‘Une Vie(우네 비, 어느 인생)’를 가리켜 "모파상(Maupassant)의 소설 중 최고일뿐만 아니라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이래 최고의 프랑스 소설"이라고 격찬했다.
다만 당대 미국 사실주의 문학의 지도자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 대표작 나사의 회전,1898)는 “흥미로운 실험”이라는 표현을 쓰며 “줄거리가 거의 없다”고 소감을 전했다. 영국 소설가로 ‘인도로 가는 길(1924)’ 저자 E.M 포스터(Edward Morgan Forster, 1879~1970)는 “왕이 죽고 여왕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라며 단조로운 구조를 지적했다.
7.영화와 드라마로 많이 나왔다. 알렉상드르 아스트뤼크(Alexandre Astruc, 1923~2016)가 1958년 감독한 영화 우네 비(영어명 원 라이프,One Life)로 나왔다. 스위스 배우 마리아 셀(Maria Margarethe Anna Schell, 1926~ 2005)이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만 23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든 대 히트작이 됐다. 우리나라는 1960년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 보름 동안 6만여명이 관람했다.
또 2016년 프랑스 출신 스테판 브리제(Stephane Brize, 1966~현재) 감독이 주디스 쳄라(Judith Chemla, 1985~현재)를 주연으로 내세워 영화로 내놓았다. 이 영화는 아르노 드니(Arnaud Denis, 1983~현재)가 감독하고 클레망틴 셀라리에(Clémentine Célarié, 1957)가 주연을 맡은 2019년 연극의 기초가 됐다. 이 연극은 파리8구 마투린 극장(Théâtre des Mathurins)에서 공연됐다.
8.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 소설가이자 시인 팔봉 김기진(1903~1985) 번역으로 ‘녀자의 한평생(1926, 박문서관)’으로 나온 이래 주목받은 번역본은 없었다. 그런데 1945년 해방과 6.25전쟁 후에 나온 번역본도 오역 제목이 이어졌다. 1954년 박영준 역 ‘여자의 일생(문성당)’이 나온 이래 2010년대까지 제목이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2019년 새움 출판사에서 백선희 역으로 나오면서 원래 제목을 되찾았다.
이 소설은 1968년 한국에서도 영화로 나왔다. 유명 영화감독 신상옥(申相玉, 1026~2006)이 ‘여자의 일생’으로 내놓았다. 당대 최고 배우인 남궁원(1934~2024, 본명 홍경일), 최은희(1926~2018), 도금봉(1930~2009) 등이 출연했고, 동명 주제가(작사 한산도, 작곡 백영호)는 가수 이미자가 불렀다.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프랑스의 소설가. 사실주의, 자연주의 작가의 선구자이자 현대 단편소설의 대가로 불린다. 특히 에드거 앨런 포, 안톤 체호프, 오 헨리와 함께 세계 4대 단편소설 작가로 꼽힌다. 본명은 앙리 르네 알베르 기 드 모파상(Henri René Albert Guy de Maupassant)이다.
1.프랑스 제2공화국 노르망디 센 인페리외르(현 센 마리타임) 뚜흐빌르-슈흐-아흑끄(Tourville-sur-Arques-) 미로메스니엘 성(Château de Miromesniel)에서 귀스타브 드 모파상(Gustave de Maupassant, 1821-99)과 로르 르 푸아테뱅(Laure Le Poittevin)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푸아테뱅은 유난히 책을 잘 읽는 여성으로 고전 문학, 특히 영국 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를 매우 좋아했는데 이는 모파상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모파상이 11살, 동생 에르베가 5살이었을 때 부모가 별거해 정서적 어려움을 겪었다.
2.어머니는 두 아들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13세 때 동생과 함께 루앙(Rouen)에 있는 가톨릭 사립학교 르루이-프티 학교(Institution Leroy-Petit)에 기숙학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교회 의식 및 규율 등을 비판하다가 2년 되던 해에 퇴학했다. 이후 1867년 주립 중등학교 리세 피에르 코르네유(Lycée Pierre-Corneille)를 다녔다.
1867년 모파상은 어머니의 권유로 크루아세에서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1821~1880, 대표작 ‘보바리 부인, Madame Bovary ,1857’)를 만났다. 플로베르는 모파상 어머니의 오빠인 알프레드 르 푸아테뱅(Alfred Le Poittevin)의 절친이었다.
플로베르는 파리에 머무를 때마다 모파상을 일요일 식사에 초대하고, 산문체 쓰는 것 등을 가르치고, 글쓰기 연습도 하게 하는 등 멘토 역할을 했다. 나중에 플로베르는 모파상에 대해 "내 제자이고 나는 그를 아들처럼 사랑한다"고 말했다.
