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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중국의 붉은 별-마오쩌둥과 紅軍의 長征을 다룬 르포문학의 첫 문단은 의문 투성이로 서술된다. 본문
"나는 7년간 중국에 체류하면서 홍군(紅軍)과 소비에트 지구들, 그리고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많은 의문들이 제기되는 것을 보았다. 당파심이 강한 열성적 지지자들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미리 준비해 둔 답변들을 거침없이 쏟아놓을 수 있겠지만 그런 답변을 들어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그것은 어떻게 ‘알았다’는 말인가? 그들은 홍구(紅區, Red China)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사실 국가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불가사의가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또 어떤 서사적 사건이 아무리 복잡하다 하더라도 아마 홍구에 관한 소문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을 것이다." (신홍범 역, 두레, 1992)
1.기존 르포르타지 문학의 형식을 파괴한 첫 문단이다. 육하원칙이나 르포 형식이 아닌 의문에 쌓인 중국 공산집단-당시는 공산 비적(匪賊)에 대한 외부의 시선을 비판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다민 객관적 글쓰기임을 강조하기 위해 중복형 서술 방식을 택했지만 난삽한 문장 전개를 막지 못했다. 도입부에 제3자적 관점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풀겠다는 의지를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은 르포의 목적성을 밝힌 것이다.
2.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1937)’은 1936년6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1930년대 중국 내전 시기 공산주의 집단의 지휘부와 장정(長征) 이야기를 담은 현장 기록이다.
당시만해도 서방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었던 마오쩌둥(毛澤東, 모택동, 1893~1976)의 공산당 지도부를 취재한 기념비적인 르포르타지 문학이다.
스노우는 청나라 멸망을 이끈 1911년의 신해혁명(辛亥革命) 지도자 쑨원(孫文,1866~1925)의 부인 쑹칭링(宋慶齡, 1892~1982)의 소개로 1936년서방 세계 기자 처음으로 중국 공산당이 있던 서북부 험지인 산시성(陕西省) 옌안(延安)에 들어가 마오쩌둥과 홍군을 회견했다.
스노우는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해 11월에 ‘China Weekly Review’에 르포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이후 원고는 영국으로 보내져 출판인이자 좌파 지지자인 빅터 골란츠(Sir Victor Gollancz, 1893~1961)가 세운 런던의 레프트 북 클럽(Left Book Club)을 통해 1937년 11월 출간된다.
출간 첫 4주동안 중국에서만 1만2000부 이상 팔렸다. 미국에서는 1년 뒤에 랜덤하우스에서 나왔다. 이 책의 영어명은 ‘Red Star Over China’이다. 일본에서는 ‘中国の赤い星’로 나왔다.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 이름은 埃德加·斯诺이다.
미국 종군기자 출신 사회주의 운동가 존 리드(John Reed, 1887~1920)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저널리스트 출신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Eric Arthur Blair, 1903~1950)의 ‘카탈루니아 찬가’와 함께 세계 3대 르포 문학의 하나로 꼽힌다.
3.1930년대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을 인터뷰하고 홍군을 취재해 쓴 것은 스노우가 최초다. 이전에 아그네스 스메들리(Agnes Smedley,1894~1950)의 ‘중국 혁명의 노래’가 나오긴 했지만 홍군 지도자를 인터뷰 하지는 못했다.
중국의 붉은 별은 1939년 1차 개정판(내용 추가)이 나오고, 1944년에는 일부를 삭제하고 ‘에필로그 1944’를 넣은 2차 개정판이 나왔다. 이후 1968년에는 1944년 판을 보완한 개정증보판, 1972년 판은 자료를 더 보강해 내놓았다.
이 책이 나오기 전 서방세계에서는 중국 홍군의 지도자와 사회주의 혁명운동이 왜곡 날조되고 있었다. 서방 세계 아무도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홍군의 활동은 풍문에 따라 춤췄다.
4.이 책은 중국 홍군(공산당)의 게릴라 활동 시기인 1930년대의 장정(長征)을 기록한 것이다. 장정은 홍군이 장제스(蔣介石,1887~1975)의 국민당 군대에 쫓겨 험지를 이용해 피난가서 세력를 재정비한 일이다. 그래서 서방세계 기자가 홍군을 만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스노우는 국민당의 지배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반대편 공산당의 진영을 들어갔다. 그리고 마오쩌둥과 다른 홍군 지도자, 홍군 부대원 등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해 신산고초(辛酸苦楚)의 장정(長征) 이야기를 실감나게 서술했다.
책에는 당시 만난 이들인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 전 중국 총리), 펑더화이 (彭德懷, 1898~1974, 6.25전쟁 중국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1966년 숙청), 린뱌오(林彪,1907~1971,전 중국 공산당 국방부장), 허룽(賀龍, 1896~1969) 등 홍군 지도자들의 일대기도 쓰여 있다.
5.영국 역사학자이자 런던대 교수 줄리아 로벨(Julia Lovell, 1975~현재)은 ‘중국의 붉은 별’에 대해 “서방의 중국과 마오쩌둥에 대한 지지와 승인을 이끌어 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썼다.
생전에 공식 전기를 갖지 않았던 마오쩌둥은 “나에 대한 전기는 이 책으로 대신한다"고 격찬했다.
한편 중국의 붉은 별 주인공 마오쩌둥은 현재도 국부, 절대자로 추앙받고 있다. 인민은행은 2004년 7월3 일 1949년 건국 당시 중산복을 입은 마오의 초상이 새겨진 1위안짜리 지폐를 새로 발행했다. 이에따라 마오의 초상은 100위안, 50위안, 20위안, 10위안, 5위안, 1위안 지폐 모두를 차지했다.
