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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캔터베리 이야기-영문학의 아버지가 쓴 불멸의 명작은 욕망의 봄으로 서문을 연다 본문
총 서시(The General Prologue) “4월의 달콤한 소나기가 3월의 가뭄을/ 뿌리까지 깊이 꿰뚫을 때,/그리고 꽃이 피게 하는 촉진적인 힘을 지닌/ 그 축축함에 모든 줄기가 적셔질 때/ 그리고 서풍 역시 달콤한 입김으로/ 모든 숲과 들판에서 부드러운 새순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있을 때, 그리고 갓 나온 태양이/ 백궁좌의 반절만큼 달렸을 때,/ 그리고 밤새도록 뜬 눈으로 잠자던/ 작은 새들이 노래 부를 때/(자연은 그렇게 그들의 마음을 깨워 자극하네.) 그때 사람들은 성지 순례 떠나기를 원하며,/ 순례자들은 낯선 해안을 향하여,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유명한 멀리있는 성자를 찾았다./ 그리고 보다 특별히 영국의 모든 지역으로부터/ 캔터베리로 그들은 모여들었다./ 그들이 고통받을 때 도움을 준/ 축복받은 성스러운 순교자를 그곳에서 찾기 위하여,/ 이 계절 어느 날/캔터베리로 성지 순례를 떠나기 위해/마음속 믿음 가득한 채 내가 머물고 있던/서더크에 있는 타바드 여관에,/ 저녁 무렵, 다양한 계층의 스물아홉 사람이/ 우연히 일행이 되어/한 무리로 그 여관을 찾았다.”(제프리 초서 저, 이동일ㆍ이동춘 역, 민음사, 2023)
1.소나기를 통한 봄의 귀환, 순례하기 좋은 계절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첫 문단이다.가뭄을 해소한 달콤한 소나기, 새 순, 새의 노래 등이 욕망으로 가득 찬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봄이라는 물리적 풍경에 맞춰 깨어나는 육체적 욕망, 종교적 열정 등을 은연 중에 순례의 계절과 결합시키고 있는 도입부다. 시적 운율이 뛰어난 운문이지만 매끄러운 산문처럼 잘 읽힌다. 당시 순례의 실상과 순례를 위해 찾아드는 이들의 모습을 순례자의 한사람인 내레이터가 제 3자적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다. 다만 첫 문단에 그리고가 너무 나온 것은 어색한 느낌을 준다. 제목에 나오는 *캔터베리는 영국 런던 남동쪽으로 약 85키로미터 떨어진 캔터베리(Canterbury)지역을 말한다. *백궁좌(白宮座)는 열 두 별자리 천궁도(天宮圖,horoscope)의 첫 번째에 해당한다. *서더크(Southwark)는 템스강 남쪽 런던 외곽지역 마을 이름, *타바드여관(The Tabard Inn)은 중세에 실제 있었던 여관이다.
2.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1387~1400)’는 중세 영문학을 대표하는 불멸의 명작이다. 영어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이자 미완성 걸작이다. 당시 하층민의 언어인 영어로 집필했고, 영어로 인쇄된 최초의 작품이다. 이 시가 나오기 이전에는 지식인과 지배계급 대부분이 라틴어나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다.
당시는 인쇄기가 보급되기 50여 년 전(1400년 기준)이다. 모든 책이 기계가 아니라 수기(手記), 필사였다. 손으로 쓴 원고가 아닌 책은 없었던 것이다. 저자의 수기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 원고조차도 저자의 원본이 아니다.
현전(現傳) 판본은 84개의 필사(筆寫, 붓으로 베끼는 것)원고와 4개의 초기 등사제본 형식의 간행본(Incunabula,1500년 이전 인쇄)이다. 간행본은 필경사(筆耕士,글씨를 쓰는 일을 하는 직업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가장 오래된 등사본은 헹워트(Hengwrt) 와 엘즈미어(Ellesmere) 사본이다. 가장 완전한 사본은 15세기에 나온 ‘The Ellesmere Manuscript(미국 캘리포니아 산 마리노 헌팅턴 도서관 소장)’이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중세 영어 구절로 쓰여진 24개의 이야기를 모은 1만7000행이 넘는 모음집이다. 책으로는 영국 최초 인쇄업자 윌리엄 캑스턴(William Caxton,1422~1492)이 1478년과 1483년에 냈다. 1476년 영국 최초 인쇄기를 갖추고 성경과 왕실 발행 사면 편지 외 1순위로 ‘캔터베리 이야기’가 출판됐다. 이때 간행본이 영국 최초 책 출판물로 추정한다.