한편 1868년 10월 18세의 나이에 모파상은 유명한 영국 시인 앨저넌 스윈번(Algernon Swinburne,1837~1909)이 노르망디 에트레타(Étretat) 해안에서 익사할 뻔한 것을 구한 일도 있었다.
3.모파상은 1970년 일어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년7월 19~1871년1월 28일)이 발발하자 육군에 자원입대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 전쟁을 보불전쟁(普佛戰爭,The Franco-Prussian War)이라 부른다.
1871년부터는 해군성 서기와 공공교육부 공무원으로 10년을 보냈다. 이후 피가로(Le Figaro, 1826년 창간), 길블라스(Gil Blas,1876 창간), 르 골루아(Le Gaulois, 1868년 창간), 및 레쇼 드 파리(L'Écho de Paris,1884 창간, 1944 폐간) 등 주요 신문과 문학 간행물의 편집자가 되었고, 단편소설을 써서 연재했다.
4.귀스타브 플로베르에게서 수학하면서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와 파리를 방문한 러시아 유명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Ivan Sergeyevich Turgenev,1818~1883)도 만났다. 이들에게서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멘토는 스승인 귀스타브 플로베르였다.
1880년 6명의 작가가 콜라보로 내놓은 단편 소설집 ‘메당의 저녁(Les Soirées de Médan, 메당야화)’에 실린 중편 소설 ‘비곗덩어리(불 드 수이프,Boule de Suif, 버터볼, 공 등으로도 번역)’가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모파상의 멘토이자 문학 보호자인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영원히 남을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메당의 저녁은 에밀 졸라(Émile Zola,1840~1902)가 1887년 구입한 프랑스 파리 북서쪽 일드프랑스 이블린에 있는 마을 메당(Médan)에 있는 집에서 정기적으로 만난 작가그룹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소설가이자 평론가 앙투안 폴 알렉시스(Paul Alexis, 1847~1901),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마리우스 루(Marius Roux,1838~1905), 극작가 레옹 헤니크(Léon Hennique, 1850~1935), 소설가이ㅏ 시인 앙리 세아르(Henri Céard, 1851~1924), 작가이자 미술평론가 위즈 망 (Huysmans,1848~1907), 모파상 등이 함께 했다.
5.모파상은 수많은 여성과 상대했다. 돈이 생기고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자 파리에 여성과 은밀한 만남을 위한 별관이 있는 아파트를 구입했다. 또 프랑스 서부 노르망디 에트르타(Étretat)에 1채, 리비에라에 2채의 저택, 여러 척의 요트를 유지했다.
모파상의 여인들은 사교계 여성 포토카 백작부인(Comtesse Potocka, 결혼 전 Emmanuella Pignatelli, 1852~1930),재봉사로 알려진 조세핀 리첼만(Josephine Litzelmann, 1855~1920), 러시아 태생의 여류 화가 마리 바시키르체프( Мария Башкирцева, 1858~1884), 마리 칸( Marie Kann, 1861~1928 ) 등을 빼면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바시키르체프는 26세에 파리에서 결핵으로 요절했다.
조세핀 리첼만과 사이에는 3명의 자녀가 있다. 오노레 루시앙 리첼만(Honoré Lucien Litzelmann,1883~1947)과 잔느 루시앙 리첼만(Lucienne Litzelmann, 1884~1956), 마르테 마르귀르티 리첼만(Marguerite Litzelmann, 1987~1951) 등이 있다.
둘은 파리(파리 17구)에서 24세의 재봉사 조세핀 리첼만(Josephine Litzelmann)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파상은 이들 아이들을 위해 양육비를 줘 부양했지만 자식으로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더구나 큰 얘가 10살 무렵 사망했다.
6.모파상에게 1880~1891년은 풍요의 시기였다. 1880년 ‘비곗덩어리(Boule de Suif)’ 성공에 이어 1883년 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어느 인생(Une Vie)’도 1년도 채 되지 않아 3만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1885년 출간된 두 번째 장편소설 ‘벨-아미(Bel-Ami)’는 4개월 동안 37판이나 인쇄됐다. 이후 모파상은 '벨 아미'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요트로 알제리, 이탈리아, 영국, 브르타뉴, 시칠리아, 오베르뉴 등지를 두루 여행하면서도 성과 쾌락에 탐닉했다. 이 때문에 1877년경부터 시작된 매독이 도지기 시작, 신경증을 앓았다.