6.한국에서는 1985년 도서출판 두레에서 1972년 판을 모태로 출판됐다. 1975년 조선일보 해직 기자인 신홍범(1941~현재) 두레 대표가 번역했다.
당시 두레 대표는 1974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 초대위원장이었던 정태기(1941~2020)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이었다.
7.에드가 스노우의 책에 나오는 홍군의 장정이 왜곡됐다는 책도 나왔다. 중국 난징대 역사학자 가오화(高華, Gao Hua, 1954~2011) 등이 주장했다.
가오화는 2000년 홍콩중문대학에서 출판한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로서 마오쩌둥의 부상(浮上)을 기록한 저서에서 홍군이 국제 사회의 동정과 지원을 받기 위해 스노우를 불러들여 르포를 쓰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 1936년 홍군은 장정을 통해 섬북(陝北, 섬서성 북쪽)에 도달했으나 국민군의 포위로 내부의 물자가 극히 부족했다. 이런 시기에 스노우의 취재에 응했다. 가오화의 저서는 ‘How the Red Sun Rose,어떻게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게 되었는가)로 2018년 영역됐다.
#.에드가 스노우(Edgar Parks Snow, 1905~1972)=미국의 저널리스트. 국공내전(國共內戰, 1927~1950년사이 국민당과 공산당의 권력투쟁)이 한창인 1930년 서방 세계 기자 최초로 중국 공산당의 본부가 있던 산시성(陕西省, 성도는 시안, 西安) 바오안(保安, 현 옌안시 즈단현)을 방문 취재했다.
1.미국 미주리 주의 가장 큰 도시인 캔자스 시티(Kansas City)에서 태어났다.(유청소년기에 대한 이야기는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다.)
미주리 대학(1925~1926)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가 중퇴하고,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1927)에 편입, 수학했다. 미주리 대학시절 캔자스 시티의 지방지 ‘스타’의 통신원으로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3.1928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차이나 위클리 리뷰(密勒氏評論)’의 부편집장을 맡으면서 중국 연구에 몰두했다. 1934∼1935년에는 옌칭대학(燕京大學), 나중에 북경대로 병합)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 또 ‘뉴욕 선(1934∼1937)’, ‘런던 데일리 헤럴드(1932∼1941)’ 등의 특파원(프리랜서)으로 일했다.
4.스노우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중국의 국부 쑨원의 부인 쑹칭링(宋慶齡)를 만난 것이었다. 그는 쑹칭링의 소개로 중국 공산당의 본거지인 옌안(延安)으로 들어가 마오쩌둥(毛澤東)과 홍군를 만났고, 이를 다룬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을 썼기때문이다.
스노우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에는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의 특파원으로 인도, 중국, 소비에트연방을 취재했다.
5.1932년 중국의 미국 영사관에서 근무하던 헬렌 포스터(Helen Foste, 1907~1997, 필명 님 웨일즈)와 결혼했다. 님 웨일즈는 가명 김산으로 알려진 장지락(張志樂)의 전기 ‘아리랑(The Song of Ariran, 1941)’을 써서 한국에서도 유명한 여성 저널리스트다.
둘슨 1941년 미국으로 돌아왔으나 정치적 견해차이로 1948~1949년 초 사이에 이혼했다. 이후 스노우는 곧바로 여배우 로이스 휠러(Lois Wheeler)와 재혼했고, 아들 크리스토퍼(Christopher, 1949~2008)와 딸 시안(Sian, 1950~2018)을 뒀다.
6.매카시즘(McCarthyism,1950~1954년 미국을 휩쓴 반공산주의 열풍)이 만연하던 1950년대 FBI의 심문을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 활동에 커다란 제약을 받은 것이다.
매카시즘은 위스콘신주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 1908~1957)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스노우는 매카시즘에 신물을 느끼며,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했다. 하지만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7.에드거 스노우는 사망하기 전까지 중국 국가주석 마오쩌둥과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의 오랜 친구로 지냈다.
1960년과 1964년에는 공산당의 배타적 대외정책으로 ‘죽의 장막(bamboo curtain)’으로 불리던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 두 지도자를 만나기도 했다.
스노우는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에도 마오쩌둥과 부인 장칭(江青, 1914~1991), 저우언라이 등을 만나는 등 사망 전까지 중국과 각별한 우의를 보여줬다.
1970년 아내와 함께 중국에 간 스노우는 10월1일 열린 국경일 퍼레이드에서 마오쩌둥과 함께 군을 사열한 유일한 미국인으로 남았다.
8.스위스에 살면서 암(췌장암) 투병을 했다. 이때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가 중국 의사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2년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기 직전에 보(Vaud)의 니옹(Nyon) 근처 아이신스(Eysins)에 있는 그의 집에서 타계했다. 향년 66세였다.
스위스에서 숨진 스노우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절반은 미국 뉴욕 동북부 강인 허드슨 강 근처의 스네덴스 랜딩(Sneden 's Landing)에 있는 묘지에 묻혔다.
유해의 절반은 1973년 중국으로 공수돼 1930년대 강사로 있었던 옌칭(Yenching University) 캠퍼스(북경 대학)에 묻혔다. 저서로는 ‘아시아 전쟁(1941)’, ‘소비에트 세력의 형태(1945)’ 등이 있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