3.서로 다른 다양한 내용을 큰 구조안에 넣는 옴니버스 형식 서사시로 전형적인 액자 이야기 타입을 취하고 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24명의 다양한 사회적 계급, 직업, 나이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운문으로 쓴 모음집이다. 실제 이야기를 한 사람은 23명, 초서가 두 개의 이야기를 했다. 여관 주인 해리 베일리(Harry Bailly)가 ‘스토리텔링 경연 대회’를 제안하고 초서가 기록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 서사시의 테마인 중세 시대 이후 캔터베리 대성당의 성 토마스 베켓(St Thomas Becke, 1119~1170, 캔터베리 대교구 교구장) 신전은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지였다. 1170년 헨리 2세(Henry II of England, 1133~1189)의 측근들에게 암살된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베켓을 기리는 성지 순례가 당시 가톨릭 신자들의 의무일 정도였다.
4.캔터베리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 사회 풍속, 종교와 교회의 역할 등 깊이 있는 주제로 당대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교회와 성직자의 위선과 뷰패 비판 물론 인간에 대한 깊은통찰도 보여주고 있다.중세 영국의 시대상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풍속도다. 1340년대 무렵 흑사병(페스트)이 전 유럽을을 휩쓸었고, 세금 인상과 빈부 격차 증가는 1381년 농민 반란으로 혼란의 절정를 이룬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저자는 당대를 고스란히 담을수 있는 서사시를 구상, 순례자의 개인 이야기 형식으로 집필했다. 구조와 형식은 오리엔트 지방의 전래 이야기인 ‘천일야화(千一夜話, 아라비안 나이트)’나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의 ‘데카메론(Decameron, 1351~1353)’, 존 가워(John Gower,1330~1408)의 ‘여인의 고해(告解, Confession Amantis, 1390)’ 등을 차용(借用)했다.
특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비슷한 점이 많다. 초서는 1372년 이탈리아에 외교 사절단으로 파견됐었다.다만 데카메론과 다른 점은 데카메론은귀족 집단이 전염병을 피해서 한자리에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캔터베리 이야기는 자발적 참여자들이 경쟁하는 구조다.
5.등장인물은 저자인 초서(Chaucer)와 호스트 해리 베일리(순례자들과 여행을 하는 Tabard Inn의 주인)로 이들이 ‘액자 속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이어 기사(Knight)와 기사의 아들인 젊은 무사(Squire), 기사의 시종 향사(Yeoman),여자 수도원장(Prioress)과 사제(司祭)인 수녀원 지도신부(Nun's Priest), 2번째 수녀(Second Nun) 가 나온다.
또 수도원의 관리인 수사(Monk)와 탁발수도사(托鉢修道士,Friar) 휴버트(Hubert), 돈벌이 상인 무역상(Merchant), 논리학을 공부하는 옥스퍼드대학생(서생 Clerk), 명성이 높은 최고 변호사(Man of Law). 지주(Franklin), 조합원들(Guildsmen)인 바스시(市)의 여자 직조공, 잡화상, 염색공도 등장한다.
또 다트머스 출신의 선장(Shipman), 의사(Physician), 바스의 아내(Wife of Bath), 주임신부(Parson)와 동생인 농부(Plowman), 허풍쟁이에 음담패설가 방앗간 주인(Miller), 지주 집 마름(Reeve), 면벌부 판매자(Pardoner), 성당 참사회원(Canon)과 시종(Canon's Yeoman) 등이 나온다.