모파상은 요트 여행을 하면서 소설가로 ‘'La Dame aux Camélias(동백꽃을 들고 있는 여인, 椿姬,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원작)’를 쓴 알렉상드르 뒤마 필스(Alexandre Dumas, fils, 1824~1895, ‘삼총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아들), 철학자이자 비평가 히폴리테 아돌프 테인( Hippolyte Taine1828~1893) 등과도 깊은 우정을 나눴다. 1889년에는 영국을 유일하게 방문, 헨리 제임스를 만났다.
프랑스의 평론가이자 정치인 폴 레오타우(Paul Léautaud, 1872~1956)는 모파상(Maupassant)을 가리켜 ‘완전한 에로토마니아(erotomania. 색정증 환자,色情狂)’라고 불렀다
8.모파상의 말년은 비참했다. 당시까지도 치료가 불가능한 매독에 걸린 것이 문제였다. 불치병 매독은 모파상의 뇌를 망가뜨렸다. 발광이 심해져서 온갖 소동을 일으켰으며 1891년에는 자살까지 시도,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모파상이 입원한 곳은 파리의 파시(Passy)에 있는 에스프리 블랑쉬(Esprit Blanche)의 개인 정신병원이었는데 1893년 7월 6일 영면했다. 장례식은 파리의 생피에르 드 샤이요 교회에서 거행됐고, 에밀 졸라(Émile Zola)가 조사(弔辭)를 했다.
모파상은 "나는 모든 것을 탐냈고, 아무 것도 기뻐하지 않았다"는 우울한 묘비명을 남겼다. 파리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26구역에 묻혔다. 장례식이 끝난 며칠 후, 에밀 졸라가 파리 8구 유럽지구 몽소공원(Parc Monceau)에 기념비를 세울 것을 제안, 성사됐다.
9.모파상은 자신에게 붙은 '사실주의자', '자연주의자'라는 다양한 꼬리표를 매우 부담스러워 했다. 모파상은 일생 동안 어떤 문학 운동과 자신을 동일시 하기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파리 박람회 때 세워진 에펠탑이 파리의 풍경을 해친다며 건설을 반대했다. 에펠탑이 세워진 후 어느 날 에펠탑에서 식사를 하자, 지인이 왜 싫어하면서 에펠탑에 있느냐고 하자 "여기가 파리에서 에펠탑을 볼 수 없는 유일한 곳이니까(출처 불명)"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주요 작품은 장편으로 ‘Une Vie(여자의 일생,1883)’, ‘Bel-Ami(벨아미,1885)’, ‘Mont-Oriol (오리올 산,1887)’, ‘Pierre et Jean(피에르와 장,1888)’, ‘Fort comme la mort(죽음처럼 강한,1889)’, ‘Notre Cœur(우리의 마음,1890)’, ‘L' Angelus(삼종 기도,1894)’ 가 있다.
또 미완성 장편으로 ‘L'âmé Entrangère(낯선 영혼,1895)’가 있다. 단편으로는 ‘목걸이’ ‘비계덩어리’등 300여편이 있다. 이밖에 공포괴기 환상소설도 많다. 한국에는 2007년 ‘박제된 손(우물이 있는 집 출판사)’에서 나오기도 했다.
10.모파상을 만났던 사실주의의 영국 대표 작가 헨리 제임스는 ‘어느 인생’은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나 모파상을 ‘길 위의 사자’에 비유하며 격찬했다. 헨리 제임스는 사자(모파상)가 있는 길을 걸으려면 피해 돌아가거나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콩쿠르 문학상 수상 작가인 로제 베르셀은 모파상에 대해 “거의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놀라운 감수성을 타고나서 본능적으로 삶의 세밀한 디테일을 발견해 내는 경이로운 예술가”라며 “군더더기 하나 없이 본질만 남은 모파상의 문체는 시간에 부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학 이론가 코르넬리예 크바스는 “모파상은 체호프와 함께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의 거장”이라고 격찬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자서전에서 “동시대 파리에서처럼 호기심 많고 동시에 섬세한 심리학자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역사의 세기를 전혀 상상할 수 없다”며 “표본으로 이름을 댈 수 있는데 진정한 라틴인인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이라고 말했다.
11.프랑스 ‘르 피기로 리테레르’지는 2004년 1월부터 2012년 1월까지 8년 동안 프랑스 고전 작가들의 판매 부수를 집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장 많이 팔린 작가 1위에 모파상이 등극했다. 조사 기간 8년 동안 무려 380만 부가 팔렸다. 2위는 몰리에르, 3위는 에밀졸라, 4위는 알메르 카뮈, 5위는 빅토르 위고였다. (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