6.각 인물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펼쳐지는 구조다. 순례객들이 캔터베리 대성당에 있는 성 토마스 베켓의 유해를 참배하기 위해 캔터베리로 여행하는 동안의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사, 여수도원장, 수도승, 상인, 법률가, 소지주, 학식높은 서기, 방앗간 주인, 정원사, 면죄부 상인, 베스의 아내 등 실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7.캔터베리 순례가 생긴 배경에는 순교자(殉敎者)가 있다. 잉글랜드 플랜태저넷(Plantagenet) 왕조의 창시자 헨리2세(Henry II of England, 1133~1189)의 총애(寵愛)를 받아 제40대 캔터베리 대주교에 임명된 토마스 베켓(St Thomas Becke, 1119~1170, 캔터베리 대교구 교구장)이 주인공이다.
베켓은 헨리2세의 최측근으로 다양한 일을 하지만 대주교가 된 후 왕에 대한 충성보다 종교색이 강해진다. 결국 헨리2세에게 반기(反旗)를 들었다가 추방됐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헨리2세의 부하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됐다. 당시에 교황청에서 시성(諡聖, Saint)하고 추앙했다. 그래서 캔터베리는 당대 영국 최고 최대의 순례지가 됐다.
다만 현대에 들어와서 ‘추앙’을 사라지고 오히려 ‘악한’이미지가 강화됐다. 2006년 영국 BBC에서 선정한 최악의 영국인 여론조사에서 2위로 뽑혔다. 이유는 성공회로 바뀐 영국인들이 '왕권을 교황권에 종속시키려 했던 가톨릭 광신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영국인 1위는 ‘살인마 잭’으로 불리는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 출생년 미상~1888)’이었다.
8.18세기 여류 작가 해리엇 리(Harriet Lee,1757~1851)는‘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 1797~1805, 전 5권)’를 썼다. 초서의 작품을 패러디해 뜻밖의 우연으로 함께하게 된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12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이 작품은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 1788~1824)에게 큰 영향을 미쳐 ‘베르너 혹은 유산(1822년 출판)’의 극화에 이바지했다.
영국 작가이자 수학자 헨리 어니스트 더드니(Henry Dudeney,1857~1930)의 1907년 저서 ‘캔터베리 퍼즐과 기타 기묘한 문제들(The Canterbury Puzzles and Other Curious Problems)’에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캐릭터가 중심으로 나온다.
영국 역사 미스터리 소설가 폴 찰스 도미닉 도허티(Paul Charles Dominic Doherty , 1946~현재) 는 캔터베리 스토리 프레임과 초서의 캐릭터를 모두 활용, 소설을 썼다. 미국 SF 작가 댄 시몬스 (Dan Simmons, 1948~현재)는 외계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쓴 ‘하이페리온(Hyperion1989, 휴고상 수상작)의 형식과 구조를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취했다.
영국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현재)는 진화 관련 논픽션 책 ‘조상이야기(The Ancestor's Tale-A Pilgrimage to the Dawn of Evolution)’의 구조로 사용했다. 캐나다 여류작가 안젤라 앤지 압두(Angela ‘Angie’ Abdou, 1969~현재)는 2011년 소설 ‘The Canterbury Trail’에서 켄터베리 이야기를 활용했다.
9.영국의 20세기 최고 시인 엘리엇(T. S. Eliot,1888~1965) 이 쓴 *황무지(The Waste Land,1922)*는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전체 서문(THE PROLOGUE of the PROLOGUE)의 패러디라고 할 수 있다.
1944년 영국에서 영화로 나왔다. 영국 출신 마이클 파웰 에메릭 프레스버거(Emeric Pressburger, 1902~1988)와 마이클 레이텀 파월 (Michael Latham Powell, 1905~1990) 감독이 내용을 현대에 맞춰 ‘캔터베리 이야기(A Canterbury Tale)’로 내놓았다.이 영화는 전시 선전용 영화로 제작했지만 시적이고, 예술적인 영상으로 호평받았다.
1972년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합작영화도 만들어졌다. 제목은 ‘캔터베리 이야기(I Racconti di Canterbury, 영어 The Canterbury Tales)이지만 선정적 이야기 부분만 뽑아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 1922~1975) 감독 작품으로 1972년 제2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The Golden Bear )을 받았다.
스코틀랜드 작곡가이자 지휘자 에릭 윌리엄 치숄름(Erik William Chisholm, 1904~1965)은 1961년 오페라 ‘The Canterbury Tales’를 완성했다. 영국계 아일랜드의 문학자 네빌 헨리 켄달 에일머 코그힐(1899~1980)은 1968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캔터베리 테일즈’를 집필했다.
조너선 마이어슨 (Jonathan Myerson, 1960~현재)는 애니메이션 영화 ‘캔터베리 테일즈(1998~2000, 3부작)’를 제작, 1999년 오스카상(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후보에 올랐다.영국 영화 및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에서는 최우수 애니메이션 영화상을 받았다.
10.한국에서는 1962년 곽장현 역 캔터베리 이야기(창신문화사)’ 처음 나왔다. 이후 1963년 정음사에서 처음 출간한 ‘김진만 번역본’이 아직도 최고로 친다. 수십 년간 유일한 번역본이기도 했고, 산문 번역을 운문처럼 배치해도 눈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 한국어의 리듬을 잘 사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번역계에서는 지금도 ‘김진만 번역본’을 뛰어넘은 책이 없다고 평가한다.
2000년대 들어서 스페인 문학 전공자 송병선 역 ‘캔터베리 이야기(책이 있는 마을,2000), 영문학자 이동일, 이동춘 역 ’캔터베리 이야기(한울,2001) 등이 나왔다. 이후에도 이동일·이춘복의 공역본(한국외대 출판본,2007), 송병선의 역본(서해문집 2007), 중세 영문학 전공자 최예정 역본(을유문화사,2022)이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23년 12월 말에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에 포함시켜 나온 것으로 이동일·이춘복 공동 번역으로 출간됐다.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0,1342, 1343?~1400)=근대 영시의 창시자이자 영문학의 아버지. 영문학사에서 14세기(1301~1400)는 '초서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시인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 후대 영국 문학 거장들의 길을 닦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철학자이자 천문학자로도 명성을 얻었으며, 궁정관료, 외교관, 의회 의원도 지냈다.
프랑스 시의 작시법을 영어에 적용한 최초의 작가이자 런던 사투리(영어)로 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한 최초의 작가다. 잉글랜드 왕실 및 귀족들의 언어인 노르만어와 프랑스어, 라틴어, 중세영어, 게다가 이탈리아어까지 원활하게 구사할 줄 하는 언어 천재로 평가받는다.
1.런던 외곽에서 와인 상인 존 초서(John Chaucer)와 어머니 아그네스 드 콤프턴 (Agnes de Compton)사이에서 태어났다. 초서라는 성은 프랑스어 '소시에르'(chaussier, 신발 제조공)에서 유래했다.
아버지 존 초서는 왕족과 왕실의 다른 귀족들에게 자신의 상품을 판매한 포도주 양조 및 공급상이었다. 어머니는 삼촌 하모 드 콤프턴(Hamo de Copton)으로부터 런던의 24 개 상점을 포함한 재산을 상속받은 부자였다.
2.초서는 세인트 폴 대성당 학교(St. Paul's Cathedral School) 등을 다닌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베르길리우스(Virgil)와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소(Publius Ovidius Naso,BC43~AD17, 약칭오비드,,Ovid) 등의 문학 작품에 빠져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초서는 이후 당시 상인이나 귀족 아닌 지식인 계층의 관행대로 귀족 가문의 수행원으로 들어갔다. 1357년 17세 무렵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Edward III, 1312~1377)의 삼남 라이오넬(Lionel of Antwerp, 1338~1368)의 아내인 제4대 얼스터 백작부인( Elizabeth de Burgh, 엘리자베스 드 부르흐,1332~1363)의 수행원이 된 것이다. 초서의 초기 임무는 침대 정리, 심부름, 양초 나르기 등이었다.
이후 초서는 백작 부인의 수행원으로서 귀족들과 친분을 쌓았고, 그들의 사교 모임에서 시를 짓고 고전을 낭독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고급 문학의 세계를 접한 것이다.
3.백년전쟁(The Hundred Years' War, 1337~1453, 프랑스와 영국 간에 벌어진 왕위 쟁탈 전쟁)의 초기인 1359년 에드워드 3세(Edward III, 1312~1377)의 프랑스 침공에 따라 영국 해협을 건넜다. 초서는 프랑스 북동부에서 벌어진 ‘랭스 공방전(The Reims campaign,1359~1360)에 참전했다가 그해 프랑스군에 포로로 잡혔다. 결국 에드워드 3세 등이 돈을 내 몸값을 주고 풀려났다.
4.초서는 1360년대 초 평생의 사랑이자 미래의 아내인 필리파 드 로트(Phillipa de Roet,1346~1387)라는 여성을 만난다. 드 로트는 귀족출신으로 궁정에서 시중드는 여인이었다. 드로트는 에드워드3세의 부인인 필리파 오브 하이넛 (Philippa Of Hainaut, 1314~1369)왕후를 측근에서 모시는 여인이었다.
둘은 1366년 결혼했다. 초서의 아내는 그해부터 왕실 연금을 받을 정도로 왕가의 신임을 받는 여인이었다. 둘은 아들 토마스, 딸 엘리자베스(1367~?), 아들 루이스(Lewis, 1381~?) 등 세 자녀를 낳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중에 아들 토마스는 귀족의 딸과 결혼했고, 토마스의 딸 앨리스(Alice Chaucer)는 서퍽 공작부인이 되었다. 손녀 세대에 드디어 귀족이 된 것이다. 이밖에 엘리자베스는 1381년 런던 자치구 베이킹 수도원(Barking Abbey)에서 수녀가 됐다. 둘째 딸 아그네스는 1399년 헨리 4세의 대관식 궁녀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5.초서는 결혼하던 해에 외교관이 됐다. 그해 잉글랜드 사절단장으로 에스파냐의 나바르 왕국을 방문했다. 1367년 초서는 종신연금을 주는 왕의 시종이 됐고, 이어 기사로 승진했다.
왕의 기사로 일하던 1369년 후반~1370년 초 최초의 장시 ‘공작부인의 책(Book of the Duchess)’을 발표, 호평을 받았다. 1300행이 넘는 이 시는 랭카스터 공작(duke of Lancaster)인 곤트(Ghent가 변한 말)의 존(John of Gaunt, 1340~1399)의 첫 부인인 랭카스터 공작부인 블랑시(1369년 9월 역병으로 사망)를 위한 애가(哀歌, 슬픈 노래)였다.
1370년대 초 외교관으로 플랑드르·프랑스·이탈리아 피렌체 등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1374년에 양모 전담 세관의 통제관이 됐다. 양모는 14세기 영국 부의 기초로 왕실의 자금원이었다. 그래서 양모 통제관은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다.
6.프랑스 시 ‘장미의 로맨스(Roman de la Rose)를 번역했다. 이 시는 프랑스 오를레앙에 사는 기욤 드 로리스(출생 사망 미상)가 1230년 경에 시작해 나중에 장 드묑(Jean de Meun,1240년 경~1305년 이전 사망)이 1280년 경에 완성했다.
1382년 주류 및 기타 상품에 대한 소액 관세의 회계검사관으로 임명됐고, 1385년 10월 켄트의 치안판사도 겸직했다. 1386년 8월 켄트 주 기사가 됐지만 1386년 말 회계관에서 면직됐다. 걸작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는 회계검사관 시절인 1385년 44세 무렵 런던 외곽 켄트에 살 때 구상했던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1387년 아내가 사망했다. 1389년 7월 런던 탑과 웨스트민스터 궁전과 같은 왕실 건물의 보수·유지, 운영 책임을 맡은 국왕의 보좌관이 됐고, 1391년에는 서머싯의 노스 페서턴에 있는 왕실 산림의 부산림장이 됐다. 이후 사망할 때까지 이 직책을 맡았다.
7.초서는 곤트의 존의 아들로 1398년 리처드 2세(Richard II)에게서 추방된 랭카스터 공작 헨리 볼링브룩(Henry Bolingbroke, 1366~1413)과도 친했다. 헨리 볼링브룩은 1998년 쿠데타를 일으켰고, 1399년 9월 랭커스터 가문 최초의 왕인 헨리 4세(Henry IV, 1366~1413)로 등극했다.
헨리4세는 초서가 그동안 받아온 20파운드의 연금, 모피로 장식된 진홍색 예복, 1397년 이후 연간 포도주 한 잔(104갤런)을 포함한 왕실의 선물을 계속 지급했다. 특히 연금은 두배 이상 추가해줬다.1399년 12월 초서는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의 정원에 있는 집을 임대했고, 그 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8.초서는 1400년 10월 25일 영면했고, 왕실의 매장지인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 귀족 아닌 평민 최초로 묻혔다. 이유는 초서의 거주지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1556년 왕실 뜻으로 영국 아티스트 중 최초로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에 안장됐다. 이후 이 곳은 ‘시인의 코너’로 기념되면서 영국 유명 작가들이 안장됐다.
초서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트로일러스와 크리사이드(Troilus and Criseyde)'는 영문학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로 격동의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크리세이드가 충실한 연인 트로일러스를 배신하는 비극을 다뤘다.
다른 작품은 공작부인의 책(The Book of the Duchess), 파울즈의 의회(The Parliment of Fowles), 명예의 전당(The House of Fame), 선한 여성의 전설(The Legend of Good Women) 등이 있다.
9.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 극작가인 존 드라이든(John Dryden,1631~1700) 등이 초서의 작품에 감탄했다. 하지만 중세영어를 이해하는 이들이 많지 않아 광범위하게 읽히지 못했다.
이 시기에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문학 편집자이자 중세 학자 존 우리(John Urry, 1666~1715)가 초서 전체 작품을 로마 활자로 첫 편집, 간행했다. 처음으로 인쇄된 초서의 전기, 고대 영어 단어 용어집,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초서에 관한 작가 작가들의 증언이 포함됐다. 150년 동안 모든 원고를 참조한 초서의 첫 번째 판본으로 존 우리가 사망한 6년 후인 1721년에 나왔다.
영국 출신 화가이자 공예가 시인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는 1896년 ‘초서 작품집(Kelmscott Chaucer, 케름스콧-Kelmscott Press)’을 간행했다. 이 전집은 서구 장서가들이 가장 소장하고 싶은 아름다운 인쇄본 중의 하나다. 아센덴 공방의 ‘돈키호테’와 더우즈 공방의 ‘성서’와 함께 세계 3대 아름다운 인쇄본으로 꼽힌다고 한다.
초서가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최고의 영국 문헌학자이자 지명 연구가 월터 윌리엄 스키트(Walter William Skeat,1835~1912)의 작업 결과였다. 스키트는 ‘제프리 초서의 전집(1894~1897)’를 펴내 후대 연구가들의 토대를 제공했다.
10.초서 다음 세대인 시인 토마스 호클레브(Thomas Hoccleve, 1368/69~1426)는 초서의 작품을 읽고 롤모델로 삼았다. 그는 초서를 처음으로 ‘영국 문학의 아버지’라 칭했고, "우리의 공정한 언어(영어)의 첫 번째 인물"이라고 칭송했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도 초서와 그의 작품이 모델일 정도로 탐독했다. 서재에 작품을 놓고 애독했다고 한다. 그는 1850년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에서 초서의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의 누가복음 23장 34절을 자신도 인용했다.
1900년대 초 작가이자 유명 저널리스트 G. K.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 1874~1936)은 "위대한 영국 작가 중에서 초서와 디킨스가 가장 공통점이 있다"고 썼다.
미국 유명 문학평론가 해롤드 블룸(Harold Bloom, 1930~2019)은 초서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양 작가 중 한 명으로 꼽았다. 블룸은1997년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초서에게 빚을 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11.영국 문헌학자 프레드릭 제임스 퍼니발(Frederick James Furnivall, 1825~1910)은 1868년 제프리초서협회를 설립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초서 연구 프로젝트는 1924년에 시작했다. 1966년 ‘Chaucer Review’를 발행했다.
초서 연구단체인 뉴 초서 소사이어티(New Chaucer Society)도 활동하고 있다. 영국 버밍엄 대학교에서는 캔터베리 이야기 프로젝트(Canterbury Tales Project) 팀이 구성돼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 88명이 쓴 판본을 필사해 보고, 대조,편집해 새롭게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콘덴츠 프로듀서)